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의 반항, 시민 불복종

by 전대표

국가가 개인을 지금보다 좀 더 높고 독립된 힘으로 보고, 국가의 권력과 권위는 이런 개인의 힘으로부터 나온 것임을 인정하며, 나아가 알맞게 대우하게 될 때까지 진정한 자유의, 계몽된 국가를 찾아보기란 어려울 것이다.

<시민의 반항 중에서>


최근 지인에게서 일자리를 소개받았다. 소개해주신 분이 평범한 분은 아니었는지라 소개해준 곳도 그런 곳이겠거니 생각했다. 담당자에게 전화해서 면접 일정을 잡고 미팅 자리에 나갔는데, 동네 이장님이 한 분 앉아계셨다.

"반갑습니다. 아무개 마을 이장 이 아무개입니다."

앞니가 하나 빠진 얼굴로 호탕하게 웃으시는데, 영락없는 동네 어르신이었다.


내용인즉슨, 시골 마을에서 사회적 협동조합을 운영하고 있는데 사무일을 봐줄 사무장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신축건물을 짓고 있으니 우선은 '마을 경로당'에서 따뜻하게 보일러 켜놓고 일하면 된다고 하시며, 내가 처음 사회생활할 때 받던 연봉을 제시했다. 직책은 사무국장이었다.


마을 경로당, 연봉. 솔직히 말해서 이런 건 문제도 아니었다. 연이은 실패에 익숙해져 있었기에 다소 적다 싶은 연봉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가치였다. 더 높은 연봉에 화려하게 보이는 일자리는 차고 넘치는 시대 아닌가. 공업도시의 특성상 글이나 쓰고 컨설팅하는 일만으로는 밥벌이가 어려웠으나, 그렇다고 해서 배울 점이라고는 단점밖에 찾아볼 수 없는 사람들과 별 볼 일 없는 일을 하며 인생을 허비하는 건 내 성격과 맞지 않았다. 소개해준 지인도 그런 나의 성향을 알고 있었기에, 어쩌면 나에게 적절한 일이 아닌가 생각해서 추천해준 모양이었다. 큰 기대를 한 것은 아니었으나, 그렇다면 더더욱 아무런 일이나 해서는 안 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나는 이장님에게 '이제는 무슨 일을 시작하던지 300년 뒤에도 의미 있는 일이어야 한다.'라고 이야기했고, 내 말을 들은 이장님은 즉시 이렇게 이야기했다.

"이 사업은 천 년을 가야 되는 사업입니다."

그 말이 마음에 꽂혔다. 천 년을 가야 하는 사업이라면 다소 어렵고 힘들지라도 해볼 만한 일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사장 타이틀을 가진 '이장님'은 앞으로의 사업 발전방향에 대해 자세하게 이야기해주시며, 앞으로 상당히 크게 성장할 것이므로 그때까지 기초를 잘 닦아달라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별로 하는 일은 없을 테니 책도 많이 읽고 글도 쓰시라'라고 격려를 해주었다. 눈빛, 말투, 호탕한 웃음에서 웬지 모를 깊이가 느껴졌다. 난데없이 다시 직장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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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은 수월하다 못해 누워서 떡먹기였다. 아니, 일 자체가 없었다. 중간중간 사무일을 보고 근처 대형마트에 가서 1+1 믹스커피를 사 오는 것을 제외하면 하루 종일 책을 보거나 신문을 읽다가 5시가 되면 퇴근하는 게 하루 일과의 전부였다. 배고프면 라면 끓여먹고 귤이나 까먹다가 낮잠 한 숨 자고 일어나서 글을 쓰곤 했다. 이래도 되나 걱정할 정도였다. 일을 소개해주신 분, 내가 속한 조합과 이사장님에 대해 잘 아시는 분들은 운 좋게 잘 들어갔다며 난리도 아니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30대 후반에 새로운 일자리를 구한 것에 대해 축하해주는 말인 줄로만 알았다.


이장님은 컴퓨터를 잘 모르는 분이었다. 무한잉크 프린터기가 왜 정품 토너보다 저렴한 지도 잘 모르셨고, 공인인증서가 언제 쓰이는지도 잘 모르셨다. 그렇다 보니 지방자치단체에 제출하기 위한 사업계획서를 쓰기 위해 익숙하지 않은 독수리 타법으로 A4용지 500페이지에 육박하는 사업계획서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내심 끈기가 있는 분이구나, 하고 생각할 따름이었다. 80년대 후반에 국내 최고 명문 사립대인 K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학생운동에 참여한 경력이 있는 인물이라는 것, 이후 울산의 핵심 언론사인 모 신문사의 창립자라는 것, 상당한 사회적 위치를 가진 거물급 인사들과 깊은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기까지, 이사장님은 나에게 그저 '생각보다 매우 일을 잘하시는' 동네 이장님에 불과했다. 상당한 발전 가능성이 있는 협동조합을 시작하게 된 이장님의 안목, 앞으로 350년 간 지역사회에 먹거리가 생길지도 모르는 역사적인 일 앞에 다양한 사업을 구상하고 있는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도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난 이후의 일이었다.


