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는 과거의 모든 영혼이 가로누워 있다. - 칼라일
사람마다 태어난 때가 다르다.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받은 가정교육과 부모의 가치관, 철학에 따라 성장곡선에서도 크고 작은 차이가 생긴다. 환경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마다 독서의 시작점도 다르다. 그리고 어떤 책을 가까이 두고 접하느냐에 따라 내면의 성장곡선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읽는 행위'로서의 독서는 어떤 분야의 도서인가를 불문하고 '읽기'라는 행위를 요구한다. 이는 곧 적극적인 행동을 의미하며, 수동적인 방송매체를 통해 접하는 정보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지식과 이해력을 길러주고 심성을 바르게 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렇기에 독서의 단계를 정해두고 차츰 기준점을 높여갈 수 있다면, 나중에는 어려운 책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지식과 지혜가 생길 것이라 생각한다. 모든 책은 '읽는 행위'로서의 수동성을 요구하지만, 어떤 책은 상당한 노력을 요구하는 동시에 다양하게 생각하는 방법을 제공하는 반면, 어떤 책은 그저 웃고 즐기는 데 특화된 책인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책의 종류와 다름을 구분할 줄 알고 그에 맞는 독서법을 적용시키는 것은 올바른 독서습관의 체득화에 있어서 무척 중요하다. 책에 담긴 깊이와 지식에 따라 마음에 와닿는 깊이도 다르기 때문이다. 독서의 단계를 5단계로 나눈 것은 사람의 마음과 생각의 범위를 넓힐 수 있는 단계로 나누었다는 말과 같다. 똑같은 책이라도 시대를 풍미한 영웅들, 혹은 역사를 기록한 책을 통해 미래를 예견할 수 있는 통찰력을 기를 수 있는 반면, 부정과 후회로 얼룩진 책을 통해 상처와 두려움만 마음에 남는 경험을 할 수도 있다.
독서를 처음 시작할 때는, 아무 책이나 읽는다. 책의 깊이에 대한 이해와 습득하고자 하는 정보에 대한 기준점이 없기 때문이다. 에세이도 읽어보고, 마음을 위로해주는 베스트셀러도 읽어본다. 만화책, 광고가 많은 잡지류를 읽기도 한다. 물론 좋은 습관이다. 흥미를 느껴야 깊이 있는 독서도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다만 독서의 수준을 5개의 구간으로 나눈다고 예를 들었을 때, 시작단계에 접어든 과정이므로 1단계의 독서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독서의 시작단계이기 때문에 책을 분석하거나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은 다소 부족하다. 독서 동아리와 모임을 통해 책과 친해지는 과정을 자주 만들어두면 도움이 된다.
2단계의 독서는 자기 계발서다. 스토리의 구성이 일반적이고, 쉬운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긍정적인 생각을 할 수 있도록 글을 다듬은 것이 자기 계발서의 특징이다. 인간은 부족한 존재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완전무결할 수 없다. 그때 자기 계발서가 어긋나갈 수 있는 생각의 흐름을 차단하고 올바른 생각의 방향을 잡을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반면 플롯이 단순하기 때문에 기-승-전-결에서 비슷한 통일성을 가진다는 특징이 있다. 수년 전 크고 작은 어려움을 당할 때 하루에 3권에서 5권 내외의 책을 읽으며 교육에 대한 나름의 기준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단기간에 많은 책을 빠르게 읽을 수 있었던 이유도 교육에 관련된 자기 계발서를 주로 접했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자기 계발서가 2단계에 속하는 것은 아니다. 로마의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의 <명상록>도 자기 계발서로 분류되지만 2,000년의 역사와 궤를 함께 해온 훌륭한 역작이며 4-5단계로 분류할 수 있다.
하루하루를 임종의 날로 여기면서 살며, 흥분하거나 냉담하거나 뽐내지 않으면서 사는 것. 여기에 인격완성이 깃든다.
-명상록 7장 69절,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속독법이 최고의 독서법이라고 주장하는 대다수 사람들의 독서 수준이 2단계에 머무른 경우가 많다. 2단계 독서에서는 '하루 1권 읽기', 혹은 '1년 365권 독서'와 같은 프로젝트 형식의 독서가 가능한데, 덕분에 단시간에 상당한 정보와 지식을 습득할 수 있다는 장점도 존재한다. 반면에 속독법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추천도서는 대부분 2단계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으며, 생각의 깊이를 더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단점도 있다. 3단계에서 5단계의 수준으로 올라가면 하루 1권이 아니라 1년에 1권을 읽기도 벅찬 단계가 오는데, 속독과 다독이 대단한 능력이나 독서의 기술 중 가장 훌륭하다는 식의 비유가 맞지 않다는 데 대한 적절한 이유가 될 수 있다. 인간이 기록했다는 동일성만 배제한다면,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와 한 개인의 자서전을 동일선상에 두고 비교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2단계까지의 독서가 속독이 가능한 단계였다고 한다면 3단계부터는 속독이 다소 어려운 부류의 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로 정독과 묵독을 필요로 하는 독서 단계며, 상황에 따라 토론과 논쟁을 필요로 하기도 한다. 주로 자연과학 종류와 역사서가 3단계에 포진되어 있으며, 2단계보다 조금 더 깊은 생각을 필요로 하는 단계의 독서라고 할 수 있다. 역사소설 중에는 <삼국지>, <수호지>, <대망>과 같은 종류가 있으며, 대중과학 및 논픽션류로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자기 계발류로는 미하일 칙센트미하이 <몰입의 즐거움> 정도를 예로 들 수 있다. 국내 소설로는 조정래의 <태백산맥>과 <한강>, 외국 소설로는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 정도로 분류할 수 있다.
