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서고 81화
필자는 평소에 기초법 관점에서 법왜곡죄에 관한 일련의 글을 브런치에 작성한 적이 있다.
법왜곡죄의 법철학적 기초와 헌법적 한계 사이의 딜레마 , 통치권 정당화 논리의 허구성과 입법책임에 관하여 통치권 정당화 논리의 허구성과 입법책임에 관하여(2), 입법책임의 법철학적 재구성 재판소원 도입의 비교법적 분석 및 전제조건에 관하여 , 책임 있는 입법을 위하여 - 도피를 막는 제도적 장치
공교롭게도 금일, 문화일보 3월 5일에 게재된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기고문; 법왜곡죄 실체는 ‘사법의 정권 종속’[시평]과 이에 대한 비판으로 세상을 바꾸는 언론 민들레 3월 8일에 김현철 변호사가 올린 글; 법왜곡죄가 '정권 종속'?…시민의 권리와 자유 지켜줘을 접하였는바, 기록을 위해 본 글을 작성한다.
초록
2026년 3월 5일 법왜곡죄에 관한 형법 일부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하였다. 이를 전후하여 차진아 교수(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와 김현철 변호사 사이에 공방이 전개되었는데, 본 글은 김현철 변호사의 반박 기고문(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2026. 3. 8.)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통해 법왜곡죄 찬성'론'의 취지에서 작성한 김현철 변호사의 논증 구조가 갖는 한계를 밝히고자 한다.
구체적으로, (1) '편향·의도'의 선단적 확정과 감정적 수사, (2) 법체계 차별성 논거에 대한 허수아비 공격의 오류와 실효성 논증의 한계, (3) 형법 내 신설 조항의 '특별법' 프레임 적용의 법형식론적 부정확성, (4) 비교법적 명확성 논증에서 해석 공동체의 성숙도를 간과한 문제, (5) 과잉금지 원칙에 대한 순환논증, (6) '입법주권에 대한 모독'이라는 개념의 불명확성과 감정적 수사, (7) 사법부 책임론에의 부분적 동의와 그 한계, (8) '왕'의 메타포를 입법부로 확장하는 입법부 책임론의 단초를 검토한다.
나아가, 사법부에 대한 형사책임 강화를 추진하면서 입법부 자신은 어떠한 책임 메커니즘으로부터도 자유로운 비대칭 구조를 지적하고, 이를 후속 연구의 출발점으로 제시한다.
주제어: 법왜곡죄, Rechtsbeugung, 명확성 원칙, 과잉금지 원칙, 입법주권, 입법부작위, 입법부 책임론, 사법개혁
2026년 2월 26일, 국회 본회의에서 형법 제123조의2 법왜곡죄 신설을 포함한 형법 일부개정법률안이 통과되고, 같은 해 3월 5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되었다. 이른바 '사법개혁 3법'(법왜곡죄·재판소원·대법관 증원)의 일환으로, 법관·검사 또는 범죄수사에 관한 직무를 수행하는 자가 타인에게 위법 또는 부당하게 이익을 주거나 권익을 해할 목적으로 일정한 행위를 한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과 10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는 것이 그 골자이다.
이 입법을 둘러싸고 학계·법조계에서 첨예한 대립이 전개되었다. 차진아 교수(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는 문화일보 시평(2026. 3. 5.)에서 법왜곡죄의 위헌성을 세 가지 논거—법체계의 차별성, 명확성 원칙 위반, 과잉금지 원칙 위반—로 주장하였고, 이에 대해 김현철 변호사는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기고(2026. 3. 8.)를 통해 조목조목 반박하였다.
본 글의 목적은 김현철 변호사의 반박 기고문이 갖는 논증 구조의 한계를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데 있지만 결코 법왜곡죄 찬·반 그 자체에 대한 단정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오히려 찬성론의 대표적 텍스트가 어디서 논점을 이탈하고, 어디서 자기 주장과 모순되며, 어디서 개념을 정의하지 않은 채 방치하는지를 적시함으로써, 이 논쟁이 보다 생산적인 방향으로 진전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
분석의 두 축은 '김현철 글의 논리·표현이 얼마나 정당한지'와 '법이론적으로 어떻게 보이는지'이다.
