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버 트위스트의 소망

by 전대표

지난 몇 년 간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쌀이 없어서 밥을 먹지 못할 때도 있었다. 실패가 두려워 많은 책을 읽었다. 대부분 자기 계발서, 교육서적, 인문학 서적이었다. 적게는 하루에 1권, 많게는 하루에 5,6권 이상을 꾸준히 3,4년간 읽었다. 시간이 흐른 뒤 달라진 게 몇 가지 있었다. 작가가 되었다는 것과, 깊이가 있는 독서를 즐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뒤, 최근에는 다양한 부류의 문학작품들을 접하고 있다.


오랜 시간 동안 교육업에 몸담고 있었고 뮤지컬 배우와 사진작가로 활동했기에, 접하는 작품들도 교육 관련 서적이거나 예술적 기교에 관련된 책들이었다. 인생 최고의 책은 <레미제라블>이었지만, 사회비판 혹은 풍자에 기반을 둔 소설 그 자체는 내 흥미분야가 아니었다. 창작자의 두뇌에서 나온 창조된 세계라는 특징도 있지만, 그마저도 허구에 기반한 만들어진 세계에 불과하다는 나름의 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흔히 이야기하는 고전 문학작품에 대한 지식이 상당히 얕다는 사실에 스스로 깜짝 놀랐다. 최근 들어서는 종류를 가리지 않고 고전문학을 접하고 있다. 확실히 여타 자기 계발서와는 다른 깊이와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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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디킨스는 위대한 작가다. 그의 작품을 조금이라도 읽어본 사람이라면 금방 알 수 있다. 흔히 이야기하는 위대하다는 단어는 좋다, 괜찮다, 흥미롭다와 전혀 다른 부류의 단어다. 그가 쓴 글은 매우 지적이고, 세밀하며, 감동적이다. 훌륭한 글을 쓰는 위대한 작가였으며, 빅토리아 시대가 낳은 천재 중의 천재다. 올리버 트위스트는 찰스 디킨스가 25살에 집필한 자전적 장편소설이다.

소설 [올리버 트위스트]의 주인공인 올리버 트위스트는 구빈원(고아원)에서 태어나 불우한 유년시절을 거쳤으나, 따뜻한 심성과 순수한 영혼을 가진 소년이다. 찰스 디킨스의 어린 시절 경험이 녹아 있는 올리버 트위스트는 어떤 역경이나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은, 그리고 따뜻한 영혼을 가진 아름다운 소년상을 창조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이 모든 스토리의 중심에는 빅토리아 시대의 시대적 배경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극 중에 등장하는 극악무도한 인물들의 행태와 언변은 당시 사회분위기를 재조명하는 데 도움을 준다. 21세기에 접어든 지금이야 사회적 제도가 잘 정리되어 있어서 굶어 죽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고, 경제적 빈곤이라고 해봤자 남들보다 조금 못 사는 정도의 수준이겠지만, 찰스 디킨스가 <올리버 트위스트>를 집필하던 1830년대는 산업사회로 변화하면서 급격한 도시화의 부작용으로 인해 상당한 빈민층이 양성되던 시기였다. 그리고 도덕적 엄숙주의(엄격주의 혹은 리고리즘)에 의해 성실과 품위, 검소함의 미덕을 자랑하는 반면, 인간 내면에 숨겨진 본질적인 추악함과 어우러져 도덕적 엄숙주의 그 자체가 결코 인간의 성숙함으로 미화될 수 없음을 작품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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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를 너무 잘 먹였어요, 부인. 그래서 저 녀석의 마음에 분수에 넘치는 거짓된 영혼과 기상이 자라난 겁니다, 부인. 우리 위원회 위원님들도 실용적인 철학자들이시니 같은 말씀을 하실 겁니다. 구빈원 아이에게 기백이니 기상이니 하는 게 무슨 소용입니까? 우리는 그저 목숨만 부지하게 해주면 됩니다. 저놈한테 귀리죽만 먹였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에요."

-올리버 트위스트 95p, 찰스 디킨스, 시공사


권선징악을 기본 토대로 한 작품의 특징은 읽는 이로 하여금 선한 영향력을 가진 인물 혹은 조직의 성장을 통해 독자로 하여금 통쾌한 감동을 선사한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 비록 작품 속 인물의 상황 전개에 관련하여 많은 문제와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기꺼이 도움을 나누어주는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와 반전을 통해 선의 영향력이 결코 악의 권위보다 약하지 않다는 것을, 다양한 예시와 스토리의 전개를 통해 입증해준다. <위대한 유산>을 포함하여 찰스 디킨스의 작품에 권선징악의 방향성을 가진 전개가 여럿 있었던 것을 통해 유추해봤을 때, 아마 왜곡된 어린 시절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문학도의 꿈을 잊지 않고 달려온 결과 역사에 남을 천재적이 작가로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니었을까 추측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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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디킨스의 이후 작품에서는 해학보다 날카로운 분석이 주를 이룬다. 한국에서는 초역본으로 출간된 <두 도시 이야기>는 전 세계 2억 부가 넘는 판매고를 올린 세계적인 작품으로, 영국과 프랑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프랑스혁명에 관련된 지식이 부족해서 <레미제라블>을 읽고 이해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었고, <두 도시 이야기>에서도 그러한 어려움을 겪을 듯하여 알베르 소불의 <프랑스 혁명사> 한국어 번역본과 토마스 칼라일의 <프랑스 혁명사> 원전을 두고 무엇을 구매할까 저울질하다가 '확신컨대 토마스 칼라일의 원전은 얄팍한 자신감으로 중무장한 채 몇 장 뒤적거리다가 결국은 얼마 못 가서 서재 책장에 고이 모셔둘 것'이라는 생각에 알베르 소불의 작품을 구매하기에 이르게 할 정도로 찰스 디킨스의 작품이 주는 유혹이 만만치 않았다.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과 지식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어느덧 마흔을 바라보는 나에게 올리버 트위스트가 주는 소망은 단순하지만 단순하지 않은 그 무엇이었다.


"삶과 죽음은 만인에게 똑같이 부과된 엄숙한 환희이며 가혹한 형벌임을 과연 사람들은 알고 있는 것일까."

-대망 1권 119p, 야마오카 소하치, 동서문화사-


인간은 똑같은 육체와 정신을 갖고 태어나지만, 누구에게는 환희이며 누구에게는 가혹한 형벌과도 같다. 한적한 마을, 소설 속 인물의 가난한 탄생으로부터 첫 문장이 시작되는 소설이지만 결국은 시대를 반영하는 작품이자 찰스 디킨스 본인의 유년시절의 경험으로 말미암았듯이, 모든 사람에게 인생이라는 것이 즐거움이나 행복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럼에도 이 소설이 위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생명을 잃을 수 있는 절박한 상황에서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진실에 손을 얹고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었던 어린 영혼의 순수함을 통해 어두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한 줄기 빛을 비춰주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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