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험적 폭력과 경험적 고통: 반출생주의의 이중구조(1)

생각의 서고 46화

by 소는영

1부

I. 서론: 하나의 문장 앞에서

II. 형이상학적 반출생주의: 베나타의 비대칭 논증

III. 경험적 반출생주의: 구조적 고통과 '낳음을 당했다'



2부

IV. 층위의 구분과 그 함의

V. 니체의 처방: 디오니소스적 긍정

VI. 처방의 한계 1: 층위의 혼동

VII. 처방의 한계 2: 책임 소재의 전환

VIII. 처방의 한계 3: 이데올로기로서의 긍정

IX. 한국적 맥락: 효 이데올로기와 세대 간 정의

X. 결론: 정당화의 부담은 누구에게



I. 서론: 하나의 문장 앞에서



1.

2018년, 법학적성시험(LEET) 언어이해 영역의 한 지문이 눈앞에 놓였다. 데이비드 베나타(David Benatar)의 이름은 낯설었으나, 그가 펼치는 논증의 구조는 명료했다. 존재하지 않는 것이 존재하는 것보다 언제나 더 낫다는, 일견 극단적으로 보이는 주장이 정교한 논리적 골격 위에 서 있었다. 당시 그 지문은 하나의 논리 퍼즐로 읽혔다. 참과 거짓을 판별하고, 추론의 타당성을 검토하는 시험의 문맥 속에서, 베나타의 반출생주의(antinatalism)는 형이상학적 사유 실험의 대상이었을 뿐이다.


2.

2026년 새해, 동아일보에 실린 강용수 고려대 철학연구소 연구원의 칼럼을 통해 반출생주의와 재회하였다. 「'차라리 태어나지 말 것을'… 삶을 부정할 수 없다면 축제처럼 즐기라」라는 제목의 이 기사는, 쇼펜하우어로부터 니체까지, 실레노스의 신화로부터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까지를 경유하며 반출생주의를 조망한다.


그러나 기사를 읽으며 느낀 것은 단순한 지적 호기심이 아니었다. 8년 전과 달리, 반출생주의는 더 이상 추상적 논증으로만 다가오지 않았다. '낮은 임금, 비싼 집세, 불안한 미래'라는 기사의 문장들이, 그리고 무엇보다 '낳음을 당했다'라는 표현이 실존적 무게로 다가왔다.


3.

이 에세이는 그 두 번의 만남 사이에서 발생한 질문들을 정리하고자 한다. 핵심적인 발견은 다음과 같다. 베나타의 반출생주의와 동아일보 기사가 다루는 반출생주의는 동일한 결론—'태어나지 않는 것이 더 낫다'—으로 수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서로 다른 층위에서 작동한다. 전자는 선험적이고 형이상학적이며, 후자는 경험적이고 사회경제적이다. 이 구분을 놓치면, 문제에 대한 진단도, 처방도 빗나가게 된다.


기사는 반출생주의에 대한 '해법'으로 니체의 디오니소스적 긍정을 제시한다. '축제처럼 즐기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처방이 실제로 유효한지, 그리고 설령 유효하다 하더라도 어떤 함의를 갖는지는 별도의 검토가 필요하다. 이 에세이는 니체의 처방이 갖는 세 가지 한계—층위의 혼동, 책임 소재의 전환, 이데올로기로서의 기능—를 브런치에 두 차례에 걸쳐 분석할 것이다. 나아가 한국 사회의 특수한 맥락, 특히 효(孝) 이데올로기와 세대 간 정의의 문제를 통해, '낳음을 당했다'는 표현이 왜 유독 이 사회에서 도발적으로 들리는지를 검토할 것이다.


4.

이 에세이의 목적은 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읽으면서 생긴 의문을, 질문의 형식으로 남김으로써 명확히 정리하는 것에 있다. 반출생주의가 제기하는 물음에 대해 '축제처럼 즐기라'는 답이 왜 불충분한지, 그리고 남겨진 과제는 무엇인지를 밝히는 것이 이 글의 과업이다.




II. 형이상학적 반출생주의: 베나타의 비대칭 논증



5.

데이비드 베나타는 『태어나지 않는 것이 더 낫다: 존재하게 되는 것의 해악』(Better Never to Have Been: The Harm of Coming into Existence, 2006)에서 반출생주의의 핵심 논증을 전개한다. 그의 논증은 비대칭성 논증(Asymmetry Argument)이라 불리며, 두 시나리오의 비교에 기초한다.


시나리오 A는 어떤 사람 X가 존재하는 경우이고, 시나리오 B는 X가 존재하지 않는 경우이다. 각 시나리오에서 고통과 쾌락의 존재 여부를 평가하면 다음과 같다. 시나리오 A에서는 (1) 고통의 있음이 '나쁨(bad)'이고, (3) 쾌락의 있음이 '좋음(good)'이다. 시나리오 B에서는 (2) 고통의 없음이 '좋음(good)'이고, (4) 쾌락의 없음이 '나쁘지 않음(not bad)'이다. 해당 내용을 표로 그리면 다음과 같다.

