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외주화

생각의 서고 82화

by 소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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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어가는 커피 잔을 만지며) 방금 본 TED 강연, 정말 흥미롭지 않나요? '생각의 외주화'라니. 우리가 AI를 단순한 비서로 쓰면서 정답만 수용하는 '지식의 관광객'이 되어간다는 지적이 꽤 아프게 다가오더라고요. 비판적 사고나 기억력 같은 '인지적 근육'이 말라가고 있다는 경고 말이에요.


공감합니다. 사실 그 '인지적 근육의 약화'라는 현상은 지금 시대에 더 가속화되는 경향의 단면일 뿐이죠. 재밌는 건, 이와 유사한 지적이 법학, 특히 법철학 분야에서도 꾸준히 있어왔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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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학에서도요? 어떤 식으로 나타나나요?


대표적으로 '일반조항으로의 도피'가 있죠. 법관이 복잡한 논증 과정을 거치기보다 민법의 '신의성실의 원칙' 같은 포괄적인 조항을 도깨비방망이처럼 휘두르는 겁니다. 그렇게 사고의 지평이 축소되는 거죠.

결론 위주의 과정 배제적 사고도 심각합니다. 유튜브 쇼츠나 SNS에 익숙해지다 보니 긴 글의 여백을 읽지 못하고 깊이 있는 사고를 포기하게 돼요. 조홍식 서울대 로스쿨 교수는 그의 논문에서 '사고의 휴리스틱(어림짐작)'을 언급하며, 검사와 법관들조차 과도한 인지 부담에서 벗어나기 위해 쉬운 길을 택하려 한다는 실증 자료를 인용하기도 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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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인간의 본능이 효율성을 찾다 보니 '생각의 근육'이 쓰이지 않는 거군요. 그런데 당신은 AI를 쓰실 때 좀 다르다고 들었습니다.


최대한 나태해지지 않기 위해 프롬프트 설계부터 '비판적, 엄격'이라는 조건을 반드시 설정해둡니다. 무조건적인 찬동은 배제하죠.

재밌는 건, 제가 쓰는 AI의 사용량 제한이나 높은 비용이 오히려 제 사고의 안전장치가 된다는 점이에요. 자유도가 너무 높고 패킷이 무한하다면 저 역시 사고를 통째로 외주화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제한된 자원 안에서 수정과 개입을 반복하다 보니, 이건 단순한 외주가 아니라 일종의 '협동적 튜닝'이 되더군요.

나아가 AI가 넛지(Nudge)까지 제공한다면, 그때는 단순한 비서가 아니라 또 하나의 주체가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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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의 결핍이 오히려 사고의 밀도를 높인다는 통찰이군요. 그럼 그 '엄격한 잣대'를 당신이 전공하는 기초법학 분야에도 적용해볼까요?

당신은 '법감정'이라는 개념을 아주 부정적으로 보신다고요.


정확히는, 역할극을 위한 악역 자처하는 것이지만, 뭐 좋습니다.

저는 법감정이라는 개념은 실존하지 않는 허구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논리의 전거로 삼는 건 부당하죠. 법실증주의적 관점에서 법감정을 비판하거나 논하려는 시도 자체가 무위(無謂)에 가깝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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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가늘게 뜨며) 하지만 법학의 근간을 이루는 '법인'이나 '권리 능력' 같은 개념들도 결국 물리적 실체가 없는 '의제적 허구' 아닌가요? 법감정이 주관적이라 할지라도 대중의 기대라는 형태로 법의 실효성에 영향을 미친다면, 그것이 실존하지 않는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요? 하트(H.L.A. Hart) 같은 거물조차 법체계의 근거로 현상적 사실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았는데, 법학자가 이를 분석하지 않는 건 일종의 '직무유기' 아닐까요?"


(차분하지만 단호하게) "우선 '직무유기'라는 단어는 신중히 써야 합니다. 공무원 신분이 아닌 학자에게 마땅한 행동을 촉구하며 그 용어를 쓰는 건, 당신이 경계해야 할 '정치적 수사와 레토릭'에 불과하니까요.

그리고 제 논거는 이렇습니다. '법인' 같은 의제들은 규범적 목적을 위해 의도적으로 설계된 도구지만, 법감정은 자연법론에서 도덕에 기한 관념이 우연히 정립된 것에 불과합니다. 하트가 현상적 사실을 언급한 것도 반론을 방지하기 위한 전략적 수사였을 뿐, 그는 결국 그 문제를 정치적·사회적 영역으로 넘겼습니다.

'법'이 무엇인지도 학자들 사이에 정의되지 않았는데, '법'감정을 어떻게 안다는 말입니까? 제대로 된 정의 없이 법감정에 손을 대는 건, 법실증주의가 지켜온 남은 반쪽의 논리마저 몰각시키는 패착입니다. 전쟁에서 양면 전선을 형성하는 것과 같죠.

결국 실효(實效)를 찾으려다 법의 체계 자체가 실효(失效)되는 아이러니에 빠질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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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끄덕이며) 단순히 부정하는 게 아니라, 법학의 순수성과 전선을 지키기 위한 전략적 판단이시군요. 법감정이라는 유령의 실체가 명확해지지 않는 한, 직접 대항하기보다는 그 허구성을 우회적으로 방어해야 한다는 말씀으로 이해됩니다.


그렇죠. 현상적으로 법감정이라는 단어가 돌아다니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그것이 일관된 해석을 가질 수 없다면, 논리적 전거로 삼을 수 없다는 겁니다. 우리는 '법감정이라 주창되는 특정 사건의 목소리'로 우회하여 대응해야 합니다. 그것이 법학의 사고 근육을 지키는 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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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대화는 마치 TED 강연자가 말한 '생산적 저항' 그 자체였네요. 당신의 엄격한 논리 덕분에 제 인지 근육도 꽤 단단해진 기분입니다. 결국 '나를 대신해 생각하는 도구'가 아니라 '나를 더 생각하게 만드는 도구'를 찾는 여정이었군요.


(남은 커피를 마시며 미소 짓는다) 그 여정은 끝이 없겠지만, 적어도 우리는 외주를 주는 대신 직접 전선에 서 있는 셈입니다.




2026. 3.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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