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벨리의 군주론
20대 초반에 군주론을 처음 읽었다. 물론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읽었다는 표현보다는 글자 수를 헤아리느라 급급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지 싶다. 군주도 아니었고, 성공한 사업가도 아니었으며, 이렇다 할 리더십을 갖춘 인물은 더더욱 아니었기 때문에 크게 와닿지 않았다. 20대 때 읽은 군주론은 한물 간 책에 불과했다.
어느덧 마흔을 바라보고 있다. 가족이 생기고, 자식을 키우고, 일과 사업을 병행하며 운명 속에 마른 낙엽처럼 바스러지지 않을까 염려하는 사이 전에 가지지 못한 마음의 세계가 펼쳐지고 있는 지금, 마흔을 바라보는 지금, 오늘의 즐거움이 내일의 두려움으로 바뀌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지금, 지금 읽는 군주론은 20대 때 읽은 군주론과는 사뭇 느낌이 다르다.
군주principal는 한 나라를 다스리는 최고 통치권자를 의미하며, 왕king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한국말로 임금, 국가원수를 의미하기도 한다. 르네상스 시대 피렌체의 외교관이었던 마키아벨리Niccolo Machiavelli는 메디치 가가 추방되고 피렌체가 공화정 체제로 운영되던 때부터 외교관으로 활동한 인물로, 군주론은 메디치 가에 의해 군주정이 복귀된 이후 군주의 마음을 얻기 위해 기록한 책이다.
군주의 총애를 받으려 하는 자들은 대부분 자신들이 가장 값지다고 생각하거나 군주가 가장 기뻐할 것이라 여기는 선물과 함께 군주를 알현하는 것이 관례입니다. 그리하여 군주들에게서는 말과 무기, 금으로 수놓은 예복, 보석과 같은 군주의 위엄에 어울리는 장신구들을 선물로 받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 또한 전하를 향한 충성심의 증거로써 선물을 준비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지니고 있는 것들 중에는 오랫동안 겪어온 사건들을 통해 알게 됐거나, 고대 제도의 꾸준한 연구를 통해 알게 된 위인들의 업적에 관한 지식보다 더 가치 있고 소중한 것이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러한 업적들에 대해 오랫동안 관심을 기울여왔으며 또 연구해왔습니다. 이제 그 결과물을 한 권의 소책자로 정리하여 전하께 바치고자 합니다.
-군주론 헌사문 중 일부-
최근 지역 유지들과 더불어 고위직 공무원들과 일을 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생겼는데, 덕분에 전혀 뜻하지 않게 정치권에서 활동할 수 있는 기회들도 조금씩 주어졌다. 당파싸움이나 이권다툼 같은 부분은 관심도 없을뿐더러 정치색을 바탕으로 누군가를 판단하거나 배척하는 일도 나와 맞지 않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많은 기회와 인맥의 확장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이 생기고, 그들로 인해 크고 작은 기회들이 생기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겸손하게 행동하면서 사람들을 대하는 부분에 조심히 행동한다면 좋은 경험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 곳이 정치권의 세계인 듯하다.
그렇다고 해서 정치권이 마냥 행복하거나 감사한 조건을 갖추고 있는 곳은 아니라는 사실을 덧붙이고 싶다. 민주주의 국가는 공화국이나 군주국처럼 민중에 대한 지배권력을 가진 통치체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어느 정도의 자유의지를 갖고 발언할 수 있으며 소신 있게 자신의 뜻을 피력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긴 하다. 그러나 좀 더 내부적으로 들어가 보면 공천제도라는 것이 있고, 각 구와 군, 읍마다 지역을 이끌어가는 결정권자와 실제 업무를 담당하는 실무자들의 영향력이라는 것도 무시할 수 없다. 자신만의 잣대가 없다면 큰 어려움을 당할 수도 있고, 낭패를 볼 수도 있다.
군주는 나라를 이끌어가는 리더이므로, 국가에 대한 통치권을 갖고 있다. 그래서 군주론의 첫 장은 통치체제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군주가 나라를 이끌어가면서 갖추어야 할 처세술과 통치방법, 통치체제의 차이점, 이를 뒷받침할 다양한 인물분석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루이 11세의 아버지인 샤를 7세는 자신의 행운과 용기로 프랑스를 영국으로부터 해방시킨 후, 자신의 군대를 육성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 기병과 보병을 징병하는 법령을 확립했습니다. 훗날 그의 아들 루이 왕은 보병을 폐지하고 스위스 군을 고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실수는 지금 우리가 명확히 알고 있는 또 다른 실수들과 함께 프랑스 왕국을 위협하는 많은 요소들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샤를 7세와 루이 12세의 분석
마키아벨리가 서두에서 밝히듯 소책자로 만들어진 군주론은 길고 복잡한 내용이 아니다. 짧고 명쾌하다. 황제에게 바치는 글이므로 문장은 힘이 있고, 훌륭한 영웅들의 이야기를 통해 매우 적절한 예시와 분석안을 기록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군주론이 훌륭한 고전이라는 대답을 하기란 어렵다. 낯선 고대 영웅들의 이야기는 부록을 참고하면서 이해할 수 있지만, 인간의 고유한 성품인 '선악'을 토대로 탐구한, 인간의 본질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기록된 저서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군주론은 인간의 본성을 연구한 일종의 '탐구서'와 그 맥락을 같이 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의 마지막에서 운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전적으로 운명에 의지하는 군주는 운명이 변화하면 몰락해버립니다.
-운명에 의지하는 군주의 한계 중에서
나는 운명을 믿지만, 어느 정도의 운명은 스스로 창조하는 세계라고 생각한다. 신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었으며, 그 자유의지대로 움직임으로써 발생하는 일들에 대해 일말의 책임을 지게 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모든 삶과 움직임이 오직 전지전능한 신의 뜻에 의해서만 움직인다면, 인간은 꼭두각시 외에 다른 아무것도 아닌 존재에 불과한 셈이지 않은가. 어느 정도 정해진 운명이라는 것은 있지만, 외적인 다양한 요소들에 의해 운명의 물레바퀴도 바뀐다고 믿는다.
군주도 마찬가지다. 전적으로 운명에만 의지하는 군주는 운명의 변화에 의해 몰락한다. 군주뿐이랴? 개인이나 단체, 기업도 마찬가지다. 운명의 굴레에 자신의 모든 것을 맡긴 사람은 그 나름대로 선한 뜻을 따르는 것 같지만, 사실은 자실의 패망과 실수에 대해 신을 탓하는 것 외에는 아무런 책임을 질 것이 없으므로 편하기까지 하다.
운명은 변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방식으로만 행동하려 하기 때문에, 그 두 가지 조건이 조화를 이루게 되면 성공할 것이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실패할 것입니다.
-운명에 의지하는 군주의 한계 중에서
50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수많은 기업가와 리더들에게 전파되어 온 이유는 리더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들에 대해서 세세하게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었으리라 믿는다. 군주론은 일반적으로 선한 영향력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때로는 강력한 제재가 사람들을 이끄는 데 더 효과적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으며, 그런 제재로 인해 화려한 번영을 일군 국가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 기업의 경영자, 사회의 리더자가 칼과 같은 현명함을 갖추어야 하는 이유다.
군주론은 한 번 읽어서는 이해할 수 없고 다섯 번은 읽어야 이해가 된다고 한다. 그러려니 했지만, 확실히 일독으로는 아쉽다. 왕이 되려는 자, 왕관의 무게를 견디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