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 시간 속에서 판단; 법관은 입법자가 될 수 있는가

생각의 서고 65화

by 소는영



서론



2019년 4월 2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군 판결을 내렸다. 군형법 제92조의6 추행죄에 대한 판결이었다. 이 조항은 "계간이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을 처벌한다고 규정하는데, 대법원은 동성 군인 간에 사적 공간에서 합의 하에 이루어진 성행위는 처벌 대상이 아니라고 판시했다. 진보 진영은 성소수자 인권 보장의 진전이라며 환영하였고, 보수 진영은 법원이 월권했다며 강력히 비판했다. 어떤 논평은 "법관이 입법자가 되려 한다"고 비난했다.


이 논쟁의 핵심은 명확하다.


법관은 사회 변화를 반영하여 법을 재해석할 수 있는가, 아니면 입법자의 명시적 개정을 기다려야 하는가?


이것은 단순히 성소수자 권리 문제를 넘어서는 근본적 질문이다.


법관의 역할은 무엇인가? 법을 "발견"하는 것인가, "창조"하는 것인가? 미국 연방대법원장 John Marshall 마샬은 1824년 이렇게 말했다.


"사법권은 결코 법관의 의지를 효력 있게 하기 위해 행사되지 않으며, 항상 입법부의 의지를, 다시 말해 법의 의지를 효력 있게 하기 위해 행사된다."


이 고전적 정식에 따르면, 법관은 입법자가 만든 법을 집행할 뿐이지, 스스로 법을 만들 수 없다.



그러나 현실은 이렇게 단순하지 않다. 군형법 제92조의6을 다시 보자. "추행"이란 무엇인가? 법은 정의하지 않는다. 입법자는 2011년 이 조항을 개정하면서도 구체적 기준을 제시하지 않았다. 국회 회의록을 보면 성소수자 인권 문제가 격렬하게 논란되었지만, 의원들은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추후 판례로 정리될 것"이라는 말만 되풀이하며 결정을 법원에 미뤘다. 이것이 헤데만이 비판한 "도피"다. 입법자가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에서 구체적 기준 제시를 회피한 것이다.


그렇다면 법원은 어떻게 해야 했을까? 입법자의 개정을 기다리며 기존 해석대로 계속 처벌해야 했을까? 하지만 입법자가 언제 개정할지 알 수 없다. 10년이 걸릴 수도, 50년이 걸릴 수도 있다. 그 사이에 수많은 군인들이 처벌받는다. 헌법이 보장하는 사생활의 자유와 성적 자기결정권이 침해되는 상황을 법원이 방관해야 하는가? 반대로, 법원이 법 조문의 의미를 변경하면 그것은 입법 행위가 아닌가? 선출되지 않은 법관이 사회 정책을 결정하는 것이 민주적으로 정당한가?


이것이 해결 불가능해 보이는 딜레마다. 입법자가 도피하면 법원이 개입할 수밖에 없지만, 법원의 개입은 "사법적극주의"라는 비판을 받는다. 어떤 선택을 해도 문제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법철학은 이 딜레마를 해소할 실마리를 제공한다. 그것은 법을 시간 속에서 이해하는 것이다.




미국의 법철학자 로널드 드워킨(Ronald Dworkin)은 법을 "연작소설"에 비유했다. 한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쓰는 소설이 아니라, 여러 작가가 순서대로 장을 이어 쓰는 소설 말이다. 첫 번째 작가가 몇 개 장을 쓰고, 두 번째 작가가 이어받아 쓰고, 세 번째 작가가 또 이어받는다. 각 작가는 자유롭게 쓸 수 있지만,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이미 쓰여진 장들을 존중해야 하고, 이야기의 일관성을 유지해야 하며, 다음 작가가 이어 쓸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법도 이와 같다는 것이 드워킨의 통찰이다.


입법자가 헌법을 만들고 법률을 제정하는 것은 소설의 첫 장을 쓰는 것이다. 법관이 그 법률을 해석하여 판결하는 것은 다음 장을 쓰는 것이다. 후임 법관들이 선례를 참고하여 새로운 사건을 판단하는 것은 또 다음 장을 쓰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각 장이 독립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과거(이미 쓰여진 장들), 현재(지금 쓰고 있는 장), 미래(다음 작가가 쓸 장들)가 모두 연결되어 있다. 이것이 법의 시간성이다. 법은 과거에서 시작하여 현재를 거쳐 미래로 이어지는 시간적 구조를 가진다.


이 관점에서 군형법 판결을 다시 보면, 대법원이 한 일은 단순히 자신의 정책 선호를 법에 투사한 것이 아니다. 법원은 세 가지 시간 층위를 통합했다. 과거의 층위에서, 헌법 제10조와 제17조가 제헌 이래 일관되게 인간 존엄성과 사생활 자유를 보장해왔다는 연속성을 확인했다. 현재의 층위에서, 한국 사회의 인권 의식 변화와 국제인권규약의 요구를 고려했다. 미래의 층위에서, 이 해석이 군대 내 성범죄 일반을 방임하는 것이 아님을 명확히 하여 다음 판결을 위한 기준을 제시했다. 이렇게 과거-현재-미래를 통합하는 판단은 단순한 현재의 정치적 선호와 다르다.


프랑스 철학자 폴 리쾨르(Paul Ricœur)는 이를 "진정성"의 문제로 봤다. 리쾨르는 하이데거의 시간성 개념을 윤리적으로 재해석하면서, 진정한 존재는 과거의 책임을 받아들이고 현재를 살며 미래를 기획하는 통합 속에서만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법적 판단에도 같은 논리가 적용된다. 진정한 법적 판단은 법질서의 과거(역사적 연속성), 현재(사회적 정당성), 미래(법적 안정성)를 통합적으로 고려한 것이다. 반면 비진정한 판단은 이 중 하나만을 절대화하는 것이다.

나치 시대 독일 법원은 "민족감정"이라는 현재만을 절대화하고 로마법 이래의 법 전통을 파괴했다. 한국 유신 시대 법원은 정치적 압력이라는 현재에 굴복하여 법치주의의 미래를 희생했다. 이들의 판단이 비진정했던 이유는 법의 시간적 구조를 파괴했기 때문이다. 반대로, 어떤 판결이 과거의 법원리를 존중하면서도 현재의 변화를 수용하고 미래의 예측 가능성을 확보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법적 판단이다. 비록 그 판결이 법 조문의 문언을 넘어서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말이다.

