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겁결에 1년 휴직을 하게 되었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인생 흐름이기에 "엉겁결"이 맞다.
오늘 최종 휴직신청에 합격했다는 결과 통보를 받았다. 2026년 꽃봄이 오면, 직장생활을 1년 멈추게 된다.
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조직에서 20년 넘게 직장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아이 낳는 기간 빼고는 잉여 시간을 가진 적이 없다. 그래서 갑자기 주어질 1년의 자유시간이 어색하다. 처음 겪는 일은 항상 어렵다.
휴직 동안 월급이 나오고, 개인 책 구입비와 학원비 등 150만 원 정도 지원되는 제도라 경쟁이 있었다.
직장생활 중 여러 분야에 호기심이 많았다. 자연스럽게 승진점수가 쌓였다. 그 점수들은 몸담고 있는 조직의 기관장으로 승진하고도 남을 성과들이라고 했다.
승진을 원하지 않기에 실적들을 사용하지 않았다. 도전의 일상 흔적으로만 쌓아두고 있었다. 그런데 인생에 한 번은 노력한 기록을 사용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계획에 없던 휴직을 결정했다. 그동안의 보고서, 논문 집필 등의 기록이 모두 휴직신청의 점수로 쓰였다.
띠동갑 친정오빠는 내가 노는 방법을 잘 모르는 것 같다고 한다. 인생을 쉬고 즐기라는데, 논다는 개념이 뭔지 모르겠다. 노래방? 음주가무? 여행? 개인마다 선호하는 놀이취향이 다른 거 아닌가?
논다는 개념에 '아침에 눈을 뜨게 하는 설렘'이 포함된다면, 내게 노는 건 논문 쓰는 일이다. 그것만큼 호기심 해결과정을 기록할 좋은 도구도 없다.
그래서 대학의 교수님과 여러 연구기관에 '2026년 공동 연구에 참여가능'이라는 얘기를 해뒀다. 최근 3년간 '뭣이 중헌디~'라는 생각에 공동연구 제안을 거절하며 지냈다. 내년 연구들에 끼워줄지 모르겠다. 안 끼워준다면? 분기별로 한편씩 혼자 쓰면 된다.
ISTJ형, MBTI에서 -ST-가 붙으면 쉬더라도 실용적인걸 하면서 쉬는 걸 선호한다고 한다. 기왕 노는 거 가치 있게 보내고 싶은걸 보니, 맞는 것 같다. 한편으로는 아무것도 안 하고 싶기도 하다.
집에서만 은둔생활하며 얼마나 오랫동안 신발 신지 않고 생활할 수 있는지 실험해 보기? 재테크책 1,000권 읽어보기?
일단 고등학생이 될 아들과 중학생 2학년이 될 딸의 학업 Learning mate가 되어야겠다. 아이들이 건강하고 똑똑하게 컸지만, 직장맘으로서 가슴 한편에 미안함이 있다. 애들 학업이라도 편하도록 도와야겠다. 드라이빙이라도.. 하교 후 먹을 간식 준비라도...
과연 1년 후 나는 어떤 휴직생활을 보냈다고 기록을 남길 수 있을까. 내 경험상 계획이 거창하면 실패할 일만 남는다.
그래서 이번 휴직의 목표는 "건강해지기"로 잡아본다. 뭐든 건강해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