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이 필요했다.
정확히 말해, 새벽 공부용 상이 필요했다.
열정이 넘치던 시절에는 새벽 3시쯤, 설레는 마음으로 가족 몰래 일어났다. 살금살금 책상 앞에 앉아 동이 틀 때까지 전공 공부에 집중하곤 했다. 그때의 쾌감이 아직 생생하다. 잠깐 쪽잠을 자고 출근하면, 하루 24시간을 두 배로 나눠 산 듯한 기분이었다. 열정이 더 커서 피곤하지도 않았다.
지금은 역할이 너무 많아졌다. 새벽에 책상까지 몸을 이동시킬 에너지가 없다. 책상이 그때만큼 설레는 장소로 기억되지 않는다.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 최대한 자세를 바꾸지 않고 뭔가 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래서 휘뚜루마뚜루 쓸 공부상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 있긴 한데, 아이들이 숙제한다고 자주 가져간다.
네이버창에 '공부용 상'을 검색했다. 저렴한 것은 튼튼해 보이지 않았고, 비싼 것은 그만한 비용을 지불할 필요가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그러다 아이들 옷 처분할 때 사용했던 '당근어플'이 떠올랐다. 한동안 마음의 여유도, 시간도 부족해 앱에 들어가지 않았었다. 심리적 여유가 있어야 당근 거래도 가능하다. 직장일이 바빠 거래할 에너지가 없다. 불필요한 옷은 헌 옷 수거함에 버리면 2초밖에 걸리지 않는다.
오랜만에 당근 어플에서 검색해 보니, 거의 새것 같은 상이 1만 원에 올라와있다. 특히 다리 높낮이 조절이 가능하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등을 기대고 가부좌로 앉기에 밥상 아래 공간이 넓고 높은 것이 필요했다. 그리고 노트북 놓고 책 몇 권 놓을 적당히 여유 있는 크기의 상이 필요했다. 크기가 딱 찾던 거다. 배에 닿는 부분이 살짝 둥글게 처리되어 있어 타이핑 작업하기에도 편하겠다.
퇴근 후, 직거래로 밥상을 구입했다. 직거래는 선호하지 않는다. 극 I형인 나에게 불특정인을 만나는 일은 여전히 부담스럽다. 그런데 이번에는 대단지 입구에서 만나자고 해, 처음으로 대면 거래를 했다.
당근 거래는 새 물건을 구입할 때보다 더 신중해야 한다. 그래서 나만의 원칙을 세웠다. 싸고 좋아 보인다고 구입하지 않는다. 불필요한, 예쁜 쓰레기를 집에 들일 가망성이 높기 때문이다. 꼭 필요한 물건인지 점검하고, 새 상품을 구입하기 전에, 혹시 당근에 물건이 올라와 있는지 검색한다.
그리고 판매자의 판매이력과 신용 점수를 확인하고, 타인이 쓴 거래 후기를 꼼꼼히 읽는다. '신뢰로운 물건인가'보다 '신뢰로운 사람인가'를 먼저 파악한다. 입금은 공식 당근페이만 사용한다. 거래 지역은 내가 거주하는 소도시 안에서만 거래한다. 아무리 필요한 물건이라도 지역 밖까지 이동해서 물건거래를 하지 않는다.
작년 겨울엔, 실내용 자전거를 당근에서 교환한 적도 있다. 한 새댁이 집에서 " 빨래걸이가 되어버렸다"며 자전거를 올렸다. 교환 희망 물품은 우유 한 팩이었다. 마침 추운 날씨 탓에, 걷기 운동이 어려워 실내용 자전거를 찾고 있던 참이었다. 우유 한팩과 자전거를 교환해 왔다. 부분 비닐도 안 뜯긴 새것 같은 물건이었고, 작동도 아주 잘 됐다. 빨래걸이가 된 실내자전거 보기가 답답했나 보다.
우리 집에서도 수건걸이가 되곤 한다. 가끔 유튜브 영상 하나 켜놓고, 무념무상 운동할 때가 있다. 특히 비가 너무 많이 올 때에 실내자전거를 유용하게 쓰고 있다.
밥상이 들어온 기념으로 브런치에 당근거래 기록을 남겨본다. 부디 새벽 열정을 다시 찾기를 바란다.
앗. 그러고 보니 사진 속 노트북도 당근으로 구입했다. 얼마 전, 남편차도 새것 같은 중고를 샀구나. 우리 집에 새것은 뭐가 있더라? 먹는 당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