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온통 실험 꺼리다. 무엇이든 호기심이 들고 재미있는 일이다. 지금 쓰고 있는 보고서만 빼고!
저녁 10시 30분, 밤이 아까웠다. 그래서 그 밤에게 뭐라도 실용적인 일을 시키고 싶었다. 뒷베란다에 보관 중이던 고구마로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중학생 1학년 딸이 가장 좋아하는 간식이 고구마 말랭이다. 편의점에서 말랭이를 사 먹을 정도다. 본인 용돈 규모에 비해 편의점 말랭이가 비싸다고 한다. 고구마만 발견하면 말랭이를 만들어달라고 노래를 부른다.
뒷베란다에 있던 고구마를 깨끗하게 여러 번 씻고, 쪘다. 식혀서 껍질을 벗기고 굵직하게 잘라 식품건조기에 넣었다. 손이 찐득찐득~ 그냥 돈 주고 사 먹으라고 할 뻔했다. 고구마말랭이 4단이 만들어졌다.
온도 4.5에 설정하고 뒷베란다에서 작동 중이다. 드디어 지나가는 밤을 붙들어 고구마 말랭이를 완성시키라고 주문해 놨다. 당근에서 1만 원에 구입한 식품건조기는 지난주에는 고추부각 만드는데 열중하더니, 이번엔 고구마 말랭이 만드는 데에 열일이다.
올해 처음 심어본 고구마 농사가 잘되었다. 고구마는 다른 작물을 걷어낸 자리에 퇴비를 주지 않은 황무지에서 잘 자라는 작물이라고 한다. 고구마 농사를 잘 지어보겠다고 땅을 비옥하게 만들면 안 되는 거다. 게으른 초보농부인 나에게 딱 필요한 작물이다.
고구마는 내년에도 심을 예정이다. 아니 평생 심을 것이다. 고구마줄기 김치의 맛을 알아버렸다. 뱃속에 있는 모든 노폐물을 다 쓸어갈 것 같은 짜그락거리는 식감, 달달한 고구마순 김치는 여름 동안 최고의 반찬이 돼주었다. 어렸을 때 매번 밥상에 올라오는 고구마순 김치에 대한 어렴풋한 기억만 남아있다. 이렇게 맛있는 김치인지 미처 몰랐다. 특히, 엄마가 그랬듯이 마른 태양초 고추를 물에 불려 밥, 생강, 마늘, 새우젓과 함께 갈아서 양념을 하니, 하..... 표현이 어렵다. 먹어봐야 안다.
내년 2월쯤 마트에 작고 맛있는 고구마를 구입하여 일부는 쪄먹고 일부는 싱크대 앞에 수경재배하여 잎사귀 줄기 몇 마디를 뚝 끊어 밭에 수평으로 심을까보다. 큰일이다. 주말 텃밭은 10평인데, 재배하고 싶은 씨앗은 냉장고에 차곡차곡 쌓여간다. 토종 우리밀, 오리태 콩, 수세미 등등
내일 아침, 부드럽고 쫀득한 말랭이가 완성되어 있기를, 딸의 뱃고래를 조금이라도 키워 밥을 더 잘 먹이는 데에 도움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