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의 함의, 이른바 "통용된 신뢰상태"의 회복을 위해

생각의 서고 37화

by 소는영


1.

"보통" 이라는, 우리에겐 단순한 단어가 놓여있다. 이를 누군가에게 학습시키려는 과정을 상상해보자.


보통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나에게 묻는다면, 아는 단어와 개념, 사고의 현현(顯現)을 최대한으로 하고자 애쓸 것이다. 이는 비단 나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닐 것이다. 남들 또한 나와 마찬가지로 보통을 설명하고자 할 것이다.



2.

그렇다면 그것의 결과물은 서로 다르지 않고, 하나로서 일치할 것인가? 단언컨대,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설령 동일한 개념의 표지(標志)로서, 비가시적인 영역을 "" 수 있다면, 경우에 따라 상동(相同)함을 확인할 수 있겠지만 작금의 기술력으론 불가하기 때문이리라. 그렇다면, 나의 '보통'은, 나 이외의 존재에게 있어서 '보통'과 다를 것임은 분명하다.



3.

나는, 이를 "일상적이며 비상(非常)적이지 않은채, 평균적인 일반 대중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크게 상이(相異)하지 아니한 수준을 칭함"이라고 정의할 것이다.


나의 발언은, 앞서 물은 것에 대한 답변이자 동시에, 나 이외의 존재를 상대로 자행한 공격으로서, [일상은 무엇인지], [평균적인 일반은 또 어떤 것인지], [상이하지 않다는 건 어느정도의 표준점이 기준인지] 등 그들의 반박에 방어를 해야 한다. 정중한 태도로서 '지적'으로 표출될 지, 아니면 엄혹한 자세로서 '무뢰배'와 같은 폭력으로 나타날 건진, 맞이하기 전까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4.

우리가 "쉽게" 쓴 용어, 단어조차 사람마다 개념의 정의가 다를 터, 그럼에도 대중미디어나 사회일반에선 거리낌없이 '보통'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어째서 이것이 가능할 수 있을까. 생각건대, 나는 이를, "통용된 신뢰상태"가 있음에 비로소 연유할 수 있다고 본다.



5.

그렇다면 "통용된 신뢰상태"란 무엇인가. 바로 '사회에서 허용가능한 의미개념 범위 내에서, 특정 용어를 사용하는 이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즉 서로가 서로를 쉽게 양해할 수 있는 정도에서, 규칙을 깨지 않으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대화에 임할 수 있는 물적, 인적 토대가 갖춰진 상황' 정도로 지칭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정의를 전제하고 다시 앞의 예시를 적용해보자.

나(이하 乙)는 익명의 사람 갑(이하 甲)과 대화를 하는 과정에서, 보통 이라는 단어가 문제되었다.

甲은 10명 중 7명 이상이 특정 상황에 해당될 때 보통이라는 말을 허용할 수 있음이 뒤늦게 밝혀졌다.

그러나 乙은 100명중 95명 이상이 특정 상황에 해당될 때 비로소 쓸 수 있었기에, 甲이 사용한 보통 이라는 단어가 적절치 못하다고 비판한다.

물론 乙이 그러한 허용범위를 가지고 있다는 것에, 甲은 당시에 전혀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당시의 그들은 [국민의 뜻이 무엇인가]에 대해 대화하고 있었고, 해당 주제의 하위개념으로, 집단성(集團性)을 논하는 과정에서 그와 같은 비판을 마주했다.

6.

이들 간의 "의견불일치' 쟁점은, 보통이라는 개념의 "통용된 신뢰상태"가 존재하는지 여부, 만약 존재한다면 어디까지 서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조율해야 하는지로 논의가 집중될 수 있을 것이다.

전자는 "甲과 乙, 乙과 甲이 상호간의 신실한 존중에 기하여 대화와 토론에 임하고 있는지 여부"로 판단할 수 있을 것이며, 후자는 "내가 생각한 기준에 정확히 부합하지 않더라도 어느정도 선에서 타협하여 양해를 구할 수 있는지 정도"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사안에서 그들에겐 "통용된 신뢰상태"가 존재하고 있었을까. 이것만으론 확인하긴 어렵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통용된 신뢰상태"가 전제되지 않으면, 본류에 놓여진 걸걸한 주제는 만져보지도 못한 채, 하류의 잔가지만 쳐다보다 논의가 끝난다는 것이다.



7.

소모전은 생산적이지 않다. 모든 소모전이 그렇다고 감히 말할 순 없겠으나, 적어도 위 사례에 있어선 서로에게 너무도 이로울 것이 없는 비(非) 제로섬 게임에 가깝다.


신뢰라는 것은 가히 잃는 건 쉽지만, 쌓는 건 너무도 어려운 개념이다. 이 지면에 고작 몇글자 따위로 설시할 수 있는, 쉽고도 편한 설명은 본질의 무게를 한없이 가볍게 만든다.


모래가루 한톨만으론, 다소 레토릭에 가깝지만, 역사라는 이름의 거대한 물줄기를 온전히 파악할 수 없는 것처럼.



8.

신뢰가 무너지면 우리가 믿어온 가치. 정확히는 최소한의 규칙으로서 법, 그리고 사회에서 약속한 신뢰 사이의 간극이 허물어지게 된다.


그렇게 사고의 상이함, 차이에서 기인한 다양함은 획일화와 표준으로 강제된다. 대화와 토론의 영역에서 어느새 벗어난채, 옳고 그름을 따지는 사법(司法)의 장으로 이동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은 사고의 상이함에서 나타난 서로간의 반목, 괄시에 기한 일련의 모욕과 명예훼손적 언행이 주제지만, 언젠간 사고의 상이함 그 자체에 대한 옳고 그름을 논하게 될 지도 모른다.


9.

대화는 다름을 인정하며, 타협과 설득을 통해 구현된다는 점에서 가히 숙성을 함축한 시간적 개념에 다름없다. "통용된 신뢰상태"를 누군가는 변혁을 거부하는 수구(守舊)적 태도로 힐난할 수 있음을 부정하진 않는다. 그 또한 나와 다름에 기인한, 지극히 자연스러운 의견불일치일 뿐이니 말이다.



10.

원리와 원칙의 무게를, 누군가는 엄혹함으로 독해하고 혹자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시각에서 볼 때 마땅히 극복해야할 천장으로 치부할지도 모른다. 어떠한 이들이든간에, 나는 단어의 함의가 "통용된 신뢰상태"에서만 온전히 이뤄질 수 있으리라 믿는다.


타인을 향한 최소한의 배려, 그것이 곧 나 자신에 대한 최대한의 존중으로 이어질 수 있는 가교가 되길, 오늘 하루도 간절히 바라고 바라온다.



2025. 12.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