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쓰기 전 지켜야 할 3가지 원칙

by 전대표

안녕하십니까?? 출간작가 전준우입니다. 더운 여름에 건강 유의하십시요. ^^*


다름이 아니라, 출간될 제 책들의 서평단 모집을 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브런치에 적어두었는데, 혹 관심이 있으셔서 신청해주시면 무척 감사하겠습니다. 혹 인연이 되시면 추후 출간되는 서적들도 선물로 드리고 싶습니다. 링크는 첨부해드립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


https://brunch.co.kr/@brawn1911/159


정답은 아니지만 진리에 가까운

책은 작가가 즈려밟고 간 흔적들을 모은 상자와도 같다. 작가가 걸어간 발자취, 그림자의 흔적들이다. 인생의 단계마다 떨쳐내버린 발의 티끌이자 허물과 같다. 그리고 수많은 피와 땀이 묻어 있다. 그래서 모든 책에는 길이 있다고 이야기하는 게 아닐까.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다만, 책이 필요 이상으로 많이 출판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물론 모든 책은 가치가 있다. 다만 얼마나 많은 가치를 담고 있느냐가 문제다. 좋은 책은 존재한다. 반면에 나쁜 책도 존재한다.

책을 쓰기 전 알아야 할 3가지 원칙은 정답이 아니다. 그러나 정답만이 기준은 아니다. 정답은 아니지만 진리에 가까운 경우도 있다. 훨씬 더 좋은 책을 쓸 수 있는 기회가 이 3가지 원칙에 담겨 있다. 하나하나 세밀하게 마음에 담을 수 있도록 노력하라. 지금보다 좋은 책을 쓸 수 있게 될 것이다.


1. 책 앞에 겸손하라.
겸손은 아름다움의 요새라는 말이 있다. 세상은 능력있고 똑똑한 사람만이 성공하는 곳은 아니다. 겸손하지 않으면 그 성공의 시기가 오래 갈 수 없다. 책은 더할나위 없이 겸손의 미덕을 중요하게 여기는 상품이다. 겸손하지 않은 사람이 쓴 책에서는 겸손하지 않은 느낌도 든다. 내 책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마음에 변화를 받을 수 있도록 주의 깊게 써야 할 필요가 있다.


이 단편들은 나의 생명이다. 잘났든, 못났든 다 나의 정신의 아들들이다.


1924년 1월 8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문구다. 한국 현대문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이광수의 <춘원단편소설집> 재판 발행광고에서 자신의 책에 대해 한 말이다. 그의 말처럼 책은 자식과 같다. 나는 한권의 책을 쓸 때마다 자식을 다룬다는 마음으로 깊게 퇴고한다. 열달을 채우고 태어난 아이.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산모의 고통 속에 태어나지만, 그 고통을 이길 수 있는 소망을 함께 갖고 태어난다. 그렇듯 열달을 채워서 탄생하는 생명은 세상의 기쁨이 되지만, 7개월이나 8개월이 채 되지 않은 채 탄생하는 생명은 많은 사람을 근심 속에 빠트린다. 위험한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책도 마찬가지다. 인쇄되어 책으로 나오기 전까지 책은 책이 아니다. 끊임없이 퇴고의 과정을 거쳐서 완벽에 완벽을 기해야 한다.

피처럼 소중히 여기는 지인이 몸이 좋지 않아서 입원해있는 병원을 찾아간 적이 있다. 거기에는 정신이 약한 사람도 있었고, 살인자도 있었고, 조직을 이끌던 사람이 상대편 조직원을 살해한 뒤 들어와있기도 한 곳이었다.

가족면회가 이루어지는 그 곳에서 젊은 한 친구를 만났다. 권투선수로 활동하다가 머리에 이상이 생겨 정신착란으로 입원했다던 이 친구는 아버지가 면회를 오셨다고 하면서 김밥을 몇 줄 가지고 왔다. 김이 눅눅해져서 얼핏 보기에 썩 맛있어 보이지 않는, 서툴게 은박지로 둘둘 말아서 싸온 김밥이었다.

"아버지가 혼자 계셔서 먼저 일어날게요. 맛있게 드시고 대화 나누세요."

