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서고 62화
2020년 12월 31일 자정, 대한민국에서 기묘한 일이 벌어졌다. 형법 제269조 제1항, 이른바 낙태죄 조항이 효력을 상실한 것이다.
헌법재판소가 1년 8개월 전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며 이 날까지 법을 개정하라고 명령했지만, 국회는 단 한 건의 법안도 통과시키지 못했다.
그 결과 한국은 낙태를 처벌할 법도 없고 허용할 법도 없는, 어떤 법학자의 표현대로 "무법천지"에 가까운 상태에 빠졌다.
산부인과 의사들은 혼란스러웠다. 임신 6주차 여성이 시술을 요청하면 해줘야 하는가? 20주차는? 24주차는?
어떤 의사는 시술을 제공했고, 어떤 의사는 "아직 법적 기준이 없다"며 거부했다. 같은 상황에서 의사마다 다른 선택을 한 것이다. 여성들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받는 시술이 합법인지 불법인지, 나중에 법이 바뀌면 소급 처벌을 받는 것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이것이 법적 불명확성이 개인의 삶에 미치는 구체적 영향이다.
왜 국회는 개정하지 못했을까? 회의록을 읽어보면 답은 명확하다. "임신 몇 주까지 낙태를 허용할 것인가"라는 구체적 기준을 정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보수 진영은 생명권을 강조하며 엄격한 제한을 원했고, 진보 진영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내세우며 광범위한 허용을 주장했다. 어떤 기준을 정하든 한쪽의 강력한 반발이 예상되었다. 그래서 국회의원들은 "사회적 합의가 더 필요하다", "시기상조다"라는 말을 되풀이하며 결정을 미뤘다.
입법자가 어려운 선택을 회피한 것이다.
그런데 90년 전, 독일의 한 법학자가 정확히 이 문제를 예견했다. Justus Wilhelm Hedemann, 바로 헤데만이다. 그는 1933년 출판한 책에서 입법자가 어려운 결정을 회피하고 법관에게 떠넘기는 현상을 "일반조항으로의 도피"라고 불렀다.
바이마르 공화국 말기, 정치가 극도로 분열되어 국회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던 시기에 그는 이 위험을 감지했다.
입법자가 "신의성실하게", "공서양속에 따라", "사회상규를 위반하지 않게"처럼 추상적인 표현만 법에 담고 구체적 기준은 법원의 판단에 맡기면, 결국 선출되지 않은 법관이 실질적인 입법권을 행사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헤데만의 경고는 불과 몇 년 후 끔찍한 현실이 되었다. 나치 정권이 집권하면서 법원은 바로 그 일반조항들, "신의성실"과 "선량한 풍속" 같은 조항들을 이용하여 유대인을 차별하고 반대파를 탄압했다.
법을 고칠 필요조차 없었다. 기존의 추상적 조항을 "민족감정"에 맞게 재해석하기만 하면 되었다.
입법자가 구체적 기준을 제시하지 않은 결과, 법관이 자의적으로 법의 의미를 결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국 법질서도 독일과 놀라울 정도로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민법 제2조의 신의성실 원칙, 제103조의 공서양속 조항은 독일 민법을 그대로 계수한 것이다. 대법원은 이 조항들을 사용하여 법률에 명시되지 않은 수많은 법리를 발전시켜왔다.
어떤 경우는 바람직한 발전이지만, 어떤 경우는 예측 불가능성을 낳는다. 같은 일반조항이 법관에 따라 정반대로 해석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문제는 분명하다.
법이 명확하지 않을 때, 누가 그 의미를 결정하는가? 입법자인가, 법관인가, 아니면 행정부인가?
이 질문은 시민의 권리와 의무를 결정하는 권한을 누가 가져야 하는지와 연결되는바, 단순히 법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민주주의의 핵심 질문이다.
선출된 대표인 입법자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 아니면 전문성을 가진 법관이나 행정 관료가 더 적합한가? 입법자가 결정을 회피하면 법적 불확실성이 생기고, 법관이 개입하면 민주적 정당성 문제가 제기된다.
이것이 헤데만이 90년 전 포착한, 그리고 지금도 해결되지 않은 딜레마다.
이 글은 헤데만의 생애와 사상을 추적하면서 그의 경고가 오늘날 한국 법질서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탐구한다.
그는 어떤 문제를 보았는가? 그의 예측은 어떻게 현실이 되었는가? 그리고 역설적으로, 왜 그 자신은 자신이 경고한 함정에 빠졌는가?
