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홈즈 시리즈를 처음 읽은 것은 19살 무렵이었다. 당시 의대 입시를 준비하고 있던 친구에게 가장 좋아하는 인물이 누구냐고 물었을 때 서슴 없이 '셜록 홈즈'라고 대답한 것이 내가 홈즈 시리즈를 읽게 된 결정적인 원인이었다. 19살. 왜 살아야 하는지, 대학을 왜 가야 하는지,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것인지에 대한 개념이 잡히지 않던 시절, 의대를 가느냐 법대를 가느냐 저울질하던 독서실 친구의 "셜록 홈즈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인물이야."라는 말 한마디는 나를 비롯한 주변 친구들에게 상당한 파급력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비록 셜로키언(셜록 홈즈의 팬덤)은 아니었지만, 훌륭한 책이라는 생각은 했다.
생각보다 진도는 빨리 나갔다. 사건사고를 다루는 추리소설이고, 흥미 위주의 책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마냥 가벼운 책만은 아니었다. 총 8권으로 이루어진 셜록홈즈 시리즈는 총 페이지수가 2,000페이지에 달하며, 모든 스토리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상당히 난해한 사건과 사고를 탁월한 감각과 뛰어난 능력으로 해결해 나가는 한 인물의 이야기를, 제 3자의 관점 안에서 풀이하고 있는 심리 추리학 소설이기 때문이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탐정이자 범죄 전문가인 셜록 홈스를 창조한 이 소설의 저자인 아서 코난 도일 Arthur Conan Doyle은 영국에서 기사 작위를 받은 바 있는 의사 출신의 소설가다. 에든버러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한 코난 도일은 극 중 인물 중 셜록 홈즈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친구이자 파트너로 활약한 인물 왓슨 Watson의 위치에서 사건을 해설하는 역할을 하는데, 아마도 극 중에 종종 등장하는 의학 관련 용어들과 놀랍도록 세밀한 인물과 현장분석은 실제로 의학분야에서 종사한 바 있는 그의 직업에 영향을 받은 듯하다. 런던에서 개업했으나 손님이 없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다소 재미있는 설이 있지만, 생명을 다루는 일 앞에 극도의 세밀함을 요구하는 의업 분야에서의 시간은 셜록홈스 시리즈의 품격과 깊이를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린 기회가 된 셈이기도 하다.
기가 막혀요! 정말 기가 막힙니다! 기존의 과이액 수지검사는 아주 조잡하고 불확실한 검사법이었습니다. 현미경으로 적혈구를 찾아내는 검사도 마찬가지고요. 특히 현미경 검사는 피가 묻은 지 몇 시간만 경과해도 결과를 신뢰할 수 없게 되어 버립니다. 그런데 이 검사법은 오래된 혈액에도 똑같이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이 검사법이 진작에 발견됐다면, 지금 대로를 활보하고 있는 수백 명의 범죄자들이 예전에 죗값을 치렀을 것입니다.
-셜록 홈스 1편 주홍색 연구 중-
모든 글(특히 소설)이 다 그러하겠지만, 추리소설을 집필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상황의 발생 시점과 해결 시점까지의 스토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수 있는 분석력과 섬세한 필력이다. 추리소설에서는 일반적으로 흥미진진한, 그러나 난해하기 그지없는 사건이 먼저 발생한다. 주인공은 사건 속에서 발견한 작은 증거들과 증인들의 증언을 토대로 문제를 해결해나간다. 주인공이 다양한 추리와 분석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은 때때로 손에 땀을 쥐게 하기도 하고, 어쩜 이렇게 훌륭한 글을 쓸 수 있었는지 독자로 하여금 감탄사를 연발케 하기도 한다. 극 중에서 주인공이 그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동안의 과정은 독자로 하여금 상당히 놀라운 분석력을 바탕으로 문제를 해결한다고 느끼게 할 만큼 탁월해야 하는데, 평범한 사람들의 분석력과 필력으로 글을 쓰기란 어려운 일이다. 매우 복잡할뿐더러 상당한 집중력을 요구한다. 셜록 홈즈 시리즈의 가장 큰 장점이 바로 이 부분이었다.
