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에서의 사색

by 전대표

인간의 으뜸가는 장점은 자기의 천성의 충동을 억제하는 데 있다.

-새뮤얼 존슨


20대를 거쳐 30대 후반에 이르기까지, 의미 있는 일들을 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다. 감사와 행복으로 가득한 시간들이었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이렇다 할 보호장비 하나 없이 험난한 가시밭길을 걸어가는 듯한 느낌을 종종 받았다. 20대 후반에 활동한 대안학교에서의 교사생활도 그중 일부였다.

1년 학비가 천만 원에 육박하는 특수목적 대안학교였다. 다양한 아이들이 들어왔다. 토익 만점을 받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수학은 0점인데 무용에 특출 난 끼가 있어서 한국예술종합학교에 특채로 선발된 아이도 있었다. 입학할 때만 해도 A, B, C, D 수준의 영어실력을 갖고 있다가 졸업할 때는 토익점수만 900점을 받고 외국으로 유학을 간 아이도 있었고, 고3 수능 모의고사에서 만점에 육박하는 점수를 받는 아이도 있었다. (B급 꼴통으로 입학했다가 A+급 꼴통으로 졸업하는 녀석들도 간혹 있었다.)


교사들의 수준도 천차만별이었다. 아이비리그를 졸업하고 UN본부에서 근무하다가 서울대학교에 박사학위를 따러 온 중국계 미국인 교사가 있는가 하면, 조직폭력배로 활동하다가 '나도 이제는 의미 있는 일을 해보자'싶어 체육교사로 들어온 사람도 있었다. 사법고시를 준비하다가 교사로 들어온 사람도 있었고,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던 중 '아이들 학예발표회 하는데 한 번만 도와주러 와주라'는 부탁에 공연 도와주러 갔다가 아이들의 미소가 너무 예뻐서 난데없이 교사로 자리 잡은 나 같은 사람도 있었다. 국립무용단에서 주연 무용가로 활동하며 대학교수를 준비하던 한 선배는 서울에서의 생활을 모두 정리하고 지방으로 내려와 사감으로 근무하고 있다. 평생을 무대 위에서 스포트라이트만 받던 사람이었으나, 화려하게만 보이는 세상의 그 어떤 것도 마음의 행복을 보장해주지는 않더라는 게 유일한 이유였다. 따지고 보면 남들과 조금은 다르게 사는 인생과 경험이 삶에 엄청난 활력소가 되지 않던가. 각인각색이었지만 모두 나름의 사정을 가진 사람들이었고, 행복을 찾아 여행하는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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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움, 행복, 소망 뒤에는 숱한 난관과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기 마련이다. 근무하는 동안 마음은 감사와 소망으로 가득했지만, 경제적인 안정을 보장해주는 곳은 아니었다. 한 달에 10만 원 적금하기도 빠듯했다. 퇴사 후 사회에 나와서 직장 생활한 지 3개월 만에 결혼했다. 부모님과 주변분들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어떻게 결혼했을까 싶을 정도로 형편없는 경제상황이었다. 3개월치 월급으로 집 대출금을 마련하고, 신혼여행을 가고, 혼수를 장만했다. 고향에 계신 할머니에게 제대로 된 용돈 한 번 드린 적이 없었다. 장손이 그 모양인데, 어느덧 고로에 접어든 노인에게도 경제력이란 게 있을 리 만무했다. 그러나 2013년 겨울,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아내와 나를 앉혀놓고 아흔을 바라보는 할머니께서 하얀 봉투를 하나 내미셨다. 200만 원이었다.

"우리 집 장손인데 결혼할 때 줄라고 내가 조금씩 모았다. 장롱을 하나 하던가, 요새 젊은 사람들이 김치냉장고 하나씩은 해간다고 하던데 그걸 사도 좋겠다. 새아기랑 휴대폰을 한 대씩 사도 좋고."

