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인생을 안 것은 사람과 접촉했기 때문이 아니라 책과 접촉했었기 때문이다. - 아나톨 프랑스
내 취미는 독서와 글쓰기다. 유일한 취미생활이다. 술과 담배는 하지 않는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즐기지 않고, 시끄러운 장소도 싫어한다. 집 근처에 있는 분위기 좋은 북카페가 나의 사무실이고, 집필장소다. 나이가 들면서 그런 성향은 더욱 굳어졌다. 책장을 넘길 때 들려오는 사각사각 소리, 적막한 공간에서 혼자 책을 읽다가 아름다운 문장을 만났을 때 가만히 묵독하는 즐거움에 비하면 술과 담배, 혹은 그저 그런 사람들과 어울려 시시콜콜한 농담따먹기나 하는 일 따위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렸다.
20대 때는 사진에 푹 빠져있었다. 종군기자, 혹은 로버트 카파Robert Capa와 같은 사진작가가 되는 게 꿈이었다. 사진전에 나가서 상을 휩쓸고, 함께 사진을 찍는 분들과 사진전을 개최한 적도 여러번이었다. 그만큼 사진이 좋았다. 어느 순간, 사진은 돈이 많이 드는 취미라는 사실을 깨닫고 난 뒤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자연스럽게 독서와 글쓰기가 취미생활이 되었다.
독서는 가장 돈이 적게 들면서, 가장 고상한 분위기를 만들 수 있는 취미생활이다. 게다가 독서는 습관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다는 점에서 상당히 훌륭한 특징을 갖고 있다. 모든 책은 활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어떤 식으로든지 질문의 형태를 띠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일단 읽는 순간부터는 끊임없이 생각해야 한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반대로 생각하면 잘못된 독서 습관, 이를테면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독서를 지속하다 보면 생각의 결도 거칠어질 뿐만 아니라 삶의 다양한 면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말도 된다.
언젠가 한 지인이 우리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는 내 서재에 꽂혀진 책을 유심히 둘러보았다. 왜 그러시느냐는 내 질문에 "책은 질문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상대방이 어떤 부류의 책을 읽는지 알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하고 대답했다. 훌륭한 경험이었다.
물론 독서습관이라는 게 금방 바뀌는 것은 아니었다. 교육기관에서 오랫동안 종사해왔기에 그동안 접했던 대부분의 책이 교육에 관련된 책들이었고, 그렇다 보니 역사를 통해 고증된 철학서적이나 인문학 서적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 다양한 종류의 책을 접하고 난 뒤에야 비로소 폭넓게 책을 대할 수 있는 안목도 생기기 시작했다. 똑같은 인간이라도 생각과 마음을 관리하는 태도에 따라 형태가 다른 삶의 모습을 갖고 있듯이, 내가 읽는 모든 책이 나에게 변화를 가져다주거나 생각의 깊이를 더할 리는 없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던 것도 그 무렵이었다. 독서에 대한 관점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독서가 인생에 소중한 전환점으로 자리잡게 되기까지 다양한 경험과 마주하긴 했으나, 좋은 습관이 단단하게 뿌리내리기까지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독서를 시작하기에 앞서, 독서에 대한 나름대로의 질문과 그에 대한 해답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첫번째 질문은 바로 '왜 책을 읽는가?'에서부터 시작한다.
"사실 안다는 것은 말하기 좋아하고 허풍 떨기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족시킬 뿐입니다.(...중략...)지식이 없는 마음은 공허하기 때문에 지식은 물론 필요합니다. 그런데 지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단순히 사색으로만 만족하는 지식도 있고, 신앙 및 사랑의 은혜와 함께 동반하는 지식도 있지요."
<'천로역정' 1부 12장에서 수다쟁이와 믿음과의 대화 중 믿음이 수다쟁이에게 이야기하는 장면, 존 버니언, CH북스 149P>
사람마다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다르다. 똘망똘망한 초등학생에게 '왜 독서를 해야 하는가'하고 물어본다면, 어떤 대답이 돌아올까? 아마도 이렇게 이야기하지 않을까 싶다.
"모든 공부의 기초가 되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중학생이라면 이런 대답이 나올 듯 하다.
"교과서나 문제집의 복잡한 지문을 이해하기 위한 훈련이라고 생각해요."