이 이야기는 단순히 과거 독일의 역사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2020년 12월 31일 자정, 대한민국 법질서에 기묘한 일이 벌어졌다. 형법 제269조 제1항이 효력을 상실한 것이다. "부녀가 약물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이 조항은 1953년 형법 제정 당시부터 67년간 한국 사회를 규율해왔다. 그러나 헌법재판소가 2019년 4월 11일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며 2020년 말까지 개정하라고 명령했음에도, 국회는 단 한 건의 법안도 통과시키지 못했다.
결과는 법적 공백이었다. 낙태를 처벌할 법도 없고, 허용할 법도 없는 상태가 된 것이다. 어떤 법학자는 이를 "사실상의 무법천지"라고 표현했다. 과장된 표현처럼 들리지만, 현장의 혼란을 보면 그리 틀린 말도 아니었다.
서울의 한 산부인과 의사는 이렇게 회고했다. "임신 6주차 여성이 시술을 요청했을 때, 나는 법적 근거를 찾을 수 없었다. 해주면 합법인가? 거부하면 의료 과실인가? 그 어떤 법률도 명확한 답을 주지 않았다." 결국 그는 시술을 제공했지만, 언제든 법이 바뀌어 소급 처벌될 수 있다는 불안을 안고 살아야 했다. 다른 병원의 의사는 정반대 선택을 했다. "법적 기준이 확립될 때까지 모든 시술을 중단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이다. 같은 법적 공백 상황에서 의사마다 완전히 다른 결정을 내린 셈이다.
여성들의 혼란은 더 컸다. 한 대학생은 온라인 커뮤니티에 이렇게 썼다. "지금 낙태하면 나중에 법이 바뀌면 처벌받나요? 아니면 지금은 합법이라 괜찮은 건가요? 검색해도 명확한 답이 없어요." 법률 상담 게시판은 비슷한 질문으로 넘쳐났지만, 변호사들조차 일관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어떤 변호사는 "현재는 처벌 조항이 없으니 합법"이라고 했고, 다른 변호사는 "법적 불안정 상태이므로 신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2021년 1월, 법무부는 임시 지침을 발표했다. 기존 모자보건법상 허용 사유에 해당하는 경우는 처벌하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이 지침 자체가 법적 근거가 불명확했다. 법이 없는 상황에서 행정부 지침만으로 처벌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가? 형법학자들은 죄형법정주의 위반이라며 비판했다. 그렇다고 아무런 기준 없이 방치할 수도 없었다.
결국 2023년이 되어서야 국회는 형법 개정안을 통과시켰지만, 그 사이 2년 이상 법적 불확실성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받았다.
이 사태는 법이 명확하지 않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시민은 자신의 행위가 합법인지 불법인지 알 수 없고, 집행 기관은 일관된 기준 없이 재량으로 판단하며, 법원은 같은 사안에 대해 상반된 판결을 내린다.
법적 안정성이 무너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 혼란의 원인은 단 하나, 입법자가 결정을 회피했다는 점이다.
헌법재판소가 2019년 4월 개정 명령을 내린 후 국회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회의록을 추적하면 입법자의 "도피" 과정이 드러난다.
2019년 5월부터 여러 의원들이 형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주요 쟁점은 명확했다. 첫째, 임신 몇 주까지 낙태를 허용할 것인가? 둘째, 어떤 사회경제적 사유를 인정할 것인가? 셋째, 배우자 동의를 요구할 것인가? 이 질문들에 대해 발의된 법안들은 전혀 다른 답을 제시했다.
어떤 법안은 임신 14주까지 무조건 허용하자고 했다. 다른 법안은 24주까지 허용하되 상담 절차를 거치게 하자고 했다. 또 다른 법안은 주수 제한 없이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전면 인정하자고 했다. 보수 진영은 태아의 생명권을 강조하며 엄격한 제한을 주장했고, 진보 진영은 여성의 자율성을 내세우며 광범위한 허용을 요구했다.
2019년 10월,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공청회가 열렸다. 의학계, 여성계, 종교계, 법학계 전문가들이 모였지만 합의는 불가능했다.
한 산부인과 전문의는 "의학적으로 태아 생존 가능성이 확립되는 24주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성단체 활동가는 "주수로 자르는 것 자체가 여성의 몸을 통제하는 가부장적 발상"이라며 반발했다. 천주교 신부는 "수정 순간부터 생명이므로 낙태는 어떤 경우든 살인"이라고 말했다. 헌법학자는 "헌법재판소가 요구한 것은 자기결정권 보장이므로 최소한 14주까지는 허용해야 한다"고 논증했다.