김현철 변호사는 차진아 교수의 기고 제목 '법왜곡죄 실체는 사법의 정권 종속'에 대해, 이를 '사법의 (민주당) 정권 종속'이라는 편향적 프레임을 의도한 것이라 단정하고, '이러한 프레임이나 전제가 논쟁의 가치 없이 부당한 것임은 물론'이라고 선언한다.
'편향·의도'라는 표현 자체는, 정치·입법 논쟁에서 법률가들 사이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어휘이므로 '법률가에게 나올 수 없는 단어'라고까지 보기는 어렵다. 다만, 논점이 되는 견해를 두고 '논쟁의 가치 없이 부당하다'고 단정하는 어조는 학술적 논증이라기보다 정치적 논평에 가깝다.
'논쟁의 가치 없이'라는 문구는 상대 견해의 허용가능한 논리 범위를 검토하지 않은 채, 처음부터 논외로 밀어내는 효과를 갖는다. 이는 상대를 비합리적 존재로 처리하는 수사에 가까우며, 학술적 글쓰기 기준에서는 상당히 무거운 표현이다. 법률가의 공적 글쓰기에서 상대방 주장의 부당성은 논증적으로—즉 전제의 오류를 밝히거나 추론의 비약을 적시하여—입증되어야 한다. 그러나 김현철 변호사는 '물론'이라는 한 단어로 그 입증 과정 전체를 생략하였다.
나아가 차진아 교수의 원래 제목에는 '(민주당)'이라는 한정어가 존재하지 않는다. 김현철 변호사가 이를 삽입하여 재구성한 뒤, 그 삽입된 버전을 기준으로 편향을 논하는 것은 상대가 하지 않은 말을 덧붙인 뒤 그것을 비판하는 것이다. 이러한 서술 방식은, 의도를 먼저 확정한 뒤 그 확정된 의도를 근거로 논의 자체를 폐기하는 전략으로서, 논증의 순서를 전도시킨 것이다.
차진아 교수가 제기한 첫 번째 위헌 논거는 '법체계의 차별성'이다. 독일에는 직권남용죄와 직무유기죄가 부재하고 기소법정주의를 택하고 있기 때문에 법왜곡죄(Rechtsbeugung)가 그 기능적 공백을 메우는 것이지만, 한국에는 이미 직권남용죄(형법 제123조)와 직무유기죄(형법 제122조)가 존재하므로 법왜곡죄를 별도로 신설할 경우 체계적 중복과 혼란이 발생한다는 것이 그 요지이다. 즉, 차진아는 '한국에는 이미 직권남용·직무유기 같은 범죄구성이 있기 때문에 독일식 법왜곡죄를 도입할 필요성이 낮다'는 식으로 법체계 구조의 차이를 논하고 있다.
이에 대해 김현철 변호사는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판사나 검사의 직무상 행위로 직권남용죄와 직무유기죄가 처벌된 사례가 있는가? 없었다'고 응수하며, '판사·검사 직무에 직권남용·직무유기 적용 사례가 없다 → 그래서 법왜곡죄라는 특별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식으로 실효성·집행부재를 근거로 논증한다.
여기서 논점의 이탈이 발생한다. 차진아 교수의 주장은 구조적 차별성(법이 존재하느냐, 어떤 식으로 조직되어 있느냐)에 관한 것인데, 김현철 변호사는 이를 집행의 빈도(실제로 처벌 사례가 있었느냐)로 돌려 반박하고 있다. 원래 논제를 바꿔친 허수아비 공격(straw man fallacy)의 성격이 분명히 보인다. 상대가 실제로 말한 것이 아닌, 반박하기 쉬운 형태로 변형된 주장을 공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김현철 변호사의 논지를 최대한 선해하여(charitably) 재구성하면, 차진아 교수의 주장과 양립가능한 형태의 반론이 다음과 같이 구성될 수 있다:
'직권남용 규정이 형식적으로는 존재하지만, 판·검사에게는 실효성이 거의 없었다. 법체계의 차별성은 사실이지만, 실효성 차원에서의 효과가 있었는지도 중요하다. 법체계의 차별성이 곧바로 한국에서의 법효과를 배제할 수 있음을 정당화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직권남용죄의 실효성 부족은 법왜곡죄 입법 정당성의 한 근거가 될 수 있다.'
