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예언, 질문의 부재, 그리고 비극

맥베스

by 전대표


사람마다 주어진 운명의 길이 다르다. 사업을 해서 큰돈을 버는 사람도 있고, 평생 직장인으로 근근이 생활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람은 호위 호식하며 살다가 사업의 실패로 평범 이하의 삶을 사는 경우도 있고, 느지막한 나이에 어렵사리 시작한 사업이 순풍을 만나 대형 프랜차이즈로 성장하는 경우도 있다. 생명의 방향도 제각각이다. 젊은 나이에 요절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100세를 넘어 장수하는 경우도 분들도 계신다. 사람마다 삶의 모양이 모두 다르다. 어느 것 하나 일치되는 것이 없다. 그렇다면 운명은 정해진 것일까, 아니면 창조되는 것일까.


나는 운명의 힘을 믿는다. 사람마다 가진 운명, 다르게 창조되는 운명의 길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믿는다. 주위분들에게 듣자 하니, 나는 젊은 시절에 많은 실패를 겪고 어려움을 만나다가 나이가 들면서 점차 성공의 궤도로 올라간다고 한다. 100% 믿지는 않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으니 나쁘지 않은 노후를 맞이할 거라는 기대로 하루하루 살고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잘못된 선택에 의해 좋은 운명이 나를 비껴가면 나 역시 나쁜 운명의 길로 빠지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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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그리고 맥베스.

왕은 통치권자다. 시민과 백성을 통제할 수 있으며, 국가를 포함하여 모든 기관과 조직을 움직일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사람이다. 절대권력을 갖고 있는 통치권자이므로,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가장 고결하며 위대한 위치이기도 하다. 다른 한 편으로 생각해보면, 그만한 지혜와 능력을 가진 인물이 왕이 되어야 한다는 말과도 같다. 맥베스는 그 왕이 될 운명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랬던 그는 왜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하게 된 걸까.

스코틀랜드의 왕족이며 글라미스의 영주였던 용맹한 장군 맥베스는 어느 날 마녀들에게서 왕이 될 것이라는 예언을 듣는다. 처음에는 믿지 않았지만, 마녀들의 예언대로 영주 작위를 하사 받은 뒤 왕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내는 맥베스로 하여금 왕을 죽이도록 권유하고, 맥베스는 아내의 권유에 못 이겨 왕을 죽인 뒤 왕위에 오른다. 이후 왕위를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잔혹한 통치를 행하다가 맥베스의 예언을 믿지 않는 인물 맥더프에게 죽임을 당하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는 게 맥베스 대강의 줄거리다.


마녀들은 맥베스로 하여금 그가 어떠한 운명의 과정을 거친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예언대로 일이 진행되었다. 친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게 된다는 예언이 이루어지는 것을 견딜 수 없어 도망쳤지만 결국 운명대로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게 된다는 줄거리를 가진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도 마찬가지다. 이후 자신의 눈을 뽑아내면서 운명의 비극 앞에 무릎 꿇지 않는 인간의 저항과 자유의지의 표상을 보여준다.

맥베스가 극 중에서 자주 하는 대사가 있다.

"여자 몸에서 태어난 자 중에 나와 맞설 자는 없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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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들, 인간의 운명을 훤히 알고 있는 정령들에 의하면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사람들 중에 맥베스와 맞설 수 있는 사람이 없다'라고 한다. 왕이 될 운명이었음을 믿고 있었던 맥베스로 하여금 자신감과 용기를 갖게 한다.


"이제는 공포의 맛을 대부분 잊어버렸다. 밤에 비명소리를 들으면 가슴이 서늘해지던 때도 있었다. 무서운 이야기를 들을 때면 머리칼이 살아있는 것처럼 곤두서던 때도 있었다. 마음껏 공포를 맛보았다. 그러나 이제는 살인의 기억조차 익숙해졌으므로 아무리 무서운 일에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맥베스] 단시네인 성의 안뜰에서 맥베스의 독백


맥베스의 용기와 자신감이 사라지게 된 순간이 몇 번 있었다. 몽유병으로 고통받던 아내가 죽고, 선의에서 비롯되었을 거라 생각했던 예언이 점차 비극과 두려움으로 변할 때 그 역시 죽음을 의식했다. 그러나 맥더프와의 전투를 만나기 전까지 그는 줄곧 예언의 말씀에 자신을 의지했다. 두려움은 용기로 바뀌었고, 용기는 살기로 바뀌었다. 하지만 맥더프는 마녀의 예언을 믿지 않았다. 담대하게 전투에 임하는 맥베스의 전면에 대고 마녀의 예언을 비웃어버린 뒤 맥베스와의 결전 끝에 승리하고, 맥베스는 목이 잘리는 비극적인 죽음을 맞는다.


그까짓 마력은 단념하라. 네 믿음을 주관하는 마녀들에게 물어보라, 나 맥더프는 달이 차기 전 어머니의 배를 가르고 나왔다고 이야기하리라.

-[맥베스] 맥베스와의 전투에서 맥더프가 맥베스에게 던지는 대사


앞서 이야기했듯이, 나는 운명을 믿는다. 이미 정해진 운명을 인간의 노력이나 수고로 바꿀 수는 없다. 신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보면 운명이라는 것은, 그러니까 생로병사를 제외한 선택 가능한 운명이라는 것은 자유의지와 전혀 반대되는 입장에 위치한다. 만약 내가 왕이 되어야 하는 운명인데,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 운명인데, 최상위 부자 혹은 지역사회를 이끌어가는 리더자로 살 운명을 타고 난 사람인데, 실수로 혹은 자의로 교통사고나 그에 버금가는 생명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사고를 유발함으로써 오늘부로 세상을 떠나버리는 일이 생긴다면, 운명이라는 것도 한낱 이론에 불과한 것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미신, 혹은 사주팔자와 같은 운명에 나의 모든 것을 거는 것은 그만큼 위험한 일이다. 무당, 미신, 나아가 종교인 등 유일신인 하나님을 제외한 모든 신과 종교인들이 인간의 생로병사와 후래사(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들, 미래)를 주관한다는 증거는 인간이 집필한 세상 어느 책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어떤 집단이나 개인이든, 불의의 정체가 개입되면 불화를 조성하고 일을 망치게 하노니, 나 자신은 물론 나아가 대치되는 모든 것들, 그 외에 정의와도 대립되도다. 부정한 자는 신들과 적이 되며 정의로운 자는 친구가 되리라.

-[국가론] 소크라테스와 트라시마코스의 대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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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베스가 어스름한 들판에서 만난 마녀들은 인간의 후래사를 주관할 만한 신들과는 거리가 멀다. 어쩌면 귀신, 악마, 마귀를 의미하는 ‘부정한 자’의 그림자에 가깝다. 무엇보다 맥베스의 아내가 지혜롭지 못했다. 생각도 주밀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씻을 수 없는 비극을 창조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 한 번이라도 ‘왜’라는 질문을 해보았다면 한 인간의 운명을 비극으로 몰고 간 문제는 지극히 단순한 문제로 바뀌었을 것이다.

“왜 맥베스가 왕이 되어야 하는가?”

인간은 숙명적으로 ‘어떻게’와 ‘왜’라는 질문을 던져야만 가치 있는 존재로 성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맥베스가 스스로 ‘어떻게’와 ‘왜’라는 질문을 던져보았더라면, 어쩌면 정해진 운명대로 왕이 되었거나,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대다수의 문제는 질문의 부재에 있다. 추구하는 것이 경제적 성공이든, 사회적 명예든, 끊임없이 ‘어떻게’와 ‘왜’를 던져야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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