공청회는 평행선으로 끝났다. 이후 법사위 논의 과정에서 의원들의 발언을 보면 패턴이 분명히 드러난다.
"이 문제는 사회적 합의가 더 필요하다", "국민 여론이 아직 성숙하지 않았다", "성급하게 결정하면 부작용이 클 것", "좀 더 시간을 두고 논의해야 한다"는 표현이 반복된다.
한 야당 의원은 솔직하게 이렇게 말했다.
"어떤 기준을 정하든 한쪽에서 엄청난 비난을 받을 것이다. 이 법안을 밀어붙이면 다음 선거에서 표를 잃을 수도 있다."
이것이 입법자의 도피 메커니즘이다. 정치적으로 논쟁적인 문제에서 구체적 기준을 정하는 것은 반드시 일부 집단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온다. 낙태 문제는 생명권과 자기결정권이라는 두 헌법적 가치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영역이다. 어느 쪽을 우선시하든 절반의 유권자를 적으로 돌릴 위험이 있다.
그래서 의원들은 결정을 미룬다. "좀 더 논의가 필요하다"는 말로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다.
이후 2020년 상반기 내내 법안은 법사위에 계류되었다. 여당 의원들은 "코로나19 대응이 급하다"며 우선순위를 뒤로 미뤘다. 야당은 "졸속 처리는 안 된다"며 신중론을 폈다.
여성단체들이 국회 앞에서 시위를 했지만 소용없었다. 10월이 되자 일부 의원들이 "이대로는 시한을 넘긴다"며 조정안을 제시했다. 임신 14주까지는 상담 후 허용하되, 14주 이후는 사회경제적 사유를 엄격히 심사하자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이 조정안조차 통과되지 못했다. 12월 국회 본회의에 상정될 예정이었지만, 막판에 보수 단체들의 격렬한 반대가 있었다.
천주교와 개신교 연합 단체는 "생명 경시 풍조를 조장한다"며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법안 철회를 요구하는 청원이 20만명을 넘었다.
결국 국회의장은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며 본회의 상정을 보류했다. 12월 31일 자정이 지나며 형법 269조는 효력을 상실했다.
이 과정을 지켜본 한 헌법학자는 이렇게 평가했다.
"국회는 헌법재판소의 명령을 고의로 무시한 것이다. 합의가 어렵다는 것은 애초에 알고 있던 사실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국회가 결단을 내려야 했다. 그것이 입법자의 책임이다. 그러나 국회는 정치적 부담을 회피하기 위해 문제를 방치했다."
낙태죄만이 아니다. 차별금지법, 안락사법, 대리모 허용 같은 생명윤리 문제에서 국회는 일관되게 같은 패턴을 보인다. 논쟁적 가치 선택이 필요한 영역에서 구체적 기준 제시를 회피하고, "사회적 합의"라는 말로 책임을 떠넘긴다. 경제 문제도 마찬가지다. 최저임금 산정 방식, 근로시간 특례업종 범위, 플랫폼 노동자의 지위 같은 쟁점에서 국회는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고용노동부가 정한다"며 행정부에 위임한다. 어려운 정책 결정을 다른 기관에 넘기는 것이다.
이것이 90년 전 한 독일 법학자가 "도피"라고 명명한 현상이다.
1932년, 바이마르 공화국 말기의 독일은 정치적으로 극심하게 분열되어 있었다. 국회는 나치당, 사회민주당, 공산당, 중도 정당들로 쪼개져 합의가 불가능했다. 경제 위기가 심화되고 실업률이 치솟았지만, 국회는 효과적인 입법을 하지 못했다. 정당들은 서로를 비난하며 책임을 떠넘겼다.
결국 국민은 정치에 환멸을 느꼈고, 그 환멸이 결국 극단주의 세력에게 권력을 안겨주는 토양이 되었다.
이런 시대적 배경 속에서 법학자 헤데만은 독특한 문제의식을 가졌다.
정치가 마비되면 법은 어떻게 되는가? 국회가 결정을 내리지 못하면 누가 법의 공백을 메우는가?
그의 답은 명확했다. 법관이 메운다. 그리고 그것이 위험하다는 것이었다.