이렇게 재구성할 경우 논증은 상당히 정합적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결정적 물음에 여전히 답하지 못한다: '법왜곡죄 신설이 실제로 그 실효성 문제를 해결하는가?' 기존 직권남용죄의 실효성 부재를 이유로 새로운 입법을 정당화했다면, 그 새로운 입법이 기존의 실효성 부재를 극복할 수 있는 구조적 조건을 제시해야 한다. 그러나 김현철 변호사는 이에 대해 침묵한다.
실제로, 법왜곡죄 논의에서 반복적으로 제기되는 핵심 우려는 '처벌의 끝에는 다시 유·무죄를 판단하는 판사가 앉아있다'는 것이다. 판사를 법왜곡죄로 기소하더라도, 그 재판을 담당하는 것은 다시 판사이다. 사법농단 사태에서 이미 확인된 바와 같이, 판사에게 판사 사건의 판결을 맡기는 구조에서 유죄 선고의 현실적 가능성은 극히 낮다.
독일의 경우에도 독일 연방통계청(Strafverfolgungsstatistik)에 의하면 2002년부터 2017년까지 16년간 법왜곡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법관·검사 56명 중 실형을 선고받은 자는 3명(약 5%)에 불과하였다. 법왜곡죄가 존재하고 판례가 축적된 독일에서조차 이러한 결과인데, 관련 판례가 전무한 한국에서 실효성을 확신하기는 더욱 어렵다.
김현철 변호사는 차진아 교수가 제시한 기소법정주의/기소편의주의의 구별에 대해 '검사에만 해당하는 것이고, 나아가 그 차이로 인해 법왜곡죄의 입법 필요성이 좌우되지 않아 논쟁의 가치가 없다'고 일축한다. 그러나 이 구별은 법왜곡죄의 실효적 작동 조건과 직결되는 구조적 차이이다.
기소법정주의(Legalitätsprinzip) 하에서는 구성요건 해당성이 인정되면 검사가 반드시 기소해야 하므로, 법왜곡죄의 존재 자체가 수사·기소 단계에서 자동적 견제력을 가진다. 반면 기소편의주의(Opportunitätsprinzip) 하에서는 검사가 기소 여부를 재량으로 판단하므로, 법왜곡죄가 신설되더라도 검사가 동료 법관·검사를 기소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재량에 달려 있다. 비록 이 구별이 검사에만 직접 해당한다 하더라도, 법왜곡죄의 실효적 작동 조건에 관한 중요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므로, '논쟁의 가치가 없다'고 치워버릴 성질이 아니다.
김현철 변호사는 '이득액이 5억 원 이상인 경우에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사기)죄로 처벌하고 있는데, 누구도 일반법인 사기죄의 존재를 이유로 특별법의 설치를 반대하지 않는다'는 비유를 통해, 법왜곡죄를 '일반법인 직권남용죄에 대한 특별법'으로 규정하고 그 신설의 정당성을 주장한다.
그러나 이 비유에는 법형식론적 차이가 간과되어 있다. 특경법(사기 5억 이상)은 형법과는 별도의 독립된 법률로 신설된 것이므로, 형법상 사기죄(제347조)와의 관계를 '일반법–특별법'으로 칭하는 것은 통상의 용례에 부합한다. 그러나 법왜곡죄는 형법 전(典) 내부에서, 기존 조문(제123조 직권남용죄)의 바로 하단에 제123조의2로 신설된 것이다. 형법 내부의 특별규정에까지 '특별법'이라는 용어를 확장하는 것은 문헌상 불가능하진 않지만 일반적 용례는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특별규정(lex specialis)' 내지 '가중구성요건'이라 칭하는 것이 법형식론적으로 더 정확하다.