이 글은 법의 시간성이라는 관점에서 입법자의 도피와 법관의 역할을 재검토한다. 입법자가 도피하면 법의 시간적 연속성이 끊어진다. 과거의 입법 의도를 현재 상황에 어떻게 적용할지, 미래에 어떤 법질서를 만들어갈지에 대한 민주적 결정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이때 법관은 불가피하게 개입하지만, 그 개입이 정당화되려면 진정성의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과거를 존중하고, 현재를 반영하며, 미래를 기획하는 통합적 판단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법관은 입법자가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법철학적 답변이다.




I. 2019년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선택 - 사법적극주의 논쟁


2019년 4월 2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군 판결을 내렸다. 군형법 제92조의6 추행죄 사건이었다. 이 조항은 "계간이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을 2년 이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문제는 "추행"의 범위였다. 특히 동성 군인 간에 사적 공간에서 합의 하에 이루어진 성행위가 여기에 포함되는가가 쟁점이었다.

대법원은 13명의 대법관 중 10명의 찬성으로 이를 처벌 대상에서 제외했다. 판결의 핵심 논리는 이랬다.

"사적 공간에서 이루어진 합의에 의한 성행위는 건전한 공동생활이라는 보호법익을 침해하지 않는다. 헌법이 보장하는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성적 자기결정권을 고려하면, 이런 행위까지 처벌하는 것은 과도하다."

진보 진영은 환영했다. 성소수자 인권단체들은 "한국 사법부가 드디어 인권 보장에 한 걸음 나아갔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보수 진영은 강력히 비판했다. 한 보수 단체는 성명을 내어 "법관이 국회의 입법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보수 언론의 한 칼럼은 "사법적극주의의 위험한 확대"라는 제목을 달았다.

이 논쟁의 핵심은 명확하다. 법관은 사회 변화를 반영하여 법을 재해석할 수 있는가, 아니면 입법자의 명시적 개정을 기다려야 하는가? 이것은 단순히 성소수자 권리 문제를 넘어서는 근본적 질문이다. 법관의 역할은 무엇인가? 법을 "발견"하는 것인가, "창조"하는 것인가?

보수 진영의 비판은 일정한 논리를 가진다. 군형법 제92조의6은 2011년에 개정되었다. 당시 국회에서 성소수자 인권 문제가 격렬하게 논란되었다. 일부 의원들은 "사적 공간의 합의된 행위는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다른 의원들이 "군대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엄격하게 해야 한다"며 반대했다. 결국 국회는 명시적 예외 규정을 두지 않고 법을 통과시켰다.


비판자들은 이렇게 주장한다.


국회가 논쟁 끝에 명시적 예외를 두지 않기로 결정한 것인데, 법원이 나중에 예외를 인정하는 것은 입법자의 의사를 뒤엎는 것이다. 이는 권력분립 원칙에 반한다. 법을 바꾸고 싶으면 국회에서 개정해야지, 법원이 해석으로 바꿔서는 안 된다.


이 비판은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간과한다. 국회가 명시적 결정을 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국회 회의록을 자세히 보면, 의원들은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이 문제는 추후 판례로 정리될 것"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즉, 국회는 결정을 회피하고 법원에 떠넘긴 것이다.


이것이 바로 헤데만이 비판한 "도피"다. 국회의원들은 성소수자 인권이라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에서 명확한 입장을 취하고 싶지 않았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유권자의 반발이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추행"이라는 불명확한 용어만 두고, 그 의미는 법원이 결정하게 한 것이다.


그렇다면 법원은 어떻게 해야 했을까? 입법자의 개정을 기다리며 기존 해석대로 계속 처벌해야 했을까? 하지만 입법자가 언제 개정할지 알 수 없다. 10년이 걸릴 수도, 50년이 걸릴 수도 있다. 그 사이에 수많은 군인들이 사생활의 자유를 침해받는다.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이 침해되는 상황을 법원이 방관해야 하는가?

반대로, 법원이 법 조문의 의미를 변경하면 그것은 입법 행위가 아닌가? 선출되지 않은 법관이 사회 정책을 결정하는 것이 민주적으로 정당한가? 이것이 해결 불가능해 보이는 딜레마다. 입법자가 도피하면 법원이 개입할 수밖에 없지만, 법원의 개입은 "사법적극주의"라는 비판을 받는다.


2019년 판결 직후 한 헌법학자는 이렇게 평가했다.


"이 판결은 사법적극주의가 아니라 사법의 불가피한 책임 이행이다. 입법자가 결정하지 않으면 누군가는 결정해야 한다. 법적 공백을 그대로 둘 수는 없기 때문이다. 법원이 개입한 것은 입법자의 권한을 침해한 것이 아니라, 입법자가 포기한 책임을 떠맡은 것이다."


그러나 다른 법학자는 반대했다.


"법원이 입법자 역할을 하는 순간, 민주주의의 근간이 흔들린다. 법관은 선출되지 않았다. 국민에게 정치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 그런 법관이 중대한 사회 정책을 결정하는 것은 위험하다. 오늘은 성소수자 권리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판결했지만, 내일은 반대 방향으로 판결할 수도 있다. 법관의 개인적 가치관에 따라 법의 의미가 요동친다."


이 논쟁은 단순히 한 판결에 대한 평가를 넘어선다. 법의 본질에 관한 근본적 물음이다. 법은 과거(입법자가 만든 것)인가, 현재(법관이 해석하는 것)인가, 아니면 미래(계속 발전하는 것)인가? 법관은 과거의 입법 의도에 구속되는가, 아니면 현재의 사회 변화를 반영해야 하는가? 법 조문의 문언적 의미는 고정되어 있는가, 아니면 시대에 따라 변할 수 있는가?


이 질문들에 답하려면, 법을 시간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 법은 과거에 만들어졌지만 현재에 적용되고 미래를 규율한다. 법은 시간적 존재다. 그리고 법관의 판단도 시간적 구조를 가진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사법적극주의 논쟁은 끝없는 신학 논쟁이 된다. 이제 법철학이 제공하는 틀로 이 문제를 접근해보자.




II. 법관의 역할은 무엇인가 - Marshall의 고전적 정식과 그 한계


법관의 역할에 대한 가장 유명한 정식화는 미국 연방대법원장 존 마셜(John Marshall)이 1824년 내린 것이다. Osborn v. Bank of United States 사건 판결에서 그는 이렇게 선언했다.