2.png 해당 내용은, 2018학년도 법학적성시험(LEET) 언어이해 22~25번 지문에서 발췌하였다.

베나타 논증의 핵심은 (4)번 명제에 있다. 존재하지 않는 사람에게 쾌락이 없는 것은 '나쁘다(bad)'가 아니라 '나쁘지 않다(not bad)'는 것이다.


만약 쾌락의 부재가 그 자체로 나쁜 것이라면,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 무수한 잠재적 인간들—태어날 수 있었지만 태어나지 않은 모든 가능적 존재자들—을 위해 슬퍼해야 할 것이다. 화성에 인간이 존재하지 않아서 화성에서의 쾌락이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비극으로 여기지 않는다. 이는 쾌락의 부재가, 그것을 경험할 주체가 없는 한, 나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반면 (2)번 명제에서 고통의 부재는 '좋음(good)'이다. 설령 그 고통을 경험할 주체가 존재하지 않더라도, 고통이 없다는 것 자체가 좋다. 이 비대칭성—쾌락의 부재는 나쁘지 않지만, 고통의 부재는 좋다—이 베나타의 결론을 이끈다.


시나리오 A와 B를 비교할 때, B(존재하지 않음)에는 '좋음'(고통의 부재)과 '나쁘지 않음'(쾌락의 부재)이 있고, A(존재함)에는 '좋음'(쾌락의 있음)과 '나쁨'(고통의 있음)이 있다. 따라서 존재하지 않는 것이 존재하는 것보다 언제나 더 낫다.



6.

베나타의 논증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이것이 삶의 내용과 무관하다는 것이다. 설령 누군가의 삶이 행복으로 가득 차 있더라도, 그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고통은 회피되었을 것이고(좋음), 쾌락의 부재는 나쁘지 않았을 것이다. 베나타 자신의 표현을 빌리면, 이 논증은 '세상이 좋은 곳이라고 믿는 사람들'에게도 적용된다(Benatar, 2006).


7.

이는 출생의 문제를 선험적 부정의(a priori injustice)의 차원에서 제기한다. 존재하지 않는 자는 자신의 존재에 동의할 수 없다. 출생은 언제나 타자의 결정—부모의 결정—에 의해 발생하며, 태어날 당사자는 그 결정에 참여할 수 없다. 이는 칸트적 의미에서의 자율성 침해이자, 동의 없는 존재론적 개입이다.


베나타는 나아가 출산의 동기를 비판한다. 아이를 낳는 것은 아이를 위한 것이 아니다. 존재하지 않는 아이는 존재할 '이익(interest)'을 갖지 않는다. 따라서 출산은 언제나 부모 자신의 이익—자녀를 갖고 싶다는 욕망, 가족을 이루고 싶다는 소망, 혹은 사회적 기대에 부응하고자 하는 의지—을 위한 것이다. 이는 출산 행위에 내재한 '이기성'을 폭로한다.



8.

베나타의 논증이 갖는 힘은 그것이 경험적 조건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삶이 고통스럽기 때문에'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는 것이 아니라, 삶이 아무리 좋더라도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이 논증은 사회가 개선되거나, 경제적 불평등이 해소되거나, 의학이 발전하여 고통이 최소화된다 하더라도 여전히 유효하다. 설령, 유토피아라도 출생은 문제적이다.


9.

물론 베나타의 논증에 대한 반론도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자의 이익'이라는 개념이 성립 가능한가라는 비판이 있다. 존재하지 않는 자는 어떤 것도 경험할 수 없으므로, 그에게 '좋음'이나 '나쁨'을 귀속시키는 것 자체가 범주 오류라는 것이다.

또한 (2)번 명제—존재하지 않는 자에게 고통의 부재가 '좋다'—와 (4)번 명제—쾌락의 부재는 '나쁘지 않다'—사이의 비대칭성이 정당화되지 않았다는 비판도 있다(Harman, 2009).


10.

그러나 이 에세이의 목적은 베나타 논증의 타당성을 최종적으로 판정하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 논증이 작동하는 '층위'를 명확히 하는 것이다. 베나타의 반출생주의는 형이상학적이고 선험적이다. 그것은 존재와 비존재의 가치를 비교하는 형이상학적 작업이며, 경험적 조건과 무관하게 성립하는 선험적 주장이다.




III. 경험적 반출생주의: 구조적 고통과 '낳음을 당했다'



11.

동아일보 기사가 다루는 반출생주의는 베나타와 다른 층위에서 작동한다. 기사의 서두는 이렇게 시작한다.

'새해를 맞아 덕담을 나눌 때 우리는 건강이나 행복, 소원 성취와 같은 긍정적인 메시지를 주고받는다. 그러나 현실에 희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반출생주의는 '현실'의 문제로 제기된다. 형이상학적 추론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의 조건에 대한 반응으로서의 반출생주의이다.



12.

기사는 반출생주의의 경제적 논리를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자본가들에게는 소비자와 노동자가 필요한데, 부모의 무책임한 출산을 통해 끊임없이 노동력을 제공하는 노예가 만들어진다. 생존을 위해 평생 노동력을 쏟아부어도 자신은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지만, 누군가는 그 희생 덕에 부자가 된다는 부조리에 좌절한다.'


