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의 문법, 새벽 네시

생각의 서고 76화

by 소는영

1.

나는 깨어 있다. 이것이 첫 번째 문장이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악몽에서 돌아온 사람은 먼저 자신이 여기 있다는 것을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깨어 있다. 나는 여기 있다. 이것은 현실이다.

세 번 말해도 완전히 믿기지 않는다.



2.

악몽에는 구체적인 괴물이 없다. 이것이 핵심이다. 괴물이 있다면 차라리 낫다. 괴물은 확인할 수 있고,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대응할 수 있다.

그러나 악몽의 공포는 형태가 없다. 그것은 분위기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는데 무언가 어긋나 있다는 느낌.

시계는 돌아간다. 다만 반대 방향으로.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다. 나만 안다. 나는 말할 수 없다.



3.

프로이트는 이것을 Unheimlich라고 불렀다. 집(Heim)이면서 집이 아닌 것. 낯선 것(fremd)이 아니라 한때 낯설지 않았던 것.

악몽의 공간이 언제나 익숙한 곳인 이유가 여기 있다. 집. 복도. 학교. 사무실. 위협은 외부에서 오지 않는다. 그것은 내가 안전하다고 믿었던 것의 내부에서 자란다.

가장 위험한 것들이 늘 그렇듯이.



4.

달리려 한다.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다.

소리치려 한다. 목소리가 없다.

몸은 있다. 그러나 그것이 나의 몸인지 모르겠다.

들뢰즈라면 이것을 기관 없는 신체라고 불렀을 것이다. 나는 이것을 그냥 공포라고 부른다. 학술적 명명이 고통을 줄여주지는 않는다.

이것도 기록해두어야 한다.



5.

타자(他者)들이 있다. 그들은 이야기하고, 웃고, 일상을 산다. 나는 그곳에 있다. 하지만 없다.

사르트르는 타인의 시선이 나를 사물로 만든다고 했다. 악몽에서는 더 나쁜 일이 일어난다. 타인의 시선이 나에게 닿지 않는다. 나는 투명하다. 존재하는 유령.

이것이 소외의 가장 순수한 형태다. 배제되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아프다.



6.

반복에 대하여.

악몽은 정확히 같은 내용이 아니다. 그러나 같은 구조, 같은 질감, 같은 온도다. 니체의 영겁회귀를 나는 철학책에서 먼저 읽은 것이 아니다. 악몽에서 먼저 겪었다.

이미 겪었다는 확신. 또 겪을 것이라는 절망. 그 사이 어딘가가 지금이다.



7.

깨어나는 순간에 대하여.

안도감은 3초다. 그리고 다른 공포가 온다.

이것이 정말 현실인가. 아니면 이것도 꿈인가. 아니면,

— 악몽이 현실보다 더 진실한 것은 아닌가.

장자는 나비 꿈에서 깨어나 내가 나비를 꾼 인간인지 인간을 꾸는 나비인지 물었다. 그는 아마 이것을 우아한 인식론적 물음으로 제시했을 것이다. 새벽 네 시에는 그것이 우아하지 않다. 그것은 그냥 무섭다.



8.

커피를 내린다.

뜨거운 물이 원두를 적시는 소리. 향이 번진다. 컵을 두 손으로 감싼다.

이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철학적인 행위다.

메를로-퐁티는 우리가 생각으로가 아니라 몸으로 세계에 닿는다고 했다. 그는 옳다. 논증보다 온기가 빠르다. 개념보다 냄새가 먼저 도착한다.

나는 몸으로 현실로 돌아온다. 천천히. 컵이 식어가는 속도로.



9.

악몽은 낮에도 있다.

업무 중에. 대화 중에. 누군가 웃길 때 나도 웃으면서,

그것이 거기 있다. 의식의 가장자리, 시야의 끝.

베르그송의 지속(durée). 과거는 사라지지 않는다. 현재 안에 겹쳐 진동한다.

악몽은 밤의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배경음이다. 볼륨을 낮출 수는 있다. 끌 수는 없다.



10.

다시 밤이 온다.

잠은 필요하다. 잠은 두렵다.

이 양가감정은 해소될 수 없다. 그것을 해소하려 하지 않기로 한다. 모순을 견디는 것이 그것을 없애는 것보다 더 정직한 태도다.

카뮈는 시시포스가 행복했을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을 완전히 믿지 않는다. 그러나 시시포스가 바위를 다시 밀었다는 것은 믿는다.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것이 그의 삶이었기 때문에.

나는 잠자리에 든다. 또 다른 악몽이 기다릴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그럼에도'가 인간의 존엄이다. 초라하지만.



11.

불을 끈다.

어둠이 방을 채운다. 천천히, 고르게.

들숨. 날숨.

경계에서, 나는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생각하는 동안은 잠들 수 없다. 잠드는 것은 생각을 놓아주는 것이다. 내 손을 내가 놓아주는 것이다.

이것이 매일 밤 필요한 가장 작은 용기다.



12. — 기록의 이유

이것을 적어두는 것은 악몽을 이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적는다.

이해되지 않는 것들도 기록될 수 있다. 기록된다는 것은 존재를 인정받는다는 것이다.

악몽에게도, 그리고 악몽을 꾸는 나에게도.

내일 아침 나는 깨어날 것이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눈을 감는다.




2026. 3. 5.



앤 카슨은 《애도의 자동화(Nox)》의 서문에서 이렇게 썼다:

"역사는 접혀진 물건이다. 어떻게 펼쳐도, 원래 모양은 남는다."

악몽도 그렇다. 아침이 와도 접힌 자국은 남는다. 나는 그 자국을 지우지 않기로 했다.



월, 수, 금,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