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봉건제
시카고에 사는 많은 사람들도 사실 시카고에 대해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잘 모릅니다.
시카고의 정치는 불투명하고 부패하기로 미국 내에서도 유명합니다. 특히 시카고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시의원 제도와 그들의 막강한 권력은 시카고시를 사실상의 봉건제처럼 만들어 버렸습니다. 어쩌다가 시카고의 정치는 이렇게 독특하게 발전하게 된 것일까요?
우선 시카고의 시의원을 가리키는 명칭 "Alderman"부터가 범상치 않은데, 과거 잉글랜드의 귀족/영주를 가리키던 Ealdorman에서 따온 직함입니다. 이 앨더맨 시스템은 첫 취지는 좋았으나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문자 그대로 봉건 영주처럼 변해버렸습니다.
1837년 시카고가 도시로 출범했을 당시 기존의 행정구역은 시카고 강이 도시를 삼분하는 것에 착안해 북, 서, 남 3구역이었고 각 2명의 의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인구가 빠르게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행정구역도 같이 늘어났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를 일일이 시의회에 안건으로 들고 오기 벅차니 알아서들 해결하자는 취지로 의원을 여럿 두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결과 1923년 시카고 시는 하이퍼로컬(hyperlocal) 행정학의 실험장이 되어 50명의 의원이 관리하는 50개의 행정구역(ward)으로 쪼개졌습니다.
미국의 모든 대도시 중에서도 시카고가 얼마나 예외적인가 하면, 시의원이 1인당 대표하는 인구수가 로스앤젤레스에서는 25만 명, 뉴욕에서는 16만 명인데 시카고에서는 5만 명입니다. 학급처럼 담당하는 수가 적으면 좋은 것 아니냐고요? 물론 좋은 점도 있기 때문에 아직까지 이어져 왔습니다. 햄버거를 먹으러 갔다가 시의원과 인사를 나누거나, 길거리가 더럽다고 시의원실에 전화를 걸면 치워주기도 하는, 다른 도시에서는 없는 로컬 행정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후술할 문제점으로 인해서 앨더맨 시스템은 오늘날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50명이나 되는 시카고의 시의원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자신의 주민들에 대하여 매우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른바 앨더맨의 특권(Aldermanic Privilege)이라고 해서, 자신의 행정구역에 해당하는 시의회 안건에 한해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거부권을 행사할 수가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본인의 행정구역에 대한 전적인 권한을 가진다고 보면 됩니다. 의외로 많은 미국인들이 이것의 존재 자체도 알지 못합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이 권한이 시카고 그 어느 법에도 명시된 적이 없고 현재까지도 그냥 "불문율"로 통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럼 연방 법원에다 들고 가서 항의하면 되지 않느냐? 연방 법원도 앨더맨의 편을 들어주었습니다 (1997, 2009). 이 정도는 되어야 마피아의 도시라는 타이틀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물론, 앨더맨의 특권을 서로가 남발하다가는 난장판이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대부분은 신사적 합의 하에 일종의 필살기처럼 가끔가다 사용합니다. 하지만 20세기 중반까지 널리 사용된 이 특권이 지금의 시카고를 GTA로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미국의 부동산 규제의 중심이 되는 조닝(zoning)이 도시에 미치는 영향은 절대적입니다. 쉽게 말해 무엇을 어디에/얼마큼 지을 수 있다고 색깔별로 명시해 둔 것인데, 앨더맨들은 특권을 통해서 여기에도 봉건 영주와 같은 권력을 행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논란의 중심에는 항상 공공주택(affordable housing)이 있었습니다.
대체로 비싼 동네들일수록 공공주택이 들어오는 것을 매우 싫어합니다. 그래서 앨더맨을 통해 대놓고 조닝 변경을 막았고, 신사적으로 해결하고 싶은 경우 조닝 밀도를 낮춰버리는 전략(downzoning)을 사용했습니다. 심지어는 오래된 건물이 많을 경우 잔머리를 굴려서 역사보호구역(landmark district)으로 지정해 버리는 전략도 있는데 이렇게 되면 개발 자체가 매우 복잡해짐으로써 공공주택의 입주가 사실상 불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수십 년간 온갖 방법으로 님비(Not In My Back Yard)를 실행한 결과, 지금처럼 울타리 하나로 제1세계와 제3세계가 나뉘는 시카고의 모습이 탄생했습니다. 그래서 마틴 루터 킹이 1960년대 시카고에 왔을 때 "인종격리 수준이 남부보다 더 심각하다"는 평을 남겼던 것입니다.
사실 이 빈부격차가 100% 앨더맨의 잘못이라고만 할 수는 없습니다. 결국은 특정 성향의 앨더맨을 주민들이 선출한 것이고, 시카고 주민들의 뿌리 깊은 님비현상과 인종차별이 제도적으로 나타난 것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국가적 차원에서도 연방주택청(Federal Housing Authority)은 1930년대부터 유색인종과 흑인에게 모기지론을 쉽게 내주지 말 것을 가이드라인으로 정해놓았으며 이 레드라이닝(redlining) 정책 때문에 미국의 많은 동네들이 고질적으로 낙후되는 기준선이 그어졌습니다. 어쩌다가 운좋게 흑인이 백인 동네에 집을 얻으면 두드려 맞고 쫒겨나는 건 양반이었고 목숨이 위험했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이 모든 단점에도 불구하고 우리 동네의 의원을 아느냐 모르느냐에 따라서 안될 것이 하루만에 된다는 점은 행정처리가 느린 미국에서 상당한 이점으로 다가왔기 때문에, 지금까지는 시카고 사람들이 앨더맨에 대해 좋고 나쁜 감정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대부분 대도시들이 큼직한 행정구역을 두고 전문적인 매니저를 활용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시카고만 50개의 봉토로 쪼개져 "도시 전체의 이익"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맹점은 현대 사회에서 계속해서 시카고의 발목을 잡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