나는 한참 동안 할머니의 눈을 바라보았고, 그 눈에 담긴 세계, 그러니까 나의 얕은 삶의 궤적으로는 도무지 가늠할 수 없는 마음의 깊이를 헤아리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런 내 눈을 아내는 또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할머니가 주신 돈으로 책상을 샀고, 책장을 샀고, 책을 샀다. 그렇게 서재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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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언급한 대안학교의 교과과정은 일반학교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서로 다른 취향과 느낌을 가진 아이들, 다양한 이력을 가진 교사들, 평소 쉽게 경험해보지 못한 다양한 활동들 때문에 일반 학교와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는 게 문제였다. 공무원시험을 준비하거나 영어학원에서 토익을 준비하는 주변 친구들과 달리, 교사들은 학생들과 전 세계를 누비며 내면의 폭을 확장시키기 위한 활동에 전념했다. 하루에 18시간을 근무한 적도 여러번이었다. 무엇보다 교사라는 직업의 특성상 아이들의 다양성을 존중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생각을 해야 했다. 사색의 즐거움을 알게 된 것도 그 무렵이 아니었을까 싶다. 사색의 즐거움, 그것은 평생 간직해야 할 소중한 습관이며 나를 만들어가는 훈련의 시간이라는 사실을 한 번도 의심해본 적 없다.

그렇다 보니 결혼 전부터 아내에게 신신당부한 것 중 하나가 서재였다. 아무리 어렵게 살더라도, 서재만은 절대 없앨 수 없다고 못을 박았다. 원룸에 살면 그 나름대로 집 전체를 서재로 만들 것이고, 투룸에 살면 서재와 안방으로 나눌 것이다, 하는 식이었다. 그만큼 서재는 내게 중요한 의미를 가져다주는 공간이었다.


그리고 20대 중반부터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중에는 삶에서 깊은 존경심을 불러일으키는 은사님들도 많았다. 마음이 깊고 순수한, 그래서 무슨 이야기를 해도 들어줄 수 있을 것만 같은 분들을 만날 때면 마음에서 큰 위로와 감사가 채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분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모두 자신들의 서재가 있었다. 서재의 모양은 모두 달랐다. 어떤 분은 한 분야에 집중적으로 파고들어 공부하는 성향이 있어서 벽 전체가 책으로 둘러싸인 모양새를 갖추고 있는가 하면, 어떤 분은 잔잔하고 아름다운 그림만 두어 개 벽에 걸어두고 묵상하는 것을 즐기셨다. 가로길이가 족히 3미터는 됨직한 커다란 책상에 일간/주간/월간 계획표를 아주 세밀하게 기록해서 정리해두는 분도 계셨고, 커다란 테이블을 가운데 놓고 토론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좋아하는 분도 계셨다. 서재를 대하는 그들의 모습은 모두 달랐지만, 마음의 결은 보통사람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깊고 주밀했다. 격리된 공간에서 만들어지는 내면의 힘이 몰라보게 깊은 수준으로까지 인간의 격을 높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 서재는 내게 가장 큰 위로와 안식을 제공해주는 공간으로 차츰 인식되기 시작했다.


서재는 영혼을 정결케 하는 공간이다. 무엇보다 책장 이상의 가치를 내포하고 있는 순수의 상징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어머니의 품과 같은 곳이며, 마음의 두려움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용기를 덧입을 수 있는 신성한 곳이다. 적어도 내겐, 서재가 그런 공간이었다. 뜨거운 심장, 차가운 머리는 예술가뿐만 아니라 도약을 꿈꾸는, 모든 인간을 위한 필수 불가결한 조건이다. 서재는 그것을 만드는 데 최적화된 용광로와 같은 공간이다.

