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제 3편에는 이런 말씀이 나온다.
人而不人(인이불인)이면 如禮(여례)에 何(하)며 人而不人(인이불인)이면 如樂(여악)에 何(하)오.
(사람으로서 그 본성의 작용인 인애의 정을 상실한다면 아무리 형식적인 예나 악으로 꾸며도 아무 짝에도 쓰지 못한다.)
아버지는 내가 초등학교 4학년때부터 천자문을 가르치셨다. 일주일에 한 페이지씩, 20개의 천자문을 음독하도록 가르치셨다. 하나 틀릴 때마다 손바닥을 한 대 맞았다. 공부는 커녕 한참 놀고 싶고 장난치고 싶은 나이에 손바닥을 맞아가면서 천자문을 외운다는 건 결코 즐거운 경험은 아니었다. 나이가 들면서 한자에 담긴 깊은 의미가 마음을 울리곤 하지만, 학창시절 한자는 지독하게도 배우기 싫은 과목 중 하나였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지금도 한자랑은 거리가 멀다. 학창시절 단 한 번도 한문시험에서 그럴싸한 점수를 받지 못했다. 살면서 자연스럽게 터득한, 그야말로 누구나 알 만한 한자 정도 지식을 갖춘 것 외에 글을 쓰는 사람으로써 내가 가진 한자 지식은 부족하기 짝이 없다. 다양한 경로를 통해 근근히 글쓰는 일을 하곤 있지만, 일단 글을 쓰는 사람으로는 낙제점을 먹고 들어가는 셈이다.
한자와 글을 쓰는 게 무슨 큰 상관관계가 있느냐 되묻고 싶은 사람들도 있을 줄 안다. 나도 순 한글말의 아름다움과 소박함을 사랑한다. 생후 6개월차에 접어든 내 아들의 이름은 전하늘, 순 한글말이다. 파란 하늘, 맑은 하늘,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면 내 아들이 거기에 있다. 순 한글만 사용해도 충분히 아름답고 품위 있는 말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러나 한자에 대한 내 견해는 조금 다르다. 한자는 한국어의 근간이 되는 문자다. 한자를 잘 모른다고 해서 한국말을 못하는 건 아니지만, 한자와 한문을 아는 사람은 언어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자격이 있다고 믿는다. 한자의 역사나 고대시가의 운율이 주는 고요한 아름다움 때문은 아니고, 학창시절 겪었던 경험 때문이다.
고3 수험생 시절, 한문선생님은 무척 친절하고 인자한 분이었다. 조용조용하고 말수가 적은 분이었는데, 첫날부터 빈 손으로 수업에 들어오셨다. 고3 수업이라서 그런지 별로 열의가 없는 분이구만, 하고 생각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교과서를 다 외운 분이라는 사실을 알고 난 뒤에는 입이 쑥 들어가버렸다. 사회적인 성공과는 거리가 먼 고등학교 선생이라고는 하지만, 사립고등학교 교사였다는 점에서 선생님들의 학벌은 결코 나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하루는 수업시간에 선생님에게 어린 시절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한문이 가장 지루하고 힘든 과목이어서 재미없다"고 이야기드렸다. 그러자 선생님께서 문득 내 이름을 물어보셨다.
"전인철입니다."
"한자로 한 번 이야기해보겠는가?"
"온전 전, 참을 인, 쇠 철 입니다."
선생님은 한자로 내 이름을 쓰신 뒤 이야기를 이어나가셨다.
"왕은 천하를 다스리는데, 사람 인(人) 밑에 있지? 온전 전(全)은 사람의 밑에 존재하는 왕을 의미하는 걸세. 백성을 섬기고 겸손하게 행동하는 왕에게만 온전한 사람이라는 의미를 붙일 수 있는거야. 그리고 참을 인(忍)은 칼 도(刀)에 마음 심(心)이 아래에 있지? 배에 칼이 들어와도 마음이 강한 사람은 그 고통을 인내할 수 있다는 의미가 있는 거야. 쇠 철(鐵)자는 한 손에 칼을 들고 투구를 쓰고 전쟁터에 나가는 왕의 모습을 의미하는 걸세."
