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상파울루 사거리를 건널 때

브라질의 서울을 가다

by 브라질소셜클럽

내가 상파울루에 가기로 한 이유는 단순했다. 브라질에서 제일 크고 좋은 도시라고 해서. 거기에 가면 그래도 브라질의 서울이니 볼 것은 많겠지라는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막상 가 보니 상파울루에 아는 사람도 없었고 너무 커서 어디서부터 봐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다행히도, 나는 상파울루에 도착하자마자 친구가 생겼다.


카우치서핑 요청을 받아준 집의 주인인 루카스(Lucas)가 아파트에서 나를 맞아주었다. 그는 24세의 학생이었고 기타를 연주한다고 했다. 루카스는 영어를 꽤 잘하는 편이어서 포르투갈어로 대화할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그의 집은 전형적인 복도식 아파트 원룸이었고 나는 거실에서 자기로 했다. 루카스는 나에게 이곳저곳 갈 만한 곳을 말해주고는 낮에는 공부하러 나갔다. 나는 지도를 펴 들고 동그라미를 몇 개 친 다음, 용감하게 길을 떠났다. 이틀 정도의 짧은 여행이어서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첫 번째 목적지는 도시 한복판에 있는 상파울루 미술관이었다(MASP). 건물 자체부터 예술인 MASP는 근대와 현대미술을 주로 취급한다. 따라서 액자에 담긴 그림과 조형물, 각종 아방가르드 예술이 섞여 있다. 안타깝게도 7년 전 허접한 폰카로 찍은 사진첩에는 이때의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서 뭘 봤는지 기억이 없지만, 나는 학생증 찬스로 무척 싼 가격에 브라질이 자랑하는 최고 등급의 예술을 맘껏 봤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미술관 아래에서는 젊은이들이 모여 앉아 담배(대마?)를 피고 있었고 길거리 공연도 진행 중이었다. 상파울루의 대로는 강남대로와 비슷한 느낌이다. 각종 체인점, 은행, 회사로 가득 차 있는 깨끗한 상업의 중심지라고 표현하면 될 듯하다. 나는 낮에 한 군데를 더 보기 위해 바쁜 사람들 사이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마 여기 굳이 가는 여행자는 브라질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뿐일 것이다.


18559898.jpg Quando cruza Ipiranga, e Avenida Sao Joao...


내 마음에 떠오르는 어떤 것이 있다
오직 이피랑가와 상 죠앙 대로를 건널 때만 떠오르는.
그저 내가 여기에 도착했을 때 난 아무것도 몰랐다는 것뿐이다
(Sampa, Caetano Veloso)


Sampa - Caetano Veloso, Maria Gadu


카에타누 벨로주는 상파울루에 대해 "나르시소스는 그가 보는 거울 안의 모습만을 사랑한다"라고 노래했다. 매끈한 콘크리트와 유리로 덮인 상파울루에 사는 도시의 사람들도 깨끗한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사랑할까? 나는 노래에 나와 유명해진 이피랑가와 상 죠앙 대로를 가로질러 보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냥 지극히 평범한 사거리일 뿐이었다. 나는 폰을 꺼내 사진을 한 장 찍었고 잘 나왔는지 확인하러 사진첩을 열어 보았다. 폰 안에는 표지판 하나와 못생긴 콘크리트 빌딩이 담겨 있었고 그것을 보자 그제야 내 마음속에 허무함에 가까운 무언가가 스쳐 지나갔다.




23476_shopping-patio-higienopolis-_-40312696.jpeg 상파울루에 이런 곳이 있다니


다행히도, 사거리에서 나의 다음 목적지까지는 멀지 않았다. 상파울루의 청담동, 이지에노폴리스(Higienopolis) - 도시에서 최고 비싼 음식점들과 갤러리아 같은 고급 백화점이 있는 곳이다. 나는 어지간한 미국의 쇼핑몰보다 더 화려한 그곳의 백화점에 놀랐고 가격에 한번 더 놀랐다. 무작정 남미의 물가가 쌀 것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한 예로, 플레이스테이션 4의 브라질 출시 가격은 4,000 헤알, 당시 100만 원이 넘는 자비 없는 가격이었다. 그중 63%가 세금이었기 때문이다. 브라질 사람들은 비행기를 타고 가서 플스 4를 사도 그것보다 싸게 살 수 있다고 야유했고 실제로 그렇게 한 사람들도 있었다. 내가 갔던 때가 물가가 높았는지는 몰라도, 상파울루의 체감 물가는 거의 뉴욕 수준이었다. 나는 하잘것없이 윈도쇼핑을 하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카우치서핑 아파트로 돌아오니 루카스와 친구 한 명이 검은콩죽과 밥을 만들고 있었다. 밥에 마늘을 넣어 짓는 것이 신선했다. 그런데 맛있게 먹겠습니다 하고 밥 한 숟갈을 먹어 보니 흰쌀밥에 간이 되어 있었다. 나는 웃으면서 브라질에서는 밥에 소금을 치냐고 물어보았다. 루카스는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요리에 간을 안 하면 무슨 맛으로 먹어?


Arroz-ao-Alho-e-Óleo.jpg 이런 비주얼은 아니었지만 꽤 맛있었다.


그는 간을 안 한 밥은 먹기 싫을 것 같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 밥도 하나의 요리구나. 반박할 수가 없었다. 나는 마늘밥을 먹으면서 히우 이야기를 해주었고 루카스의 친구는 브라질 사람들의 히우에 대한 의견을 말해주었다. "젊어서 놀 때는 히우, 일할 때는 상파울루, 아이를 가지면 쿠리치바". 그들도 젊을 때는 그런대로 나쁜 치안을 감수하고 살았지만 나이가 들수록 걱정이 된다고 했다. 루카스와 그의 친구는 히우에서 만났던 브라질 사람들보다 오히려 서울이나 LA에 사는 사람들에 더 가까워 보였다. 둘 다 만화와 게임을 좋아했고, 비교적 내성적인 성격이었으며, 밤늦게까지 놀거나 술을 마시지도 않았다. 그들의 포르투갈어는 사투리 없이 또렷했고 영어와 제2외국어인 이탈리아어도 할 수 있었다. 나의 브라질 사람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당시에는 그가 좀 독특하다고 느꼈지만, 그 넓은 브라질에 어찌 춤추고 노래하기 좋아하는 사람만 가득하겠는가. 터무니없는 선입견이었다. 뭐, 나도 한국인인데 수학 못하고 스타크래프트도 못하니까 할 말은 없다. 조용하지만 똑똑했던 루카스는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 문득 궁금해서 찾아보니 그는 천체물리학 박사가 되어 있었다. 나중에 그가 브라질의 파인만 같은 사람이 되면 아는 척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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