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고지기의 생각, 제7면
형법 제252조 제2항은 “사람을 교사하거나 방조하여 자살하게 한 자”를 처벌함으로써, 자살 자체는 비범죄로 두면서도 자살 관여행위에 대하여는 독자적인 형사책임을 인정한다. 이러한 규율 방식은 한편으로는 생명권 보호라는 형법의 전통적 기능을 반영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개인의 자기결정권, 나아가 죽음에 관한 자기결정권과의 긴장을 노정한다.
기존 논의는 주로 자살방조죄의 구성요건과 공범론적 구조, 그리고 생명권 보호 중심설과 자율성 중심설이라는 가치충돌 구도 속에서 형벌 정당성을 논의해 왔다. 필자는 여기에 더하여 이소영의 "‘죽을 권리’와 생명정치"는 푸코의 생명권력·생명정치 이론을 도입하여, “어떤 죽음이 허용되거나 금지된 것으로 구성되는가”라는 메타 차원의 문제를 제기한다. 이 글은 이러한 세 층위를 결합하여 한국 형법상 자살방조죄와 죽음에 관한 자기결정권 논의를 재구성하고자 한다.
형법 제252조는 제1항에서 촉탁·승낙에 의한 살인을, 제2항에서 자살의 교사·방조를 규정하고, 양자를 동일한 법정형(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 아래에 둔다. 자살은 구성요건화되어 있지 않지만, 그 교사·방조는 독립된 범죄구성요건으로 규정되어 있다는 점에서 특이한 구조를 가진다.
학설은 이를 두고, 자살이 실질적으로는 생명법익 침해임에도 형사정책적 이유로 비범죄화되었고, 제3자의 관여만을 별도의 구성요건으로 끌어올린 것으로 이해하는 견해가 다수이다. 자살방조죄는 자살에 대한 “공범규정”이 아니라, 자살 관여를 대상으로 하는 독립범으로 파악되는 것이다.
자살방조는 일반적으로 “자살하려는 사람의 자살 실행을 용이하게 하는 행위”로 정의되며, 물질적·정신적, 적극적·소극적 행위 모두를 포함할 수 있다.
물질적·적극적 방조: 자살도구의 제공·구입 알선, 자살 장소로의 운반, 구체적 준비의 지원 등.
정신적 방조: 이미 자살을 결의한 자에 대한 조언·격려·동조 등으로 결의를 강화하여 실행을 용이하게 하는 행위.
소극적 방조: 부모·교사·의료인 등 보호의무자가 자살 실행을 인식하고도 구조·제지를 의도적으로 하지 않아 자살을 용이하게 하는 경우의 부작위 방조.
다만 자살의 주체는 원칙적으로 자기 자신이고, 방조자는 실행을 용이하게 하는 조력자에 머물러야 한다는 점에서, 직접 생명침해행위를 하는 촉탁·승낙살인과 구별된다.
자살 자체를 비범죄로 두면서 그 방조·교사를 처벌하는 구조는 공범론적 긴장을 내포한다. 다수설은 자살을 생명법익 침해행위로 보되, 처벌 실익과 인권적 문제(사후처벌, 미수·실패 처벌의 부작용 등)로 인해 구성요건에서 제외된 것으로 해석한다. 반면 제3자의 관여는 우회적 살인 가능성과 취약자에 대한 위험을 고려해 독자적 사회유해성이 인정된다고 설명한다.
생명권 보호 중심설은 생명을 모든 기본권 행사의 전제이자 최고도의 법익으로 이해하고, 국가가 생명을 가능한 한 보호해야 할 의무를 지닌다는 점에서 출발한다. 이 견해에 따르면 자살방조죄는 생명에 대한 강력한 보호원칙의 표현이며, 자살 그 자체가 비범죄라고 해서 그 관여까지 허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 강조된다.
이 입장은 자살관여 처벌의 주요 근거로 다음과 같은 요소를 제시한다.
우회적 살인 방지: 자살을 빙자해 타인의 생명을 제거하는 ‘사회적 타살’을 막기 위해 제3자의 관여를 광범위하게 금지할 필요가 있다.