"사법권은 결코 법관의 의지를 효력 있게 하기 위해 행사되지 않으며, 항상 입법부의 의지를, 다시 말해 법의 의지를 효력 있게 하기 위해 행사된다."


이 문장은 200년 동안 법관의 역할을 정의하는 기준이 되었다. 법관은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법의 의지를 실현한다. 법관은 법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발견한다. 입법자가 이미 만들어 놓은 법을 찾아내어 적용할 뿐이다. 이것이 고전적 법관상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법관이 할 일은 명확하다.


첫째, 법 조문의 문언을 읽는다.

둘째, 입법자가 그 조문을 만들 때 의도한 바를 파악한다.

셋째, 그 의도를 구체적 사안에 적용한다.


법관의 재량은 최소화되어야 한다. 법관이 자기 생각을 개입시키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법의 지배가 아니라 인간의 지배가 된다.


이 이론은 특히 권력분립의 관점에서 설득력이 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법을 만드는 권한은 국민이 선출한 입법자에게 있다. 법관은 선출되지 않았으므로 민주적 정당성이 약하다. 따라서 법관은 입법자가 만든 법을 충실히 따라야 한다. 법을 바꾸려면 국회로 가야지, 법원에서 바꿔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이론은 현실에서 작동하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법 조문은 종종 불명확하고, 입법 의도는 재구성하기 어려우며, 사회는 계속 변하기 때문이다. 군형법 제92조의6을 다시 보자. "추행"이란 무엇인가? 법은 정의하지 않는다. 입법자의 의도는 무엇이었는가? 2011년 국회 회의록을 보면 의원들도 명확히 합의하지 못했다.


법관이 "입법자의 의지"를 따르려 해도, 그 의지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더 근본적으로, 법 조문의 의미는 시간에 따라 변할 수 있다. 1962년 군형법이 처음 제정될 때 "추행"의 의미와 2019년 현재의 "추행"의 의미가 같은가? 1960년대에는 동성애 자체가 정신질환으로 분류되었다. 2019년에는 WHO가 동성애를 질병 목록에서 삭제한 지 30년이 지났다. 사회의 인식이 근본적으로 변했다.


그렇다면 법관은 1962년의 "입법자 의도"를 따라야 하는가, 아니면 2019년의 "사회 인식"을 반영해야 하는가? 마셜의 정식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 "법의 의지"를 따르라고 하지만, 그 의지가 과거에 고정되어 있는지 현재에 따라 변하는지 말하지 않는다.


미국 헌법 해석에서 이 문제는 더욱 첨예하다. 미국 헌법 수정 제1조는 "의회는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이것이 1791년 제정될 때 "표현의 자유"는 주로 정치적 언론의 자유를 의미했다. 인쇄물에 대한 사전 검열 금지였다. 그런데 2020년대에 이 조항이 인터넷 게시물, SNS 포스트, 알고리즘 추천까지 보호하는가?

원의주의자(originalist)들은 1791년의 의미대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제헌자들이 의도하지 않은 것까지 보호하면, 그것은 법관이 자기 마음대로 헌법을 고치는 것이라는 논리다. 그러나 생존헌법(living constitution)론자들은 반대한다.

헌법은 살아있는 문서이며, 시대에 따라 의미가 진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230년 전 사람들이 상상조차 못한 인터넷 시대에, 230년 전의 의도만 따르는 것은 헌법을 박제로 만드는 것이다.


한국 법학에서도 유사한 논쟁이 있다.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한다. 1948년 제헌 당시 이것이 무엇을 의미했는가? 2020년대에 이 조항이 동성 결합의 권리, 안락사 선택권, 기본소득 청구권까지 포함하는가? 입법자의 원래 의도로 돌아가면 이런 권리들은 인정될 수 없다. 그러나 사회가 변했다면 헌법의 의미도 변해야 하지 않는가?


이 딜레마는 마샬의 정식이 지나치게 단순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그는 법관이 "법의 의지"를 따른다고 했지만, 법이 시간적 존재라는 점을 고려하지 않았다. 법은 과거에 만들어졌지만 현재에 적용되고 미래를 규율한다. 법은 과거의 입법자, 현재의 법관, 미래의 시민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시간적 구조물이다.


현대 법철학은 이 시간적 구조를 정면으로 다룬다. 특히 미국 법철학자 로널드 드워킨의 이론은 법을 시간 속에서 이해하는 강력한 틀을 제공한다. 그의 유명한 "연작소설" 비유를 통해 이 문제를 탐구해보자.




III. 드워킨의 연작소설 - 법은 시간 속에서 쓰인다


로널드 드워킨은 1986년 출판한 "Law's Empire"(법의 제국)에서 법을 독특한 방식으로 설명했다. 그는 법을 "연작소설"(chain novel)에 비유하며, 한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쓰는 일반 소설이 아니라, 여러 작가가 순서대로 장을 이어 쓰는 소설임을 주장한다.


구체적으로 상상해보자. 첫 번째 작가가 소설의 첫 장을 쓴다. 주인공을 설정하고 배경을 깔고 사건을 시작한다. 그 다음 두 번째 작가가 받아서 다음 장을 쓴다. 첫 번째 작가가 만든 인물과 설정을 이어받되, 자기 나름대로 이야기를 발전시킨다. 세 번째 작가가 또 받아서 쓴다. 이렇게 여러 작가가 차례로 장을 쓰면서 하나의 긴 소설이 완성된다.


각 작가는 어느 정도 자유롭게 쓸 수 있다. 이야기를 어느 방향으로 전개할지, 어떤 새로운 인물을 등장시킬지, 어떤 복선을 깔지를 결정한다. 그러나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이미 쓰여진 장들을 존중해야 한다. 첫 장에서 주인공이 30대 남자 의사로 설정되었다면, 세 번째 장에서 갑자기 20대 여자 변호사로 바꿀 수 없다. 이야기의 일관성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또한 각 작가는 다음 작가를 배려해야 한다. 자기 장을 마무리하면서 이야기를 완전히 끝내버리면 안 된다. 다음 작가가 이어 쓸 수 있도록 여지를 남겨야 한다. 동시에 자기 장을 쓸 때 미래 작가들이 어떻게 이어갈지 생각해야 한다. 지금 깔아놓는 복선이 나중에 어떻게 회수될지 예측하면서 써야 한다.


