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시간, 나의 시간

by 전대표

두려움과 기회의 사이에 서서

앞서 세계최대규모의 생명보험사에서 스카웃 제의가 왔다는 이야기를 한 바 있다. 그리고 나서 내가 만난 아프리카에서의 시간을 이야기했다. 아무런 개연성이 없는 두 이야기를 두고 의아하게 생각할 독자들이 있을 줄 안다. 내가 글쓰기에 관련된 책을 쓰게 된 계기는 지금부터다.

아프리카에서 경험한 행복한 시간들을 통해 삶에 대한 진지한 고찰을 하면서 다양한 방면에서의 도전을 시도했고, 그런 과정을 통해 나는 또래의 친구들이 살아가는 삶의 모습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의 시간을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지금도 나는 내가 가진 좋은 습관들이 훌륭한 인간관계를 맺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에 추호의 의심도 갖지 않는다.

일례로 나는 술을 전혀 마시지 않는다. 25살 이후로 술을 마시지 않았다. 지독한 감기 몸살이나 극도의 피로가 몰려올 때 약간의 포도주를 마시는 것을 제외하곤 술자리도 참석하지 않는다. 일순 대단찮게 보일 수 있지만, 1주일에 4번 술을 마시던 사람이 십수년간 전혀 술을 입에 대지 않는다는 것은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아침 5시 정도가 되면 일어나서 씻고 아침식사를 하고 6시에 출근한다. 9시가 평균 출근시간임을 감안할 때 나는 다른 직원들보다 3시간을 빨리 시작하고 더 많은 생각과 계획을 세워서 생활하는 셈이다.

그런 다양한 경험과 좋은 습관들을 통해 형성된 가치관이라는 것은 무척 훌륭하고 좋은 생활태도임에는 틀림없었다.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알만한 나이가 되어서는 내가 가진 좋은 습관들 덕분에 몇 마디 대화를 나눠보지 않아도 마음을 열고 대해주는 사람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그런 좋은 습관, 좋은 생활태도, 그것은 나의 부족함을 발견하면서부터 만들어진 좋은 자세이긴 했다. 문제는, 그런 좋은 생활태도나 가치관이 사업 자체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보험회사에 입사하기 전, 100명의 지인명단을 작성하는 프로젝트가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100명을 쉽게 채우는 데 반해 나는 50명도 채우지 못했다. 휴대폰에 수백명의 지인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인 명단을 작성하지 못한 이유는 단순했다.

앞서 아프리카에서 8개국어를 하면서도 평범한 엄마가 되는 게 꿈이었다는 18세 소녀를 만난 이야기를 했다. 그 때의 경험 이후 나는 수많은 도전을 통해 다양한 변화를 경험했고, 남들이 경험하지 못한 시간들을 보내곤 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돈과 명예보다 진실된 가치를 우선시하는 사고방식이 내 마음 깊이 형성되었다.

당연히 내 주변에도 그런 사람들밖에 없었다. 상속, 증여, 주식투자와 같은 단어는 나뿐만 아니라 그들에게도 생소한 단어였다. 그런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십수년을 살아온 나는 차마 보험의 '보'자조차 꺼내보지 못했다.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위험에서 가족을 지켜줄 수 있는 보험'이라고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었고, 무엇보다 가까운 지인들에게 애걸복걸하며 하나 가입해달라는 식으로 접근하는 구세대 영업방식은 나와 맞지 않았다. 창의적인 방법과는 전혀 거리가 먼, 어리석은 행동으로 느껴지기까지 했다.

게다가 나는 독서와 글쓰기로 스스로를 단련시켰다. 독서를 즐기고 책을 쓴다는 것은 요즘 표현으로 '문과체질'이다. 예술가, 혹은 인문학도에 가까운 내가 복잡한 금융지식을 다루는 금융기관에 입사해서 고정 월급이 없이 일을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사람들의 부정적인 인식이었다. 지금이야 과거보다 높아진 입사조건과 까다로운 면접을 통해서 보험사에 대한 인식이 전보다 나아지긴 했지만, 사람의 생각과 사상이란 결코 금방 바뀔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너도 드디어 보험하냐?'하는 식의 표정, 전화를 해도 받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과연 제대로 된 일을 선택한 것인가 하는 의심과 두려움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헤집고 다녔다. 두려움과 걱정으로 하루하루 피가 말랐다. 그런 와중에 컨설턴트의 그릇된 행동 때문에 나 역시 크게 당황한, 결과적으로 일말의 용기를 낼 수 있도록 해준 좋은 경험도 있다.


