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서고 72화
Ⅰ. 서론
Ⅱ. 법감정 개념의 재구성
Ⅲ. 법감정의 형성과 규정요소
Ⅳ. 법감정과 인접 개념의 구별법
Ⅴ. 법감정의 기능과 한계
Ⅵ. 결론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법감정’이라는 말은 사면권 행사, 형사재판의 양형, 헌법재판소의 결정 등 주요 법적 쟁점을 둘러싼 언론 보도와 정치적 담론에서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다.
특히 대통령의 사면, 권력형 부패사건, 군 가산점 제도 위헌결정과 같은 사건에서 “국민의 법감정에 부합하는가 여부”는 거의 상투적인 논거로 동원되어 왔다. 그러나 이때 사용되는 ‘법감정’이 정확히 무엇을 가리키는지, 즉 단순한 정서적 여론인지, 보다 깊은 의미의 일반적 법의식인지, 혹은 향후 법형성을 위한 참고자료 정도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이와 같이 개념이 모호한 상황에서 ‘법감정’은 논증의 전제가 아니라 정치적 수사나 여론 동원의 레토릭으로 기능하기 쉽다. 법감정이 그저 일시적 여론의 솟구침을 수사적으로 포장하는 말에 그친다면, 그것은 법적 현안의 해결방향 설정에 아무런 실질적 기여를 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공론장을 혼탁하게 만들 위험이 있다. 반대로, 법감정이 법발견이나 법형성의 과정에서 일정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개념이라면, 그 실체와 본질을 보다 명확히 규명하고 인접 개념들과의 경계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
이 글은 이러한 문제의식에 따라, 첫째 법감정의 개념과 규정요소를 정리하고, 둘째 정의감과 법의식 등 인접 개념과의 관계를 검토하며, 셋째 법감정이 법의 실효성과 법형성에 갖는 기능을 간략히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법감정을 “무엇이 법인지, 무엇이 법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감정”이라는 이중적 구조를 지닌 법적 가치감정으로 재구성하고, 공적 담론에서 이 개념을 보다 엄밀하게 사용할 수 있는 이론적 토대를 제시하고자 한다.
Ⅱ. 법감정의 개념과 그 규정요소들
법감정이라는 용어는 다의적으로 사용되어 왔으나, 논의들을 종합하면 일정한 핵심은 추출 가능하다.
게르하르트 훗설은 법감정을 정의에 대한 감정, 혹은 당해 사안에 대한 적절하고 형평에 맞는 해결을 통찰하는 능력으로 이해하는 한편, 법적 분쟁에서 정당한 결정을 직관적으로 파악하는 능력으로도 파악한다. 헨켈은 한편으로 법관의 판결력으로서의 법감정, 다른 한편으로 현행법에 대한 존중으로서의 법감정을 구별하여 논의한다.
이러한 설명들은 법감정을 실정법과 긴밀히 결부된 법적 성찰의 감정적 기초로 파악하는 경향을 보인다. 다른 한편, 법사회학적 관점에서는 법감정을 다수 사례와 다양한 상황에서 확인된 축적된 법경험으로 이해한다. 이 관점에 따르면 법감정은 측량불가능한 비합리적 사실이나 순수 직관의 원천이 아니라, 반복된 법적 경험이 응축된 일종의 “축약된 법경험”으로서 법규범의 실효성에 기여하는 요소이다.
법규범은 그것이 법감정과 결합되는 정도만큼, 그리고 관습규범 등 외부 규범과 연동되는 정도만큼 실효성의 계기가 증대된다고 본다. 이러한 논의를 종합하여 변종필은 법감정을 “인간행위의 근본가치로서의 법적인 것에 대한 감정”으로 정의하면서, 이를 실정법적 차원과 초실정법적 차원으로 이분한다.
다시 말해 법감정은 “무엇이 법인지”에 대한 감정(존재 관련, 실정법·사회학적 측면)과 “무엇이 법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감정(당위 관련, 정의·초실정법적 측면)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이때 어떤 차원에 무게를 두느냐는 각 이론이 취하는 가치관점의 차이일 뿐, 법감정이라는 개념 자체는 양 차원을 모두 포함하는 것이 타당하다.
요약하면, 법감정은 특정 규범 질서 속에서 무엇이 법으로 승인되고 있고, 동시에 무엇이 법이어야 한다고 여겨지는지에 대해 주체가 보이는 감정적 반응이며, 이는 실정법적 현실과 초실정적 이상을 잇는 법적 가치감정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1) 감정과 인식의 관계
법감정이 순수한 정서인지, 인식적 요소를 포함하는지에 대해서는 견해가 나뉜다. 리츨러와 하이네만은 인식적 사고가 법감정 형성에 인과적으로 작용하며, 법감정은 법이성·법의지와 긴밀히 결합된 것으로 본다.
