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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급자족 Dec 13. 2024

고추부각

새벽에 잠에서 깼다. 머릿속이 복잡할 때는 못하는 반찬을 만든다. 반찬은 어떻게든 결과물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맛이 있던 없던 만들어지는 게 중요하다. 요리는 생각의 끈을 끊고 새로 시작하는데 도움이 된다. 지지부진한 작업을 하고 있을 때는 더욱 그렇다.


유튜브에서 고추부각 검색다. 만드는 방법이 제각각이다. 유튜버의 억양을 들으며 거주 지역을 추측한다. 엄마의 부각을 만들고 싶어 엄마의 사투리를 찾아 헤맨다.


설레는 마음으로 부각을 튀겼다. 요리라고 표현할 것도 없다. "튀기듯 볶다가 양념을 뿌렸다." 늦여름, 텃밭 고추가 먹기 부담스러운 질감이 되었을 때 부각으로 만들어놓았다.


어렸을 때 엄마가 부각을 만드는 걸 자주 봤다. 안타깝게도 설명은 기록해두지 못했다. 몇 컷의 기억만 있을 뿐이다. 태양이 작열하는 마당 위에 다리가 긴 건조대가 놓여있었다. 건조대 위에는 검은 망이 있었고, 그 위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삶은 고추를 널었다. 그게 기억의 끝이다. 찹쌀을  묻혀 았다는 말을 들은 듯하다.


찹쌀가루가 없어 튀김가루를 묻혀 삶았다. 우리 집 베란다 태양이 뜨겁지 않아 가정용 건조기에 말렸다. 당근에서 1만 원에 구입한 건조기는 10만 원어치의 일을 한다.


냉장고에서 부각 한 봉지를 꺼내 기름을 두르고 중불로 바꿔 튀겼다. 불을 끄기 직전, 소금, 설탕, 참깨를 뿌렸다. 요리 끝.


과자보다 더 바삭하다. 달콤 고소한 맛에 점심도시락 밥반찬으로 딱이다. 아들에게 엄마의 추억 음식인데 한 번 먹어보라 했다. 한입 먹다 접시에 뱉는다. 맵단다. 딸은 고추 말리는 냄새가 기억나서 못 먹겠단다. 나처럼 세월이 흐 뒤에 엄마의 음식으로 기억하려나보다.


초등 딸이 요즘은 왜 텃밭에 가지 않느냐고 묻는다. 겨울작물이 별로 없을뿐더러 가족이 텃밭을 싫어하는 듯해서 혼자 다녔다. 딸은 노동이 좋단다. 엄마랑 텃밭에 가서 일하고 싶단다. 그럼 내년부터 엄마랑 콤비로 10평 텃밭농사를 해보겠냐고 했다. 좋단다. 키위도 심고, 복숭아도 심자고 한다. 특히 딱복(딱딱한 복숭아)을 심잔다.


1에 10만 원을 주고 빌려 쓰는 텃밭이라 나무 심기는 곤란하다 했다. 지금 지어지고 있는 아파트를 땅에 붙은 집으로 바꾸는 거 어떻냐고 물었다. 싫단다. 좋은 아파트에 살며 걸어 다닐 곳에 나무 심을 밭이 있었으면 좋겠단다. 과 농막을 구입하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하겠다. 오랫동안 복숭아나무는 못 심는 걸로. 과일은 마트에서 사 먹는 걸로.


늦여름 ~ 가을 고추
고추부각 말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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