헤데만은 1878년 슐레지엔의 브리크에서 지방법원장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법학의 길로 들어선 그는 1902년 브레슬라우 대학에서 최우수 성적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06년 예나 대학 부교수를 거쳐 1909년 정교수가 되었고, 30년간 예나에서 민법과 경제법을 가르쳤다. 그의 학문적 업적 중 특히 중요한 것은 1917년 설립한 경제법연구소였다. 당시로서는 새로운 분야였던 경제법학을 개척한 것이다. 1930년대 초, 헤데만은 독일 법질서에서 우려스러운 경향을 감지했다. 국회가 정치적 합의를 이루지 못하면서, 법률들이 점점 더 추상적이고 불명확해진다는 것이었다. 구체적 규칙 대신 "신의성실하게", "선량한 풍속에 따라", "공공복리를 위하여" 같은 일반적 표현이 늘어났다. 이런 조항들을 "일반조항"이라고 불렀는데, 그 의미는 법관이 구체적 사안에서 채워 넣어야 했다.
헤데만은 이것이 입법자의 의도적 회피라고 보았고, 이를 "일반조항으로의 도피"라고 명명했다. 1933년 출판된 그의 책 제목이 바로 "Die Flucht in die Generalklauseln: Eine Gefahr für Recht und Staat"(일반조항으로의 도피: 법과 국가에 대한 위험)이었다.
책의 핵심 논지는 간결하고 강력했다. 입법자가 일반조항으로 도피하면 세 가지 위험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첫째, 법관이 사실상 입법권을 행사하게 된다. 법관은 "신의성실"이나 "선량한 풍속"의 내용을 자신의 판단으로 채운다. 이는 입법자가 해야 할 가치 선택을 법관이 대신하는 것이다. Hedemann의 표현으로 법관이 "대체입법자"가 되는 것이다.
둘째, 권력분립이 훼손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법을 만드는 권한은 국민이 선출한 입법자에게 있다. 법관은 선출되지 않았으므로 민주적 정당성이 약하다. 그런데 입법자가 도피하면 실질적 정책 결정권이 법관에게 넘어간다. 이는 헌법이 예정한 권력배분 구조를 왜곡하는 것이다.
셋째, 법적 안정성이 위협받는다. 시민은 법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미리 알고 행동을 계획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법학에서는 "예측 가능성"이라고 한다. 그런데 일반조항은 너무 추상적이어서 시민이 그 의미를 예측할 수 없다. "신의성실"의 구체적 내용은 법관마다 다를 수 있다. 같은 행위가 어떤 법관에게는 합법이고 다른 법관에게는 불법일 수 있다. 이는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다.
헤데만은 특히 소련의 사례를 경고적으로 인용했다. 1920년대 소련 법원은 기존 법률이 허용하지 않는 결과를 달성하기 위해 "소비에트 연방의 일반 원칙"에 따라 판결했다. 구체적 법조문이 없어도 "혁명의 정신"에 맞게 판단한다는 것이었다. 헤데만은 이것이 법치주의의 종말이라고 봤다. 법이 객관적 규칙이 아니라 권력자의 자의적 해석에 좌우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가장 유명한 경고문은 이것이다.
"이렇게 계속된다면, 특히 그때그때의 권력 보유자가 지나치게 광범위하게 규정된 일반조항을 통해 민법과 형법을 자신의 자의에 종속시킨다면, 비잔티움이 부상할 것이다."
비잔티움은 전제주의와 관료적 자의의 상징이었다. 헤데만은 일반조항 남용이 민주주의를 전제주의로 변질시킬 수 있다고 경고한 것이다.
역사의 아이러니는 그의 예측이 불과 몇 년 후 끔찍하게 현실화되었다는 점이다. 1933년 1월 30일 히틀러가 총리에 임명되었다.
나치 정권은 헤데만이 경고한 그 일반조항들, "신의성실", "선량한 풍속" 같은 조항들을 이용하여 법질서를 자신들의 이념으로 재편했다. 법원은 이 조항들을 "민족감정"에 맞게 해석하여 유대인을 차별하고 반대파를 탄압했다.
헤데만의 경고가 예언이 된 것이다.
더 비극적인 것은 헤데만 본인의 운명이다. 그는 일반조항의 위험을 경고했지만, 1936년 베를린 대학으로 이직한 후 나치 정권과의 관계가 깊어졌다.
1939년에는 나치가 추진한 "민족법전" 제정 위원회의 주위원장이 되었다. 이 법전은 독일 민법을 나치 이념에 맞게 개정하려는 프로젝트였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그 답은 다음 장에서 탐구할 것이다.