취약자 보호: 고령자, 장애인, 빈곤층, 중증·말기 환자 등은 가족·사회·경제적 압박에 취약해 “죽는 것이 덜 부담스럽다”는 구조적 강요 아래 놓일 수 있고, 조력자살 허용은 이들에 대한 죽음 압력을 강화할 위험이 있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자살방조·조력자살에 대한 형벌은 취약자 보호와 생명존중 규범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방어선으로 정당화된다.
생명권 보호 중심설에 따르면 자살방조죄는 생명·취약자 보호라는 정당한 목적을 향한 적합한 수단이며, 자살률·사회적 위험 등을 감안할 때 다른 수단만으로는 충분한 예방·보호가 어려워 형벌 규제가 여전히 필요하다는 논리가 제시된다. 다만 형벌의 범위와 강도가 과잉인지 여부는 별도의 비례성 논의 대상이 된다.
자율성 중심설은 인간의 존엄과 인격의 자유로운 발현에서 파생되는 자기결정권을, 특히 성년·정신능력자가 숙고하여 내린 삶과 죽음에 관한 결정 영역에서 핵심 가치로 본다. 생명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생명을 “당사자의 삶”으로 보고 그 의미부여와 종료 시점·방식을 스스로 정할 수 있는 권리가 일정 범위 인정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성년·정신능력자에 의한 반복적·숙고된 결정과 충분한 정보 제공 및 상담이 전제되는 경우, 생명 유지 자체보다 자기결정권이 우선할 수 있으며, 국가가 이를 형벌로 전면 봉쇄하는 것은 과도하다고 비판한다.
이 입장은 모든 자살을 허용하자는 것이 아니라, 자율적 선택과 비자율적 선택을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율적 선택: 충분한 정보와 숙고, 정신능력을 갖춘 상태에서의 반복된 의사표시
비자율적 선택: 중대한 우울·정신질환, 강요·기망, 경제적 압박, 관계 폭력 등으로 사실상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경우.
전자는 일정 범위에서 존중될 수 있는 반면, 후자는 국가와 주변인의 적극적 개입·예방이 요구되는 대상이라는 점에서 자살예방·복지정책이 강조된다.
자율성 중심설은 자살방조죄의 광범위한 형벌화에 대해, 목적의 정당성은 인정하더라도 형벌은 최후수단이어야 하며, 자살예방 정책·정신건강 서비스·복지·호스피스 등 덜 침해적인 수단이 충분히 발달되지 않은 상태에서 성인의 자율적 선택까지 일률적으로 처벌하는 것은 최소침해 원칙과 법익균형에 반할 수 있다고 비판한다.
특히 말기·불치의 고통 속에서의 조력자살까지 전면 금지하는 것은, 국가가 개인에게 고통을 감내할 의무를 강요하는 것과 유사한 효과를 가져온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생명권 보호 중심설과 자율성 중심설은 모두 인간의 존엄과 생명, 자유를 존중한다는 점에서 공통되지만, 어느 가치를 우선 기준으로 삼는지에서 구별된다. 생명권 보호 중심설은 “국가는 생명을 어디까지 지켜야 하는가”를, 자율성 중심설은 “개인은 자신의 삶과 죽음을 어디까지 결정할 수 있는가”를 우선적 질문으로 삼는다.
생명권 보호 중심설: 자살방조·조력자살은 우회적 살인 및 취약자에 대한 구조적 압력을 야기할 수 있으므로 광범위한 형벌 규제가 정당화된다.
자율성 중심설: 강요·기망, 취약자 대상, 영리적 조력자살 산업화 등 자율성을 파괴하거나 악용하는 행위에 대해서만 엄격한 형벌이 허용되고, 성년·정신능력자의 자율적 선택까지 전면 금지하는 것은 비례성을 결여한다고 본다.
비례성(과잉금지) 원칙에 비추어, 생명권 보호 중심설은 목적의 정당성과 수단의 적합성은 비교적 쉽게 인정되지만, 형벌의 범위·강도가 최소침해·법익균형 요건을 충족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자율성 중심설은 이러한 비례성 요구를 엄격히 받아들이는 대신, 취약자 보호와 구조적 불평등 문제를 충분히 헤지하지 못할 경우 “형식적 자율성”에 머무를 위험이 있다.
