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멸과 기록: 이미지의 윤리 "수용소 비밀사진들"

생각의 서고 38화

by 소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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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서론


1.

사진과 기억의 윤리를 다룬 논문—크리스토프 코녜의 『뼈 조각들』과 <눈먼 발걸음으로>에 관한 글—을 읽고, 어떠한 상념에 깊이 잠긴다.


법감정의 마비와 지식인의 침묵에 대한 고뇌를 막 끝냈을 때, 이 논문은 나에게 또 다른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죽음과 소멸. 남들 앞에선 쉽사리 꺼내기 어려운 주제겠지만, 평소의 나는, 이러한 금기시된 주제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이 논문은 홀로코스트라는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 정면 돌파한다. 그래서 너무도 흥미로웠다.


2.
개인의 법감정이 타고난 소질과 경험을 통해 형성되듯이, 윤리적 감각과 이미지를 대하는 태도 또한 우리가 겪는 '시각적 경험'의 폭과 깊이에 의해 구조화된다.


논문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수감자들이 목숨을 걸고 촬영한 비밀사진들이 지닌 역사적, 윤리적, 미학적 의미를 고찰하며, 단순히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극한 상황에서 촬영된 시선의 흔적이자 물질적 흔적임을 강조한다.


3.

이 파편화된 이미지들 속에서, 나는 내가 매일 기록하는 하루의 기억, 곧 소멸을 향해 가는 나의 발걸음의 의미를 되묻는다.





II. [법적 안정성]이라는 이름의 감옥, 그리고 저항으로서 [빛의 파편]


1.

나치독일의 시대는, 법적 안정성의 이름으로 부당한 법률에 복종을 강요하며 정의를 질식시켰던 비극이었다. 감옥에 다름아닌, 사상의 옥쇄로서 법의 근간은 모욕을 당한 때였다.


논문은, 그러한 침묵을 거부하고 기록을 감행한 이들의 저항 행위를 조명한다. 수용소의 비밀 사진들은 법적 폭력과 통제 속에서 탄생한, 가장 위험한 형태의 증언이었다. 그들의 증언(證言)은 구술이 아닌, 서증(書證)으로서 사진으로 등장한다.


2.

다하우 수용소. 이곳은 나치가 가장 먼저 건설한 "모범적인" 통제구조를 갖춘 곳이었다. 이곳에서, 체코국적의 수용자였던 루돌프 시몬 치사르는 약 50여 장의 비밀 사진을 촬영하였다.


지하저항조직을 결성한 그는, 나치 친위부대 SS의 감시를 피해 카메라를 숨긴 채 '보지 않고 촬영'(à l'aveugle)하는 방식을 사용하였다. 이로 인해 사진들은 흔들리고 흐릿하며 기술적 결함으로 가득하지만, 바로 그 "결함"이 극한상황에서의 촬영이 급박하게 이뤄졌음을 방증한다.

3.

치사르의 사진은 SS나 연합군이 찍은 것과는 다른, 이른바 '수감자들의 시점'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가히 독보적이다.


자신의 초상 사진에서 그가 보여준 무심한 포즈와 초연한 태도는, 시스템이 부여한 '수감자'라는 낙인 앞에서 인간적 존엄성을 지키려는 고독한 결단을 보여준다.


4.

이번에는 벨기에 국적의 장 브리쇼를 보자. 그는 SS의 사진촬영 업무의 '조수'라는 특혜적 지위를 이용해 세 장의 비밀 사진을 찍었다.


그의 사진은, 치사르의 것과 달리 '조심스럽게 조준되고', 높은 해상도를 보여주는 이례적인 예외 사례로 평가된다. 특히 시체 소각장 사진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는 1944년 당시 소각장이 실제로 가동 중이었음을 보여주는 직접적인 증거이다.


치사르의 '흔들리는 흔적'과 브리쇼의 '선명한 증거'는 방법론은 달랐으나, 궁극적으로 침묵을 거부하고 나치 범죄의 실상을 세상에 알리려는 동일한 저항의 행위였다.



5.

부헨발트의 수감자 조르주 앙젤리 역시 사진사라는 직업적 배경을 이용해 11장의 사진을 남겼다. 그는 카메라를 신문지에 싸서 팔 아래 숨기고 '보지 않은 채' 촬영하는 독특한 방법을 사용하였다.



앙젤리의 사진 중 가장 의미심장한 것은 화장터를 배경으로 수감자들이 햇볕을 쬐고 있는 이미지이다. '피어오르는 연기, 잔디밭에 누운 사람들, 일요일 오후의 적막함'—고통과 평온, 죽음과 휴식이 한 프레임 안에 존재하는 이 '모순'은 수용소의 비극적 평범함을 드러낸다.


앙젤리가 이 사진을 공개하지 않으려 했고, 후에는 수감자들의 모습을 지워버리기까지 했다는 사실은 나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코녜는 바로 그 '지워진 흔적, 그 망설임' 속에 이미지를 둘러싼 윤리적 고뇌가 진실하게 드러난다고 말한다.


6.