기회를 찾는 사고의 힘

입사하고 난 뒤 얼마 되지 않아서 가족의 증권을 분석하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 가족의 보험을 관리해준 어머니의 오랜 친구분은 내가 초등학생이던 시절부터 알고 지낸 분이었다. 큰 기대도, 별다른 걱정도 하지 않았다. 어련히 잘 관리해주지 않았겠는가, 싶었던 거다. 그러나 "제가 지금까지 봐온 증권 중에서 가장 이기적이고 엉망진창으로 설계된 증권이네요."라고 이야기하는 매니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엄청난 상실감을 느꼈다.


그 분도 누군가의 아내이자 어머니였다. 가족에게 위험이 닥쳤을 때 재정적인 어려움으로부터 지켜줄 수 있다는 보험의 가치, 오랫동안 든든한 지원군으로서의 컨설턴트가 되겠다는 다짐은 그 분에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인시장이란 건 한정되어 있기 마련이다. 돈을 벌어야 한다는 간절함은 누군가의 어머니자 아내를 염치 없는 사람으로 만들었고, 신뢰할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렸다. 한 편으론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1990년대 초반만 해도 보험업은 금융전문가의 조직이 아닌 오합지졸의 집합체였다. 이후 3Q(Quality people, Quality Service, Quality Product)와 Back to the Basic이라는 모토로 국내 보험업계를 전두지휘한 보험업계의 사관학교 푸르덴셜(Prudential)을 필두로 세계적인 엘리트 금융조직인 메트라이프(Metlife), AIG(American International Group) 같은 회사가 국내에서 보험업계의 기틀을 마련하긴 했지만, "좋은 첫인상을 남길 기회란 결코 두 번 다시 오지 않는다."라고 이야기한 미국의 정신분석학자 테오도르 루빈(Theodore Rubin)의 말처럼 윤리적 경영과 기업가 정신(Enterpreneurship)이라는 개념이 온전하게 성립되어 있지 않은 시절에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과정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활동하다가 제풀에 지쳐 스러져버렸을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보험이라는 일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곤 했다.


이처럼 마음 한 켠엔 두려움이 가득했지만, 그런 경험들을 통해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도 차츰 사라지기 시작했다. 살다 보면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기 마련인데다 다양한 기회도 함께 찾아온다. 그 기회가 꿈과 목표로 연결되기도 한다. 인생은 끊임없는 연결과 만남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런 기회들을 찾을 수 있는 탁월한 눈은 나의 선택에 따라 성장하기도 하고 쇠퇴하기도 한다. 가장 밑바닥에서 마지 못해 도전한 이 일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니라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희망이 내 마음 깊은 곳에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시행착오를 거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여러가지 방법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고민하며 지내던 어느 날, 종신보험을 통해 절세효과를 보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궁하면 통한다

우리나라에서 개인에게 부과되는 세금 중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사후에 발생되는 상속세다. 일부 평범한 시민들에게 상속세는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을런지 모르지만, 기업가를 포함한 대다수의 전문직 종사자들이나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대를 넘어가는 재산이 불로소득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상당한 상속세를 납부해야 하는 규정이 있다. 이 때 종신보험은 상속세를 합법적으로, 그리고 가장 안전하게 납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훌륭한 금융상품 중 하나다. 실제로 종신보험을 활용해서 거액의 상속세를 안전하게 처리한 이야기를 많이 접할 수 있었다.


기업의 총수, 혹은 수백억원대의 자산가들은 모두 세금에 대한 부담을 갖고 있다. 작은 건물 하나 갖고 있는 건물주도 상속세에 대한 부담을 갖고 있는데, 자칫 잘못하다간 수백억원대의 세금을 납부해야 할 지도 모르는 자산가들이나 기업의 오너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부담과 걱정을 안고 사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다만 그들은 내가 모르는 정보에 훨씬 더 민감하게 반응했고, 내가 따라잡을 수 없는 훌륭한 능력들을 갖고 있었다.

