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울타리 여러 군데에 수세미가 주렁주렁이다. 수세미가 멋진 그늘을 만들어주어 관상용으로 여기고 있었다. 갑자기 호기심이 들어 건물 관리하시는 분께 수세미 하나를 얻을 수 있느냐고 부탁했다. 평소 남에게 부탁하지 않는 성격이지만, 용기를 낸 것이다. 할아버지께서 내가 가진 검은 땅콩 한 줌과 수세미를 바꾸자고 하셨다. 괜찮은 기브 앤 테이크다.
종자교환을 하기로 하고, 잘 말린 수세미 두 개와 아직 덜 익은 수세미 한 개를 얻었다. 어린 수세미는 비염 환자에게 특효가 있다고 한다. 갈색 껍질이 마치 미라의 손등과 닮아있다. 실제로 본 적 없지만, 왠지 비슷한 촉감일 듯하다.
생애 처음으로 받아 든 수세미이다. 이걸 어떻게 설거지용 수세미로 사용하는지 모른다. 생각보다 간단했다. 껍질을 벗기고 가위로 재단한 뒤, 그냥 설거지용으로 사용하면 되는 거였다.
온라인에서 가격 검색을 해보니 '유기농'이라는 이름이 붙어 5개에 22000원의 값이 책정되어 있다. 수세미는 울타리에 심고, 초기에 발아만 관리해 주면 된다. 이후부터 아무것도 안 해도 잘 자란다고 한다. 5개에 22000원의 값을 할 건 아니다.
미세플라스틱 걱정도 없고, 다 사용한 수세미는 화분 분갈이용 거름망으로 사용해도 된단다. 화분 흙덮개나 텃밭에서 퇴비로도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잘게 잘라 왕겨와 함께 배추밭 주변에 깔면 달팽이 퇴치제로도 사용할 수 있겠다.
<갈색의 잘 익은 수세미로 설거지용 수세미 만들기 실험>
1. 잘 익은 수세미(갈색)의 껍질을 손으로 벗긴다.
2. 수세미의 허리를 2-3등분으로 자른다.
3. 가위로 심지를 잘라내기 위해 안을 재단한다.(씨앗은 털어 채종 한다)
4. 심지는 모아서 개수대 아래 거름망을 닦는 전용으로 써도 될 정도로 거칠다. 어떤 사람은 과일이나 무의 겉면을 닦는 용도로 쓴다고 한다.
<파란색의 덜 익은 수세미로 부드러운 수세미 만들기 실험>
1. 수세미의 껍질을 쉽게 벗기기 위해 고구마처럼 찐다.
2. 흐르는 물에 헹궈 껍질을 벗긴다.
3. 가위로 이등분하고 수세미 모양이 되도록 재단하고, 심지를 뽑아낸다.
4. 수세미 안에 미끌거리는 것은 손으로 긁어내며 씻는다.
<사용 경험>
1. 설거지하면서 직접 사용해 보니, 쓸만하다.
2. 액상형 세제보다 비누형 설거지 바가 더 잘 어울릴 듯하다.
3. 시판 섬유 수세미는 오래 사용가능하지만, 수제 수세미는 1~2달 후면 교체해줘야 할 필요가 있겠다.
4. 울타리만 있다면 매년 심고 수확하여, 가정에서 친환경 수세미로 활용해도 좋겠다.
5. 개당 500만 원짜리 그릇을 사용하지 않는 한 갈색으로 다 익은 수세미를 수확하는 편이 낫다. 부드러운 수세미를 얻기 위해서는 푸릇푸릇한 수세미를 수확해서 삶고 말리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부드러운 수세미는 수명이 그리 길지 않을 것 같다. 거친 수세미를 사용하다가 소독 차원에서 삶으면 부드러워진다고 한다.
무엇보다 설거지할 때마다 자연과 환경에게 좋은 일 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을 듯하다.
천연수세미는 기름때 닦는 데에 최고다.
가을 지역 축제 등에서 상업적 체험부스(ex. 다트 던져 상품 받아가기)보다는 '천연 수세미 만들고, 씨앗 나눔 받기'라는 체험을 기획해 보는 것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