대학생, 혹은 사회인에게 독서는 하나의 취미생활, 혹은 지식을 쌓는 과정이 적절한 이유가 될 듯 하다.
독서는 모든 공부의 기초다. 교과서나 문제집의 복잡한 지문을 이해하기 위한 훈련과정으로서 전혀 손색 없는 훌륭한 공부 습관이며, 취미생활이기도 하다. 책은 모든 지식의 근본이며, 생각의 훈련을 거친 사람들만이 만든 지혜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있어 독서는 훈련의 도구이면서, 반성의 도구였다. 10대 시절의 나는 평범보다 두 세 단계 낮은 수준의 학생이었다. 목표, 꿈, 소망은 나와 거리가 먼 단어들이었다. 대학생이 되어서 학과대표, 동아리 회장, 학생회장이 되어 재미있게 학교생활을 한 경험도 있지만, 당시 내 마음은 미래에 대한 걱정과 막연한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인생의 목표에 대해 심도 깊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2008년, 막 25살이 되던 해였다. 이후 내 인생은 다양한 폭으로 달라졌고, 서른살 무렵이 되어서부터는 독서에 조금씩 빠져들기 시작했다. 독서는 나에게 의도적으로 깊이 있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는 극한의 환경을 스스로 만듦으로써 철없던 어린 시절의 나에게서 벗어나 조금씩 자라날 수 있도록 스스로 채찍질하는 과정 중에서 도움이 되어준 훌륭한 도구에 불과했다. 그게 '나는 왜 책을 읽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해답이었다. 덕분에 많은 책을 읽었고, 다양한 경험들과 마주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던 것도 사실이다. 독서는 내게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사람들과 시간을 선물해준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책을 고르는 안목이 조금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두 번째 질문이 시작되었다. 바로 무엇을 읽는가에 대한 고민이었다.
따지고 보면 책이란 것도 한 개인 혹은 집단지식의 생각과 마음의 결을 정제된 언어로 정리한 뒤 활자화를 통해 종이에 기록한 것에 불과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책이 동등한 가치를 가진 상품으로 평가받지는 않는다. 어떤 책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풍화되고, 어떤 책은 시간이 지날수록 역사를 고증하는 기록물로서의 가치를 가진다. 독서와 글쓰기에 나름의 기준을 가지게 된 이유다. 아무 책이나 사지 않고, 아무 책이나 읽지 않으며, 아무 책이나 보관하지 않는다. 정해진 기준 안에서 구입하고, 정해진 기준을 만족하는 책만 읽는다. 물론 예외도 있지만 정해진 기준에서 벗어나면 대개 읽지도, 사지도 않는다.
대단한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오늘을 기준으로 출간된 지 30년 미만의 책은 읽지 않는다. 과거와 현재의 간극을 통과한 책만이 탐독할 가치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이런 기준이 나의 독서 수준과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는 점이다. 세기의 가장 위대한 작품들을 접하려는 노력은 독서와 글쓰기를 생활화하기로 마음 먹은 나에게 주는 일종의 기회이자 훈련의 시간일 뿐이다. 세 번째 질문, '어떻게 읽는가'에 대하여 나름의 기준이 세워진다면 아무리 어려운 책도 큰 무리 없이 접할 수 있다.
어릴 때부터 책은 좋아했다. 그렇다고 해서 독서 수준이 높은 것은 아니었다. <위대한 개츠비>를 처음 읽은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무렵이었고, 이문열 <평역 삼국지>를 처음 완독한 것도 19살 때였다. 인생을 좀 더 풍요롭게 만들어보자는 의미에서 '나도 진지하게 독서에 관심을 한 번 가져봐야겠다' 하고 마음먹은 뒤 읽은 첫 책이 <체 게바라 평전(장 코르미에 지음)>이었다. 서른살 때 일이다.
"의사요? 잘 보세요, 아버지. 아버지도 저와 같은 에르네스토 게바라라는 이름을 갖고 계시고 아버지 사무실에 그 이름이 새겨진 명패가 있으시지요. 그 위에 의사라고 쓰게 되면 그건 어떤 위험 부담도 없이 사람이 죽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일을 시작한다는 뜻이지요. 의학은 이미 포기한 지 오래입니다. 지금 저는 강력한 정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전사일 뿐이지요. 앞으로 뭐가 될 거냐구요? 사실 저도 제 뼈를 어디에다 묻을지 모르겠습니다."