반대로 헨켈은 법감정을 인식적 관념·사고과정과 구별되는 감정반응으로 이해한다. 변종필은 법적 경험에서 먼저 일어나는 것은 긍정·부정의 정서적 반응이며, 그 후에야 지적 과정이 자극·심화되어 감정체험에 대한 성찰로 나아간다고 본다. 그러한 의미에서 법감정은 선행하는 감정적 반응이고, 법이성·인식은 후행하는 성찰이라는 시간적·기능적 구분이 가능하다.
다만, 감정과 지적 요소를 하나의 포함관계로 보는 입장, 즉 법감정이 곧 인식요소까지 포괄하는 범주라는 견해는 두 요소의 엄밀한 구별을 어렵게 만들며, 사람마다의 법감정 차이를 설명하는 데도 한계를 가진다고 비판한다. 따라서 법감정은 인식적 요소와 상호작용하지만, 개념상으로는 감정 차원과 인식 차원을 구분하는 것이 타당하다. 법적 사태에 직면한 주체는 먼저 법감정을 통해 “옳음/그름”에 대한 직관적 반응을 하고, 이후 그 반응을 인식적으로 정당화·수정하는 과정을 거친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2)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
법감정을 규정하는 요소로는 타고난 가치감정의 소질, 생활경험과 교육, 사회·문화적 환경, 인격의 성숙도 등이 지적된다. 오버마이어는 여기에 더해 법적으로 중요한 인상과 목적표상을 중요한 요소로 제시한다. 즉, 삶 속에서 반복적으로 접하는 법적 인상들이 통찰로 이어지고, 이러한 인상과 통찰의 상호작용이 법과 불법에 대한 감정을 강화해 간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시간의 경과 속에서 법의 창조·해석·적용에 관한 목적표상, 이익형량의 우선순위, 규범의 승인·해석·적용에 관한 방법적 원칙 등이 형성되며, 이는 개별자의 법감정을 일정한 방향으로 조직화한다. 이처럼 여러 주관적·환경적 요소들이 중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개인의 법감정은 매우 상이한 양상으로 형성된다.
이러한 요소들은 개인의 법감정을 이해하기 위한 일종의 “해석학적 선이해”로 기능하며, 법감정에 대한 타자의 이해와 비판 역시 이 선이해를 전제할 수밖에 없다.
법에 관해 알고 그 효과를 인식하는 모든 사람은 법감정의 주체가 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중요한 주체는 직무상 법적 결정을 내리고 통제하는 정치가, 입법·행정·사법의 법실무가들이다. 이들의 법감정은 법규범의 해석·적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며, 법질서의 방향 설정에도 결정적이다.
언론 종사자들의 법감정 역시 여론 형성과 공론장 구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법공동체의 개별 구성원 일반도 간과할 수 없다. 특히 기존 권력이 타락하여 제도적 법기관들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국민의 일반적 법감정이 부정의에 저항하고 새로운 법질서를 요청하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
다만 이 경우에도 권력관계에 의해 조작되거나 왜곡된 법감정이 ‘국민 일반의 법감정’으로 오용될 위험이 상존하기 때문에, 합리적 수렴절차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법감정과 정의감의 관계에 대해서는 양자를 동일시하는 견해와 구별하는 견해가 공존한다. 헨켈은 정의감이 분배적·교정적 정의의 지도원칙, 예컨대 ‘같은 것은 같게’, ‘손해의 원상회복’과 같은 규범에 대한 감정적 반응이라는 점에서, 보다 특정한 내용을 지닌다고 본다.
정의감은 오로지 정의 문제에 대한 결정을 목표로 하고, 법적 안정성 등 다른 가치들은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법감정과 구별된다는 주장도 있다. 반대로 치펠리우스는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양심적으로 판단하여 어떤 것을 정당하다고 여기는 감정을 ‘법감정’으로 이해하며, 정의감과 병렬적으로 사용한다.
켈젠은 정의와 관련된 법감정을 ‘정의감’으로 규정하여, 정의감을 법감정의 특수한 형태로 본다. 변종필 역시 법의 두 차원(실정법과 초실정법)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정의감을 “정의문제와 관련된 법감정의 한 측면”으로 파악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제안한다.
이 글은 이러한 입장에 따라, 정의감을 정의에 관한 법감정의 특수한 양태로 이해하고, 보다 포괄적인 개념으로서의 법감정 안에 포함되는 것으로 본다. 그 결과, 모든 법감정이 정의감을 포함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의감은 항상 법감정의 한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고 정리할 수 있다.
법의식은 법적으로 중요한 대상에 대한 의식과정을 가리키며, 실정적 법의식(현행법에 대한 의식)과 이상적 법의식(정당한 법에 대한 의식)으로 구분된다. 개인의 법의식은 소질, 인격적 발전, 문화·역사적 환경 등에 의해 규정되며, 이러한 요소들은 동시에 법감정을 규정짓는 요소이기도 하다.
