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빗장을 열고 나오길

by 자급자족

얼마 전 친정오빠가 조카의 투표 인증샷을 보내왔다. 여름날씨인데 사진 속 조카는 긴팔을 입고 있었다. 갓 스무 살이 넘은 조카는 어느 날부터 방에서 나오지 않게 되었다. 방 안에서 게임을 하거나 잠을 자거나 도무지 잘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고기반찬 없으면 조카가 그대로 방으로 들어간다고 했다. 그때부터 오빠네 집에 고기를 보내기 시작했다. 비싸지 않은 고기인데 오빠가 부담스러워할까 봐 회사에서 온라인 포인트가 많이 나와서 구입하는 거라고 둘러댔다.


조카의 칩거에 가족 그 누구도 섣불리 솔루션을 못 내고 있다. 사회복지 분야 공무원으로 일하는 언니도, 학교폭력 분야에 전문가라는 남편도, 평생 직업 군인으로 일하며 다양한 문제의 신병들을 만나고 있다는 남동생도 지켜보고만 있을 뿐이다.


참 밝고 착하고 똑똑한 조카인데 어떤 이유로 방에서 나오지 않는지 알 수 없다. 가족 모두가 핑크빛이면 좋겠지만, 지금은 그런 상황이다. 그저 기도하는 마음으로 기다릴 뿐이다. 조카가 몇 달 만에 나와서 처음 한일이 투표라고 했다. 투표하지 않으면 밥을 차리지 않겠다는 오빠의 협박으로 나왔단다.


스스로 마음의 빗장을 못 열고 있는 조카도 두려움 없이 나올 수 있는 세상이었으면 한다. 숨을 쉬고 일상을 사는 것이 죄스럽지 않은 나날이었으면 좋겠고, 행복한걸 행복하다고 호들갑 떨며 말할 수 있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뉴스 따위는 관심 없는 직장맘으로 살고 싶고, 더 이상 뜨거과 차가움이 공존하는 아스팔트 바닥에 앉고 싶지 않다.


조카가 방에서 나오지 않아 옷을 잘 사주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긴팔옷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옷센스 없는 내가 무신사 페이지에서 랭크순으로 보면서 조카의 옷을 골라 택배로 보냈다. 오빠에게는 성격 나쁜 막내고모 말고 성격 좋은 셋째 고모가 보낸 거라고 둘러대라고 부탁했다. 살가운 F형 고모가 아니고 지극히 T형 고모라 조심스럽다.


조카를 위해서라도 두 발로 딱 지탱하고 잘 살아야겠다. 언제라도 기댈 수 있게.


다 좋아질 것이다.

아무 일 아니다.


오늘도 기도하는 마음으로 택배를 보낸다. 기도가 닿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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