앙젤리의 망설임은 나의 매일의 기록과 닮아 있다. 소멸과 죽음이라는 어둡고 금기시된 주제를 정면으로 응시할 것인가, 아니면 일상의 평범함 속에 숨길 것인가에 대한 윤리적 긴장이 그 지워진 흔적 속에 서려 있다.



7.
미텔바우도라 수용소는 V2 로켓 생산의 중심지인 지하 무기 공장이었으며, 극단적으로 밀폐된 노동 공간이었다.


이곳에서 벤첼 폴락은 '풍경사진'을 남긴다. 그 풍경'에선 수감자들이 노예처럼 일했던 지하공장은 보이지 않고, 단지 어느 숲 속의 공사현장만이 포착된다. 있어야 마땅한 수용소의 잔혹성은 부재(不在)함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코녜는 바로 이 '부재'의 사진에서 이미지의 잠재성을 읽어낸다. 무슨 의미인가? 바로 수용소의 전략 시설에서 멀리 떨어진 이 '거리'가, 역설적으로 사진 촬영을 가능하게 했다는 이다. 코녜는, 이 공간적 거리가 곧 윤리적 거리와 상통한다고 본다.


생각건대, 때로는 비극의 한복판보다 그 주변의 고요하고 평범한 풍경이, 그 안에 감추어진 폭력을 더 선명하게 증언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의 주장은 호소력있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III. 몸의 증언, 여성 수감자들이 남긴 윤리적 응시에 관한


1.

라벤스브뤼크 여성 수용소의 이야기는 강렬한 울림을 준다. 이곳은 여성의 육체가 국가폭력의 실험장이 되었던 곳으로, 토끼(lapins)라 불리던 수감자들이 잔인한 생체실험의 희생양이 되었다.


2.

요안나 쉬들로프스카는 동료 '토끼'들과 함께 자신들이 결국 처형될 것임을 예상하고, 나치 범죄를 세상에 알리기 위한 증거를 사진으로 남기기로 결단한다.


그녀는 1944년 10월의 어느 일요일, 세 명의 젊은 여성 수감자들의 초상사진 다섯 장을 촬영한다. 이 사진들은 외부권력이 개입되지 않은, 수감자들 사이의 연대적 시선과 공동증언에 기반한 매우 드문 사례이다.


사진 속 수용자 중 한명인 마리아 쿠시미에르추크는 절제된 표정으로 다리의 흉터를 드러내고, 다른 한명인 보그밀라 바빈스카는 허벅지를 들어 올린 채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굴복하지 않는 '고요한 단호함'을 보여준다. 그중 가장 어린 피해자였던 바르바라 피에트르지크는 '미소'를 짓고 있다.


코녜는 이 미소를 '절망 속에서도 끝까지 품위를 지키려는 윤리적 표정'이자, 고통을 주체적으로 감당하고 있다는 '내면의 구조를 드러내는 슬픔의 변형'으로 해석한다.


3.
이 여성들은 자신의 상처를 연출하지도 않았고 감추지도 않았다. 그들은 고통을 보여주는 대상이 아니라, 자신의 상처를 보여주기로 결단한 주체였다.


이들의 응시는 수동적인 희생자 상(像)을 거부하고, 고통의 순간에도 인간의 존엄성과 증언 의지를 지킨 강인한 존재를 증언한다. 그들의 사진은 '고발'로 작동하는 동시에, 보편적 피해자 상의 이미지화에 저항한다.

4.

촬영된 필름은, 제르멘 틸리옹이 뜨개질한 작은 양모 주머니에 넣어 목에 걸고 여섯 달 동안 보관하는 대담한 방식으로 수용소 외부로 반출되었다. 그리고 아니즈 포스텔-비네에 의해 파리의 사진관에서 현상되었다.


이들의 협력은 사진이 단순한 기록을 넘어, 폭력에 대한 저항과 인간 존엄성의 증언으로서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음을 입증하는 중요한 사례이다.

5.

코녜가 사진을 '물리적 흔적이자 행위'로 이해하는 관점은 이 과정에서 명확해진다. 이 과정이란 무엇인가? 바로 사진을 찍는 행위 그 자체였다.


이는, 목숨을 건 위험한 저항행위였으며, 틸리옹이 필름을 몸에 지니고 외부로 반출하는 행위는 사진이라는 물질적 흔적을 미래의 증언으로 이송하는 윤리적 노동이었다.


이 여성들의 이야기는, 하루하루 기억을 남기는 일기쓰는 행위의 무게를 아득히 초과한다. 그녀들에게 있어 기록한다는 것은 곧 소멸을 앞둔 몸의 저항이자, 미래의 기억과 맺는 연대행위였다.





IV. 아우슈비츠의 네 장, 응시의 윤리를 묻다


1.

죽음이 공업화된 공간,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에서 존더코만도(특무반) 대원들이 촬영한 네 장의 비밀 사진은 이미지 재현의 윤리를 둘러싼 가장 첨예한 논쟁의 중심에 서 있다.


2.