헤데만이 비판한 "일반조항"을 이해하려면 법이 작동하는 방식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법은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규범을 표현한다.
구체적 규칙과 추상적 원칙이다.
구체적 규칙은 명확하다. 예를 들어 도로교통법은 "어린이보호구역에서는 시속 30킬로미터를 초과하여 운행하면 안 된다"고 규정한다. 여기서 속도 제한은 정확히 30킬로미터다. 29킬로미터는 합법이고 31킬로미터는 불법이다. 운전자는 자신이 해야 할 행동을 정확히 알 수 있다. 경찰도 속도위반 여부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이것이 구체적 규칙의 장점이다.
그러나 모든 상황을 이렇게 규정할 수는 없다. 세상은 너무 복잡하고 변화무쌍하기 때문이다. 입법자는 미래에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모든 것을 예견할 수 없다. 또한 어떤 문제는 본질적으로 숫자로 표현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신의성실"은 어떻게 숫자로 만들 것인가? 그래서 법은 추상적 원칙도 사용한다.
민법 제2조 제1항은 이렇게 규정한다. "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은 신의에 좇아 성실히 하여야 한다." 이것이 일반조항이다. "신의성실"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법은 말하지 않는다. 법관이 개별 사건에서 판단해야 한다.
예를 들어 A가 B에게 돈을 빌려주었는데, 20년 동안 한 번도 갚으라고 하지 않다가 갑자기 소송을 제기했다면 어떻게 될까? 형식적으로는 A의 채권이 유효하다. 그러나 대법원은 신의성실의 원칙을 적용하여 A의 청구를 기각할 수 있다. 20년간 권리를 행사하지 않아 B가 "더 이상 갚지 않아도 되는구나"라고 신뢰했는데, 이제 와서 갑자기 청구하는 것은 신의성실에 반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일반조항은 유연성을 제공한다. 입법자가 예견하지 못한 상황에서도 법관이 정의로운 결과를 도출할 수 있게 한다.
또한 사회 가치가 변화할 때 법개정 없이도 새로운 기준을 반영할 수 있다. 1960년대의 "신의성실"과 2020년대의 "신의성실"은 다른 내용을 가질 수 있다. 법관이 시대 변화를 반영하여 해석하기 때문이다.
헤데만도 일반조항의 이런 장점을 부정하지 않았다. 문제는 입법자가 이것을 남용한다는 것이었다.
일반조항은 어디까지나 보충적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입법자가 대략적 기준은 제시하되, 세부적 적용은 법관에게 맡기는 것이다. 이것이 본래 의도한 일반조항의 정당한 사용이다.
그러나 입법자가 아예 기준 자체를 제시하지 않고 모든 것을 일반조항으로 떠넘기면, 그것은 도피다.
비유하자면 이렇다. 당신이 집을 짓는다고 가정하자. 당신은 건축가를 고용한다. 건축가의 역할은 설계도를 그리는 것이다. 방은 몇 개, 거실은 어디에, 부엌은 어느 방향으로 만들지를 결정해야 한다. 물론 건축가가 모든 세부사항까지 정할 수는 없다. 전기 배선의 정확한 경로, 벽지의 미세한 패턴, 문손잡이의 정확한 높이 같은 것은 시공자가 현장에서 판단할 수 있다. 이것이 합리적 역할 분담이다.
그런데 건축가가 이렇게 말한다고 상상해보라.
"저는 큰 방향만 제시하겠습니다. 집을 멋지게, 아름답게, 편안하게 지어주세요. 세부사항은 시공자가 알아서 하세요."
이 지시를 받은 시공자는 어떻게 할까? 각자 자기 생각대로 짓게 될 것이다. 어떤 시공자는 방 3개짜리 집을 짓고, 다른 시공자는 방 5개짜리를 짓는다. 어떤 이는 현대식으로, 다른 이는 전통 한옥으로 짓는다. 그 결과 당신이 원하는 집이 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
더 나쁜 것은, 시공자가 자기 편의대로 지을 수 있다는 점이다. 건설비를 아끼려고 싸구려 자재를 쓸 수도 있고, 자기가 짓기 편한 구조로 만들 수도 있다.
이것이 입법자가 일반조항으로 도피할 때 벌어지는 일이다. 입법자는 "신의성실하게", "공서양속에 따라"라는 말만 하고 구체적 기준을 제시하지 않는다.