이 구별이 중요한 이유는, 비유의 전제가 다르면 결론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별도의 법률로 신설된 경우와 기존 기본법 내에 조항을 추가한 경우는 입법의 형식과 체계적 위치가 상이하며, 따라서 체계정합성에 대한 검토의 기준도 달라져야 한다.
차진아 교수의 취지는 '독일에 없는 직권남용죄가 한국에는 이미 존재하고, 그 구조 때문에 법왜곡죄의 필요성이 낮다'는 법체계 차별성에 관한 주장이다. 이를 '일반법이 있으니 특별법을 만들면 안 된다는 것은 논리적이지 않다'로 돌려버리면, 다시 한 번 논점을 바꿔 익숙한 교과서 도식으로 상대 주장을 단순화하는 셈이 된다. 비판은, 상대의 논지를 그 자체의 의미·범주 안에서 공정하게 재구성한 뒤 그 내부에서 이뤄져야 설득력이 있다.
김현철 변호사는 독일 형법 제339조의 'Beugung des Rechts'와 스페인 형법 제446조의 'manifiestamente injusta'에 비해, 한국 형법 제123조의2의 세 가지 호가 '훨씬 더 구체적이고 명확하다'고 주장한다.
명확성 원칙은 수범자가 규범 내용을 예측가능하게 파악하여 자기 행위지침으로 삼을 수 있도록, 최소한의 불명확성만 허용하라는 헌법상의 요구이다. 이는 특히 새로운 범죄구성요건이고 관련 판례·해석 전통이 전무한 분야일수록, 그 요구 강도는 더 높게 평가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법왜곡죄 신설 조항은 '의도적으로', '영향을 미친 경우', '위법하게 증거를 수집', '그 정을 알면서도 인정한 경우', '논리나 경험칙에 현저히 반하여' 등 주관적 요소와 평가적 개념이 대량으로 포함되어 있다. 이들 개념은 판례가 축적되면서 점차 정교해질 수 있지만, 입법 시점만 놓고 보면 추상성이 상당한 편이다. '세 호를 나열했다'는 사실 자체가 곧 명확성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다.
명확성은 양(量)이 아니라 의미의 한정(限定) 여부에 달린 문제이다. 오히려 3개 호로 나누어 열거한 것이—그것이 열거인지 예시인지도 불분명한 상태에서—독일·스페인과의 비교에서 '한국의 불분명함을 더 많은 조항에 걸쳐 구체적으로 드러낸 것'에 불과하다고 볼 여지가 있다.
김현철 변호사의 비교법적 논증이 간과하는 결정적 요소는, 독·스페인은 수십 년간 판례와 학설이 축적된 법문화·운용 역사가 있고, 그 맥락에서 'Beugung des Rechts', 'manifiestamente injusta' 등의 개념이 구체화되었다는 사실이다.
독일 형법 제339조의 'Beugung des Rechts'가 간결한 문언에도 불구하고 실무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것은, 연방일반법원(BGH)을 비롯한 독일 법원의 판례가 수십 년에 걸쳐 그 외연을 획정해왔기 때문이다.
이를 해석학적으로 표현하면, 법문의 의미는 그것을 둘러싼 '효과사(Wirkungsgeschichte)'에 의해 구체화된다. 가다머(H.-G. Gadamer)가 강조했듯, 텍스트의 의미는 텍스트 자체에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해석 공동체의 지속적인 적용(Applikation)을 통해 역사적으로 형성된다. 독일 법왜곡죄의 명확성은 법문의 간결함에도 불구하고 달성된 것이지, 법문의 간결함 때문에 부족한 것이 아니다.
한국은 그 '성숙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단번에 높은 형량의 신(新) 범죄를 도입했다. 진중한 공론화 과정도 충분히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입법이 선제적으로 이루어졌다. '우리 규정이 훨씬 더 명확하다'는 단언은, 법의 성숙(maturity)이라는 가치를 무시하고, 성숙한 판례·학설 전통이 있는 외국법을 단순 조문 비교로만 평가하는 태도이다. 법문의 문면적 구체성과 법의 실질적 명확성은 같은 것이 아니며, 후자는 전자만으로는 달성될 수 없다.
