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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라질소셜클럽 Jan 11. 2024

미국 카우보이의 원조는 멕시코

미국 남부와 멕시코의 오래된 역사

가장 미국적인 문화를 꼽으라고 하면 반드시 등장하는 남부의 카우보이... 하지만 이 카우보이 문화가 사실 멕시코에서 전래된 것인 줄 알고 계셨나요?


서부영화에 빠지면 섭섭한 멕시코 총잡이들 (레드 데드 리뎀션 2, 석양의 무법자)


어릴 때 서부영화를 보고 자랐던 한국인들과 마찬가지로, 미국인들도 이 얘기를 들으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깜짝 놀랍니다. 하지만 미국 남부와 멕시코의 현재 국경이 정해진 지는 200년도 안 되었으며, 역사를 돌이켜보면 지금의 미국 남서부는 훨씬 오랜 기간 동안 스페인 그리고 멕시코의 지배 아래에 놓여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 남부 땅의 문화가 멕시코의 영향력을 강하게 받은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카우보이 문화로 유명한 지금의 캘리포니아, 텍사스, 애리조나 땅의 바케로(vaquero)들은 200년 가까이 말과 소를 관리하는 전통을 갖고 있었다.


2. 카우보이의 주 무대인 미국 남부는 1848년까지 멕시코 땅이었다가 전쟁으로 미국에 넘어간 것이다.


3. 카우보이 문화에 등장하는 수많은 용어들은 대부분 스페인어에서 온 것이며 그 이유는 텍사스의 미국 카우보이들을 처음 가르친 것이 멕시코인들이었기 때문이다.




하나씩 알아보기 전에... 우선 카우보이가 정확히 무엇인지에 대해 잠깐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카우보이를 서부영화나 게임으로 접한 분들은 황야의 무법자, 프리랜서처럼 생각할 수 있지만 대부분은 그냥 목장의 고용인이었을 뿐입니다. 카우보이에는 크게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첫 번째는 목장(hacienda)에 고용되어 가축을 키우고 돌보는 일을 하는 란체로(ranchero)였습니다. 이들은 목장주(hacendado)를 위해 일했으며 일부 프리랜서처럼 목장을 옮겨 다니는 경우도 있었으나 대부분은 목장 안에서 일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가 길들여지지 않은 가축을 잡아다 여기저기 옮기거나 판매하는 일을 하는 바케로(vaquero), 즉 우리가 생각하는 카우보이였습니다. 당시 캘리포니아, 텍사스 땅은 야생마와 들소 천지였고 잡을 수만 있다면 좋은 수입원이 되었습니다. 이 카우보이들은 먼 길을 이동해야 했으므로 황야와 평원에서 자기도 했고, 야생마를 몰고 길들이는 능력이 탁월해야 했습니다. 야생마를 잡기 위한 밧줄 던지기 스킬이나 날뛰는 말 위에서 버티는 로데오 문화는 모두 여기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카우보이라는 단어는 원래 멸칭이었고 본인들이 사용하지는 않았습니다. 이 카우보이라는 말은 1870년대 애리조나 지역에서 활동하던 Cochise County Cowboys라는 갱단에서 유래되었고 영화 Tombstone(1993)에서 보듯이 주동자들은 보안관 와야트 어프에 의해 처단됩니다.


정리가 되었다면 이제 스페인 식민지 시대로 돌아가 봅시다.




누에바 에스파냐의 카우보이들

목장 지주와 카우보이


스페인 제국은 멕시코를 통치하면서 지금의 캘리포니아, 애리조나, 텍사스 땅에 풍부하게 널린 야생마와 들소들을 눈여겨보았습니다. 16-17세기부터 주로 귀족 출신이었던 대지주(hacendado)를 중심으로 목장들이 남부에 발달하였으며 이 당시의 카우보이들은 카바예로(caballero) 혹은 바케로(vaquero)라는 이름을 달고 목장에서 일했습니다.


이들은 스페인 본토에서 건너온 장비와 기술을 가지고 일했기 때문에 안장이나 옷 입는 법이 유럽과 조금 달랐습니다. 멕시코로 건너오면서 추가된 것들이라면 뜨거운 햇살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넓은 챙모자, 사막의 추운 밤을 견디기 위한 화려한 세라페(serape) 담요, 그리고 선인장과 가시덤불이 많은 지역에서 다리를 보호하기 위한 두꺼운 가죽커버가 있습니다. 귀족 지주들은 자신들의 말과 장비에 큰 애착을 가졌으며 매우 화려한 은실로 자수가 놓인 고급 안장과 의복을 애용했습니다.


18-19세기 스페인풍 작품들


목장뿐 아니라 스페인의 넓은 영토의 방어에도 승마술은 빠질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스페인은 용기병의 일종인 Dragones de Cuera를 국경 수비대로 활용하였습니다. 이들은 Presidio라 불리는 요새에 배치되어, 두꺼운 가죽 외투와 기병창, 권총으로 무장한 채 100년 넘게 인디언, 무법자들과 맞서 싸웠습니다.


18세기 누에바 에스파냐 용기병




멕시코 영토의 절반을 접수한 미국

노란색이 모두 멕시코 땅이었습니다.