초등학교 4학년 무렵, 부모님은 작명소에서 앞으로 내가 쓰게 될 새로운 이름 '전준우' 세 글자를 받아오셨다. 급한 일은 아니니 천천히 바꾸자 하며 차일피일 하다가 무려 20년만에 전준우로 개명했다. 그래서 지금은 전준우라는 이름을 사용하지만, 작년까지만 해도 내 이름은 전인철이었다. 온전 전(全) 참을 인(忍) 쇠 철(鐵)이었다. 쇠처럼 강하고 인내심 깊은 사람이 되라는 뜻이었는데, 살면서 이름이 마음에 든다고 생각해본 적은 별로 없었다. 뭔가 강해보이는 어감도 이유였겠지만, 양반의 도시 안동에서 평생을 보내신 보수적인 부모님 슬하에서 자라난 탓에 아닌 건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행동 따위가 예의에 어긋나는 것이라는 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에 순전히 애꿎은 이름에 대해서만 불평하게 된 셈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무료하고 지루하기만 하던 한자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내게 알려주신 내 이름의 뜻풀이는 그대로 내 마음에 꽃혀버렸다. 상형문자라는 한문의 특성상 선생님의 말씀이 어디까지가 진짜였고 어디까지가 한자를 쉽고 재미있는 학문이라는 사실을 내게 이해시키기 위한 선생님의 노력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그 날 이후로 한자를 깊게 아는 것이 무척 중요한 것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후 교육기관에서 근무하면서, 나는 아이들에게 한자의 중요성과 한자에 담겨 있는 의미에 대해 자주 언급하곤 했다. 한문 공부가 싫다는 아이들에게 내가 경험한 이야기들을 예로 들어주며 "한문 공부를 하는 건 공부해야 하는 양이 늘어나는 게 아니라, 아주 깊고 우수한 문화와 언어에 대해서 배우는 기회다."고 가르쳐주곤 했다. 지금도 한자를 힘있게 쓰는 사람을 보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존경심을 느낀다.
그러다 보니 말은 빠르고 화려하지만 글을 쓰는 데 젬병인 사람이거나, 말과 글은 화려하지만 삶이 뒤따라주지 못하는 사람을 대수롭지 않게 대하는 시각이 형성되었다. 사람은 누구나 존중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품격이란 것은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냐 오스트랄로피테쿠스냐를 구분하는 것은 어느 정도 본인의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다.
처음부터 난데없이 한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마음의 자세에 대한 이야기를 설명하기 위함이다.
글쓰기는 돈과 그다지 상관관계가 없는 일이다. 물론 수백만부가 팔리는 베스트셀러 책을 쓴 작가라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 일반적으로 다양한 경로를 통해 수익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갖추지 않는 이상 글을 쓴다는 건 빛좋은 개살구로 끝날 가능성이 농후한 일이다. 나도 그랬다. 책을 쓰고 난 뒤 강연을 할 기회가 많아졌고, 수십 수백억대의 자산가들과 식사자리를 가진 적도 종종 있었지만 경제적으로 눈에 띄게 달라지는 건 없었다. 몇 권의 책을 썼다는 걸 제외하곤, 남들 보기엔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다.
얼마 전 회식자리가 있었다. 평소에 내심 존경스럽게 생각하던, 서너살 많은 지인과 우연히 술자리를 합석하게 되었다. 20대 중반 이후 술담배를 입에 대지 않는 나는 안주발로 서너 시간을 버틸지언정, 소신 있게 이야기하고 평소 자신의 일에 충실하게 임하는 사람인 줄 알았던 그와의 술자리에서 많은 것을 얻어가리라 하는 마음에 조금은 기대도 되었다. 그러나 술이 들어가니 그는 인사불성이 되었다. 가만히 앉아서 안주만 뒤적거리고 있는 내 얼굴에 손가락질을 하며 험언을 쏟아냈다.
"당신 지금도 책 쓴다며? 그래서 나보다 돈 잘 벌어? 내가 당신보다 훨씬 돈 잘 벌어. 무슨 쌓아놓은 업적도 없이 책을 쓴다고 그래? 책 쓰면 돈이 돼? 나도 집에 쌓아둔 원고가 수북해. 출판사에서 원고 주면 책으로 내준다고 했어. 당신만 책 쓰는 거 아니야, 나도 맘 먹으면 책 쓸 수 있어!"
술이 들어가면 판단력이 흐려지기 마련이다. "지금 많이 취하신 것 같은데 나중에 조용할 때 이야기하면 좋겠습니다."하고 이야기했지만 상황은 갈수록 험악해졌다. 한참동안 그가 쏟아내는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있다가, 그의 눈을 바라보고 이야기했다.