3단계부터는 느리게 읽는 자세가 필요하다. 프랑스의 문학 비평가이자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정회원이었던 에밀 파게 전 소르본 대학 교수는 <단단한 독서(The art of reading>의 '느리게 읽기' 항목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천천히 읽는 게 불가능한, 느린 독서를 할 수 없는 책이 있다고 말할지 모른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러한 책은 존재하는데, 바로 우리가 읽어야 할 필요가 조금도 없는 책들이다. 느린 독서의 첫 번째 장점이 여기에 있다. 느린 독서는 애초에 읽어야 할 책과 읽어서는 안 될 책을 구분해 준다."
-단단한 독서 19p, 에밀 파게, 유유 출판사
'생각이 담긴 책을 읽자마자 이해했다면 그 책은 대중적이고 평범한 것일 수밖에 없다.'라고 이야기한 에밀 파게의 말처럼, 사선으로 읽어 내려가면서도 줄거리와 중심 내용을 쉽게 파악할 수 있는 1단계, 2단계 독서와는 달리 느린 독서는 좀 더 단순하면서도 훌륭하게 구성된 플롯을 이해하고 의미를 탐독하기 위한 과정이다. 4단계 독서로 나아갈 수 있도록 답샇는 단계라고 말할 수 있다.
4단계의 독서 단계부터는 정독과 묵독이 주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데, 어느 순간 깊이 천착하는 즐거움에 빠져드는 순간이 온다. 좀 더 시간이 지나면 상당히 높은 수준의 독서가 가능해지는데, 흔히 이야기하는 고전문학이 4단계의 주를 이루고 있다. 중등 과정에서 고등학교 과정으로 올라가면 교과목의 수준이 확연히 달라지듯이, 4단계에 속하는 부류의 책은 평소 독서에 흥미를 가지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다소 어렵게 느껴질 만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례로 독일의 대문호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은 죽음을 대면하는 한 젊은이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결핵에 걸려 7년이라는 시간 동안 결핵요양소에 입원해있으면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삶과 죽음에 대해 성찰하는 시간을 가지지만, 결국 1차 세계대전에 참가함으로써 죽음에 지배당하지 않는 인본주의적 정신을 가진 인간상을 보여준다. 인간의 존재 이유에 대한 성찰과 발견을 담은 이 책은 교양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수준 높은 담론을 구사하고 있으며, 지적인 쾌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애서가들에게는 최고의 소설로도 손색이 없다. 그러나 활자에 대한 거부감을 갖고 있거나 독서의 진중함이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깊이 있게 관조하지 않은 독자에게는 한낱 지루하기 짝이 없는 외국소설에 불과할 뿐이라는 단점 또한 가지고 있다. 나 역시 이런 지적 쾌감의 즐거움을 알게 된 지는 불과 몇 년 밖에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다. 독서에 대하여 아무런 기초지식이 없는 사람도 1단계에서 4단계 독서로 넘어오는 데 전혀 방해물이 없다는 것이며, 누구나 4단계에서 5단계에 속하는 부류의 책들을 접하는 것만으로 삶의 여러 부분에서 상당한 발전을 꾀할 수 있다는 것이다.
5단계는 가장 높은 수준의 독서 단계로, <성경>을 주축으로 이루어진 독서다. 세상에 출간된 그 어떤 책도 성경의 권위 위에 서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성경은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베스트셀러이며, 2,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단 하나의 오타도 없는 무오성이라는 특수성을 지니고 있는 책이다. 그렇기에 <성경>을 주축으로 기록된 책들은 상당한 문학적 가치를 가진 작품으로 손꼽힌다.
성경 속에는 수많은 왕과 왕비, 다양한 직업군을 가진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로 기록되어 있지만, 인간의 감정에 대해서는 거의 기록되어 있지 않다. 반면에 성경은 사람이 가진 마음의 흐름에 대해 매우 세밀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그 마음에 해당하는 단어들(소심, 대담, 믿음 등)이 성경 다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으로 알려진 <천로역정>에서 등장인물들로 등장하는데, 이들은 매우 수준 높은 질문을 주고받으며 순례자의 길을 걷는다.