서재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가령 당신이 몽당연필 하나로 전쟁에 참전한 20대 젊은 청년의 애증이 담긴 망발의 한을 글로 풀어내고자 한다면, 서재는 그것이 가능하도록 당신의 마음에 두터운 용기와 강인한 정신력을 불어넣어 준다. 혹 당신이 감당할 수 없는 슬픔과 두려움을 만나서 도무지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느낄 때면, 서재는 다시 훌훌 털고 일어나서 호탕한 웃음을 지을 수 있는 묵상의 기회도 제공해줄 수 있다. 그야말로 인간의 내면을 가장 아름답고 깨끗한 단계로까지 내려놓을 수 있도록 돕는, 물두멍과 같은 공간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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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라는 공간 그 자체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내면의 세계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낄만한 시간, 혹은 그 느낌이 기화되어 사라지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마음을 붙들어줄 수 있는 공간이라면 충분히 서재로서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고 믿는다. 버스 안이든, 지하철 안이든 상관없이 어디든 서재가 될 수 있다. 카르티에 브레송(Henri Cartier-Bresson)은 카메라 없이 눈으로 사진을 찍는데(『세기의 눈』 18p, 피에르 아술린, 을유 문화사), 왜 서재를 찬양하는 사람에게는 버스 안이 서재가 될 수 없단 말인가. '큰 일에 착수할 경우에는 기회를 만들어내는 것보다도 눈 앞의 기회를 이용하기 위해 힘써야 한다.'고 이야기한 라 로시푸코 François VI, Duc de La Rochefoucauld의 말처럼, 서재는 기회의 공간이지 보기 좋은 건물이나 잘 꾸민 공간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서재는 작가를 위한 공간이 아니다. 독서하고 글을 쓰기 위한 공간은 더더욱 아니다. 성장하는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모든 사람을 위해 필요한 공간이다. 독서를 즐기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작가나 사진가가 아니더라도, 서재는 필요하다. 나는 서재에서 무역회사를 창업했다가 실패했고, 흔해빠진 교육 전단지를 만들었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해하면서 눈물을 흘렸고, 수없이 거절을 받으면서 출간 원고를 썼다. 그렇다 보니 하루의 대부분을 할애하는 나의 서재는 고고한 인문학자나 초대형 베스트셀러 작가가 원고를 집필하는, 달콤한 종이 냄새가 나는 그럴듯한 서재와는 거리가 멀다. 너저분하고 정리되지 않은 이면지가 잔뜩 쌓여있는, 수백 권의 책이 그 어떤 배열의 원칙도 없이 마구잡이로 꽂혀있는 카오스의 공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서재가 내게 너무도 소중한 공간인 것은, 이곳에서 보낸 수많은 시간들이 매일 조금씩 나를 성장하게 한다는 놀라운 사실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서재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번뜩이는 지혜나, 남들이 생각지도 못했던 위대한 결과물만을 제공해주는 시간의 방과 같은 존재는 아니다. 책이야말로 어디까지나 타인의 경험을 체계적으로 정리해서 문서화한 뒤 엮은 종이 꾸러미에 지나지 않은가. 그렇기에 사색이나 독서만으로 인생에서 만나는 크고 작은 문제들을 완벽하게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기업가 정신, 리더십, 전문성, 품위, 겸비한 마음을 얻기 위한 과정에서 사색과 독서가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전부라고 이야기하기엔 어폐가 있다. 타고 난 자질과 능력, 살면서 만들어진 가치관, 절망밖에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뚝심을 갖고 조금씩 발걸음을 내디딘 사람들에게서 만들어진 마음의 진폭은 무척 좁고 파동도 크지 않다. 서재에서 보내는 시간만으로는 만들어질 수 없는 마음의 품격이다. 책에서 얻을 수 없는 마음의 세계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재는 나에게 없어서는 안되는 소중한 공간이다. 사색의 즐거움을 알게 해준 공간이기 때문이다. 결혼 초기에 서재에서 주로 했던 일은 스탠드 등만 켜놓고 눈을 감은 채 조용히 묵상하는 것이었다. 늦은 밤, 혹은 새벽 이른 시간에 서재에 가만히 앉아있으면 느껴지는 적막감이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좋았다. 그렇게 묵상하는 습관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틈만 나면 서재에 가만히 앉아서 생각하는 시간을 가진다. 인생에서 가장 사랑하는 시간들 중 하나가 서재에서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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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서재가 좋다. 서재에 있는 동안만큼은, 내 마음이 감사함과 소망으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실패로 인한 고통 때문에 밤잠을 설칠 때에도, 눈물로 기도를 드릴 때에도, 감사일지를 적는 모든 순간에도 서재는 내 곁에 있었고, 가장 큰 위로와 포근한 안식처를 제공해 주었다. 행복 가운데 잠들고 소망스런 마음으로 아침을 맞이하는 즐거움을 선사해준 것은 카오스의 공간처럼 보이는, 탈고 중인 원고가 수북이 쌓여있는 서재 바닥이었고, 고로의 할머니가 주신 200만 원으로 장만한 오래된 책상이었다. 그것들은 모두 내가 지독히도 사랑하는 우리 집 서재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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