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는, 순수한 마음과 뜨거운 감정으로 시도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배역에 충실하되, 그 사람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마음의 세계가 만들어지면 제일 좋다. 그릇된 인도 위에 자유가 주어지면 배우 내면의 충돌로 인해 연기에 변형이 생긴다.
연기는 현실의 반영이자, 시대를 대변하는 기준이 된다.
연기는 지극히 제약된 공간에서 인간 내면의 진실과 고독, 갈등을 누구나, 혹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깊은 내면의 동질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더 정확하게 느낄 수 있는 시간의 압축으로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사람의 역사다. 다듬어지지 않은 육체, 톤, 정확하지 않은 발음과 거친 손가락의 퉁김,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의 결이다. 마음의 결이 닦여진 사람들을 통해 더 완성도 있고 짜임새가 훌륭한 공연이 만들어진다. 연극은 마음을 담는 그릇이며, 인간의 내면을 담는 그릇이기 때문이다.
마음의 한을 한 어절, 혹은 한 문장으로 풀이한다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1. 아들의 기일이다.
2.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성경 누가복음 18:13>
연기는 마음의 한을, 가장 절제된 언어와 움직임만으로, 그들에게 전달해주어야 하는 것이다. 내 것이 남아있어서는 안 된다. 배우는 그저, 전달자인 것이다. 연기는 그래서, 전달의 의식과도 같다.
구구절절한 사랑노래, 빠르고 경쾌하게 움직이며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무대만이, 연기의 본질은 아니다.
연기는, 현실이어야 한다.
내가 그가 되고, 그가 내가 되는, 무대는 그런 것이어야 한다.
누구나 매일 배우가 된다. 다른 위치에서, 다른 이름으로, 배우가 된다. 아들에서 아버지가 되고, 딸에서 어머니가 된다. 그 위대한 삶을 무대 위로 그대로 옮기면, 연기가 된다.
일상, 평범한 가슴, 때로는 단순반복적인 행위, 특별히 변함이 없는 그 음성, 표정, 손의 위치, 타인의 시선과 감정, 느낌을 의식하지 않는 순수한 나의 내면세계를 그대로 위치 이동하면, 무대가 되고, 연기가 된다. 그래서 연기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마음의 한을, 어쩌면 평범한 그 세계를, 훈련으로 절제된 언어와 훈련으로 절제된 움직임만으로, 전달해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 때, 내 것이 남아있어서는 안된다.
배우는 그저, 전달자인 것이다.
연기를 통해, 마음의 한을 전달하는 사람이다. 연기는 그래서 전달의 의식과도 같다.
마음의 한이 모여서 한 점이 되고, 작은 사건이 모여서 한 점이 되고, 그 점들이 모여 하나의 선이 되고, 이야기가 되고, 그 이야기가 모이면 한 사람의 인생이 된다. 연기는, 그 이야기 중의 하나를 골라내는 일이다. 누구나 느낄 수 있고 마음을 변화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연기는, 항상 사실적이어야 한다.
키가 큰 사람, 키가 작은 사람이 있다. 마음이 풍요롭고 느긋한 사람이 있고, 그 세계가 좁고 옹졸하며 이기적인 사람도 있다. 누구는 거짓말을 이야기하고, 누구는 진실만을 이야기한다. 무대에서의 연기는, 이 모든 것을 다 안고 있는 것이다. 평소의 나, 평소의 우리는 중요하지 않다. 연기는 전달의 공간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