예의 바르고 겸손한 청년이 뛰어간 저 어깨너머에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더운 여름날, 아들을 위해 직접 만들어오신 수육과 김밥, 삼겹살이 상하지나 않을까 연신 손으로 부채질을 하시는 남자, 그을린 얼굴에 주름이 깊게 패여 있었던 그 분은 한 눈에 보기에도 '번듯한 직장 부장님'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잘은 몰라도 농사를 지으시는 분이 아니실까 하는 느낌. 겸손한 태도와 달리 어떻게 병원까지 오게 되었는지에 대한 질문에 지인이 대답해주었다.


"아버지를 칼로 찔렀어."


자식 앞에서 겸손하지 않은 부모를 찾는 건 어렵다. 겸손하지 않으면 자식의 마음을 부모의 품으로 이끌어올 수 없기 때문이다. 책을 쓰는 사람은 반드시 겸손해야 한다. 아무한테나 90도로 인사할 수 있는 자세를 갖추었다고 겸손한 것은 아니다. 두려움 앞에서도, 슬픔 앞에서도, 마음을 파고 들어오는 깊은 고독 앞에서도, 부모는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다. 묵묵히, 그저 앞만 보고 간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감히 겸손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런 겸손을 작가는 갖추어야 한다.

그렇다. 작가는 겸손해야 한다. 부모의 마음으로 글을 써야 한다. 그런 자세로 글을 쓸 수 있어야 한다. 첫 책을 빨리 출간하고 싶은 기대감은 내게도 있었다. 첫 출간의 기쁨은 무척 컸다. 그러나 맛있는 글, 담백한 글이 무엇인지 몰랐다. 독서는 원래 좋아했다. 책을 쓰면서 많은 책을 읽었다. 참 맛있는 글이다, 참 아름다운 문장이다, 하는 느낌을 주는 책들이 있었다. 셰익스피어의 글은 너무 아름다웠다. 그의 글에서 담백하고 아름다운 맛이 느껴졌다. 그러나 막상 내가 쓰려니 어떻게 써야 할 지 몰랐다. 그냥 뭐 깔끔하게 쓰면 되는 거 아닌가, 했다. 첫 책이라 모든 것이 낮설었고, 익숙하지 못했다. 반면에 조급했다. 얼른 출간해서 작가 소리를 듣고 싶었다. 출판사와 계약한 마감기일이 있어서 후닥닥 써서 기한을 맞췄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절실함의 결과였다. 그 정신은 칭찬할 만 했다. 첫 책이 출간되고 난 뒤에는 굶어도 배가 불렀다. 그러나 50번의 퇴고를 거치지 못한 것이 지금도 후회가 된다. 그 후회는 평생 갈 것이다. 책 앞에서는 겸손하라. 이제 시작일 뿐이다. 그리고 그 겸손이 당신으로 하여금 위대한 책을 쓸 수 있도록 발걸음을 인도할 것이다.


도움이 될 책을 써라

모든 책은 변화를 위해 만들어졌다. 사람을 변화시키기 위해 쓰여진 책이다. 그러나 쓴 사람이 변화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삶은 전혀 변화를 꿈꾸지 않는데, 책은 변화를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변화되지 않는 이상, 변화를 이야기하는 책은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흔히 이야기하는 자기계발서의 빛과 어둠이다.

어떤 책을 쓰던지, 결과적으로는 나와 관계있는 일이다. 내 가치관과 주관, 생각, 마음에 담겨진 것이 시각화되어 전달된다. 나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만한 가치를 마음에 품고 있는가를 먼저 따져봐야 할 것이다.

아프리카에 있을 때 일이다. 일과를 정리하고 침대에 누웠는데, 문득 자장면이 먹고 싶었다. 밤 11시쯤 되었던 것 같다. 아프리카에 도착한 지 한 달 정도 되었을 때였다. 그때가 4월 중순이었다. 1년간의 해외봉사활동이었고, 1월이 되어야 한국에 올 수 있었다.

아무도 모르게 숨 죽여서 한참을 울었다. 한동안 자장면을 못 먹는다는 불쾌감 때문이 아니었다. 그 과정을 통해, 나는 인간이 절제하면서 사는 삶을 배우는 것이 얼마나 마음을 강하게 만드는지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언젠가 아는 지인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있다.