선배들의 고객 중에는 월 2,000만원이 넘는 돈을 종신보험료로 납부하면서 언제 닥칠지 모르는 위험과 그로 인한 세금부담에 대비하는 자산가도 있었다. 수십억의 보험료를 납부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큰 세금을 탕감받았다. 평범한 사람들처럼 보험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에 마음이 머물러있기보다 먼 미래를 통찰하는 예리한 눈으로 위험을 제거해나가고 있었다. 탁월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지적인 능력은 그들의 몫이었다.


그들의 삶, 나의 삶

이처럼 세금 감면의 용도로 활용할 수 있는 종신보험의 가치는 기업의 오너와 자산가들에게도 좋은 정보인데다 현업에 종사하고 있는 나에게도 훌륭한 고객을 모실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었다. 관련시장을 어떻게 접근하느냐에 따라 좋은 성과를 낼 수도 있는 분야였다. 그러나 책을 출간한 저자라는 것과 책쓰기 컨설턴트라는 타이틀을 떼고 나면 내가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숱한 실패와 어려움을 겪으면서 조금씩 나의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평범한 젊은이에 불과했다. 전문직 종사자나 자산가, 기업의 오너들과 나 사이에는 아무런 연관성도, 관계를 유지할 만한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지식과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연결고리라는 게 전혀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상황에서 사업의 대부분을 포기한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사실이었다.

한국 속담 중에 '구럭의 게 놔주겠다.' 라는 게 있다. 구럭은 그물처럼 눈을 떠서 만든 물건으로 망태기를 의미하는데, 그 구럭 속에 들어있는 게를 다시 물가에 풀어준다는 의미다. 모처럼 찾아온 좋은 기회나 일을 붙잡지 못하고 놓쳐버린다는 뜻으로, 사람이 변변찮아서 일을 그르칠 때 주로 쓰는 표현이다.

정확한 판단력과 결단력이 없는 상황에서 시작한 모든 일들은 강한 책임감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에 포기도 쉽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포기를 선택하는것도 나의 몫이고, 피나는 노력 끝에 성공의 마침표를 찍는 것도 나의 몫이다. 어떤 선택을 하는 게 맞는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어떻게 해야 차별화가 될 수 있는가?

어떻게 해야 서로가 이득을 볼 수 있는가?

어떻게 해야 그 분들에게 내가 가진 이 소명과 가치를 전할 수 있는가?


보험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반면에 건강이 허락하는 한 오랫동안 마음 편하게 근무할 수 있는 Long-term business 분야의 꽃이기도 하다.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 성실성, 인내심, 공부하고 배우려는 자세를 통해 얻어지는 것은 생각보다 무수히 많다. 일반 회사나 개인 사업체를 통해 얻어지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직업이기도 하다. 두려움을 한 가득 안고 시작한 일이긴 했지만, 그런 장점들을 하나 둘 발견해가면서 용기와 자신감도 조금씩 생기는 것을 느꼈다.

흥하려는 마음이 아닌 망하려는 마음을 가진 자에게 있어서 생소하고 편견이 가득한 일을 추진한다는 것은 평소에 잘 접해보지 않은 분야의 정보와 책, 다양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보고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말과 같다. 마케팅, 경영학, 경영컨설팅, 세금, 세계경제, 인간관계, 정부지원자금과 R&D사업, 사업계획서 가이드북 등 무수히 많은 책을 읽었다. 목표는 오직 하나, 다른 재무컨설턴트가 하지 않은 나만의 길을 개척하는 것이었다. 진입장벽이 높고, 다른 사람이 쉽게 따라올 수 없는 나만의 무기를 갖추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


그들이 가진 부와 능력은 내가 가질 수 없는 능력이다. 평생동안 갈고 닦아온 사업 노하우와 전문지식이라는 것은 금방 습득할 수 있는 부류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 주변에는 그들의 명예와 재산을 호시탐탐 노리는 비겁한 사람들도 있기 마련이다. 보험 상담을 목적으로 일시적인 만남을 신청해서 마음을 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신뢰를 바탕으로 오랫동안 좋은 관계를 유지하되, 실질적으로 내가 그들의 사업과 인생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줄 수만 있다면 일말의 가능성이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CEO를 대상으로 책쓰기 컨설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 그 무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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