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맘이 뭘 배운다는 것

by 자급자족

어제는 오후 3시쯤 마트 주차장 담벼락 앞에 앉아 있었다. 햇볕으로 익혀진 벽돌벽에 등을 녹이고 있었다. kt멤버십 어플 바코드의 메가커피 무료 쿠폰으로 요거트 한잔도 받아 놓았다. 낮시간대인지 지나가는 사람들의 머리색깔이 희끗희끗하다. 오후 5시나 돼야 가방 메는 학생들이 지나갈 것이다.


뜨끈한 벽에 기대어 잘 나오지 않는 요거트를 쭉쭉 빨아대니 헛웃음이 나온다. 뼈를 녹일 수 있어 좋지만, 말 그대로 헛웃음이다. 핸드폰 사진기로 얼굴을 보니, 하얗다. 햇볕을 쬐지 않아 입술까지 하얀 느낌이다. 속으로는 '망할 놈의 휴직'이라고 외친다.


20년 넘게 진심으로 워커홀릭이었다. 아니 태어나면서부터 워커홀릭이었다. 대학 때는 4년 안에 하나의 전공만 하기에는 시간이 아까워 복수전공을 했다. 한 타임 안에 복수전공만 하기에는 또 시간이 아까워 과목을 더 많이 들어 두 전공의 교사자격도 가지고 나왔다.


직장인이 되고는 직장만 다니기에는 시간이 아까워 석박사 과정과 병행했다. 석사 때는 한 전공만 공부하기가 아까워 7과목을 더 듣고 평생교육사 자격을 땄다. 박사 때는 반강제로 수많은 공동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졸업했다. 아마 그게 싫었으면 스스로 뛰쳐나갔을 거다. 끝까지 버틴 걸 보면 자의도 있는 것 같다.


길거리에서 벽에 등을 기대고 앉은 모습이 창피할 만도 한데 창피하지는 않다. 그냥 '너는 봐라 나는 앉아 쉬고 있다'는 마음이 크다. 이 지역에 지인 없이 딱 우리 4인 가족만 살고 있어 다행이다.


오전시간에 드론조종을 배우고 있다. 어이없는 일이 맞다. 비가 와서 드론수업이 취소된 적이 있다. 오전에 집에 있어봤는데, 나는 지금 이 시기에 드론을 배우는 게 맞는 거 같다. 쓸모를 생각하기보다, 집 앞에 드론 비행장이 있어서 선택한 거다. 아마 드론 비행장이 멀어 못 배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드론을 날리다 보면 고라니도 지나간다. 고라니가 나를 보고 더 놀라는 치라 서로 못 본 척한다.


드론을 그냥 배우기는 아까워 1급 자격증 과정에서 공부 중이다. 목적도 없이 배우지만 조종에 소질이 없는 건 아니다. 농약을 살포할 땅이 없을 뿐이다. 이번 달 말에 화성시험장에 가서 실기시험을 본다. 그냥 본다. 선생님께 떨려서 못 보겠다고 하니, 본인은 보는 것만으로도 떨려서 매번 우황청심원을 먹는다고 한다. 베테랑 선생님도 떨린다고 하니, 갑자기 강심장으로 바뀐다.


드론비행을 배운 지 한 달이 되어가지만, 어제 처음으로 친정 6남매 단톡방에 얘기했다. 군인을 평생직업으로 가지고 있는 남동생도 2급이 있다며 호들갑이다. 요즘은 군대에서 드론을 배우나 보다.


띠동갑 오빠는 "너 취준생 아니다
다른 놈들도 밥 묵고 살라고 니 전공이나 해 그냥"이라고 쏘아붙인다. 역시 울오빠다. 오빠는 여동생이 전공 공부하는 게 이제 신물이 나는 걸 모르나 보다. 드론을 배운 지 한 달 만에 보고한 이유다. 앞으로 남은 휴직 11개월 동안 따려는 자격증의 명칭과 계획을 단톡방에 올렸다가는 바로 상경하시겠다.


남편에게 뭘 배우겠다고 하면 반대한 적이 없다. 그런데 개미 목소리로 한마디는 한다. "그냥 충분히 쉬면서 살아도 되는데, 뭘 그리 배우려고 하지? 나랑 너는 참 달라." 사람마다 힐링, 쉰다는 의미가 다른 것 같다. 작게 일상을 채워 나가는 걸 쉰다고 표현하고 싶다. 나이가 들면 배우는 것에 목적과 쓸모가 있어야 하나 보다. 그래서 뭘 배우려는 계획을 얘기하지 않는다. 내가 선택할 것이기에.


휴직맘이기에 휴직기간에 할 수 있는 일들로 채워나가려 한다. 정답이 없다. 본인의 시간을 본인이 경영해서 보내야 한다는 것, 그것이 어렵다. 거기에 의미와 가치를 더하려고 하면 더 어려워진다. 그렇다고 물 흐르듯 놔두면 뜬금없이 드론조종을 배우게 될 것이다.


확실한 건 관뚜껑 덮이기 전까지는 내 인생이. 휴직, 거참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