이소영은 ‘죽을 권리’ 논쟁을 둘러싼 윤리주의 담론과 자유주의 담론 각각이, 사실은 푸코가 말하는 생명권력(biopower)의 서로 다른 구성 형태라고 분석한다. 전통적 논의가 “자살·안락사가 위법인가, 어떤 조항으로 정당화되는가”를 묻는 데 집중했다면, 이 논문은 “어떻게 어떤 죽음은 자연사·존엄사·소극적 안락사로, 어떤 죽음은 조력자살·살인으로 분류되도록 주장되었는가”를 묻는다.
이 관점에서 보면, 생명권 보호 중심설과 자율성 중심설은 서로 다른 가치선택이면서 동시에, 각각 특정 방식으로 삶과 죽음을 규율·관리하는 생명정치적 담론 구조의 일부이다.
이소영은 고대 그리스·로마에서의 명예·고통 회피를 위한 자살 승인, 기독교·자연법·칸트를 통한 자살의 죄악화·범죄화, 근대 이후 자살 비범죄화 및 소극적 안락사의 부분 허용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계보적으로 정리하면서, 인권법의 발전이 단순한 권리 확장이 아니라 “허용 가능한 자기죽음의 범위를 지속적으로 선별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지적한다.
이를 도식화하면,
[자살 X – 소극적 안락사 X – 적극적 안락사 X]
→ [자살 O – 소극적 안락사 X – 적극적 안락사 X]
→ [자살 O – 소극적 안락사 O – 적극적 안락사 X]
의 순서로 진행되어 왔고, 이론적으로는 [자살 O – 소극적 안락사 O – 적극적 안락사 부분적 O]에 이르는 국가들도 존재한다.
이 과정은 한편으로는 자기결정권의 확대이지만, 동시에 “어디까지를 허락될 수 있는 자기죽음으로 볼 것인가”라는 경계를 정교하게 그려 나가는 배제적 포섭(exclusive inclusion)의 과정이기도 하다.
연명치료 중단(소극적 안락사)은 부작위에 의한 “죽게 내버려둠”으로, 의사조력자살·적극적 안락사는 작위에 의한 “죽게 함”으로 구별되며, 전자는 허용·정당화, 후자는 금지·처벌의 기준이 된다. 이소영은, 인공호흡기를 끄는 행위와 치사량 약물 투여 사이의 도덕적 차이가 그렇게 자명한지 의문을 제기하며, 쿠세의 “도덕적 차이 신화(moral difference myth)”를 인용해 이 이항대립이 생명권력의 조종 기술로 기능할 수 있다고 분석한다.
이 비판을 자살방조·조력자살 논의에 적용하면, 연명치료 중단을 허용하면서 의사조력자살을 전면 금지하는 현 구조는, 소극적·적극적 안락사 사이에 본질적인 윤리적 차이가 있다는 전제를 포함하고 있으며, 그 전제 자체가 생명정치적 구성물일 수 있다는 점을 드러낸다.
이소영은 또한 자유주의적 “죽을 권리” 담론이 생명권력의 역외에 있는 순수한 자율성의 표현이 아니라, 의료·보험·복지·노동 체계 속에서 “어떤 죽음이 좋은 죽음인가”를 새롭게 규범화하는 장치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스위스 디그니타스가 ‘마지막 인권(the last human right)’이라는 수사로 조력자살을 홍보하는 사례는, 죽을 권리가 인권의 최종 확장이자 동시에 인구관리·비용 통제의 수단이 될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이 분석은 자율성 중심설을 무력화한다기보다, 자율성 중심설이 주장하는 자기결정권 역시 권력 관계 속에서 형성된 욕망과 규범이라는 점을 자각해야 한다는 요구로 이해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자율성을 옹호하되, 그 자율성 자체의 생명정치적 조건을 성찰하는 자율성 이론”으로의 정교화가 요청된다.