법관은 각자 자기 판단으로 그 내용을 채운다. 보수적 법관은 엄격하게 해석하고, 진보적 법관은 유연하게 해석한다. 같은 법 조항이 법관에 따라 정반대 결과를 낳는다. 시민은 자신의 행위가 합법인지 불법인지 미리 알 수 없다.
그렇게 법적 불확실성이 발생하는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권력 남용의 가능성이다. 건축가 없이 시공자가 마음대로 짓는 집이 위험하듯, 입법자 없이 법관이 마음대로 해석하는 법은 위험하다. 법관이 항상 정의롭고 공정하다고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권위주의 정권 하에서 법관이 정권의 압력을 받으면, 일반조항은 억압의 도구가 된다. "공공의 안녕질서"를 이유로 정권 비판을 금지하고, "사회상규"를 이유로 소수자를 차별할 수 있다. 나치 독일에서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졌다.
헤데만의 통찰은 바로 이것이었다. 일반조항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입법자가 본래 해야 할 결정까지 일반조항으로 회피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건축가는 설계도를 그려야 한다. 시공자에게 모든 것을 맡기면 안 된다. 마찬가지로 입법자는 법의 대략적 틀을 제시해야 한다. 법관에게 모든 것을 맡기면 안 된다. 이것이 법치주의의 요청이다.
헤데만이 비판한 독일 민법의 일반조항들은 놀라울 정도로 한국 민법과 유사하다. 이는 우연이 아니라 역사적 계수의 결과다.
독일민법 제242조는 "채무자는 거래관행을 고려하여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 급부를 이행할 의무가 있다"고 규정한다. 한국 민법 제2조 제1항은 "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은 신의에 좇아 성실히 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표현은 조금 다르지만 내용은 거의 같다.
독일 민법 제138조는 "선량한 풍속에 반하는 법률행위는 무효다"라고 하고, 한국 민법 제103조는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반하는 사항을 내용으로 하는 법률행위는 무효다"라고 한다. 이 역시 동일한 구조다.
이 유사성은 한국 민법이 독일 민법을 모델로 했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에는 일본 민법이 적용되었고, 일본 민법은 독일 민법을 계수한 것이었다. 1945년 해방 후 한국은 새로운 민법을 제정했지만, 기본 구조는 일본-독일 계통을 유지했다.
1958년 제정된 한국 민법은 독일 민법의 체계를 그대로 따랐다. 총칙, 물권, 채권, 친족, 상속이라는 5편 구조가 그것이다.
그 결과, 일반조항도 함께 계수되었다. 신의성실, 공서양속, 사회상규 같은 개념들이 한국 법에 뿌리내린 것이다. 헤데만이 독일에서 본 문제가 한국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입법자가 어려운 정책 결정을 회피하고 일반조항에 의존하는 현상, 법관이 일반조항을 통해 실질적 정책 결정을 하는 현상, 같은 조항이 법관마다 다르게 해석되어 예측 불가능성이 생기는 현상이 반복된 것이다.
한국 법학계는 일찍부터 이 문제를 인식했다. 윤철홍 교수는 2019년 논문에서 헤데만의 "일반조항으로의 도피" 이론을 한국 법질서에 적용하여 분석했다.
그는 헤데만이 경고한 세 가지 위험—유약화, 불안정성, 자의성—이 한국에서도 강하게 나타난다고 진단했다. 특히 신의성실의 원칙이 모든 법 영역에서 제왕적 조항으로 기능한다고 지적했다.
민법뿐 아니라 상법, 노동법, 행정법에서도 신의칙이 만능 열쇠처럼 사용된다는 것이다.
대법원도 이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2015년 10월 15일 선고 2012다64253 판결에서 대법원은 이렇게 판시했다.
"신의성실의 원칙은 법적 안정성을 해칠 수 있으므로 일단 유효하게 성립한 계약상의 책임을 공평의 이념 및 신의칙과 같은 일반원칙에 의해 제한하는 것은 사적 자치의 원칙이나 법적 안정성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 될 수 있으므로 극히 예외적으로 인정하여야 한다."