명확성의 문제는 김현철 변호사 자신이 앞서 전개한 실효성 논증과도 긴장 관계에 놓인다. 애매한 개념이 다수 포함된 조항이 도입되면, 초기에는 판·검사가 '혹시 문제가 될까봐' 과도하게 소극적으로 행위할 가능성이 크다—이른바 위축효과(chilling effect)이다. 막상 기소되더라도, 독·스페인처럼 상당수 무죄가 선고될 여지조차 있다. 즉, '엄격한 처벌을 통해 실효성을 확보하겠다'는 입법 목적과, '명확성·예측가능성을 높여 판·검사의 책임성을 담보하겠다'는 목적이 서로 긴장 관계에 놓이는 것이다.
기존 직권남용죄의 처벌 부재를 이유로 입법을 정당화하면서, 입법 후에도 동일한 구조적 문제—판사가 판사를 재판하는 구조, 고의 입증의 곤란—로 처벌이 실현되기 어렵다는 점을 간과한 것은, 논증 내부의 자기모순이 될 수 있다.
차진아 교수는 법왜곡죄의 법정형(10년 이하 징역, 벌금형 없음)이 직권남용죄(5년 이하 징역, 1천만 원 이하 벌금)나 독일 법왜곡죄(1년 이상 5년 이하 자유형)에 비해 과중하다며 과잉금지 원칙 위반을 주장한다. 이에 대해 김현철 변호사는 '가중적 처벌의 필요 때문에 특별법을 신설하는 것인데, 일반법과의 불균형을 논하는 것은 주장 자체로 비논리적'이라고 반박한다.
형벌 수위의 비교법적 논의는, 그 자체가 얼마나 설득력이 있느냐와는 별개로, 헌법재판소에서 과잉금지 위반 여부를 판단할 때 통상 활용되어 온 방식이므로, 그 자체로 '비교법적 접근 자체가 부당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각국의 형사정책적 맥락과 양형 실무가 다른 이상, 형량의 절대적 수치만으로 과잉 여부를 판단하기는 어렵다는 점에서, 차진아 교수의 주장에도 방법론적 한계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김현철 변호사의 반박 역시 타당하지 않다. 과잉금지 원칙은 정확히 그 '가중'이 비례성을 갖추었는지를 묻는 원칙이기 때문이다. '가중적 처벌 필요 때문에 특별규정을 두는 것인데, 일반법과의 불균형을 논하는 것은 비논리적'이라고 하면, 사실상 헌법적 통제 가능성을 상당 부분 닫아버리는 셈이다. 형법 내 특별규정이라도, 일반 규정과의 형량·효과 관계는 당연히 과잉금지 원칙의 대상이 된다. '가중을 위해 가중한다'는 것은 순환논증이지 정당화가 아니다.
김현철 변호사는 '독일보다 우리의 경우에 검사, 판사들의 법률 왜곡 사례가 더 많았다는 점에서 단순히 독일의 법정형과 비교하는 것 또한 적절하지 않다'고 서술한다. 그러나 이 문장은, 구체적 통계나 경험칙을 제시하지 않은 채, 역사적 경험에 대한 일반적 인상을 '사실'처럼 진술하고 있다. 법적 논증으로서는 근거가 극히 약한, 거친 서술이다.
나아가, 독일은 Rechtsbeugung라는 독자적 구성요건 하에서 판례가 축적되어 '법왜곡'의 정의와 외연이 법적으로 확정되어 있다. 반면 한국은 법왜곡죄라는 죄명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법왜곡 사례'를 어떤 기준으로 셀 것인지부터 정해져 있지 않다. 정의가 다른 두 체계에서 빈도를 비교한다는 것은 방법론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더 많았다는 점에서'라고 거칠게 단언하는 것은, 김현철 변호사 자신이 비판한 '단순한 비교'보다 오히려 더 '단순'하고, 오만하게 보일 수 있다.
