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조항으로의 유혹', 혹은 답안지 위의 도피처

생각의 서고 50화

by 소는영



I. 두 달이라는 시간


1.
2025년 11월, 나는 헤데만을 정리했다. 개념법학과 일반조항, 형식주의와 반형식주의, 그리고 그것들의 근원적 동일성에 대하여. 그것은 이론이었다.


2.

2026년 1월, 나는 백지 위에서 그 이론을 다시 만났다. 이번에는 체험으로. 머리로 아는 것과 손으로 쓰는 것 사이에는, 생각보다 먼 거리가 있었다.



II. 답안지 위의 유혹


3.
문제를 읽었다. 복잡한 법률관계, 애매한 사실관계. 적용할 조문이 보이지 않는다. 아니, 정확히는 '딱 맞는' 조문이 없다. 이럴 때, 머릿속에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무엇인가?


4.

구체적 조문을 찾아 헤매는 것은 고통스럽다. 요건을 따지고, 학설을 대립시키고, 판례를 인용하는 것은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신의성실의 원칙'이라는 말이 혀끝에 맴돌 때, 그것이 주는 해방감은 달콤하다. 시험 시간은 제한되어 있고, '신의칙에 반한다'는 한 문장은 얼마나 경제적인가. 그것은 포괄적으로 타당하게 보이고, 채점자를 설득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5.

나는 유혹받았다.



III. 도피의 풍경


6.
개념법학은 요새다. 높은 성벽과 견고한 논리의 회랑. 그 안은 안전하지만 답답하다. 현실의 부당함이 성벽 밖에서 아우성쳐도, 우리는 '체계가 그러하므로'라고 답한다.


7.

일반조항은 광야다. 경계도, 이정표도 없는 넓은 들판. '선량한 풍속', '신의성실', '공공복리'. 얼마나 자유로운가. 하지만 그 자유는 방향 상실이다.


도피는 안전을 찾아 떠나는 것이다. 하지만 일반조항이라는 도피처는 정말 안전한가? 헤데만이 경고했듯, 그곳은 유약화의 온실이고, 불안정성의 늪이며, 자의성의 함정이다.


8.

요새도, 광야도 아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나침반이다. 법원리. 그것은 요새의 형식논리도 아니고, 광야의 도덕 감정도 아니다. 그것은 법이 지향하는 가치의 방향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나침반을 제대로 읽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IV. 왜 우리는 도피하는가


9.
김영환이 지적했듯, 우리의 법은 계수되었다. 독일의 법전, 일본의 해석, 미국의 판례. 그것들은 우리 것이 아니었다. 낯선 법 앞에서, 우리는 두 가지 길밖에 몰랐다. 형식에 매달리거나, 익숙한 것으로 도망치거나.


법학교육은 우리에게 조문을 가르쳤다. 체계를 가르쳤다. 판례를 가르쳤다. 하지만 '법원리를 통한 구체화'는 가르치지 않았다. 우리는 요새의 설계도와 광야의 지도만 받았을 뿐, 나침반 읽는 법은 배우지 못했다.


사례형 시험은 '정답'을 요구한다. 채점 기준은 명확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형식적 삼단논법이나, 포괄적 일반조항으로 귀결된다. 법원리의 섬세한 구체화는 채점하기 어렵다. 평가하기 어려운 것은 가르치지 않는다.



V. 재확인


10.
두 달 전, 나는 헤데만을 '이해'했다. 오늘, 나는 헤데만을 '느낀다'. 손이 신의칙을 쓰려고 할 때, 머리가 경고한다. '이것은 도피다.' 그 경고가 울릴 때, 비로소 이론은 나의 것이 된다.


11.

일반조항으로의 도피는 나쁜 것만이 아니다. 때로 그것은 경직된 법을 구원한다. 헤데만도 그것을 알았다. 문제는 도피가 상시화되는 것이다. 예외가 원칙이 되고, 보충이 본령이 되는 것이다. 개념법학도 나쁜 것만이 아니다. 법의 예측가능성과 체계성은 소중하다. 문제는 형식이 내용을 잠식하는 것이다. 수단이 목적이 되고, 체계가 정의를 압도하는 것이다.



VI. 과거의 나에게, 미래의 나에게


12.
2025년 11월의 나에게. 네가 정리한 그 이론은 옳았다. 하지만 그것은 책 속의 진리였다.


2026년 1월의 나는 그것을 답안지 위에서 다시 배웠다. 일반조항을 쓰고 싶었던 순간, 손을 멈추고 생각했다. '이것은 도피인가, 해결인가?'


미래의 나에게. 너는 또 유혹받을 것이다. 복잡한 사안 앞에서, 시간의 압박 속에서, 명쾌한 해답이 보이지 않을 때. 그때 기억하라. 도피는 쉽다. 하지만 그 쉬움의 대가는 법의 파괴다.


요새도, 광야도 아닌. 나침반을 찾아라. 법원리를.




2026. 1.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