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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라질소셜클럽 Dec 08. 2023

세계 역사상 가장 짧았던 대통령직

어느 나라일까요?

멕시코에는 대통령을 하루도 못 하고 물러난 사람이 있습니다. 멕시코 혁명 기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멕시코가 1821년 독립한 뒤 처음 30년간 4년 대통령 임기를 제대로 채운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습니다. 산타 아나(Santa Anna) 장군은 1830-50년대 동안 혼자서 6번의 대통령 임기를 차지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으며, 포르피리오 디아스(Porfirio Diaz)는 1884년부터 31년을 독재했습니다.


산타 아나, 포르피리오 디아스


시작부터가 이렇다 보니 멕시코의 대통령직은 반장선거마냥 목소리 크고 힘센 사람이 가져가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고, 혁명으로 이어지고 나서도 혼란은 계속되었습니다. 1911년 멕시코 혁명의 지도자 프란시스코 마데로가 대통령직에 올랐지만 1년 3개월 만에 쿠데타가 일어나 정권이 무력으로 교체되었습니다.


이 정권교체기를 멕시코에서는 특별히 "비극의 10일(Decena Tragica)"이라고 중요하게 기념하는데 미국의 직접적인 개입과 장군들의 욕심으로 인해 혁명 정부가 처참하게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밑에서 간단히 설명하겠지만, 더 자세한 내용은 <멕시코 혁명사> 4편에서 다루었습니다.





1913년 2월, 쿠데타를 계획한 우에르타 장군(Victoriano Huerta)은 헨리 레인 윌슨(Henry Lane Wilson) 미국 대사와 손잡고 마데로 대통령의 사임을 촉구했으나, 마데로는 명백한 주권침해라며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윌슨 대사는 당시 외무부 장관이었던 페드로 라스쿠라인(Pedro Lascurain)을 불러 "지금 마데로가 사임하지 않으면 국경에 전진 배치된 미군이 개입할 가능성이 있으며, 마데로의 목숨도 보장할 수 없다"라고 협박하였고, 마데로는 결국 신변의 위협을 느껴 사실상 강제로 사임하였습니다.


마데로를 무력으로 체포하는 군부 세력


마데로의 사임은 멕시코 헌법에 따라 승계 서열 2위였던 페드로 라스쿠라인 장관을 다음 대통령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는 직함만 대통령이었지 우에르타 장군의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었고, 오후 5시 15분 취임한 뒤 오후 6시에 우에르타 장군을 내무부 장관으로 임명하고 사임함으로써 권력을 합법적으로 쿠데타 정부에 넘겨주었습니다. 그렇게 라스쿠라인은 멕시코, 아니 세계 역사상 가장 짧은 45분 대통령직이라는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얻게 되었습니다.


페드로 라스쿠라인


당시 기록을 종합해 볼 때 라스쿠라인은 우에르타의 지시를 따르면 마데로와 부통령의 목숨을 구할 수 있으리라 믿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에르타는 약속과 달리 마데로의 목숨을 살려줄 생각이 없었고 마데로는 결국 감옥으로 옮겨지던 중 살해당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라스쿠라인은 "그들이 나를 완전히 속였다"며 낙심했으나 그가 할 수 있는 건 없었습니다. 그는 이후 외국으로 망명했다가 멕시코로 돌아와서도 끊임없이 변절자라는 낙인을 지우기 위해 싸워야만 했고, 남은 여생은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1952년 96세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멕시코의 대통령 임기는 원래 4년이었다가 1934년 라자로 카르데나스(Lazaro Cardenas) 대통령부터 6년으로 늘어났는데, 혁명 기간 내내 대통령 임기를 제대로 채운 사람이 한 명도 없을 정도로 정부가 안정되지 못했습니다. 오브레곤 대통령의 경우 1928년 재선 후 16일 만에 권총에 맞아 사망했으나, 대통령직에 정식으로 올라 있지 않았으므로 논외가 되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1934년 이후부터 모든 멕시코 대통령은 6년 임기를 정상적으로 마쳤다는 것입니다. 중남미 국가들은 브라질이나 니카라과, 아르헨티나처럼 1960-70년대 군부 쿠데타에 전복되는 경우가 꽤 있었는데 멕시코는 적어도 쿠데타로 흔들리지는 않았습니다. 어쩌면 혁명으로 피흘려 얻은 교훈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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