김현철 변호사는 독일법과의 비교를 통해 한국 입법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 '입법 주권에 대한 모독'이라고 칭한다. 그러나 이 표현에는 다음과 같은 다층적인 문제가 있다.
첫째, '입법주권'이라는 말 자체의 불명확성이다. 이 개념은 학계에서 표준 개념도 아니고, 주권 개념과 입법권의 관계를 이론적으로 정리하지 않은 채 사용되고 있다. '외국과 다르게 입법했다 → 우리 주권을 모독한 주장'이라는 감정적 반응으로 이어질 뿐, 개념의 내포와 외연이 정의되지 않았다. 만약 법률 개념으로 사용한 것이라면 그 범위를 정의해야 하고, 만약 정치적 수사로 사용한 것이라면 그렇다고 명시해야 한다.
둘째, 비교법적 검토 자체를 '모독'으로 규정하는 것은, 비교법학(Rechtsvergleichung)의 존재 의의를 부정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비교법은 자국 입법의 정당성을 검증하고 개선하기 위한 학문적 도구이지, 외국법에 종속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셋째, '모독(冒瀆)'이라는 단어가 갖는 감정적 하중의 문제이다. 이 단어는 통상 신성한 것에 대한 불경을 의미한다. 입법 활동을 '신성한 것'의 차원에 놓으면, '입법 내용에 대한 비판 자체를 허용하지 않는 것 아닌가?'라는 의문을 불러온다. 결국 김현철 변호사가 글의 말미에서 비판한 'The King does not wrong'이라는 군주제적 신화의 변형을, 자기 자신이 입법부에 대해 반복하고 있는 셈이다. 법률가로서 사용하는 언어로는 다소 과도하고, 개념 정립 없이 정서적 어휘에 의존한 측면이 큰 건 아닌지 염려스럽다.
김현철 변호사가 제시한 긴급조치 9호 관련 서술—헌법재판소의 2013년 위헌결정 이후 국가배상 청구를 대법원이 '고도의 정치적 행위'론으로 기각(2014)했다가, 이후 1·2심 일부 법관들이 판례에 반하여 배상책임을 인정했고, 법원행정처가 이들을 징계하려 했다는 사실이 사법농단 사태에서 드러났으며, 그 뒤에야 2022년 대법원이 국가배상 책임을 인정한 흐름—은, 분명 사법부가 과거 권위주의 시기와 그 이후의 책임을 어떻게 회피·수용해 왔는지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 과정에서 법관의 책임을 묻는 것이 정당하다는 평가는, 법왜곡죄 논의의 여러 층위 중 '역사적 책임'이라는 층위에서는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입법 동기의 정당성이 곧 입법 내용의 정당성을 보증하는 것은 아니다. '책임의 필요'와 '이 특정 입법 설계의 타당성'은 구분해서 논해야 한다. 역사적 경험이 법왜곡죄의 입법 동기로 기능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구성요건의 명확성, 형량의 비례성, 실효성 확보 가능성, 남용 방지 장치의 유무까지 정당화해 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아가, '모든 공무원은 위법행위에 대해 책임을 지는데, 판·검사만 신성불가침 영역에 있어 왔다'는 문제의식, 그리고 역사적 경험 속에서 '사법권 독립'이 법관의 특권·독단으로 변질된 측면이 있다는 지적은, 진단 자체로 상당 부분 수긍할 수 있다. 다만, 이어지는 수사적 전개에서 오로지 사법부만을 '현대의 왕'으로 지목하는 것은, 정치·입법 권력—특히 국회—의 책임과 권력 집중 문제를 지나치게 희석시키는 면이 있다.
김현철 변호사는 글의 말미에서 'The King does not wrong'이라는 군주제적 신화가 'The Supreme Court does not wrong'으로 변형되어 부활했다고 서술하며, 법왜곡죄가 이 신화를 해체하는 '민주주의의 도구'가 될 것이라 선언한다.
