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할 것들

by 자급자족

다이어리 한 귀퉁이에 짧은 감사일기를 혼자 쓰곤 했다.


최근 전국 각지에 있는 직장맘들과 네이버 밴드를 만들었다. 서로 얼굴은 모른다. 각자 매일 감사할 것 5가지 쓰고, 두 사람의 감사일기에 댓글달기. 꽤 간단한 미션이다. 눈을 감고 감사한 것들을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다. 내 또래의 사람들이 쓴 감사일기를 읽으며, 작고 소중한 것들의 감사함을 새삼 깨닫게 되기도 한다.


어렸을 때부터 느낀 건데, 일상이 감사할 것들로 넘쳐난다. 무엇이 주어져서 감사하기보다 현상 그 자체, 존재 그 자체로 감사한 것이 많다. 잃어도 감사하고, 이득을 얻어도 감사하다. 특히,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나날이지만, 지쳐도 오뚝이처럼 일어서서 도전을 멈추지 않음에도 감사하다.


키보드를 치고 있는 지금, 거실에서는 문과생 남편의 과학강의가 한참이다. 질량, 힘, 중력, 무게, 용수철, 양팔저울,,, 중학교 1학년 딸의 기말 시험 준비를 위해 남편이 부족한 부분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딸에게 도움을 주는 남편도 감사하고, 아빠의 열강을 잘 들어주면서도 때로는 자기주장을 강하게 하는 딸도 감사하다.


중학교 3학년 아들은 자기 방에서 게임 삼매경이다. 게임을 실컷 하라고 용산 전자상가에서 풀셋으로 게임용 컴퓨터를 사줬다. 그 이후로 PC방에 대한 로망은 없어졌다고 한다. 그 어느 컴퓨터보다 본인의 컴퓨터 성능이 좋다고 한다.


아들은 최선을 다해 마지막 기말고사 기간을 보냈고, 모든 시험을 끝냈다. 오늘은 토요일임에도 1시간 30분 동안 수학학원 레벨테스트를 보고 왔다. 시험범위가 고등과정이었기에 시험시간 직전까지 문제집을 훑으며, 공식을 외웠다. 시험장에서 문제를 다 맞히지는 못했지만, 서술식 시험 보듯 수학 풀이과정을 꼼꼼히 적고 왔단다. 어떻게든 채점 매시는 선생님께 성실성을 보여드리고 싶었다고 한다.


수학학원에서 개인 수준에 따라 등급을 나눠 5개의 반배정이 되는 슬픈 현실이다. 아들은 최고 등급 반에 배정되어 고등학교 생활에 도움을 받고 싶어 한다. 내일 등급 안내 전화가 온다고 하는데,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한다.


왈가닥이지만, 왠지 미래가 기대되는 딸에게 감사하고,

약주를 좋아하지만, 아이들과 가정에 헌신하는 남편에게 감사하고,

사춘기가 막 지나가고 있지만, 엄마말을 수용해 주는 아들에게 감사하다.


낯선 지역에서 지인 없이 4인 가족이 의지하며 4년째 살고 있다. 텃밭 농사도 짓고, 아이들 교육도 하면서 점점 익숙해져 가는 시골 생활에도 감사하다.


무엇보다 별일 없이 나른하게 지나가는 오늘이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