샌프란시스코, 샌디에고, 라스베가스 등 남부에 스페인어 지명이 많은 데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한때 지금의 캘리포니아, 애리조나, 텍사스, 네바다는 모두 스페인의 지배하에 놓여 있었습니다. 물론 남부의 사막 지방은 당시에는 농사짓지 못하는 사실상 버려진 땅이었지만 캘리포니아와 텍사스는 미국에 있어 무척 탐나는 땅임은 분명했습니다.


1821년 멕시코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면서 이 지역의 운명은 복잡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신생 정부에겐 돈이 없었으며, 넓은 영토를 가졌음에도 실질적 통치력은 매우 약했습니다. 정치적으로도 정부의 상태가 엉망이었고 처음 30년간 제대로 대통령 임기를 채운 사람이 한 명이었습니다. 이 혼란기를 노려 반란과 외부세력이 멕시코에 침투하기 시작했습니다. 1836년 텍사스가 독립을 선언하고 멕시코에서 떨어져 나갔습니다.


미해병대 군가에 이때의 점령을 기념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1846년 미국은 오레곤 땅에서 국경 분쟁을 빌미로 멕시코에 전쟁을 선포하였습니다. 잘 훈련되었고 최신 무기로 무장한 미국 군대에 비해, 분열되어 있었고 장비도 열악했던 멕시코군은 무력하게 무너졌습니다. 미군은 육로로는 로스앤젤레스, 라스베가스, 샌안토니오를 점령하였고, 1847년 3월에는 베라크루스에 상륙하여 6개월 만에 멕시코 시티 차풀테펙 성을 점령했습니다. 1년도 안되어 본진이 털린 멕시코는 영토의 55% 상실이라는 치욕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멕시코와 텍사스 카우보이의 만남

멕시코 카우보이의 모습


멕시코의 독립과 미국에게의 영토 상실로 인해서, 조상 대대로 소치며 살던 이 지역의 카우보이들은 불과 50년 만에 국적이 스페인에서 멕시코,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바뀌는 희한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미국은 패자인 멕시코인들을 대놓고 무시했고 대부분 목장주들은 패전 이후 짐을 싸서 멕시코로 내려갔습니다. 그들이 떠난 자리에 미국인들이 들어왔지만 야생마를 길들이고 목장을 관리해 본 경험이 부족했던 미국인들은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텍사스, 애리조나에 남아 있던 멕시코 카우보이들은 이제 그들의 200년 전통을 미국인들에게 전수하기 시작했습니다.


카우보이 용어 중 스페인어에서 유래된 단어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Mustang(야생마): Mesteño, Mestengo

Buckaroo(카우보이): Vaquero

Lasso(밧줄): Lazo

Chaps(다리 보호대): Chaparreras

Corral(목장): Corro

Lariat(밧줄): La reata

Rodeo(로데오): Rodear


미국의 입장에서는 넓은 땅을 얻게 되어 좋긴 했지만, 가축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일은 여전히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가축을 많이 키운 들 그것을 운송할 방도도 딱히 없었고 수요도 없어서 큰돈을 벌긴 어려웠습니다.


미국 철도 현황, 1860년


카우보이의 팔자는 1850년대부터 급격하게 바뀌기 시작했는데 그 이유는 위 두 가지 문제점이 모두 해결되었기 때문입니다. 첫째로, 미국의 철도 부설이 미주리까지 진행되어 이제 가축을 남부에서 대도시로 올려 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둘째로 1867년 Armour and Company사가 대규모 축산 가공시설을 시카고에 설립하면서 고기 수요가 치솟기 시작했습니다. 즉 소를 기차역까지 끌고 가 시카고로 보낼 수만 있으면 돈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때부터 캔사스, 애리조나의 철도 종착역은 카우보이들의 최종 목적지가 되었습니다.


미국 카우보이의 전성시대는 의외로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1900년대 들어 철도와 철조망이 발달함으로 인해, 3개월씩 걸리는 텍사스에서 캔사스로의 대이동이 불필요해진 것입니다. 문명의 발달로 인해 사람들은 말 대신 차를 타기 시작했고 무법자, 개척자의 시대는 막을 내렸습니다.




오늘날의 멕시코 카우보이

과달라하라의 카우보이 전통


비록 캘리포니아와 텍사스 땅에선 쫓겨났지만, 멕시코의 카우보이 전통은 오늘날 여전히 건재합니다. 과달라하라 주 Jalisco에 가면 Charro라고 불리는 카우보이들의 승마술과 밧줄 던지기 기술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눈치챈 분들도 있겠지만 멕시코 전통 밴드 마리아치(Mariachi)의 화려한 재킷과 바지도 원래 Charro 의상에서 온 것입니다.  


레온, 과나후아토의 부츠 상점


과나후아토 주의 레온(Leon) 시는 카우보이 부츠의 본고장이기도 합니다. 약 3,000개가 넘는 구두 업체들이 이곳에서 대대로 신발과 구두를 만들어 왔으며 멕시코에서는 "메이드 인 레온"을 자랑스럽게 강조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멕시코에 여행 오신다면 최고 등급의 카우보이 모자와 부츠를 좋은 가격에 살 수 있습니다. 카우보이의 본고장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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