이장님은 종종 나와 머리를 맞대고 일을 했는데, 그럴 때마다 내가 경로당에 갖다 놓은 책을 죽 훑어보시곤 했다. 그리고 "책 좋은 것 많네. 시간 날 때마다 많이 봐라."하고 이야기해주시며 덕담도 한 두 마디 해주셨다. 그 덕담은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과 좀 달랐다. 이를테면 "논어만 보면 안 되고 대학도 보고 중용도 보고, 사서삼경을 두루두루 봐야 된다." 하는 식이었다. 그리곤 "상당히 악필이구만. 악필은 법조인 하기 힘들다."하고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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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시민의 반항>을 읽고 있었다. 경로당에 들어오신 이사장님은 업무 지시를 하다 말고 "뭐 이런 책을 읽고 있나?"하고 말씀하셨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원제는 <시민 불복종>이다. 그러고 보니 자네 완전 공산주의자구만. 공산주의 책만 읽고 있는 걸 보니. <월든>은 봤는가?"

"예."

그리고 책꽂이에 꽂혀 있는 <월든>을 보고는 활짝 웃으시며 말을 이어나갔다.

"소로우는 미국의 존경받는 좌파다. 미국 좌파의 뿌리라고 할 수 있겠다. 이후에 스콧 니어링으로 넘어간다. 아내는 헬렌 니어링인데 나이 차이가 좀 나지. 이후 노엄 촘스키로 내려가고. 미국 소수 존경받는 좌파의 뿌리라고 할 수 있다."

처음 듣는 말이었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날아간다는 말이 있다. 우리나라는 좌우의 경도가 맞지 않다. 좌우로 기우뚱거리다 보니 나라가 발전이 잘 안된다. 독일이나 북유럽처럼 사상이나 생각이 균형적으로 맞춰져야 한다. 그래야 새가 날듯이 정치라는 것도 균형이 잘 맞춰질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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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가 당신에게 다른 사람을 대할 때 불의를 행하는 하인이 되라고 요구하는 것이라면, 나는 당신에게 이야기하건대, 그 법을 어겨야 한다. 당신의 생명으로 하여금 그 기계를 멈추는 제동기가 되도록 하라. 내가 해야 하는 일은 내가 비난하고 있는 그 불의에 최소한 나 자신이 쓰이는 일은 없게 하는 것이다.

<시민의 반항 중에서>


나는 공산당도, 공산주의도 싫다. 사회주의도 그 나름대로의 장점이 있겠지만, 자본주의가 가능한 민주주의 체제 안에서 평생을 생활해온 나에게 공산주의 사상이란 게 반가울 리 없다. 그렇기에 정치적 신념을 바탕으로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시민 불복종>을 읽는다면 상당히 복잡해질지도 모르겠다. 신념의 차이에 따른 분쟁이 발생할 수 있고, 난데없이 손가락질을 받는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편협적인 정치색을 가지라는 게 아니었을 것이다. 가장 인간적인 삶을 살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마라는 뜻이 담겨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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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부당하게 감옥에 집어넣는 정부 밑에서 정직한 사람이 있어야 할 진실된 장소는, 당연한 말이겠지만, 감옥이다.

<시민의 반항 중에서>


우연히 이사장님의 이력을 보게 되었다. 굵직굵직한 그의 이력은 2,000년대 이후에 시작되었다. 88년 대학 졸업 이후 2,000년대가 되기까지 오랜 공백이 있었다. 그에게는 잊고 싶은 아픔의 시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말이 마음에 남는 이유다.


얼마 전 본 기사에서 국가청렴도가 무려 90%에 육박하는 정부가 있었다. 덴마크였다. 국민들의 정부 신뢰도는 72%로, 2021년 기준 45%인 한국보다 무려 1.5배나 높은 수치를 갖고 있다. 한국의 정부 신뢰도는 2007년 24%, 2013년 23%, 2017년 25%였다.

덴마크 시민들은 그들이 뽑은 정치인이 올바른 사고방식을 갖고 정치를 하고 있다는 것을 믿고 있었고, 정부 차원에서 올바른 제제와 통제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덴마크의 행복지수는 핀란드와 아이슬란드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 시민들이 이웃을, 국가와 정부를 믿는다는 것이 행복지수와도 상관이 없지 않음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결과다.

오랜 세월 전쟁과 약탈의 시기를 보낸 대한민국이 가까스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훌륭한 전쟁영웅들이 있어서, 혹은 자유의 힘이 큰 것도 그 이유가 되겠지만, 이웃, 나아가 국가와 정부를 신뢰하지 않는 풍조가 대한민국에 만연한 것은 전쟁과 약탈로 인한 어려움이 국민 모두의 마음속에 일말의 두려움을 심어두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억압의 시간을 통해 만들어진 역사는 시민들에게 자유를 갈망하게 만들었지만, 그와 함께 위축되고 예민한 감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아픔도 남겼다. 시민의 반항은 공산주의를 위한 책이 아니다. 정직한 인생을 살기로 결심한 시민을 위한 책이다.어떤 미래를, 어떤 신념을,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것인가, 고민해볼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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