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것은 좋은 것이야.
이른 새벽, 헬스장이나 수영장에 가보면 어디서 이런 사람들이 튀어나왔는가 싶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건강한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모여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러닝머신 위에서 열심히 달리면서 살을 빼는 사람, 무거운 덤벨을 들고 팔 근육을 키우는 사람, 삼삼오오 모여앉아 머리에 밴드를 두르고 열심히 훌라우프를 돌리는 사람 등등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힘들게 운동하고 난 뒤에 찾아오는 개운한 느낌과 기분 좋은 통증은 큰 쾌감을 준다.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기 때문에 일부러 즐기기도 한다. 교육에 있어서 이런 마인드를 접목시키면 여러가지로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다.
무슨 방면이든지 성장에는 고통이 따른다. 운동을 하는 사람들도 고통 뒤에 근육이 성장하는 기쁨을 맛볼 수 있고,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사람들도 외우고, 까먹고, 또 외우고, 틀리는 과정을 통해서 하나하나 문화를 이해하고 새로운 사람과 엮어나가는 즐거움을 맛본다. 학업도 마찬가지고, 혹은 친구관계나 결혼과 같은 부분에서도 이 룰은 똑같이 적용된다. 비가 내린 뒤에 땅이 굳어진다는 속담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때가 묻는 과정이 필요하다. 오해하고, 다투고, 이해하고, 화해하는 과정에서 연단된 관계가 만들어진다. 돈독하고 끈끈한 우정과 사랑이 창조되는 것이다. 어느 분야에서든지 그런 과정이 필요하다.
힘든 것은 좋은 것이다.
어려운 일은 좋은 것이다.
스트레스 받는 것은 좋은 것이다.
지금보다 성장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가져야 할 마인드를 설명하는 표현 중에 이보다 좋은 표현은 없는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힘든 것을 싫어하고, 어려운 일도 싫어하며, 스트레스 받는 것도 싫어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다양한 방면에서 우리는 힘든 것을 즐길 때가 있고, 어려운 일도 즐길 때가 있으며, 스트레스를 즐길 때가 있다. 운동할 때와 공부할 때 그렇다. 교육에 있어서 이것보다 적절한 표현이 있을까 싶다. 그리고 그 적절한 표현은 꼬마숙녀의 마음에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8살짜리 꼬마숙녀가 공부하는 것을 참 힘들어했다. 머리가 나쁘다거나 이해력이 느린 것도 아니었다. 두어 번 받아쓰기를 해보고 난 뒤에 일사천리로 써내려가는 또래 아이들보다 약간 느린 감은 있었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어린 마음에 여러모로 힘들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못한다는 생각, 뒤처진다는 생각, 선생님도 나를 싫어하겠구나 하는 생각 등등. 그런 생각들 때문에 공부하는 것을 힘들어했고 밝고 예쁜 얼굴이 점점 어두워졌다.
마음은 보인다. 나이가 많은 어른들도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는 데 서툴러서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하는데 어린 아이가 얼마나 마음이 상했을까 생각이 되었다. 표정에서, 고사리같은 손의 꼼지락거림에서, 우물우물 몇 마디 나오는 대답에서, 여러가지로 힘들어하고 어려워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꼬마숙녀를 앉혀놓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힘든 건 아주 좋은 거야. 힘든 건 지금 머리가 똑똑해지고 있다는 말이거든. 열심히 운동하는 사람들이 아이고 힘들어, 아이고 무거워, 라고 하면서 운동하는 이유는 지금보다 더 건강해지고, 더 예뻐지고, 더 잘생겨지기 때문에 하는 거야. 힘든 거 엄청 좋은거야. 지금 머리가 똑똑해지고 있구나, 내가 영리해지고 있구나, 하고 생각하면 돼. 그거 엄청 좋은거야.
이제 겨우 몇 마디 단어를 이야기할 줄 아는 꼬마숙녀는 내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끄덕거리더니 웃기 시작했다.
어느 시골에 병약한 남자가 살았다. 몸이 너무 약해서 일을 할 수도, 사람을 만날 수도 없었다.
제게 건강을 주십시요. 저는 꿈이 있습니다. 제발 건강한 육체를 주십시요.
어느 날 꿈에 “사랑하는 아들아, 집 뒤의 바위를 매일 빠짐없이 1년동안 밀어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매일 바위를 밀기 시작했다. 꿈쩍도 하지 않는 거대한 바위였지만, 그는 의심하지 않고 바위를 밀기 시작했다. 1년여의 시간이 흐른 뒤 확인해 보니 바위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너무나 실망한 그는 지난 세월의 헛수고에 원망과 불평을 늘어놓았다. '이게 뭐지? 바위를 밀라고 해서 그렇게 열심히 밀었는데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네. 도대체 나는 뭘 한걸까?' 하나님을 향해 원망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사랑하는 아들아, 왜 그렇게 슬퍼하지?”
“하나님 말씀대로 바위를 밀었는데 바위가 전혀 옮겨지지 않았습니다. 왜 이런 일을 시키셨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나는 네게 바위를 옮기라고 말한 적이 없단다. 이제 거울로 가서 네 모습을 보렴.”
거울 앞에 선 남자는 변화된 자신의 모습에 깜짝 놀랐습니다. 거울에 비친 남자는 병약한 남자가 아니라 근육질의 건강한 남자였다.
"지난 몇 개월 동안 밤마다 하던 기침이 없어졌구나! 매일 기분이 상쾌했었고, 잠도 잘 잤었지."
하나님의 계획은 거대한 바위를 옮기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이었다. 그에게 일어난 변화는 ‘바위를 옮겼기 때문’이 아니라 ‘바위를 밀었기 때문’이었다.
언젠가 웹서핑을 하다가 본 글이다. 누가 썼는지도 모르고 어디에서 유래된 것인지도 모른다. 종교를 가진 사람이 전도시 예시를 들기 위해 만든 이야기인지 모르겠지만, 여러모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도와준 글이었다. 때로는 출처를 알 수 없는 글이 마음에 큰 울림을 주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공교육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면서 만나는 모든 교육의 참된 목적이 잘 살기 위해서, 혹은 좋은 집과 좋은 차를 사기 위해서, 혹은 돈을 많이 벌어서 떵떵거리며 살기 위함이 아니라 나를 먼저 바꾸기 위함이라는 것으로 바꾸어 생각할 수 있다면 굉장히 깊이있고 심오한 마인드를 배울 수 있다.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을 쉬지 않고 반복적으로 행할 수 있는 마인드를 배운다면 결국에는 아무도 해내지 못한 일을 해낸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