그러나 이 논리를 따르면, '왕'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이 '대법원'만은 아니다. 'The National Assembly does not wrong'—국회는 오류를 저지르지 않는다—이라는 변형도 동일한 구조에서 성립한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한국의 헌정 구조에서 입법부는 (a) 형벌 창설과 형량 결정, (b) 행정부·사법부 조직과 인사 구조의 설계, (c) 헌법재판소에 대한 간접적 영향 등을 통해, 사법부 못지않게—경우에 따라서는 그 이상으로—국민의 권리·자유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기관이다.
여러 기사에 의하면, 법왜곡죄 신설을 포함한 이른바 사법개혁 3법은 여당에 의해 주도적으로 추진된 입법 패키지이다. 이 입법안에 대한 근본적 우려는, 입법자가 자신의 입법이 초래할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은 채 '국민이 원해서 한 것'이라는 모호한 정치적 수사로 면피할 때, 그 입법으로 인해 현저한 피해를 예견한 반대자가 불이익을 감수해야 할 경우, 그 보상을 누구에게 구해야 하는가에 있다.
김현철 변호사가 사용한 '입법주권'이 (a) 국회·입법부를 지칭하는 것인지, (b) 국민 일반의 주권 행사를 지칭하는 것인지조차 불분명하다.
(a)의 경우, 입법부는 헌법상 다른 국가기관과 마찬가지로 통제·책임의 대상이다. 헌법이 '입법권은 국회에 속한다'(헌법 제40조)고 규정한 바에 의거, 국회의원은 일반 국민과 같은 수범자의 지위에 놓일 수 없다. 그들은 언제든 국민의 권리를 시스템상 합법적으로 제한할 수 있는 지위에 있으며, 자신의 입법이 행정부와 사법부에 직접적·절대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다.
이 점에서 외부의 비판 가능성이 당연히 전제되어야 하므로, '주권'과 결합하는 순간 개념상 긴장이 생긴다. 입법부에 대한 '주권'이라는 표현은 형용모순(oxymoron)에 가깝다.
(b)의 경우, '국민이 뽑은 대표가 곧 국민의 뜻'이라는 등치가 전제되는데, 이를 관철하면 모든 선출직은 주권자의 신성한 선택을 행사하는 것이므로 면책되어야 한다. 그러나 전직 대통령과 국회의원이 사법적 책임으로부터 면책되지 않았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나아가 대표자와 유권자를 동일시하면, 대표에 대한 책임·배상 문제를 구조적으로 희석시키는 효과가 발생한다. 만약 대통령과 국회의원이 서로 다른 헌법기관이므로 기준을 달리 해야 한다고 반박한다면, 애초에 모호한 개념을 사용해서는 안 되었다.
사법부에 대한 국민 신뢰가 낮은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입법부에 대한 신뢰 역시 현저히 낮으며, 그것도 사법부보다 낮다는 것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된다. 이러한 현실에서 '입법주권'이 존속할 수 있는지 심각한 의문이 제기된다. '비록 신뢰하지는 않지만 그들이 우리의 대표인 만큼 그들의 행위가 곧 우리의 신성한 주권 행사이다'라고 말해야만 정당화된다면, 그것은 고착화된 선거 시스템에 따라 본래의 목적인 '신뢰'를 배제한 채 형식적 정당성만으로 실질적 대표성을 의제(擬制)하는 것이다.
부당한 외부의 간섭이 시스템 내에 내면화되어 은폐된 것이 아닌지, '입법주권'과 연결하면, 입법부가 스스로를 '국민 주권의 직접 표현'으로 자처하면서 동시에 국가배상이나 정치적 책임에서 사실상 면책·무책임 구조를 유지한다면, 이는 주권 개념의 '주체적 행사'라는 요소와도 충돌한다.
입법부의 국회의원도 헌법기관으로서 국회에서 급여를 받는 공무원이다. 국가배상 책임에서 행정부에 대한 유책은 사법부에 비해 인정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입법부에 대한 국가배상 책임은 어떠한가? 진정입법부작위에 대해서도 부진정입법부작위에 대해서도, 국가배상이 인정되지 않는 것이 현행법의 상황이다.