알베르토 에레라를 비롯한 존더코만도 대원들이 목숨을 걸고 촬영한 이 사진들은, '세상이 알게 하라'는 강력한 염원을 담고 있다.


이들은 가스실 창문을 통해 뷰파인더를 보지 않고 직감적으로 카메라를 몸에 밀착하여 촬영했기에, 사진은 흔들리고 구도가 불안정하다.

3.

코녜는 이 결핍과 흔들림을 '재현의 실패'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사진이 태어난 윤리적 조건의 증거라고 본다.


프레임이 흔들린 것은 손이 떨렸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 시선이 생존과 죽음의 경계에 있었기 때문이며, 초점이 맞지 않은 것은 기술 부족이 아니라, 그 절박한 시간 속에 정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진이 흔들리고 흐릿해질수록, 우리는 그 사진을 찍은 자의 '위치와 감각'에 더 깊이 닿게 된다. 이 맹목적인 촬영 방식은 고통의 순간, '바라봄'과 '신체'의 관계를 뒤집으며, 사진이라는 행위가 지닌 물질적, 신체적 차원을 강조한다.


4.

그들의 사진은, 나아가 클로드 란츠만의 엄격한 '재현 불가능성' 주장과 조르주 디디-위베르만의 '흔적'이자 '행위'로서의 이미지 분석론 사이의 논쟁을 촉발시켰다. 무엇이 논쟁의 주제로 격상된 것인가.


란츠만은 이미지의 과잉이 비극을 경감시키고 윤리적 문제를 야기한다고 보았으며, 코녜 역시 희생자의 얼굴이 식별가능했다면 이미지를 공개해서는 안 되었을 것이라는 란츠만과 일맥상통하는 윤리적 입장을 표명한다.


그러나 코녜는 디디-위베르만의 이미지론에 깊이 공감하며, 자신의 작업을 통해 이 두 관점을 통합하는 실천적 철학을 제시한다.


바로, 그의 목표는 새로운 역사적 정보가 아니라 이미 축적된 지식 위에 '감각적 지식' 또는 '지각'을 획득하는 데 있다.




V. '뼈 조각들'과 '눈먼 발걸음으로': 응시의 윤리적 노동에 대하여


1.

크리스토프 코녜의 두 작업은 서로 다른 매체로 동일한 윤리적 질문을 던진다.


2.

『뼈 조각들』은 '언어의 분석적 힘'을 통해 이미지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시각적 고고학이다. 코녜는 은유나 비유를 사용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객관적인 글쓰기를 통해 이미지에 대한 모든 공간을 확보하고자 한다.


그는 사진 속 대상을 '명명하는 행위'가 곧 '보는 행위'와 직결된다고 강조한다. 명명할 수 없을 때 이미지는 완전히 보이지 않는 상태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런 연유에서, 그 책은 이미지를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를 다시 살아보는 방법을 묻는 철학적 복원이다.


3.
<눈먼 발걸음으로>는 분석보다 감각, 설명보다 침묵, 분절보다 걷는 행위의 지속성에 주목한다.


영화는 수용소 터를 직접 걸으며 물리적인 장소감을 느끼고, 유리판 위에 인화된 과거의 사진을 현재의 장소에 겹쳐 놓는 기법을 통해 동일한 장소 위에 겹쳐지는 서로 다른 시간의 층위를 시각적으로 경험하게 한다.


이 영화는 해석을 가르치지 않는다. 그것은 '이미지가 머물렀던 장소를 감각하기 위한 윤리적 노동의 영화'이다.


4.
두 작업은 모두 과거의 고통 앞에서 현재의 우리가 어떤 윤리적 응시와 책임을 져야 하는지를 묻는다. 이미지는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그 이미지와 우리가 맺는 관계 속에서 우리가 어떤 자세를 취하는가를 끊임없이 되묻게 하는 윤리적 장소인 것이다.


5.
법감정의 마비를 겪었던 지성인 세대의 비극적 경험을 성찰하는 나는, 이제 크리스토프 코녜의 질문을 나의 일상에 가져와야 한다.


죽음과 소멸을 향해 가는 나의 짧은 여정 속에서, 내가 남기는 '하루하루의 기억'은 흔들리는 '뼈 조각들'처럼 물리적 흔적이자 윤리적 행위여야 한다.


나는 나 자신에게 묻는다. 나는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가? 나는 그 보기를 감당할 수 있는가?


6.
나의 소멸의 기록은, 맹목적인 복종을 넘어선 윤리적 응시를 매일 실천하는 것, 그리고 그 응시를 감당하는 몸의 위치를 기록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침묵하지 않고, 절제된 언어와 감각으로, 이 필멸의 순간을 기록하는 것. 이것이 내가 택한 유한한 존재의 저항 방식이다.



2025. 11. 10.




참고문헌(參考文獻)



박기현, 《나치 수용소의 비밀 촬영 사진들 : 크리스토프 코녜의 『뼈 조각들』(2019)과 <눈먼 발걸음으로>(2021)》, 유럽문화예술학회, 『유럽문학예술학논집』제16호 제2호, 2025. 9., 1-3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