여기서 출산의 문제는 자본주의적 재생산 구조의 문제와 연결된다.


나아가 기사는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낮은 임금, 비싼 집세, 불안한 미래 속에서 인생이 공평하지 않다고 느낄 때, 출산은 무책임하게 노예를 재생산하는 일에 불과해 보인다'

그리고 핵심적인 표현이 등장한다.



'자신의 동의 없이 고통스러운 세상에 태어나게 한 부모에게 "낳음을 당했다"라며 책임을 묻기도 한다.'

13.

'낳음을 당했다'라는 표현은 문법적으로 흥미롭다. 한국어에서 '태어나다'는 자동사로서, 마치 태어나는 주체가 스스로 존재로 나아온 것처럼 표현된다. '나다'라는 어근이 내포하는 자발성, 그리고 '태어나다'의 형태가 갖는 능동적 뉘앙스가 존재의 발생을 마치 자연스러운 사건처럼 제시한다.


그러나 '낳음을 당했다'는 이 허구적 능동성을 해체한다. '당하다'는 피동 표현으로서, 행위의 대상이 됨을 나타낸다. '낳음을 당했다'는 것은 출생이 나의 의지나 결정이 아니라, 타자에 의해 나에게 가해진 사건임을 명시적으로 드러낸다. 이 표현은 존재론적 사실을 언어적으로 정확히 포착한다. 출생은 태어나는 자의 결정이 아니었다. 그것은 낳는 자의 결정이었고, 태어나는 자는 그 결정의 수동적 결과물이다.


14.

이 표현이 한국 사회에서 특히 도발적으로 들리는 이유는, 효(孝) 이데올로기와 충돌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부모에게 그런 표현을 할 수 있는가'라는 반응은, 부모-자녀 관계에 대한 특정한 규범적 전제를 드러낸다. 부모는 자녀에게 생명을 '주었고', 따라서 자녀는 부모에게 '빚'을 지고 있으며, 이 빚은 '효'로 갚아야 한다는 전제 말이다. '낳음을 당했다'는 표현은 이 구도 자체에 의문을 제기한다. 생명을 '준' 것이 아니라 '부과한' 것이라면, 빚의 방향은 어떻게 되는가?


15.

강용수 연구원이 제시하는 반출생주의의 근거는 경험적이다. '낮은 임금, 비싼 집세, 불안한 미래'는 특정한 사회경제적 구조의 산물이다. 이는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의 노동 착취, 주거 비용의 상승, 고용 불안정 등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조건들이다. 이러한 조건들은 원칙적으로 변화 가능하다. 임금이 상승하고, 주거가 안정되고, 미래가 예측 가능해진다면, 이 논거에 기반한 반출생주의는 설득력을 잃는다.


16.

이것이 베나타의 논증과의 결정적 차이이다. 베나타의 반출생주의는 경험적 조건과 무관하게 성립한다. 유토피아에서도, 모든 고통이 제거된 세계에서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 존재하는 것보다 낫다는 그의 논증은 여전히 유효하다. 반면 강용수 연구원이 묘사하는 반출생주의는 '이 세상이 지옥 같기 때문에' 설득력을 갖는다. 세상이 지옥이 아니게 된다면, 이 형태의 반출생주의는 해소될 수 있다.


강용수 연구원은 또한 세대 간 불평등의 문제를 제기한다. '현 세대의 경제적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게 될 미래 세대는 고령 인구의 증가와 인구 감소를 고려할 때 지금보다 더 큰 고통을 받을 가능성이 커진다.' 이는 출산의 문제를 세대 간 정의(intergenerational justice)의 문제로 전환시킨다. 현 세대가 미래 세대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구조에서, 출산은 그 부담을 짊어질 존재를 새로이 창출하는 행위가 된다.





2026. 1. 7. 1부 끝,





참고문헌(參考文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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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natar, D. (2006). Better Never to Have Been: The Harm of Coming into Existence. Oxford University Press.

Deleuze, G. (1962/1983). Nietzsche and Philosophy. Columbia University Press.

Harman, E. (2009). "David Benatar. Better Never to Have Been: The Harm of Coming into Existence." Noûs, 43(4), 776-785.

Holub, R. C. (1995). "The Elisabeth Legend: The Cleansing of Nietzsche and the Silencing of His Sister." In K. Ansell-Pearson (Ed.), Nietzsche and Modern German Thought. Routledge.

Marx, K. (1844/1975). "Contribution to the Critique of Hegel's Philosophy of Right: Introduction." In Early Writings. Penguin.

Nietzsche, F. (1872/1999). The Birth of Tragedy. Cambridge University Press.

Nietzsche, F. (1883-85/2000). Thus Spoke Zarathustra. Oxford University Press.

Rawls, J. (1971). A Theory of Justice. Harvard University Press.

Žižek, S. (1989/2008). The Sublime Object of Ideology. Verso.

강용수 (2026.01.05). "'차라리 태어나지 말 것을'… 삶을 부정할 수 없다면 축제처럼 즐기라". 동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