경건 : 처음에 당신(크리스천)으로 하여금 순례의 여정을 택하도록 한 것은 어떤 동기에서였습니까? (천로역정 96P, 존 버니언, CH북스)
분별 : 때때로 당신을 괴롭히던 여러 가지 일들이 당신에게서 떠나 버렸다고 느껴질 때 어떤 방법으로 극복할 수 있었는지 기억하십니까? (천로역정 101P, 존 버니언, CH북스)
무지 : 우리 자신을 존중하는 선한 생각이란 어떤 것입니까?
크리스천 :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되게 생각하는 것이죠.
무지 : 그러면 우리 자신에 대한 생각은 언제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를 이룹니까?
크리스천 :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말씀이 행하는 판단과 동일한 판단을 행할 때지요.
-천로역정 236P, 존 버니언, CH북스
살다 보면 누구나 나름의 권위(Authority)를 가진 과정들을 만난다. 처음에는 권위의 수준이 높지 않다. 학생들에게는 중간고사, 기말고사 등이 권위를 가진 과정이다. 이미 그 과정을 거친 사람들에게는 어렵지 않기 때문에 권위가 높지 않다. 4년제 학사과정을 마친 성인이 책 한번 읽어보지 않고 초등학교 3학년 중간고사 수학시험에서 무리 없이 만점을 맞을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런데 그 권위라는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다는 특징이 있다. 그리고 그 권위는 주로 질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10대의 끝에는 수학능력시험, SAT, 바칼로레아(Baccalauréat)라는 권위가 던지는 질문에서 가장 정확하고 지혜롭게 대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학생들만이 (등급대로) 대학생이 될 수 있으며, 그중에서 가장 훌륭한 해답을 가진 학생들은 엘리트 그룹으로 선별된다. 대학생이 되면 한층 더 수준 높은 질문들을 받는다. 그리고 그 질문에는 정확한 해답이 없다. 알아서 찾아야 한다. 리포트, 논문, 석박사 과정이 그 예다. 대학을 졸업하면 각자의 관심사에 따라 다양한 선택지로 이동하게 되지만, 그곳에서도 위치에 맞는 권위가 있고, 거기에 걸맞은 해답을 준비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인류 역사상 현존하는 가장 높은 질문 체계의 권위를 가진 단계는 사법시험이며, 법을 바탕으로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는 직업의 특성상 그 권위의 최고봉은 아무래도 판사가 아닐까 싶다. 좌우지간 대부분의 권위는 질문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에서, 그에 걸맞은 적절한 해답을 찾는 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거쳐야 하는 삶의 한 과정이자 일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천로역정>은 인간이 세운 학문이 아닌 성경을 바탕으로 질문하고 해답을 내놓는다는 점에서 상당한 권위가 있다. 그리고 무지, 수다쟁이, 사심, 구두쇠 등 부정적인 면모를 가진 순례자들의 대답은 조악하고 힘이 없는 반면 믿음, 소망, 담대, 경건, 자비심과 같은 순례자들의 질문과 대답은 상당한 힘과 지혜가 있다. 마음의 힘에 따른 내면의 차이다.
거룩 : 순례길을 가는 사람들이 꼭 가지고 가야 할 두 가지 것이 있는데, 그것은 곧 용기와 흠 없는 생활입니다. 만약 용기가 없으면 그들은 결코 순례길을 굳건히 나아가지 못할 것이요, 만약 생활이 느슨해지면 그들은 순례자의 이름을 더럽히게 될 것입니다.
-천로역정 394P, 존 버니언, CH북스
역사를 톺아보면 성경을 바탕으로 질문하고 해답을 찾는 책들은 대부분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 파스칼의 <팡세>,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존 버니언의 <천로역정>은 모두 성경을 바탕으로 질문하고 해답을 찾는다. 성경 그 자체가 인류 역사상 최고의 인문고전이기 때문에, 가장 정확한 질문에 대한 해답을 기록한 책이 고전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모든 책이 같은 방향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며, 모든 책이 동일한 가치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니므로 독서의 5단계라는 것에 대해 '일개 저자의 성급한 일반화'라는 평가가 내려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독서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 단지 '좋은 습관', '돈이 적게 드는 취미' 등의 단순한 이유로 그치지 않으려면, 독서를 통해 내 삶에 얻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좀 더 진지하게 접근해야 할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독서의 5단계는 나에게 있어 다양한 관점에서 책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혹 누군가에게는 독서의 5단계를 통해 독서를 통한 삶의 변화에 대하여 '진지한 고민'을 해볼 시간이 주어질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내가 제안한 5단계를 통해 역으로 자신의 독서습관과 앞으로의 진행방향을 개진할 기회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이야기한 독서의 5단계를 삶 속에 하나 둘씩 적용시켜 보면서 삶을 획기적으로 변화시켜줄 '독서'에 대해 진중한 숙고를 해볼 기회를 가져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