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긴 어디지

불쏘시개 연작 - 12번

by 소는영

빗소리. 배시시 보단 으스스가 어울리는. 그런 배경 속.

어떤 방 한 칸. 아마도 그곳에서.

눈을 뜨는, 아니, 감지 못한 채 열어둔 상태로서의,

한 사람이 있었다.




“무엇인가 떠오르지 않나. 생각이 안 난다면 다시 한번 묻겠다. 너. 도대체 누구냐. 누구길래 이 야밤에 이곳 주변을 어슬렁거리면 돌아다니는 건데? 어?”


여기는 어디일까. 내 앞에 있는 저 사람은 누구길래 나를 이리도 심문하고 있는걸까. 쉬지않고 떠드는 그 놈의 입에다 총알이라도 한발 쑤셔 넣고만 싶었다.


하지만 손발이 묶여 있는 지금 상태선 어떤 행동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저 역겨운 주파수의 음성. 오로지 그것만이 내 귓볼을 잠식하는 걸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내 말 듣고 있는거냐?”


그럼, 듣고 있겠냐고 반문하고 싶었다. 내가 무슨 기계도 아니고. 귀를 열었다 닫았다 할 수 있으면 진작에 닫았겠지. 머리의 나사가 풀리는 기분이 들 때쯤 심박수가 천정부지로 오르는 걸 느꼈다. 시야도 이제 흐려지고 있다. 여기서 또 기절하면 큰일날 수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인가


“안되겠네. 이봐 간수. 이 자식 독방에 다시 집어넣어. 아무래도 오늘은 더 이상 무리일거 같군.”



운이 좋았나?


다행히 간수는 나를 억지로 ‘수사’할 생각은 없나보다.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고맙다고 해야할지. 제복을 입고 소총을 왼쪽 어깨에 붙어있는 견장에 멘 간수가 나타나 나를 일으킨다. 좀 더 섬세하게 다뤄주면 덧나냐..


거칠게 들어올리는 과정에서 땀방울로 보이는 액체가 철제책상 위에 떨어졌다. 숨소리는 거칠어져만 갔고 심문관의 얼굴을 제대로 보기도 전에 의식은 끊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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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익. 쿵.


두꺼운 쇳가루 하나가 콧속을 유린할 때 소름끼치듯 침상에서 일어났다. 서둘러 들어간 이물질들은 바깥으로 내보내느라 손가락 마디의 힘줄에 과부하마저 일어났다.


젠장. 아프잖아.


눈에 띈, 아니 엄밀히 말하면 눈 앞에 ‘놓인’ 상황은 참담하기 그지없었다. 색깔로 표현하면 검은색. 더 이상 설명은 필요없었다. 어떠한 다른 색도 허락하지 않는 공간. 여기는 독방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이 곳. 최소한 미니전구라도 달려있었다면 모를까.


이곳에선 화려한 수채색 화폭이 불필요해 보였다. 손을 뻗어 앞으로 내던져본다.


휙 휙.


손에 닿는건 하나도 없었다. 그렇다면 넓은 건가? 맨발로 바닥을 밟아보고 싶었다. 아니 밟아야만 했다. 침상이 놓였다는 것은 그것을 지탱할 만한 지지기반이 실재한다는 뜻이니까. 발을 놓고자 허리 하반신을 살짝 움직이려 했을 때 본능적으로 소스라치게 재빨리 올렸다. 바닥이 있어야 할 자리에 느껴지는 것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차분하게 생각해보자. 지금 떠올릴 수 있는건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앞서 언급한 텅 빈 공간 시나리오, 다른 하나는 신체감각기관의 기능소실이다. 전자는 현실성이 떨어진다. 아니, 부족한 정도가 아니라 불가능하다.

만약 저게 사실이라면 애초에 내가 침상이라고 정의한 이 물체는 당최 뭐가 된단 말인가. 마지막 기억을 상기시켜보아도 심문관이 나를 옮기라고 한 공간은 ‘독방’이었다.


아니. 애초에 그 자식을 믿을 수나 있나. 뭔가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이 아닌가. 내 추론의 존재근거로서 주어진 명제의 참·거짓을 구분하는 것 마저 믿을 수 없다면 무엇을 근거로 사고해야만 하는가. 복잡하게 진행되는 머리 속에선 갑론을박이 펼쳐지고 있었으나 별 다른 소득은 없었다. 탁상공론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무의미한 논쟁일 뿐, 결국 이곳이 ‘공간’인지도 규명하지 못한 채 소강상태에 들어가게 됐다. 참으로 미칠 것같은 상황이었다. 여러모로.


그렇다면, 역시 내 발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사실 땅에 닿고 있었는데 내가 그걸 인지하지 못한 건 아닐까? 나는 확인차 자세를 바로잡고자 앉은 상태로 가다듬었다. 왼쪽 발바닥으로 느껴질 만한 대상을 양손으로 움켜잡았다. 아직 쇳가루 일부가 묻어 있었지만 지금으로선 찬밥을 가릴 처지가 못됐다. 서둘러 만져본다.


쓱 쓱.


감지가 됐다. 촉각. 무언가가 내 발바닥을 건드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 깊은 안도감과 불안감이 동시에 엄습했다. 불편한 먼지 냄새 때문은 아니었다. 첫 번째 시나리오로 흘러가고 있음이 결정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럼 난 지금 허공에 매달려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미치겠네. 심박수가 쓸 데 없이 높아졌고 호흡은 가파져만 갔다. 아까 겨우 파냈던 쇳가루가 이번엔 폐 속에 쳐박히는게 느꼈다. 꿀럭 꿀렁 움직이는 기관지의 애처로운 발악이 오장육부에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


그럼 뭐야.. 나 지금 하늘에 떠있다고?


여긴 도대체 어디냐고. 진짜. 어디야.





빗소리가 점점 사그라들고, 구름이 젖혀 가기 시작한다.

그러나, 내가 알 방도는 없었다.

한뼘 거리에 닿을 듯한, 눈앞의 암막커튼이 이리도 멀게 느껴지다니.

다시금. 몸을 눕혀본다. 눈을 감아본다.

10분은 그렇게 길었나보다.




2020. 5.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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