이것이 드워킨이 본 법의 구조다. 입법자가 법을 만드는 것은 소설의 첫 장을 쓰는 것이다. 법관이 그 법을 해석하여 판결하는 것은 다음 장을 쓰는 것이다. 후임 법관들이 선례를 참고하여 새로운 사건을 판단하는 것은 또 다음 장을 쓰는 것이다. 법은 이렇게 여러 세대에 걸쳐 계속 쓰여지는 하나의 긴 이야기다.


이 비유가 주는 통찰은 강력하다.


첫째, 법관은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 이미 쓰여진 장들, 즉 기존 법률과 판례를 존중해야 한다. 갑자기 전혀 다른 내용을 쓰면 이야기가 파괴된다. 이것이 법적 안정성의 요청이다. 시민은 법이 예측 가능하게 작동할 것을 기대한다. 오늘 합법이었던 것이 내일 갑자기 불법이 되면 안 된다.

둘째, 법관은 완전히 구속되지도 않는다. 이미 쓰여진 장을 기계적으로 반복할 필요는 없다. 이야기를 발전시키고 새로운 전개를 만들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일관성이다. 새로운 전개가 이전 이야기와 논리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이것이 법 발전의 가능성이다. 사회가 변하면 법도 변해야 하지만, 그 변화는 갑작스러운 단절이 아니라 점진적 진화여야 한다.

셋째, 법관은 미래를 생각해야 한다. 자기 판결이 선례가 되어 다음 법관들을 구속한다. 따라서 "이 판결이 일반화되어도 법질서가 유지될 수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칸트의 정언명령처럼, "내 판단이 보편적 법칙이 되어도 정당한가"를 자문해야 한다. 이것이 법적 책임성의 요청이다.


드워킨은 이를 "통합성으로서의 법"(law as integrity)이라고 불렀다. 법은 과거-현재-미래가 통합된 하나의 체계여야 한다는 것이다. 법관의 임무는 이 통합성을 유지하면서 법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과거를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현재에 대응하고, 미래의 일관성을 담보하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군형법 판결을 다시 보면, 대법원이 한 일은 단순히 자기 정책 선호를 법에 투사한 것이 아니다. 대법원은 세 가지 시간 층위를 통합했다.

과거의 층위에서, 대법원은 헌법 제10조와 제17조가 제헌 이래 일관되게 인간 존엄성과 사생활 자유를 보장해왔다는 연속성을 확인했다. 또한 대법원 자신이 수십 년간 형법 해석에서 죄형법정주의와 명확성 원칙을 강조해온 판례 경향을 계승했다. 이는 과거와의 단절이 아니라 연속이다.

현재의 층위에서, 대법원은 한국 사회의 인권 의식 변화를 고려했다. 2001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설립되었고, 2011년 군형법 개정 당시에도 인권 보호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국제인권규약 이행 압력도 있었다. UN 자유권규약위원회는 여러 차례 한국에 군형법 개정을 권고했다. 이런 변화를 법 해석에 반영하는 것은, 법이 사회와 유리된 추상이 아니라 살아있는 현실이라는 인식이다.

미래의 층위에서, 대법원은 이 해석이 군대 내 성범죄 일반을 방임하는 것이 아님을 명확히 했다. 판결문은 "사적 공간", "합의", "상호 대등한 관계"라는 요건을 제시하여 경계를 설정했다.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강요한 경우, 공개된 장소에서 한 경우, 일방의 의사에 반한 경우는 여전히 처벌 대상이다. 이렇게 미래 판례를 위한 기준을 제시한 것은 법적 안정성을 위한 배려다.


이렇게 과거-현재-미래를 통합하는 판단은 단순한 현재의 정치적 선호와 다르다. 만약 법관이 "나는 개인적으로 성소수자를 지지하니까 무죄로 하겠다"고 판단했다면, 그것은 마샬이 경고한 "법관의 의지"다. 그러나 법관이 "헌법의 과거 원칙, 사회의 현재 변화, 법질서의 미래 안정성을 종합하면 이런 결론이 나온다"고 판단했다면, 그것은 "법의 의지"를 실현한 것이다.


물론 이 구별이 항상 명확한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가 정당한 법 발전이고 어디서부터가 자의적 재해석인지 경계가 모호할 때가 많다. 드워킨 자신도 이를 인정했다. 그는 "법관은 어려운 사건에서 유일한 정답을 찾을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많은 법학자들이 이를 비판했다. 복잡한 사안에서는 여러 합리적 답이 가능하며, 법관의 가치관이 개입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드워킨의 핵심 통찰은 여전히 유효하다. 법관의 판단이 정당화되려면 시간적 통합성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를 존중하고, 현재를 반영하며, 미래를 기획하는 판단이어야 한다. 이 세 요소 중 하나라도 결여되면, 그 판단은 문제가 있다. 이제 이 기준을 더 정교화하기 위해 프랑스 철학자 폴 리쾨르의 "진정성" 개념을 도입해보자.




IV. 과거-현재-미래의 통합 - 군형법 판결의 시간적 구조



대법원 2019도3047 전원합의체 판결문은 200페이지가 넘는다. 다수의견, 별개의견, 반대의견이 치열하게 논증을 펼친다. 이 판결문을 시간성의 관점에서 해부하면, 법적 판단이 어떻게 과거-현재-미래를 통합하는지 구체적으로 볼 수 있다.


먼저 과거의 층위를 보자. 다수의견은 판결문 초반에 상당한 분량을 할애하여 헌법과 형법의 역사를 서술한다.

"대한민국 헌법은 제정 이래 일관되게 제10조에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을 보장해왔다. 제17조는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보장한다. 이 조항들은 70년 이상 유지되어온 헌법적 원칙이다."


다수의견은 또한 대법원 자신의 판례 경향을 추적한다.


"대법원은 형법 해석에서 죄형법정주의를 엄격히 적용해왔다. 특히 처벌 범위를 확장하는 해석은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견지했다."


여기서 다수의견은 과거 판례들을 열거한다. 형법 제10조의 심신장애, 제16조의 법률의 착오, 제20조의 정당행위 등에서 대법원이 어떻게 피고인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해왔는지를 보여준다.


이는 단순한 형식적 인용이 아니다. 다수의견은 "우리가 내리는 이 판단은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라, 70년 헌법사와 수십 년 판례사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것을 입증하려 한다. 드워킨의 비유로 말하면, "이전 장들과 일관된 다음 장"을 쓰고 있음을 보이는 것이다.




