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고 열무김치를 담기로 했다. 아직 온전히 혼자 열무김치를 담아본 경험이 없다. 김치가 떨어지기 무섭게 시어머니께서 담아주시니 스스로 연습해 볼 기회가 없었다.
5월쯤, 어머님께 열무김치 담는 법을 배웠다. 그 레시피를 적어두었는데, 오늘 다시 읽어보니, 양념의 계량 기준이 없다. "조금조금, 적당히, 간을 봐서, 그때그때"라고 설명하신 걸 그대로 적어둔 것이다. 어머니께서 "혼자 세 번만 연습하면 열무김치 전문가가 될 거야" 하셨다. 첫 연습 도전이 막막하다. 세 번 연습하다 보면 전혀 다른 레시피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 오늘은 어머님의 레시피를 실습하면서, 계량 기준도 함께 적어보기로 했다.
# 열무 절이기
- 절이기: 열무 4kg, 소금
- 절이는 시간 1시간 30분
마트 대신 농장으로 갔다. 열무를 구입하기 위해서였다. 봄열무가 아닌 가을무 씨앗으로 키운 열무라 맛이 더 깊다고 했다. 2kg만 사고 싶었지만, 농장아주머니께서 "보통은 4kg은 담지" 하신다. 냉장고 공간을 가늠한 뒤, 결국 4kg을 1만 원에 구입했다. 무농약, 한랭사 안에서 정성껏 키운 열무다.
남편의 환청이 들리는 듯했다. "냉장고를 비워놓으면 또 식재료를 채워놓고..." 남편은 식재료 쟁이는 걸 싫어한다. 열무를 거실에서 다듬었다가는 몇 번의 소리 없는 째려봄을 당할 것이다. 농장 아주머니께 열무를 다듬다 가도 되느냐고 여쭸더니, 흔쾌히 허락해 주셨다. 못 쓰는 잎은 염소 밥으로 두고 가기로 했다. 흙바닥에 앉아 열무를 다듬으니, 에어컨 바람 가득한 사무실보다 오히려 이 자리가 더 편안하게 느껴졌다.
열무를 다듬어 헹구고, 손으로 대충 3등분으로 잘랐다. 소금을 켜켜이 뿌리고 뚜껑을 덮어 놨다. 뚜껑이 작다. 1시간 뒤에 위아래를 바꿔줬다. 총 1시간 30분 정도 절였다. 다 절여진 후 두어 번 헹궜다.
# 밀가루 풀 쑤기
: 물 1컵 반, 부침가루 한 스푼
어머님께서 열무가 절여지는 동안 제일 먼저 할 일이 밀가루 풀을 쑤어 식히는 일이라고 하셨다. 세 번 시행착오를 겪으며 최적의 방법을 터득할 때까지 했다. 처음에는 튀김가루를 써서 실패. 두~세 번째는 밀가루가 잘 녹지 않아서 실패했다.
어머니께서 한 대접의 물을 냄비에 끓이고, 반대접의 정수기 물에 부침가루(or 밀가루) 한 스푼을 미리 풀어 끓는 물에 쪼르륵 부으면 풀이 잘 만들어진다고 하셨다. 근데 그 물이 정수기의 뜨거운 물인지, 찬물인지를 모르겠다. 여러 번 실패 후, 미지근한 정수물에 부침가루 한 스푼을 녹여서 끓는 물에 쪼르르 따르니, 고운 풀이 만들어졌다.
# 양념 만들기
야채: 양파 1개, 마늘 14개, 풋고추 3개, 대파 3개
양념: 고춧가루 스탠컵으로 2컵, 설탕 반컵, 소금 2스푼, 액젓 한 컵, 물 2컵
엘리베이터 안에서 유모차를 지팡이 삼아 서 계신 할머님과 마주쳤다. 열무를 본 그분은 한 말씀하셨다. "양파를 갈아서 물이 자발자발하게 만들면 김치가 시원해". 그 말씀이 오늘 양념의 결정적 팁이 되었다. 자박자박(=자발자발)의 의미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았다. "건더기나 절이는 물건 따위가 겨우 잠길 정도로 물이 차 있는 모양'을 뜻한다. 양파 반 개와 마늘 14개, 물 두 컵을 갈아 자박자박함을 추가했다. 김치엔 어르신의 조언이 최고의 비법이다.
야채 양념으로 쪽파를 넣으면 좋은데 없다. 냉장고에 있던 대파 3개, 냉동고에서 꺼낸 풋고추 3개, 양파 반 개를 적당히 썰어뒀다. 핸드믹서에는 양파 반 개와 마늘 14개 그리고 물 두 컵을 넣고 갈았다. 고춧가루와 간 양파, 마늘, 밀가루풀, 소금 2스푼, 까나리 액젓 1컵, 설탕 반컵을 섞어뒀다. 매번 느끼지지만 김치에는 염분이 참 많이 들어간다.
# 열무 헹궈 양념에 버무리기
절여진 열무는 줄기를 구부렸을 때 끊기지 않고 잘 휘어진다고 했다. 물을 다 제거하지 않은 상태에서 양념에 버무렸다. 어머님 말씀대로 김치통에 모서리 공간 없이 꾹꾹 눌러 담았다. 어마어마한 열무가 작은 김치통 하나로 변신하는 순간이었다. 부피가 1/5로 줄었다. 농장 아주머니의 말씀이 맞다. 열무 4kg은 담아야 한다.
오늘 첫 번째 연습을 해보고 레시피를 기록했다. 이제 두 번의 연습이 더 남았다. 어머님 말씀대로 세 번쯤이면 열무김치 전문가가 될 수 있을까? 아마 세 번의 연습을 끝내고 나면, 어머님의 레시피에서 시작한 나만의 레시피가 만들어질 것 같다.
다음에는 어머님표 냉면용 무김치를 배워야겠다. 어머님표 새콤달콤 냉면김치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김치이다.
"조금조금"이라는 계량을 숫자로 바꾸어 혼자 힘으로 김치를 완성한 날이다. 맛이 없더라도 괜찮다. 농약 없이 정성껏 키운 건강한 열무로 담갔으니, 그 자체로 충분하다. 게다가 어머님 말씀처럼, 소금간만 잘 맞추면 어떤 김치든 맛있다. 이번 열무김치는, 그 얘기를 믿어보기로 했다.
<간단 요약 레시피(기억용)
- 열무 4kg
- 풀: 물 1.5컵 + 부침가루 1스푼
- 야채: 대파 3, 양파 1, 풋고추 3, 마늘 14개
- 양념: 고춧가루 2컵, 설탕 1/2컵, 소금 2스푼, 까나리액젓 1컵, 물 2컵 (or 양파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