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도 고생하셨습니다

생각의 서고 61화

by 소는영


저녁 무렵, 지하철 창문에 비친 사람들의 얼굴을 본다.


누군가는 눈을 감고, 누군가는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누군가는 아무것도 아닌 허공을 응시한다. 그 얼굴들에는 하루의 무게가 고스란히 내려앉아 있다.




"오늘 하루도 고생하셨습니다."


참 이상한 말이다. 엄밀히 따지면 아무런 정보도 담고 있지 않으니까 말이다. 당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무엇을 성취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런데도 이 말은 어떤 위로가 된다. 아니, 어쩌면 바로 그렇기 때문에 위로가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하루를 '견딘다'. 누구나 그렇다. 대기업 임원도, 편의점 아르바이트생도,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부모도,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도.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다르지만, 저마다의 하루를 온몸으로 버텨낸다는 점에서는 같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는 자신의 고생은 잘 모른다. 정확히는 자신을 돌보는 시간을 갖지 않는다.


오늘 하루 동안 나는 몇 번이나 한숨을 삼켰을까. 몇 번이나 짜증을 눌렀을까. 몇 번이나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다독였을까. 그 모든 작은 전투들을 우리는 '별것 아닌 일상'이라고 부른다.



"그까짓 것쯤이야."


우리는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한다. 남들도 다 하는 일이라고, 이 정도는 당연히 해야 하는 거라고.


그러나 한번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란 없다. 존재할 수 없다. 아침에 눈을 떠서, 무거운 몸을 일으켜, 하루를 시작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이미 하나의 용기이다.




"고생하셨습니다"라는 말에는 판단이 없다. 당신이 오늘 무엇을 이루었는지,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 묻지 않는다. 다만 당신이 오늘 하루를 살았다는 사실, 그 자체를 인정한다. 결과와 무관하게, 과정 자체에 경의를 표하는 것이다.


철학자 알베르 카뮈는 시시포스를 행복한 인간이라고 말했다. 산꼭대기까지 밀어 올린 바위가 다시 굴러떨어지는 것을 알면서도, 시시포스는 다시 산 아래로 걸어 내려간다. 그 걸음 속에 인간의 존엄이 있다고 카뮈는 말했다.


우리의 하루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오늘 해결한 문제는 내일 다시 돌아온다. 오늘의 설거지는 내일의 설거지로 이어지고, 오늘의 업무는 내일의 업무를 낳는다. 끝이 없다. 그러나 그 끝없는 반복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산 아래로 걸어 내려간다. 다시, 또다시.




가끔 길을 걷다가, 모르는 사람과 눈이 마주칠 때가 있다. 그 순간, 나는 저 사람도 나처럼 무언가를 견디고 있겠구나, 하고 생각한다. 저 사람의 어깨 위에도 내가 모르는 무게가 올려져 있을 것이다. 가족의 기대, 경제적 압박, 건강의 불안, 관계의 피로. 혹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존재 자체의 무거움.


생각건대, "오늘 하루도 고생하셨습니다"라는 말은 단순한 인사가 아니다. 오히려 일종의 연대에 가깝다. 나도 힘들고, 당신도 힘들다는 것. 그러나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버티고 있다는 것. 그 사실을 서로 확인하는 조용한 악수이다.




하루가 저문다. 창밖으로 노을이 번지고, 도시는 서서히 불을 밝힌다.


누군가는 이제 막 퇴근길에 올랐을 것이고, 누군가는 이제야 출근을 준비할 것이다. 저마다의 시간 속에서, 저마다의 삶을 살아간다.


오늘 하루, 당신은 무엇을 했는가. 무엇을 이루었든, 이루지 못했든, 당신은 오늘 하루를 살았다. 숨을 쉬었고, 걸었고, 생각했고, 느꼈다.


누군가를 사랑했을 수도 있고, 누군가와 다퉜을 수도 있다. 웃었을 수도 있고, 울었을 수도 있다. 그 모든 것이 당신의 하루였다.


그러니, 오늘 하루도 고생하셨습니다.


내일 아침, 다시 눈을 뜨면, 우리는 또 하루를 시작할 것이다. 어제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새로운 하루를. 그리고 그 하루의 끝에서, 우리는 다시 이 말을 나눌 것이다.


오늘 하루도 고생하셨습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평범한 인사 속에, 삶을 향한 깊은 존경이 담겨 있다.




2026.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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