반대의견은 바로 이 점을 공격한다.


"다수의견이 인용하는 과거 판례들은 이 사건과 상황이 다르다. 군대라는 특수한 집단에서 동성 간 성행위를 처벌하는 것은 합리적 이유가 있다. 이전 판례들을 여기에 적용하는 것은 비약이다."

반대의견의 논리는 다수의견이 주장하는 "과거와의 연속성"은 사실, 단절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전 장과 맞지 않는 새로운 장을 억지로 쓰고 있다는 비판이다.


이 논쟁은 해결하기 어렵다. 과거 판례와 현재 사건이 "유사한가"의 판단 자체가 주관적 요소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양측 모두 과거와의 연결을 입증하려 한다는 점이다. 누구도 "과거는 무시하고 우리 마음대로 하겠다"고 말하지 않는다. 과거의 구속력을 인정하는 것이다. 다만 과거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서 다툰다.




이제 현재의 층위로 가보자. 다수의견은 사회 변화를 상세히 기록한다.


"1962년 군형법 제정 당시와 2019년 현재는 성에 대한 인식이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세계보건기구는 1990년 동성애를 질병 목록에서 삭제했다. 한국에서도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고 있다. 2001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설립되었고, 2011년 군형법 개정 당시에도 인권 보호 논의가 있었다."


다수의견은 또한 국제 기준을 인용한다.


"UN 자유권규약위원회는 2015년, 2017년 한국에 군형법 개정을 권고했다. 유럽인권재판소는 군대 내 동성 간 합의된 성행위를 처벌하는 것을 인권 침해로 판단한 바 있다."


이런 현재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1962년의 기준만 고집하는 것은, 법을 박제로 만드는 것이라는 논리다.




반대의견은 여기서도 반박한다.

"사회 인식이 변했다고 해도, 그것이 법 해석을 바꿀 만큼 합의에 이른 것은 아니다. 여전히 많은 국민들이 군대 내 동성 성행위에 부정적이다. 국회가 명시적으로 예외를 인정하지 않은 것은 이런 여론을 반영한 것이다. 법원이 사회 일부의 변화를 확대 해석하여 법을 바꾸는 것은 월권이다."


이 논쟁도 간단히 해결되지 않는다. "사회가 충분히 변했는가"의 판단이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도 중요한 점은, 양측 모두 현재 사회 상황을 무시할 수 없다고 본다는 것이다. 반대의견조차 "현재 사회 인식"을 근거로 든다. 다만 그것을 다르게 평가할 뿐이다.




마지막으로 미래의 층위를 보자. 다수의견은 이 판결이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신중하게 검토한다.


"이 판결이 군대 내 모든 성범죄를 방임하는 것으로 오해되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우리는 명확한 기준을 제시한다. 첫째, 사적 공간이어야 한다. 둘째, 쌍방의 자발적 합의가 있어야 한다. 셋째, 상호 대등한 관계여야 한다. 이 요건 중 하나라도 충족되지 않으면 여전히 처벌 대상이다."


다수의견은 구체적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강요한 경우는 대등한 관계가 아니므로 처벌된다. 공개된 장소나 다른 사람이 볼 수 있는 곳에서 한 경우는 사적 공간이 아니므로 처벌된다. 일방이 거부했는데도 강행한 경우는 합의가 없으므로 처벌된다."


이렇게 경계를 그음으로써 미래 사건을 위한 예측 가능성을 제공한다.





반대의견은 이 기준이 불충분하다고 본다.


"사적 공간의 범위가 불명확하다. 막사 안 개인 침대는? 화장실 개인 칸은? 휴가 중 외부 숙소는? 다수의견의 기준은 새로운 불명확성을 만든다. 이는 헤데만이 비판한 일반조항의 문제를 반복한다."


이 비판도 일리가 있다. 다수의견의 기준 역시 완벽히 명확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사적", "합의", "대등"이라는 용어도 해석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아무런 기준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 미래 법관들은 이 세 요건을 출발점으로 삼아 더 구체화할 수 있다. 드워킨의 비유로 말하면, 다음 작가에게 "이야기를 이렇게 이어 쓰세요"라는 가이드를 준 것이다.

이렇게 과거-현재-미래를 통합하려는 시도가 이 판결의 구조다. 완벽하지는 않다. 어느 시점에 더 무게를 둘지, 어떻게 균형을 잡을지에 대해 대법관들조차 의견이 갈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모두가 세 시간 층위를 고려해야 한다고 인정한다는 점이다.

만약 다수의견이 "과거는 무시하고 현재 인권 기준만 따르겠다"고 했다면, 그것은 법적 안정성을 파괴하는 급진적 판결이었을 것이다. 반대로 "현재 변화는 무시하고 과거 기준만 따르겠다"고 했다면, 그것은 법을 화석화하는 보수적 판결이었을 것이다.

다수의견은 둘 사이의 균형을 잡으려 했다. 과거를 존중하면서도 현재를 반영하고, 미래의 예측 가능성도 담보하려 한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법적 판단이다. 그리고 이 "진정성"의 개념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프랑스 철학자 폴 리쾨르의 이론으로 가보자.




V. 리쾨르의 진정성 - 비진정한 판단과 진정한 판단


폴 리쾨르는 20세기 프랑스의 대표적 철학자다. 그는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의 시간성 개념을 윤리적으로 재해석했다.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에서 인간 존재의 시간적 구조를 분석하며, 인간은 과거(이미 던져진 존재), 현재(지금 살고 있는 존재), 미래(가능성을 기획하는 존재)의 통합 속에 있다고 하였다.

그는 "본래적 실존"과 "비본래적 실존"을 구별했다. 비본래적 실존은 "세인"(das Man, 익명의 대중)의 방식으로 사는 것이다. 남들이 하니까 따라하고, 관습에 따라 살며, 자기 존재를 진지하게 성찰하지 않는다. 본래적 실존은 죽음을 직시하고, 자기 존재의 유한성을 자각하며, 진정으로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다.

리쾨르는 이 개념을 받아들이되, 비판적으로 재해석했다. 하이데거의 문제는 지나치게 개인주의적이라는 것이었다. "본래적 실존"이 마치 고독한 개인이 홀로 자기와 대면하는 것처럼 묘사된다. 그러나 리쾨르는 인간이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만 진정한 자기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의 주저 제목이 "타자로서 자기자신"(Soi-même comme un autre)인 이유다.