이 판결문은 헤데만의 경고를 정확히 반영한다. 신의칙을 너무 쉽게 적용하면 법적 안정성이 무너진다는 것이다. 계약을 맺을 때 당사자들은 법적 효과를 예측하고 행동한다. 그런데 나중에 법원이 "신의칙에 반한다"며 계약 내용을 뒤집으면, 당사자들은 무엇을 믿고 계약을 맺겠는가? 그래서 대법원은 "극히 예외적으로만" 적용하라고 강조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신의칙은 그렇게 예외적이지 않다. 대법원 판례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하면 매년 수백 건의 판결에서 신의칙이 적용된다. 어떤 경우는 정당하지만, 어떤 경우는 입법자가 제시했어야 할 기준을 법원이 만들어내는 것처럼 보인다. 과거 2023년 5월 11일 선고 2017다35588 전원합의체 판결은 이를 잘 보여준다.
이 사건은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에 관한 것이었다. 회사가 정년을 60세에서 65세로 연장하면서 임금 체계를 불리하게 바꿨다. 노동자들은 불이익 변경이므로 무효라고 주장했다. 회사는 정년 연장으로 얻는 이익이 크므로 합리성이 있다고 반박했다.
대법원은 신의칙과 권리남용 금지 원칙을 적용하여 판단했다. 그런데 대법관들 사이에 치열한 의견 대립이 있었다. 다수의견, 별개의견, 반대의견이 엇갈렸고, 각자 신의칙을 다르게 해석했다.
이 사건에서 드러나는 문제는 명확하다.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의 합리성 기준을 입법자가 제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근로기준법은 "근로자의 과반수 동의"가 필요하다고만 하고, 동의를 얻지 못했을 때 합리성을 어떻게 판단할지는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대법원이 신의칙으로 기준을 만들어야 했고, 그 과정에서 대법관들 간 의견이 갈린 것이다. 입법자가 결정했어야 할 문제를 법원이 떠맡은 것이다.
헌법재판소도 일반조항 문제를 다뤘다. 2023년 9월 26일 선고 2020헌바552 결정에서 재판소는 민법 제103조 공서양속 조항에 대한 위헌 제청을 8대 0으로 기각했다.
재판소는 "민법 규정은 형법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추상적인 표현을 사용할 수 있다"며 "법공동체의 객관적 관점에 기초하여 해석 가능하다"고 보았다.
그러나 재판소도 "확립된 판례를 통해 발전된 해석"을 명확성의 근거로 제시했다. 이는 입법자가 아닌 법원이 실질적 내용을 형성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결국 한국 법질서는 헤데만이 비판한 구조를 그대로 가지고 있다. 독일에서 계수된 일반조항들, 입법자의 도피 경향, 법원의 실질적 입법 기능이 모두 재현되고 있다.
90년 전 독일의 경고가 21세기 한국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이유다.
1933년, 헤데만의 책이 출판되었을 때 독일 법학계의 반응은 엇갈렸다. 일부는 날카로운 문제제기로 평가했지만, 다른 이들은 과장된 우려라고 봤다. 일반조항은 로마법 시대부터 있었고, 법관의 재량은 법치주의와 양립 가능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헤데만의 경고가 기우로 끝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역사는 다르게 전개되었다. 1933년 1월 30일 히틀러가 총리에 임명되었고, 불과 몇 달 만에 독일은 독재 체제로 변했다.
3월 24일 수권법이 통과되어 히틀러는 의회 동의 없이 법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유대인 공무원을 해고하는 법, 정당을 금지하는 법, 언론을 통제하는 법이 쏟아졌다.
그런데 나치는 기존 민법과 형법을 폐지하지 않았다. 대신 그것을 "재해석"했다. 법원은 바로 헤데만이 경고한 그 일반조항들, 신의성실과 선량한 풍속을 이용하여 법을 나치 이념에 맞게 변형했다. 1936년 한 법원은 선고문에 이렇게 적었다.
"선량한 풍속 위반의 개념은 정권 장악 이후 지배적인 민족감정, 국가사회주의 세계관을 통해 그 내용을 부여받는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했다. "선량한 풍속"은 더 이상 보편적 도덕 기준이 아니라 나치 이념이라는 것이다. 유대인과 거래하는 것은 "민족감정에 반하므로" 선량한 풍속 위반이다. 나치당을 비판하는 것은 "국가사회주의 세계관에 반하므로" 공공질서 위반이다.
법 조문은 한 글자도 바뀌지 않았지만, 그 의미는 완전히 달라졌다. 헤데만의 예언이 현실이 된 것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헤데만 본인의 행보였다. 1936년 그는 베를린 프리드리히-빌헬름 대학 교수로 이직했다. 나치 정권의 중심지였던 베를린에서 그의 경력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그는 독일법학아카데미 회원이 되었고, 1939년에는 나치가 추진한 Volksgesetzbuch(민족법전)제정위원회의 주위원장으로 임명되었다.