법의식은 여타 윤리적 표상과 결합되어 나타나지만, 인간 공동생활의 규율이라는 특정 단면만을 포괄한다는 점에서 일반 윤리의식과는 구별된다. 법감정과 법의식은 엄밀하게 구분하기 어렵지만, 헨켈은 감정생활의 심층에 위치한 법감정반응과, 사유적 자아의 자각 영역에 놓인 법의식을 구분할 것을 제안한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법감정은 법·불법에 대한 개괄적 감정 반응을 통해 해결의 착상을 제공하는 반면, 법의식은 그 착상을 인지적으로 발전시켜 정당한 법이 무엇인지에 대한 명료한 표상을 형성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와 같은 구분에 따르면, 법감정은 자발적·비성찰적 반응, 법의식은 성찰적·사유적 규범 인식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위치지을 수 있다.
법적 판단은 통상 법감정의 선행적 반응과 법의식의 후속적 성찰이 결합된 형태로 이루어지지만, 이론적으로는 두 층위를 구분함으로써 “느낌”과 “판단”의 차이를 보다 분명히 설명할 수 있다.
법감정은 먼저 법침해나 권리침해, 지위·신분·완전성의 침해에 대한 부정적 반응으로 나타나는 소극적 기능을 갖는다. 후프만이 지적하듯, 평소에는 잠재되어 있던 법감정이 불법의 체험을 계기로 갑자기 돌출하여 강렬한 거부감과 저항의 감정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예링이 말하는 “권리를 위한 투쟁” 역시 이러한 법감정의 소극적 기능을 전제로 한다.
동시에 법감정은 법의 준수와 정당한 처우에 대한 만족감·안도감으로 나타나는 적극적 기능을 갖는다. 법감정이나 정의감, 규범의 정당성에 대한 믿음과 같은 내면적 태도는 범죄적 충동과 맞서 규범 신뢰를 유지하게 하고, 이로써 법의 실효성을 증대시키는 역할을 한다.
즉 법감정은 법의 침해에 대한 저항뿐 아니라 법의 지지·내면화를 통해 법질서를 유지하는 데 기여한다.
법감정은 개인에게는 법발견·법형성의 보조수단으로, 집단에게는 합의 형성의 계기로 기능한다. 개인은 법적 사태에 직면할 때 자신의 법감정을 통해 무엇이 정당한지에 대한 직관적 판단을 하고, 이를 토대로 구체적 법해석·법형성에 나아간다. 집단적 차원에서는 비슷한 방향의 법감정이 다수에 의해 공유될 때, 그것이 역사적·상대적 의미에서 객관적 기준처럼 작용하여 법공동체 전체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러나 헨켈이 지적하듯, 법감정은 법규율의 일부 영역에서 단편적·개괄적으로만 작용하며, 광의의 법획득 영역 전체를 대신할 수는 없다. 법감정을 모든 실정법의 근원으로 보는 견해는, 법감정의 부분적·보조적 성격을 과대평가한 결과로 비판될 수 있다.
법감정은 사물의 본성에 대한 통찰, 사회구조에 대한 분석, 체계적 규범 이론 등 다양한 요소들과 결합될 때 비로소 건설적인 법획득의 요소로 기능할 수 있다.
법감정은 “무엇이 법인지, 무엇이 법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감정”이라는 이중적 구조를 지닌 법적 가치감정으로서, 실정법적·사회학적 차원과 초실정법적·규범적 차원을 동시에 가진다.
그것은 타고난 가치소질, 삶의 경험, 교육과 문화, 인격의 성숙도, 법적 인상과 목적표상 등에 의해 규정되는 복합적 현상이며, 감정과 인식의 상호작용 속에서 형성된다.
법감정은 정의감과 법의식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으나, 정의감은 정의문제와 관련된 법감정의 특수한 형태이고, 법의식은 법감정을 인지적으로 정교화하는 상위 층위라는 점에서 구별될 수 있다.
법감정의 소극적·적극적 기능과 법획득·법형성에서의 보조적 역할을 인정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법감정을 법원의 지위로 격상시키려는 시도를 경계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법감정을 공적 담론에서 완전히 배제하려는 입장과도 거리를 둔다.
한국 사회에서 ‘국민의 법감정’이 정치적 수사를 넘어, 법적 현안에 대한 공론 형성과 법형성의 의미 있는 계기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와 같은 개념적 정리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개념 정리는 이어질 규범·방법론적 논의, 특히 법감정을 어떻게 일반화하고 절차 속에서 공적 기준으로 재구성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다루는 두 번째 글의 토대가 될 것이다.
2026. 2. 25.
변종필, 「법감정의 일반화를 위한 제언」, 『법철학연구』 제3권 제1호, 한국법철학회, 2000.
한스 켈젠, 『순수법학』, 변종필·최희수 옮김, 길안사, 1999.
라인홀트 치펠리우스, 『법의 본질』, 이재룡 옮김, 길안사, 1999.
양건, 『법사회학』, 민음사, 1986.
임웅, 「법감정에 관한 연구」, 『법철학연구』 제1권, 한국법철학회,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