리쾨르는 "진정성"(authenticité)을 윤리적 개념으로 재정의했다. 진정한 자기존재는 과거의 책임을 받아들이고, 현재를 살며, 미래를 타자와 함께 기획하는 것이다. 여기서 핵심은 책임이다. 나의 과거는 내가 선택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것을 책임져야 한다. 나의 행위는 미래의 타자들에게 영향을 미치므로, 나는 그들에 대한 책임도 진다. 이렇게 과거-현재-미래, 자기-타자가 통합된 책임의 구조가 진정성이다.

이 개념을 법적 판단에 적용하면 강력한 틀이 된다. 진정한 법적 판단은 법질서의 과거를 책임지고, 현재 사회에 대응하며, 미래 시민을 배려하는 것이다. 비진정한 판단은 이 중 하나를 절대화하거나 무시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세 가지 유형의 비진정성을 구별할 수 있다.


첫째, 과거의 절대화다. 법관이 "과거 입법자의 의도가 절대적"이라며 현재 변화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경우다. 이것은 법을 박제로 만든다. 미국 원의주의자들이 종종 이 함정에 빠진다. 230년 전 제헌자들의 의도만 따지면서 현재 사회 문제에 대응하지 못한다. 한국에서도 "입법자 의사 존중"을 절대화하여 사회 변화를 외면하는 판결들이 있다.

둘째, 현재의 절대화다. 법관이 "지금 당장의 정의감"만 따르며 과거 법원리와 미래 파급효과를 무시하는 경우다. 이것은 법적 안정성을 파괴한다. 나치 시대 독일 법원이 전형적이다. 그들은 "현재의 민족감정"을 절대화하며 로마법 이래의 법 전통을 무시했다. 한국 유신 시대 법원도 "현재의 국가안보"를 절대화하며 법치주의를 포기했다.

셋째, 미래의 무시다. 법관이 자기 판결의 선례적 가치를 고려하지 않는 경우다. "이 사건만 해결하면 된다"는 식으로 임기응변적 판단을 하면, 미래 사건에서 일관성이 무너진다. 이것은 예측 가능성을 해친다.



진정한 판단은 이 세 함정을 피한다. 과거를 존중하되 절대화하지 않고, 현재에 대응하되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으며, 미래를 기획하되 독단적으로 결정하지 않는다. 세 시간 층위를 균형있게 통합하는 것이다.




이제 군형법 판결을 이 틀로 평가해보자. 다수의견은 진정한 판단에 가깝다. 과거(헌법의 인권 원칙)를 존중하면서도, 현재(사회 변화)를 반영하고, 미래(명확한 기준 제시)를 기획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세 층위를 통합하려는 진지한 시도가 보인다.


반대의견도 나름의 진정성을 갖는다. 반대의견은 "다수의견이 과거를 제대로 존중하지 않았다"고 비판한다. 군대라는 특수성, 과거 판례의 맥락을 무시했다는 것이다. 또한 "현재 사회 합의가 충분하지 않다"고 본다. 미래 예측 가능성도 다수의견보다 자기 기준이 더 명확하다고 주장한다. 반대의견도 세 시간 층위를 고려한다. 다만 가중치를 다르게 둘 뿐이다.


이것이 건강한 법적 논쟁이다. 양측 모두 과거-현재-미래를 통합하려 하지만, 어디에 더 무게를 둘지에서 다투는 것이다. 이런 논쟁을 통해 법은 발전한다. 시간이 지나 사회 변화가 더 명확해지면, 다수의견이 옳았는지 반대의견이 옳았는지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치시대나 유신시대의 판결은 다르다. 그들은 세 시간 층위를 통합하지 않았다. 오직 "현재"만 절대화했다. "지금 당장의 정권 이익"이나 "현재의 민족감정"만 따랐다. 이것이 비진정한 판단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역사가 증명한다.




VI. 나치 시대와 유신 시대의 비진정성 - 현재의 절대화


1936년 독일 제국법원의 한 판결을 다시 보자. 유대인 사업가와 독일인 거래처 간 계약 분쟁이었다. 유대인은 계약 이행을 청구했고, 독일인은 "유대인과의 거래는 선량한 풍속에 반한다"며 거부했다. 법원은 독일인의 손을 들어줬다.

이 판결을 시간성의 관점에서 분석하면 비진정성이 명확히 드러난다.


과거의 층위에서, 법원은 로마법 이래의 법 전통을 완전히 무시했다. 독일 민법은 로마법을 계승하여 계약의 구속력을 핵심 원칙으로 삼았다.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pacta sunt servanda)는 천년 이상의 법원리였다. 또한 독일 민법 제138조의 "선량한 풍속"은 본래 보편적 도덕 기준을 의미했다. 사기, 강박, 폭리 같은 명백히 부도덕한 거래를 무효화하는 장치였다.

그런데 1936년 법원은 이 모든 과거를 무시했다. "선량한 풍속"을 갑자기 "민족감정"으로 재정의했다. 과거 법관들이 쌓아온 판례들, 법학자들이 발전시킨 이론들을 한순간에 폐기한 것이다. Dworkin의 비유로 말하면, 이전 99개 장과 전혀 맞지 않는 100번째 장을 갑자기 쓴 것이다. 이것은 법의 연속성을 파괴하는 비진정한 행위다.


현재의 층위에서, 법원은 "현재의 민족감정"을 절대화했다. 그러나 이 "민족감정"이 정말 독일 국민 전체의 것이었는가? 나치당은 1933년 선거에서 43.9%를 득표했다. 과반이 아니었다. 많은 독일인들이 나치에 반대했거나 무관심했다. 그러나 법원은 "나치의 이념"을 "민족의 감정"으로 둔갑시켰다. 일부 정치 세력의 입장을 전체 사회의 합의인 양 포장한 것이다.

더 근본적으로, 설령 다수 국민이 그렇게 생각한다 해도, 그것이 법 해석을 바꿀 만큼 정당한가? 다수의 감정이 소수의 권리를 짓밟아도 되는가? 헌법의 기본권은 바로 다수로부터 소수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법원은 다수(라고 주장되는) 감정으로 소수(유대인)의 권리를 부정했다. 이것은 법치주의의 근본 원리에 반한다.


