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남편의 칼질소리에 잠이 깼다. 딱 학창 시절 엄마의 칼질소리다. 오늘 메뉴는 뭘까 상상하다 정신을 차린다. 조용히 나가 식탁을 닦고 설거지를 한다. 남편은 인덕션 앞에서 당근 계란말이를 만드는 데에 온 정신을 쏟는다. 김치볶음은 이미 해놓았고, 곁들여 먹을 계란말이를 만들고 있는 듯하다.
각자 일에 집중하면서 아들과 딸의 오늘 이슈에 대해 잠깐 대화한다. 아들의 기말시험 조력 역할 분담에 대해 의견을 나눈다.
7시가 되자 남편 핸드폰 알람이 울린다. 출근을 위해 집 밖을 나가야 하는 시간이다. 부리나케 출근준비하면서 동시에 조언한다. 매일 같은 말이다. "계란말이에 김치볶음 그리고 양반김을 곁들여 먹어봐. 맛 조합이 괜찮을 거야. 애들 비타민 영양제 꼭 먹이고. 어제 연수에서 간식으로 받은 햄버거와 쿠키 세트니 애들하고 나눠먹어"라고 한다.
남편의 얘기를 듣다 보면, 내가 11살이고 8살, 9살 동생들 챙겨야 하는 (철없는) 큰딸처럼 느껴진다. 맑은 눈으로 알겠다고 끄덕끄덕 한다. '아무것도 모르쇠~' 바보 흉내를 내며 살기로 했다. 진짜 바보인지도..
남편은 한 시간 거리 중등학교로 운전한다. 그리고는 애들이 아침식사를 끝냈을 무렵, 한 명씩 번갈아가며 자가용 블루투스로 전화한다. 아들에게는 비타민 먹었는지 묻고, 딸에게는 주짓수 학원 도복을 잘 챙겨두고 김치볶음은 맛이 어땠냐고 묻는다. 신맛이 있었지만, 맛있었다고 답한다.
10살 때쯤인가... 고기반찬이 없어 밥상이 마당으로 날아가는 걸 목격했던 나는 상상할 수 없는 우렁각시의 모습이다. 그때 엄마는 반찬들을 손으로 쓸어 담으며, 달걀 프라이 딱 한 개를 새로 해서 찌그러진 아빠 밥상을 다시 차렸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는 찌그러진 밥상을 바꾸지 않겠다"라고 하셨다. 그 이후가 기억나지 않는다. 나도 달걀 프라이가 먹고 싶었다는 점과 웃음을 겨우 참은 기억 밖에는...
남편은 출근 소요 1시간을 10분 이내로 단축하기 위해 집 근처 중등학교로 옮길 예정이라고 한다. 직장 근무지를 옮기려는 구체적인 이유는 주 5일 다니던 새벽 수영 다시 하기, 중등 아이들 밀착해서 케어하기, 자가용 기름값을 아끼기 위함이다. 그리고 곧 이어질 교장생활도 집 가까운 시골 학교에서 하고 싶단다.
손이 큰 남편 덕에 오늘 직장 점심 도시락 반찬은 아이들이 먹고 남긴 계란말이 3개, 양파가 더 많은 김치볶음 그리고 김 세장이다. 냉장고에 반찬이 남는 걸 원치 않으므로 4년째 냉장고 반찬으로 직장 도시락을 싸다니고 있다. 매일 아침, 식재료 완전소비를 다짐한다.
다 지나가버린 아침을 문자로 붙들어놓는다. 오늘도 아무 일 일어나지 않은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