소설, 그중에서도 추리소설은 어디까지나 가설에 불과하다. 그도 그럴 것이 일반인이 살면서 한 번 겪을까 말까 한 사건 사고를 어떤 상당한 능력을 가진 개인, 혹은 기관이 놀랍도록 치밀한 과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한다는 식의 이야기 자체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며, 그 사건 사고라는 것도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부류의 문제들이 많으므로 현실감각이 다소 떨어진다는 단점도 함께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출간된 지 130여 년이 넘은 셜록 홈즈 시리즈가 아직까지 전 세계적으로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으며 단 한 번도 절판의 위기를 겪지 않은 것은 놀라운 일이다. 혹자는 그에 대해 두세 가지 정도의 이유를 들고 있다.
첫 번째 이유는 제삼자의 시선(관찰자 시점)에서도 지극히 주관적인 관점을 통해 쓰인 1인칭 관찰자 시점의 소설이기 때문이다.
소설은 크게 1인칭 시점, 3인칭 관찰자 시점, 전지적 작가 시점 3가지로 나뉜다. (더 깊이 들어가면 1인칭 관찰자, 1인칭 전지적 관찰자 등 복잡하게 나눌 수 있다.) 1인칭 관찰자 시점의 소설은 다양하고 셀 수 없이 많다. 그중에서도 셜록홈즈 시리즈가 세월의 영향을 별로 받지 않고 꾸준히 세계적인 팬덤을 구축할 수 있는 이유는 극 중 셜록홈즈의 친구이자 조수로 등장하는 서술자 왓슨이 사건을 대하는 홈즈의 태도, 탁월함, 능력치를 매우 구체적이고 설득력 있게 기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한 몰입력을 갖게 한다는 점에 그 의미가 더해진다. 셜록 홈즈시리즈가 아니더라도 1인칭 관찰자 시점의 소설들은 대부분 상당한 몰입력을 갖는다는 특징이 있다.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는 모두 1인칭 관찰자 시점을 통해 쓰인 책으로, 독자로 하여금 상당히 깊이 있는 몰입감을 느끼게 하는 훌륭한 책들이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이유는 작가 스스로의 필력이다.
어느 시대에나 풍류와 음주가무는 존재했다. 기원전 시대의 사람이나 21세기를 사는 사람이나 모두 똑같은 육신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를 살던 사람과 초고속 인터넷이 아니면 살 수 없는 사람의 글을 동렬에 놓고 비교할 수는 없다. 수많은 전쟁과 더불어 문명의 개화로 역사적 혼돈의 시기였던 19세기를 살면서 의학분야에 종사한 경험이 있었던 저자의 글과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으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글은 어떤 식으로든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필력에는 엄연한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어느 이른 봄날, 홈즈는 전에 없이 나의 요청을 받아들여 공원에 함께 산책하러 나갔다. 느릅나무 가지에는 초록빛 새순이 움트고 있었고, 밤나무의 끈적끈적한 겨울눈이 막 다섯 장의 잎사귀를 펼치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사람들답게 두 시간 동안 말없이 공원을 거닐었다. 베이커가로 돌아온 것은 저녁 다섯 시가 다 돼서였다.
-셜록 홈즈 6편 회상록 중-
세 번째 이유는 소설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섬세한 상황 묘사와 인물 분석이다. 1,800페이지에 육박한 홈즈 시리즈는 방대한 내용과 극 중에 일어나는 다양한 사건들이 작품의 명성을 드높이는 데 한몫했지만, 철저히 깐깐하고 분석적인 성향을 가진 홈즈와, 품격과 품위를 중시하는 인물 왓슨의 캐릭터를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히 고수해 나갔다. 공통점이라고는 발견할 수 없는 두 인물은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주고 조언자가 되어주며 극을 이끌어나간다. 이는 첫 번째 이유인 1인칭 관찰자 시점의 소설이라는 점과 일부 맞닿는 공통점이 있긴 하지만, 무엇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작가 본인이 걸어온 삶의 방향 속에서 형성된 성격, 그로 인한 습관적인 사색의 훈련 등과 궤를 같이 한다는 점에서 납득할 만한 사유가 될 수 있겠다.
극 중에서 셜록 홈스는 종종 사색에 잠긴다. 불이 나기라도 한 듯 담배를 태우고, 바이올린을 연주한다. 지도를 펴 놓고 생각에 잠긴다. 그리고 '가보지 않았지만 머릿속으로 여행을 다녀왔다.'라고 이야기한다. 이후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상상할 수 없는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홈즈 시리즈는 추리소설이다.
그러나 사색을 즐기는 사람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사색만을 위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