헌법재판소 2008헌마385 결정과 대법원 2009다17417 전원합의체 판결은, 회복불가능한 사망 단계에 이른 환자의 연명치료 중단 요청을 헌법 제10조의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에 기초한 자기결정권의 행사로 인정하였다. 이 판례들은 생명단축과 직결된 결정이더라도, 이를 자살로 취급하지 않고 “무의미한 연명치료 거부”라는 맥락에서 제한적 죽음의 자기결정을 승인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는 생명권 보호 중심설이 지배하는 가운데서도, 죽음에 관한 자기결정권이 헌법적 차원에서 점진적으로 인정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연명치료 중단은 ‘죽게 내버려둠’이라는 부작위의 틀 안에서 허용된 것이며, 이는 앞에서 본 “죽게 함 vs 죽게 내버려둠” 이항대립을 전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생명정치적 함의를 갖는다.
루게릭병 환자 등의 조력존엄사 관련 헌법소원에서, 청구인들은 ‘죽음에 관한 자기결정권’을 근거로 형법상 자살관여죄와 입법부작위의 위헌성을 주장하고 있다. 이 사건에서는 생명권 보호 중심설과 자율성 중심설의 가치충돌뿐 아니라, 연명치료 중단과 조력자살 사이의 규범적 차등이 정당한지, 그리고 그 차등이 비례성 원칙과 생명정치적 관점에서 어떻게 평가될 것인지가 핵심 쟁점이 될 것이다.
이소영의 분석에 비추어 보면, 헌법재판은 자살방조·조력자살의 위헌 여부뿐 아니라, “어떤 죽음이 허용되고 어떤 죽음이 허용되지 않는가를 결정하는 권한을 누가, 어떤 기준으로 행사하는가”를 둘러싼 통치 구조의 문제로까지 확장될 수 있다.
한국 형법상 자살방조죄는 생명이라는 고도의 법익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자살 자체의 비범죄성과 죽음에 관한 자기결정권의 점진적 승인 사이의 긴장을 내포한다. 생명권 보호 중심설은 우회적 살인 방지와 취약자 보호라는 중요한 목적을 강조하며 자살방조죄의 정당성을 주장하지만, 자율성 중심설은 성년·정신능력자의 숙고된 결정까지 형벌로 일괄 봉쇄하는 것은 비례성과 자기결정권 보호에 반한다고 비판한다.
이소영의 생명정치 분석은 이 논쟁 위에 제3의 시각을 더한다. 즉, 자살·안락사·조력자살을 둘러싼 법담론은 단순한 가치형량의 결과가 아니라, “허용 가능한 죽음의 범위를 설정하고, 그 경계 안팎으로 주체와 신체를 배치하는 생명권력의 장치”라는 점을 드러낸다. 연명치료 중단을 허용하면서 조력자살을 금지하는 현재의 이원적 구조는 “죽게 내버려둠 vs 죽게 함”이라는 이항대립을 전제로 하며, 이 구별 자체가 자연적 사실이라기보다 규범적으로 구성된 생명정치의 결과일 수 있다.
향후 입법·해석론에서 요구되는 것은, 첫째, 자살방조 처벌 범위를 자율성을 파괴하거나 악용하는 행위(강요·기망, 취약자 대상, 영리적 조력자살 등)에 집중시키는 정교한 구성요건 설계, 둘째, 자살예방·정신건강·복지·의료체계와의 통합적 접근을 통해 형벌의 보충성을 실질화하는 것이다. 동시에, 죽을 권리와 자살방조를 둘러싼 모든 논의는, 그것이 어떤 삶과 죽음을 정상화·비정상화하는지, 어떤 주체를 포섭·배제하는지에 대한 생명정치적 성찰과 병행될 때에만, 생명권 보호와 자기결정권의 조정이 단순한 구호를 넘어 실질적인 법이론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2026. 2. 27.
이소영, 「‘죽을 권리’와 생명정치: 생명의 종결을 둘러싼 법담론 분석의 한 예」, 『법학연구』 제61권 제2호, 2020.
연명치료 중단 및 안락사 관련 국내 형사법·헌법·의료법 논문들(임웅, 이주희, 조한상 등)
푸코, 『성의 역사 1: 앎의 의지』 및 생명권력·생명정치 관련 2차 문헌들
+ 기타 네덜란드·영국·스위스 등의 안락사·조력자살 입법 및 판례에 관한 비교법 연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