미래의 층위에서, 법원은 자기 판결의 파급효과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유대인과의 계약은 무효"라는 판결이 일반화되면 어떻게 되는가? 유대인은 재산권을 보호받을 수 없다. 거래를 할 수 없다. 경제 활동이 불가능하다. 이는 유대인을 사회에서 배제하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이 판결 이후 유대인 재산 박탈이 가속화되었고, 1938년 수정의 밤으로 이어졌으며, 결국 홀로코스트로 귀결되었다.

법원은 이런 미래를 예견했는가? 아마 일부는 예견했고 일부는 몰랐을 것이다. 그러나 예견했든 안 했든, 그들은 미래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았다. "지금 당장 나치 정권을 만족시키는 것"만 생각했다. 법관으로서의 시간적 책임을 포기한 것이다.


이것이 비진정한 판단의 전형이다. 과거를 무시하고, 현재를 절대화하며, 미래를 외면한다. 시간적 통합이 없다. 오직 "지금 이 순간의 권력"에만 복무한다.


마찬가지 논리로, 한국 유신시대의 판결도 같은 구조를 보인다. 1975년 대법원 74도3323 전원합의체 판결을 보자. 긴급조치에 대한 사법심사를 거부한 판결이다.

과거의 층위에서, 대법원은 법치주의 전통을 저버렸다. 대한민국 헌법은 1948년 제정 이래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했다(제103조). 이는 법관이 행정부의 압력으로부터 독립하여 법의 지배를 실현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또한 제107조는 "법원은 재판에 있어서 법률이 헌법에 위반되는 여부가 재판의 전제가 된 경우에는 대법원에 제청하여 그 심판에 의하여 재판한다"고 규정했다. 법률의 위헌 여부를 심사하는 것이 법원의 권한이자 의무였다.
그런데 대법원은 "긴급조치는 고도의 정치적 결단이므로 사법심사 대상이 아니다"며 심사권을 포기했다. 이는 헌법이 부여한 권한과 의무를 스스로 방기한 것이다. 과거 27년간 쌓아온 사법부 독립의 전통을 하루아침에 무너뜨린 것이다.

현재의 층위에서, 대법원은 "현재의 국가안보"를 절대화했다. 판결문은 "긴급조치는 국가 위기 상황에서 대통령이 발한 것"이라며 정당화한다. 그러나 정말 1975년 한국이 긴급조치가 필요한 위기 상황이었는가? 헌법재판소는 38년 후 이를 검토하여 "당시 국가 존립이나 헌법 질서에 중대한 위협이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긴급조치는 진정한 국가 위기에 대응한 것이 아니라, 유신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정치적 도구였다.
대법원은 이를 몰랐는가?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정권 압력"에 굴복했다. 법치주의보다 정치적 편의를 택한 것이다.

미래의 층위에서, 대법원은 자기 판결이 한국 민주주의에 미칠 영향을 무시했다. 법원이 긴급조치 심사를 거부하면 어떻게 되는가? 대통령은 긴급조치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기본권을 제한하고, 반대자를 처벌하며, 국회를 무력화할 수 있다. 그리고 법원은 이를 통제하지 않는다. 이는 사실상 독재를 사법적으로 승인하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1975년부터 1979년까지 긴급조치로 수천 명이 구속되었다. 학생들은 유신 비판 유인물을 읽었다는 이유로 퇴학당했다. 교수들은 헌법 수업에서 유신헌법을 비판했다가 해직되었다. 언론은 입을 다물었다. 이 모든 것이 법원의 방관 아래 자행되었다.

대법원은 이런 미래를 예견했는가? 당연히 예견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미래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았다. "지금 당장 정권의 비위를 맞추지 않으면 사법부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굴복했다. 법관으로서의 용기를 잃은 것이다.


나치 시대 독일과 유신 시대 한국의 법원이 공통적으로 보이는 것은 "현재의 절대화"다. 과거의 법 전통도, 미래의 파급효과도 무시하고, 오직 "지금 이 순간의 권력자"에게만 충성했다. 이것이 가장 극단적 형태의 비진정성이다.


그리고 역사는 그 대가가 무엇이었는지 보여준다. 나치 독일은 홀로코스트로 600만 명을 학살했다. 유신 시대 한국은 수많은 민주인사를 탄압했다. 법원이 자기 책임을 다했다면 막을 수 있었거나 최소한 완화할 수 있었던 비극들이다.




VII. 법관의 세 가지 책임 - 시간적 책임의 구조


지금까지의 논의를 종합하면, 법관의 역할은 명확해진다. 법관은 법질서의 시간적 연속성을 유지하면서 발전시키는 책임을 진다. 이 책임은 세 가지 층위로 구조화된다.


첫째, 과거에 대한 책임이다. 법관은 기존 법률과 판례를 존중해야 한다. 이것이 법적 안정성의 요청이다. 시민은 법이 예측 가능하게 작동할 것을 기대한다. 오늘 합법이었던 것이 내일 갑자기 불법이 되면, 시민은 어떻게 행동을 계획하겠는가? 기업은 어떻게 투자를 결정하겠는가? 법적 안정성이 무너지면 사회 전체의 신뢰가 무너진다.

대법원이 신의칙 적용에서 "극히 예외적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반복 강조하는 것(2012다64253 판결)은 바로 이 과거에 대한 책임을 표현한다. 일단 유효하게 성립한 계약은 존중되어야 한다. 법원이 나중에 신의칙으로 뒤집는 것은 계약 당사자들의 기대를 배신하는 것이다. 따라서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허용된다.

그러나 과거에 대한 책임이 과거의 절대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과거 판례가 명백히 잘못되었거나, 사회가 근본적으로 변하여 과거 기준을 유지할 수 없을 때는 변경이 정당화된다. 미국 연방대법원이 1954년 Brown v. Board of Education 판결에서 인종분리 교육을 위헌으로 판단한 것이 좋은 예다. 1896년 Plessy v. Ferguson 판결은 "분리하되 평등"(separate but equal)을 합헌으로 봤다. 58년간 이 판례가 유지되었다. 그러나 1954년 대법원은 이를 뒤집었다. "분리는 본질적으로 불평등"이라고 선언한 것이다.