최근 이른바 '36주 태아 사건'은 이 문제를 구체적으로 드러낸다. 낙태 시술의 방식으로 태아를 살해한 의료진과 산모에게 실형 선고가 내려졌다. 그런데 만약 입법부가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2019) 이후 헌재가 명시한 시한 내에, 헌법기관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후속 입법을 정상적으로 수행하였더라면, 이 사건에서 실형 선고가 내려졌을까? 기존 낙태 관련 법령이 적시에 보완되었더라면, 산모도 의료진도 자신의 행위의 법적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고 행동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입법부의 진정입법부작위도 부진정입법부작위도 국가배상 책임이 인정되지 않는 상황에서, 이미 고착화된 선거 시스템에 의해 4–5년마다 어떤 식으로든 투표용지에 이름만 기재되면 '국민의 대표'라는 표제 하에 당선되는 이들로 구성된 '국회'야말로, 어쩌면 현실에서 가장 강력한 면책 특권을 누리는 '왕'이 아닌가? 돈으로 공천을 하려 한 여당 소속 시의원과 그 돈을 집에 보관한 여당 소속 국회의원이 뒤늦게 수사되고, 국회의 동의를 받아서 겨우 구속된 상황을 보면, 입법권력만큼 강한 것이 또 있을까. 김현철 변호사가 대법원에 대해 제기한 비판—면책의 신화—은, 방향을 돌리면 국회에 대해서도 동일한 힘으로 작동한다.
본고의 분석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김현철 변호사의 기고문은, 논지의 방향성—판·검사 책임의 필요성, 과거 사법 실패에 대한 반성의 필요성—에 있어서는 상당히 공감 가능한 지점이 있다. 긴급조치 사건과 사법농단 사태에서 드러난 사법부의 역사적 실패는, 법관 책임론의 필요성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논거이며, 법왜곡죄의 입법 동기가 이러한 맥락에서 비롯되었다는 점 자체를 부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핵심 쟁점들에 대한 논증 방식에는 반복적인 구조적 결함이 발견된다. 첫째, 상대 주장의 논점을 바꿔치는 허수아비 공격이 반복된다—법체계의 구조적 차별성에 대해 집행 빈도로 응답하고, 법체계 차별성 논거에 대해 일반법·특별법 도식으로 단순화한다. 둘째, 법기술·체계의 미묘한 차이를 무시한 채 특경법의 비유로 논점을 봉쇄한다. 셋째, 성숙한 판례·학설 전통이 있는 외국법을 단순 조문 비교로만 평가하며, 해석 공동체의 축적된 이해라는 결정적 요소를 간과한다. 넷째, '입법주권', '모독' 등 개념 규정 없는 정치적 수사를 사용하여 비교법적 검토 자체를 차단한다.
이로 인해 김현철 변호사의 글은 학술적 논문보다는 정치적 칼럼에 가까운 텍스트라는 인상을 준다. '물론이다', '비논리적이다', '논쟁의 가치가 없다', '모독이다'와 같은 차단적 표현은 상대 논증의 부당함을 입증하는 것이 아니라, 입증의 부담을 회피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법부의 법왜곡에 대해 형사 책임을 묻는 입법을 하면서 입법부 자신은 어떠한 책임 메커니즘으로부터도 자유롭다는 비대칭 구조는, 법왜곡죄 논의에서 가장 근본적이면서도 충분히 다뤄지지 않은 문제이다. 입법부의 진정입법부작위와 부진정입법부작위에 대한 국가배상 책임의 부인, 고착화된 선거 시스템에 의한 형식적 민주적 정당성의 의제, 그리고 '입법주권'이라는 모호한 개념에 의한 면책의 정당화는, 입법부를 현실의 '왕'으로 기능하게 만들 위험이 있다.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는 '입법부 책임론'은 별도의 연구 과제로 후속되어야 할 것이다.
2026. 3. 9.
참 고 문 헌
차진아, “법왜곡죄 실체는 ‘사법의 정권 종속’”, 문화일보 시평, 2026. 3. 5.
김현철, “법왜곡죄가 ‘정권 종속’?…시민의 권리와 자유 지켜줘”, 민들레뉴스, 2026. 3.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