민족법전은 독일 민법을 나치 이념에 맞게 전면 개정하려는 프로젝트였다. 개인주의적 로마법 전통을 버리고 "민족공동체" 중심의 법을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헤데만은 이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그가 남긴 기록에는 "입법자로서의 아돌프 히틀러의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움과 위대함"을 언급한 대목이 있다. 일반조항의 위험을 경고한 학자가 바로 그 위험을 실행하는 체제에 협력한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전후 독일 법학자들은 이 질문과 씨름했다. 일부는 헤데만을 기회주의자로 비난했다. 학문적 양심을 버리고 권력에 아부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더 깊이 보면 이론적 문제가 있다.
헤데만은 법을 기술적 체계로 봤다. 일반조항은 "기술적으로 나쁜" 입법이고 구체적 규칙이 "기술적으로 좋은" 입법이었다. 이 관점에서는 법의 내용이 중요하지 않다. 형식만 중요하다.
나치가 "유대인은 공직 취임 불가"라고 매우 구체적으로 규정했을 때, 그것은 헤데만의 기준으로는 "명확한" 입법이다. 일반조항이 아니기 때문이다. 형식적으로는 법치주의에 부합한다. 내용이 끔찍하게 부정의하다는 것은 별개 문제다. 이것이 법실증주의의 함정이었다. 법의 형식과 내용을 분리하면, 악법도 법으로 인정하게 된다.
전후 독일 법학자 Gustav Radbruch, 라드부르흐는 이 문제를 깊이 성찰했다. 그는 나치 경험 전에는 법실증주의자였기에 "법은 법이다"라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나치 시대를 겪은 후 생각이 바뀌었다. 1946년 그는 유명한 "라드부르흐 공식"을 제시했다.
법적 안정성도 중요하지만, 정의가 극도로 침해되면 그 법은 법이 아니다.
극도로 부정의한 법은 법적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헤데만을 넘어서는 이론적 진전이었다. 법의 형식뿐 아니라 내용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일반조항이 위험한 이유는 단지 불명확해서가 아니라, 부정의한 내용으로 채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구체적 규칙이라도 내용이 부정의하면 법으로 인정할 수 없다. 이것이 나치 경험이 독일 법학에 남긴 교훈이었다.
헤데만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가 일반조항을 어떻게 나치 체제에 복무시켰는지, 그리고 그 결과가 어떤 비극을 낳았는지는 다음 편에서 상세히 다룰 것이다. 지금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이것이다. 법이 명확하지 않을 때 누가 결정하는가라는 질문은 단순히 기술적 문제가 아니다.
민주주의와 독재, 법치와 자의, 정의와 불의를 가르는 근본적 질문이다. 그리고 90년 전의 경고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울려 퍼진다.
2026. 2. 5. 1부 끝.
다음 편 예고: 제2편 "법원은 어떻게 무기가 되었는가 - 일반조항 남용의 역사"에서는 나치 독일에서 일반조항이 어떻게 체계적으로 남용되었는지, 한국의 권위주의 시대에 유사한 패턴이 어떻게 반복되었는지를 구체적 사례를 통해 추적한다.
윤철홍, "헤데만의 '일반조항으로 도피'에 대한 수용적 고찰", 「법학논총」 제39권 제3호, 숭실대학교 법학연구소, 2019.
김영환, "법의 계수의 결과현상들", 「외법논집」 제9집,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연구소, 2001.
이연주, "신의칙 적용의 한계", 「민사법학」 제55호, 한국민사법학회, 2011.
정상민, "일반조항으로의 도피와 신의칙", 「법학연구」 제33권 제4호, 전북대학교 법학연구소, 2023.
대법원 2015. 10. 15. 선고 2012다64253, 64254 판결 [신의성실 원칙의 예외적 적용]
대법원 2019. 4. 21. 선고 2019도3047 전원합의체 판결 [군형법 제92조의6 추행죄]
대법원 2023. 5. 11. 선고 2017다35588 전원합의체 판결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대법원 2018. 11. 1. 선고 2016도10912 전원합의체 판결 [양심적 병역거부]
대법원 2020. 6. 18. 선고 2019도14340 전원합의체 판결 [배임죄 주체]
헌법재판소 2019. 4. 11. 선고 2017헌바127 결정 [낙태죄 헌법불합치]
헌법재판소 2023. 9. 26. 선고 2020헌바552 결정 [민법 제103조 합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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