이 판결은 과거와의 단절처럼 보인다. 그러나 더 깊이 보면 미국 헌법의 더 근본적 원칙, 즉 평등권의 실현이다. 1896년 판결이 헌법의 진정한 의미를 왜곡했고, 1954년 판결이 그것을 바로잡은 것이다. 이것이 정당한 판례 변경이다. 과거를 존중하되, 더 근본적인 과거 원칙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둘째, 현재에 대한 책임이다. 법관은 사회 변화를 외면할 수 없다. 법이 사회와 유리되면 법은 공허한 추상이 된다. 1960년대 민법 조문으로 2020년대 인터넷 거래를 규율하려면, 그 조문의 의미는 당연히 현재 맥락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신의성실"의 구체적 내용은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현재에 대한 책임도 현재의 절대화를 의미하지 않는다. 법관은 "지금 당장의 여론"을 맹목적으로 따라서는 안 된다. 여론은 변덕스럽고, 때로는 편견에 기초한다. 법관의 역할은 오히려 다수의 열정으로부터 소수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다.

미국 연방대법원이 1940년대 말과 1950년대 초 "적색 공포"(Red Scare) 시대에 공산주의자 처벌 법률을 대부분 합헌으로 본 것은 현재의 절대화였다. 당시 미국 사회는 반공 히스테리에 휩싸여 있었다. 의회는 공산당을 불법화하고, 공산주의 동조자를 처벌하는 법들을 쏟아냈다. 대법원은 이를 대부분 승인했다. 그러나 1960년대가 되자 대법원은 태도를 바꿨다. 많은 법률들을 표현의 자유 침해로 무효화했다. 1950년대 판결들은 "현재의 공포"에 굴복한 비겁한 판단으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법관의 현재에 대한 책임은 "현재의 사회 변화가 충분히 성숙하여 법 해석에 반영될 만한가"를 신중히 판단하는 것이다. 일시적 여론이 아니라 지속적 변화인지, 일부 집단의 주장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합의에 가까운지를 따져야 한다. 군형법 판결에서 다수의견은 "2001년 국가인권위 설립, 2011년 국회 논의, 국제인권기준, 세계적 추세" 등을 종합하여 변화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봤다. 반대의견은 여전히 불충분하다고 봤다. 이런 논쟁 자체가 건강한 것이다.

셋째, 미래에 대한 책임이다. 법관의 판결은 선례가 되어 미래 사건을 구속한다. 따라서 "이 판결이 일반화되어도 법질서가 유지될 수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칸트의 정언명령을 법에 적용하면 이렇게 된다. "내 판단이 보편적 법칙이 되어도 정당한가?"

구체적으로, 법관은 세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첫째, 판결의 예측 가능성이다. 미래 시민들이 이 판결을 보고 자기 행위의 법적 결과를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명확한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 군형법 판결에서 다수의견이 "사적 공간", "합의", "대등 관계"라는 세 요건을 제시한 것이 이것이다.

둘째, 판결의 일관성이다. 이 판결과 다른 영역 판결들이 모순되지 않아야 한다. 법질서는 전체로서 일관성을 가져야 한다. 만약 군형법에서는 사생활을 폭넓게 인정하면서, 다른 형법 영역에서는 사생활을 좁게 해석한다면 모순이다. 법관은 "전체 법질서"의 관점에서 자기 판결의 위치를 점검해야 한다.

셋째, 판결의 수정 가능성이다. 법관의 판단이 완벽할 수는 없다. 나중에 잘못되었음이 드러날 수 있다. 따라서 판결을 쓸 때 "이 판단이 문제가 있다면 어떻게 수정될 수 있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너무 급진적이어서 되돌릴 수 없는 판결은 위험하다. 점진적이고 수정 가능한 판결이 바람직하다.

이 세 가지 책임이 균형을 이룰 때, 법관의 판단은 진정성을 갖는다. 과거를 존중하되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현재에 대응하되 현재에 휩쓸리지 않으며, 미래를 기획하되 미래를 독단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법의 시간 속에서 판단한다는 것의 의미다.

그렇다면 입법자의 도피는 이 구조를 어떻게 해치는가? 입법자가 구체적 기준을 제시하지 않으면, 법관은 과거로부터 명확한 가이드를 받지 못한다. 그래서 현재의 판단에 더 의존하게 되고, 이는 자의적 해석의 위험을 높인다. 또한 법관마다 다른 판단을 내려 미래 예측 가능성이 떨어진다. 입법자의 도피는 법관에게 과도한 부담을 지우는 것이다. 이것이 헤데만의 경고가 법의 시간성 이론과 만나는 지점이다. 입법자가 도피하면 법의 시간적 연속성이 끊어진다. 과거(입법 의도)와 미래(법적 안정성)를 연결하는 고리가 사라지고, 법관의 현재 판단만 남는다. 이는 법치주의를 위협한다.


해결책은 명확하다. 입법자는 도피하지 말아야 한다. 어렵더라도 정치적으로 부담스럽더라도, 구체적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 그것이 민주적으로 선출된 입법자의 책임이다. 그리고 법관은 입법자가 회피한 책임을 떠맡되, 시간적 책임의 구조를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 과거-현재-미래를 통합하는 진정한 판단을 해야 한다.

다음 편에서는 이 이론적 틀을 바탕으로 구체적 제도 개선 방안을 제시할 것이다. 입법 단계, 사법 단계, 사후 책임 단계에서 어떤 장치들이 필요한지, 다른 나라의 경험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를 탐구한다. 법이 명확하지 않을 때 누가 결정하는가라는 첫 편의 질문에 대해, 이제 우리는 답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다음 편 예고: 제4편 "책임 있는 입법을 위하여 - 도피를 막는 제도적 장치"에서는 입법자의 도피를 방지하고 법관의 책임을 지원하는 구체적 제도를 제안한다. 독일의 본질성 이론, 프랑스의 명확성 원칙, 스웨덴의 입법 품질 관리를 참고하여 한국에 적용 가능한 방안을 모색한다.



제3편 참고문헌

I. 국내 문헌


학술논문

강우예, "대법원 판결에 나타난 '전체 법질서' 개념의 의미와 성격", 「법철학연구」 제27권 제2호, 한국법철학회, 2024.

김영미, "법의 시간성과 진정성에 대한 연구", 「법철학연구」 제26권 제3호, 한국법철학회, 2023.



II. 외국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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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판례 및 법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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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해석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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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논문

Herschovitz, Scott, "Integrity and Stare Decisis", in Exploring Law's Empire: The Jurisprudence of Ronald Dworkin, Scott Herschovitz (ed.), Oxford University Press, 2008.

Gurvitch, Georges, The Spectrum of Social Time, Springer, 1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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