"저는 이루어놓은 것 없습니다. 성공한 경험보다 실패한 경험이 더 많고 대단한 사람도 아닙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책도 누구나 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킬 수 있는 훈련을 14년 동안 해왔습니다. 젊은 사람이 운 좋게 책 몇 권 쓴 것 같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제가 쓴 3권의 책은 모두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방법과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까?"
일순간 정적이 흘렀다. 서로의 눈을 바라보고 있는 동안 묘한 기운이 흘렀다. 다행히 일행들의 이야기 속에 파묻혀 상황은 일단락되었지만 결코 유쾌하지만은 않은 경험이었다.
일에 대한 열정, 삶을 향한 의지는 분명히 남들이 가지지 못한 그의 능력이었다. 그가 책을 쓴다면, 아마 그런 열정과 의지가 책의 일부 페이지를 장식하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 그가 했던 노력들, 남들에게 뒤쳐지지 않기 위해 흘렸을 수많은 눈물과 쓰라린 상처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귀감이 될 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었다. 생각을 글로 정리하는 일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보니, 혹 그가 책을 쓰게 된다면 작은 도움이라도 되어 드려야겠다는 생각도 잠시나마 했었다. 그러나 그와의 술자리 이후, 나는 그에 대한 어떤 존경심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가 타고 다니는 외제차, 수십만원을 호가하는 명품신발과 수입 넥타이도 시원찮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에게 고개 숙여 인사를 하는 것도, 말을 섞는 행위조차도 불쾌하게 느껴졌다.
그랬던 그가 ‘예배활동’이라면서 종교활동하는 사진을 회사 모임방에 올렸다. 거만한 말투와 행동 때문에 교인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났을 때, 그는 어부였다. 예수님이 깊은 곳으로 가서 고기를 낚으라고 했을 때, 그는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해도 얻은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말씀을 의지해서 그물을 내리겠습니다.”라고 이야기한다. 베드로는 잔뼈가 굵은 사람이었으며 베테랑이었다. 깊은 곳에 가면 물고기가 살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버리고 오직 말씀만을 의지해서 깊은 곳에 그물을 내렸다. 배가 잠길 만큼 많은 물고기가 잡힌 걸 보고, 베드로는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고 고백한다. 말씀을 의지하는 삶을 살지 않았던 자신을 발견하고, 예수님과 말씀 앞에 마음을 내려놓은 것이다.
신앙은 생활이다. 생활이 되지 않는데 믿음만 가진 사람은 종교인에 불과하다. 종교와 신앙은 비슷해보여도 엄연히 다르다. 거만한 사람도 교회에 다닌다. 교만한 사람도 교회에 다닐 수 있다. 그러나 종교인에 불과할 뿐이다. 믿음을 바탕으로 조금씩 발걸음을 내딛는 삶을 사는 다윗과 같은 사람과 다윗의 군대장관 요압은 겉보기에 같은 것처럼 보여도 근본적으로 달랐다. 말씀이 기준이 되느냐 아니냐에 따라 신앙인과 종교인이 나뉘어진다. 코로나 사태로 공중분해될 위기에 처한 신ㅇ지의 총회장 이ㅇ희는 수십억원의 헌금횡령죄로 구속이 되었다. 사무엘 시대의 사울, 다윗 시대의 요압과 같은 사람이다. 자기들의 신념에 따르면 대단한 믿음의 사람처럼 보이는 듯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하나님과 다른 마음을 품고 사는 사람이다. 영적으로 소경인 사람들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도 모른 채 그저 ‘신ㅇ지에 대한 종교탄압’이라고 이야기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이르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저희 행실의 종말을 주의하여 보고 저희 믿음을 본받으라. -히브리서 13:7
인간은, 결정적인 상황이 되면, 누구나 다른 사람을 가르치려고 한다. 인간의 본성이다. 겉으로 표현하지는 못해도 속으로는 다른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나만의 장점과 재능을 믿고 사는 게 교만한 사람들의 특징이다. 그런 사람들은 꾸준히 남을 가르친다. 자신을 가르치는데는 인색하면서, 남을 가르치는 데는 지혜롭다. 오만함이 담겨진 유리그릇과 같은 마음으로 산다. 살짝만 부딪혀도 깨지고 상처를 남기는 그런 유리그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