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발치에서 가족의 보금자리가 만들어지는 걸 지켜보는 일, 가끔은 무료한 삶에 작은 불씨가 되기도 한다.
20대의 미혼 시절, 친정 부모님이 안 계셨기에 두 주먹으로 사회에 섰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직장생활과 사립 대학원 생활을 병행하면서도 아끼고 모아 26평 인생 첫 집을 구입했었다.
자전거로 출퇴근하며, 절약생활을 이어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회사에서 제공했던 월 3만 원짜리 사택에 살면서, 전세 준 아파트를 올려다보곤 했다. '언젠가 전세금을 내주고 저 집에 들어가 살날이 오겠지?' 다짐하며 어둑해진 밤에 사택으로 돌아오곤 했다. 이후 결혼을 하고 그 집은 신혼집이 되었다.
6년 전, 남편에게 작은 빌라를 하나 사고 싶다고 의견을 제시했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그 빌라에 대해 분석했는지 브리핑도 했다. 남편은 거절의 뜻으로 "그 집을 사는 순간, 직장에 사표를 내겠다"라고 했다. "지금처럼 강가에 물고기 보며, 시골 자연 속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살자"는 말도 덧붙였다.
'도시 강물 속에도 물고기는 많은데....' 결국 11평 낡은 빌라 하나를 혼자 가서 샀다. 최근 그 빌라가 34평 새 아파트가 되어 도색 중이라고 한다. 50:50의 동등한 선택권이 있다 생각했고, 내 50%의 결정권은 잃고 싶지 않았다.
당시 실거주 자가가 있었지만, 20년이 훌쩍 넘은 구축이었다. 새 아파트를 갖고 싶었지만, 청약통장 가점 경쟁에서 이길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앞으로 새 아파트가 될 재개발 입주권을 절반 이상 저렴하게 살 계획을 세웠다. 아이들이 서울로 대학 갈 경우, 대학가의 비싼 월세를 지불하는 대신 집에서 전철로 통학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어떤 신도시였을까. 임장을 하고 계약하러 가는 도중, 집주인이 1000, 2000만 원을 올리는 장난을 치기도 했다. 한 번은 신도시 한복판 잔디밭에서 두 다리 동동 구르며 울 뻔했다. 재테크에 대해 모르고 관련 법을 모르니, 세상에 뚝 떨어진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그 당시에는 '뭐든 모르는 게 죄가 되는구나' 싶었다. 매매가격을 계속 올려 장난을 치던 젊은 집주인과 부동산 사장 덕에 공부를 할 동기가 충분해졌다.
분석을 거듭한 후 드디어 구입하고 싶은 빌라가 나타났다. 확실하게 34평 재개발 입주권을 받을 수 있는 빌라였다. 계약 당시, 공인중개사는 젊은 청년이 월세계약한 지 1개월밖에 안된 집이라고 했다.
전집주인은 여배우였는데, 어린 시절부터 배우생활해서 모은 돈으로 어머님께서 대신 투자해 놓으신 거라고 했다. 팔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부동산에 커피 마시러 놀러 왔다가 비싸게 팔아주겠다는 말에 판다고 했다. 도장을 찍으면서도 어머니께 야단을 크게 맞을 거라면서 잘한 결정인지 나에게 물었다. 나는 그녀가 마침내(!) 매매계약서에 도장을 찍을 때까지 하소연을 들어줘야 했다.
그녀의 세입자를 승계받고 9개월간 월세를 받았다. 이후 그 집은 재개발을 위해 허물어졌다. 전집주인도 그 집이 그렇게 빨리 재개발이 진행될지 몰랐을 거다. 그녀는 여기저기 부동산 카페에 억울하다는 글을 올렸고, 그 글을 통해 그녀의 불면증 재발과 실시간 심경변화를 알게 되었다.
조합장이 바뀌고 백제 유물이 발견되고 재개발이 진행되더니, 34평 아파트가 완공 직전이라고 한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요즘 공사진행 상황을 알게 되었다.
아파트 공사장은 집에서 1시간 거리이다. 빨간 벽돌 빌라의 매수일 이후, 그 도시에 방문하지 못했다. 빌라들이 다 허물어지고 넓은 공터로 변했을 때, 백제 유물이 발견되었을 때, 34층이 모두 완공되어 크레인이 철수되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방문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직장업무가 너무 많았다. 아무래도 아파트가 완공되면, 입주 키를 받아 월세 세입자를 구하기 위해 그 도시에 두 번째 방문하게 될 것 같다.
남편의 승진 가산점을 얻기 위해 깡 시골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지금은 승진을 완료했고 1년 반 후면, 이른 교장이 될 예정이다. 남편이 승진 과정을 치열하게 거치는 동안, 아이들과 나는 지인이 한 명도 없던 지역의 시골 생활에 완벽 적응했다. 기왕 아이들이 시골 초등학교에서 시작했으니, 둘째 아이의 대학 입시까지 시골에서 마칠 전략을 짜고 있다. 이제 시골생활 5년 반 남았다.
그 당시 남편은 "재테크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마음에 때가 탄 사람들"이라고 조언했다. 남편 표현대로라면 나는 수첩에 메모하며 걸어 다니는 '때가 탄 사람 중 하나'였다. 요즘은 나 대신 남편이 재개발 조합 회의에 적극적으로 다니고 있다. 극 내향형인 나를 대신해 새 아파트의 전월세를 놓으러 부동산 사장과 미팅도 할 예정이다. 강력계에 근무하는 언변 화려한 형사와 흡사해 부동산 업무에는 나보다 제격일 듯하다. 남편에게 때를 좀 묻혀볼까 한다.
남편은 사표를 내지 않고 여전히 직장에 잘 다니고 있다. 다행이다. 만약 6년 전, 남편이 "그 집을 사는 순간, 직장에 사표를 내겠다"가 아닌, "이혼을 하겠다"라고 했으면 절대 구입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냥 시골 강가에서 물고기를 세며 아이들을 키웠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