-체 게바라 평전 436P, 장 코르미에, 실천문학사
쿠바 혁명은 커녕, 솔직히 체 게바라가 뭐하는 사람인지도 모르던 때였다. 지금도 체 게바라에 대해선 일종의 혁명가 정도로만 알고 있을 뿐이다. 오직 내 목표는 720페이지에 육박하는 그 두꺼운 책을 완독하는 것이었고, 그 가운데 책에 등장하는 그의 삶 속에서 일종의 교훈을 얻고자 하는 게 목표였다. 완독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고, 완독 후 '드디어 다 읽었다.'하고 내심 뿌듯해하던 기억이 난다. 다시 책을 펼쳐보니 그 때 적어둔 메모지가 붙어 있었다.
<참고사항>
-체 게바라의 정신
- 그가 남긴 어록
- 대략적인 시대 상황
- 마인드의 변화와 깊이
1. 숙독하지 말 것
2. 이름, 지명은 단지 스쳐 지나갈 것
3. 꼼꼼히 보지 말 것
그의 정신, 어록을 통해 삶에 적용할 만한 교훈들을 배우자는 마음에서 메모를 해둔 듯 하다. 반면에 체 게바라의 평전을, 편안한 마음으로 읽어야 하는 책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한 번 읽고는 읽지 않았다. <체 게바라 평전>은 나에게 너무 어렵기만 한 책이었다. 독서에 흥미를 가져봐야겠다고 마음 먹은 뒤 처음 읽은 책이었기에, 몇몇 어록과 성취감 외에 얻어지는 건 별로 없었다.
반면에 무수히 반복해서 읽어도 끊임없이 새로운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책이 있다. 어느 지인은 내게 "논어는 읽으면 읽을수록 새로운 것이 보이더군요."하고 이야기했고, 또 다른 지인은 "삼국지는 15번 정도 읽었는데도 재밌다."고 이야기했다. 어느 지인은 살면서 성경을 200번 이상 읽었다고 이야기했는데, 펜션을 운영하면서 2016년 한 해에만 성경을 53번 읽은 분도 있었다.
꼭 어떤 정치적 신념이나 지적 요소를 전달해주는 책이 아니더라도, 문장 그 자체의 아름다움에 취해서 묵독하는 책도 있기 마련이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상실의 시대>, 그리고 <상실의 시대>의 소설속 주인공 와타나베가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그 부분만 반복해서 읽는다는 <위대한 개츠비>는 나에게도 감명 깊게 다가왔다. 틈만 나면 <상실의 시대>를 꺼내어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그 부분을 오랫동안 읽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 있었는데, 단 한 번도 실망을 맛본 적이 없었을 만큼 단 한 페이지도 시시한 페이지는 없었다. 이렇게 멋진 소설이 또 있을까 싶었다. -상실의 시대 58P, 무라카미 하루키, 문학사상사
독서는 자기 만족으로 끝나기 쉬운 취미 중 하나다. 수천권의 책을 읽었다는 사람들에게서 대단한 내면의 깊이가 발견되지 않는 이유다. 독서는 올바른 삶을 형성하는 도구로서의 가치를 충분히 갖고 있지만, 무엇보다 독서를 통해 경청과 겸손을 배우고저 하는 자세가 가장 우선되어야 한다. 그렇기에 속독법이 가장 높은 수준의 독서법이라던지, 1만권의 책을 읽어야 애서가라고 할 수 있다는 식의 기준은 지양하는 게 옳다. 나의 경험이 이를 반증한다. 교육기관에서 근무할 때 교육에 관련된 책을 수백권 읽었지만, 그 중에서 가장 크게 도움이 된 것은 시중에 판매되는 베스트셀러 책들이 아니라 초중고 정규 교육과정의 교과서, 성경, 그리고 아이들을 따뜻한 사랑으로 대하는 소망스러운 마음이었다. 제 아무리 훌륭한 교육서적이 잇어도 본질을 벗어나지는 않기 때문에, 교육에 대해서는 교과서를 따라갈 만한 책을 찾아볼 수 없었다. 독서가 자기 만족의 도구로 끝나서는 안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