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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

by 자급자족

태어나서 처음으로 112에 신고를 했다. 새벽 2시쯤, 잠이 안 와서 천장을 보고 있었다. 딸 영어학원이 끝나기를 기다리다 맥도널드에서 마신 쓴 커피 때문에 잠이 오지 않았다.


괴성을 지르는 남성과 더 괴성을 지르는 여성의 소리가 뒤엉켜 들렸다. 뭔가를 벽으로 세게 내려치는 소리가 주기적으로 들렸다. 오들오들 떨렸다. 우리 집보다 위층인 건 틀림없는데 몇 호인지 모르겠다. 이사 온 지 2년째인데 처음 겪는 일이다. 아니 생전 처음 있는 일이다.


미안하다고 말하며 남편을 깨웠다. 남편이 현관문 밖으로 나가서 듣는다. 제발 위로는 올라가지 말라고 당부했다. 소리는 계속되었고, 싸우는지 아니면 일방적인 피해를 보는 상황인지 내가 그 한가운데에 발가벗겨 서있는 기분이었다.


어느 정도 소리가 나다 끊겼다면 신고하지 않았을 것이다. 마치 "신고를 제발 해주세요"라고 소리 지르는 듯했다. 살려달라는 소리로 들렸다. 그 상황이 너무 고통스럽게 들렸다.


경비실에 전화를 걸었다. 에서 엄청난 소리가 들리는데 신고 들어온 게 없냐고 여쭸다. 없다고 하신다. 너무 고통스러운 소리가 긴 시간 동안 들리는데 이럴 때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라고 여쭸다. 입주민이라 경비실에서는 신고할 수 없단다. 아파트 바로 앞에 있는 경찰서 전화번호를 지역번호까지 불러주신다. 나가는 시간이 렵다.


경찰서에 전화를 걸었다. 소리가 너무 크고 뭔가로 계속해서 내리치는데 이를 어찌해야 하느냐고 했다. 출동하겠단다. 신고를 한 사실만으로도 사시나무 떨듯 떨었다. 처음 겪는 일이라 무섭다. 남편이 왜 소설을 쓰냐고 한다. 잘 들어보면 남자 소리만 들리는 게 아니라 여자소리도 들린단다. 그러니 쌍방 부부싸움이라 한다.?????? 우리 중 하나는 분명 안드로메다에서 왔을 것이다.


남자는 크게 소리 지르고 있었고 여자도 비명을 지르고 있었으니, 그래 누가 가해자고 누가 피해자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모두 고통스러워하는 상황인 건 맞는 것 같다. 두 사람 혹은 그걸 목격 중인 자녀가 끊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 경찰이라도 끊어줘야겠다.


경찰이 출동했는데, 거짓말처럼 조용해졌다. 결국 비명의 호수를 찾지 못하고 돌아갔다. 어떻게 그렇게 조용해질 수 있는지. 나만 헛것을 보았나 보다. 다음에는 엠뷸런스에 사람이 실려나가야 신고해야 하는 건가 란 생각이 잠깐 스쳤다. 그게 나이스 타이밍인 건가? 정말 고통에 호소하는 비명이었고 너무 긴 시간 동안 지속되었다. 경비실에 신고가 들어온 게 없는 게 이상했다. 비명이 시작될 때 바로 신고했어야 했나..


오늘 잠은 다 잤다. 해가 떠야 습기를 녹여줄 것 같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사람이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 가장 의지가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가장 무섭다. 귀신 따위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태어나서 그런 비명소리는 처음 들었으며, 만약 내게 닥쳤다면..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못 사는 이유가 될 듯하다. 그게 술 때문이었든 무슨 이유에서였든. 지금도 떨린다. 세상이 참 고역이다. 멀미가 나는 듯 어지럽고 매스껍다.


분노는 바보들의 가슴속에서만 살아간다.

- 앨버트 아인슈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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