'인간은 육체를 절제할 때 가장 큰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그랬다. 절제할 때, 나는 살면서 가장 큰 행복과 감사를 느꼈다. 그런 행복과 감사를 책에 담았을 때, 내 책을 읽은 사람들이 감사의 마음과 행복의 마음을 얻어가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내게 고마움을 표현했고, 내 마음에도 그들에게서 흘려받은 감사와 행복이 흘렀다.

도움이 될 만한 책을 쓰기 위해서는 자기 절제를 통한 행복감을 마음에 채우는 게 필요하다. 책을 쓰면서도 절제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 방법을 고민할 필요는 없다. 하루에 한 번 밥을 먹으면서 책을 쓰는 것도 절제다.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책을 쓰기로 마음을 정한다면, 그것에서 얻을 수 있는 절제의 행복이 있다. 언젠가는 나도 책 써야지. 마음을 절제하지 않는다면 이런 생각으로 책을 쓰게 된다. 생각해보라. 여든이 되어서 책이 출간되는 게 좋은가, 6개월 뒤에 책이 출간되는 게 좋은가?


만족하지 마라

만족은 두가지 이유에서 시작된다. 완벽하거나, 마음이 다듬어지지 않거나 둘 중 하나다. 완벽할 경우에 사람들은 만족한다. 사업이든, 공부든, 책쓰기든 완벽하면 만족할 수 있다. 하지만 완벽할 때만 만족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이만하면 됐지. 이정도면 열심히 했어. 그런 상태에서 만족하는 사람이 많다. 좋은 결과가 나올 리 없다. 다듬어지지 않은 마음의 특징이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깍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깎는 것 같더니, 저물도록 이리 돌려 보고 저리 돌려 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더 깎고 있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타야 할 차 시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초조할 지경이었다.

“더 깎지 않아도 좋으니 그만 주십시오.” 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끓을 만큼 끓어야 밥이 되지,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이 되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살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깎는다는 말이오? 노인장, 외고집이시구먼. 차시간이 없다니까요.”

노인은 퉁명스럽게, “다른 데 가서 사우. 난 안 팔겠소.” 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차 시간은 어차피 틀린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깎아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거칠고 늦어진다니까. 물건이란 제대로 만들어야지, 깎다가 놓치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깎던 것을 숫제 무릎에다 놓고 태연스럽게 곰방대에 담배를 피우고 있지 않는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야 방망이를 들고 이리저리 돌려 보더니 다 됐다고 내 준다. 사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방망이다.

(중략)

집에 와서 방망이를 내놨더니 아내는 이쁘게 깎았다고 야단이다. 집에 있는 것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것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아내의 설명을 들어 보니, 배가 너무 부르면 옷감을 다듬다가 치기를 잘 하고 같은 무게라도 힘이 들며, 배가 너무 안 부르면 다듬잇살이 펴지지 않고 손에 헤먹기 쉽단다. 요렇게 꼭 알맞은 것은 좀체로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윤오영, 방망이깎던 노인>


만족은 어떤 중요한 일이라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쉽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만 적당한 단어다. 위대한 사람은 마음에 만족이 채워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 이상 발전이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한계를 넘는 도전과 노력으로 만족 이상의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모두 그에 걸맞는 결과를 만들어내기 마련이다. 책을 쓰는 것에 있어서 쉽게 만족하는 것은, 말쑥한 수트 안에 다림질하지 않은 셔츠를 입고 있는 것처럼 어색하고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한계는 있기 마련이다. 책을 쓰다 보면 더 이상 좋을 글을 쓸 수 없겠다는 순간이 온다. 지독한 피로, 심적 고단함, 관자놀이가 아플 정도로 글을 썼을 때 느껴지는 한계가 있다. 그때쯤 되면 책이라고 해도 부끄럽지 않을 정도의 글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그렇게 만족할 만한 글이 나왔을 때, 그래서 책으로 엮어낼 만큼 괜찮다고 여겨질 때, 세번 더 퇴고하라. 더이상 흠잡을 데 없는 책이 만들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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