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농사 시작

by 자급자족

3월 25일, 2시간의 노동을 해보기로 했다. '힐링'이라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팔 위로 쏟아지는 햇이 그리 따뜻할 수가 없어 천천히 걸었다. 얼어있던 내 뼈를 녹이는 것 같았다. 평소 출근 전 새벽 또는 퇴근 후에 풀을 매곤 했다. 출근 전 텃밭에서 일하다가 아이들의 등교를 챙기지 못해 남편에게 한소리 듣기도 했다. 휴직하니, 어느 누구의 간섭도 없이 평일 낮에 2시간의 노동이 가능하다. 25년쯤 뒤에 펼쳐질 퇴직생활이 그려진다. '퇴직 후엔 대낮에 햇빛을 그대로 받으며 노동할 수 있다.'


10평의 텃밭, 퇴비 4포대. 퇴비를 옮기려고 하니, 농장 아주머니께서 도우려 하신다. 팔을 잡으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힘쓰는 일 하지 마세요. 힘쓰는 건 제가 합니다."라고 말했다. 텃밭에 방문하는 여성분들이 퇴비를 못 들어 힘들어하셨다고 한다. 나보다 연배 있으신 분이 퇴비 드는 걸 보는 일이 더 힘들다. 힘든 일은 조금 더 젊은 내가 했으면 한다. 바퀴 하나 달린 수레에 퇴비 4포대를 싣고 운전하려고 하니, 수레가 옆으로 쓰러진다. 불쑥 "머리가 멍청하면, 손발이 고생한다"는 30여 년 전 엄마의 잔소리가 들린다. 한 포대씩 시간차를 두고 옮겼다.


어떤 일을 어떻게 시작할지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렸다. 전체 텃밭의 간격을 4등분 하고 퇴비 한 포대씩 갖다 놓았다. 어렸을 때 엄마 아빠가 그리 하셨던 것 같다. 그리고는 이가 다 나간 칼로 포대의 입구를 푹 찔러 길게 잘랐다. 포대를 잡고 질질 끌면서 뒷걸음질 쳤다. 이빨이 많이 달린 농기계로 슬슬~ 빵에 크림 바르듯 펴 바르며 뒷걸음질 쳤다. 퇴비가 분명 지저분한 재료로 만들어졌을 것이기에 결코 내 발과 만나기를 원치 않았다. 그리고는 오른발로 힘차게 삽질을 했다. 퇴비가 흙과 잘 섞이고 공기가 땅 속에 들어가게 하기 위함이었다.


미처 정리하지 못한 오이 지지대를 해체하고 종량제 봉투에 잔해물을 담았다. 직장 쓰레기장에서 현수막 지지대인 쇠파이프를 미리 모아두었다. 케이블 타이로 더 튼튼하게 오이, 애호박 지지대를 제작(?)해보고자 한다. 분명한 건 아들이나 남편의 도움 없이 튼튼한 지지대를 완성해보고 싶다.


올해 작물 재배의 목표는 "잘 자라는 작물만 심을 예정"이다.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작물을 다 심었더니, 가성비가 떨어지는 경우가 있다. 특히, 상추, 셀러리, 당귀, 당근 등의 채소들은 마트에서 사 먹을 예정이다. 대신 고추, 가지 등 개당 500원의 모종값 대비 수확량과 소비 활용도가 높은 작물만 재배할 것이다. 지난가을, 홍산마늘과 양파를 미리 심어두었으니, 이미 가성비가 떨어지는 작물을 심은 게 아닌가 싶다. 6월 수확 때 두고 볼 일이다.


2026년, 봄 농사 시작. 감자 농사부터 지어야 하는데, 올해는 감자는 패스하고 가랏나물 씨앗을 파종할 생각이다. 이제까지 각종 토종 씨앗들을 모아 냉장고 신선칸에 보관해오고 있다. 그중 가랏 씨앗은 친정오빠의 지인이 전라남도 화순 능주의 한 마을에서 할머니들께 얻은 토종 씨앗이라고 한다. 올해부터는 내가 직접 가랏씨앗 채종을 해서 토종씨앗을 보존해보고자 한다.


작년 가을에 파종한 가랏나물이 한겨울을 지내고도 푸르다. 겨울을 나서 달아진 가랏나물, 시금치, 봄동 그리고 텃밭 주변의 자연산 냉이를 캐왔다. 다 함께 모아 깨끗하게 다듬어 씻고 소금물에 데쳐 빨갛게 무쳤다. 겨울을 난 봄나물 무침은 놀랄 정도로 달다.

겨울을 이겨낸 토종 가랏나물
월동 봄동
월동 시금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