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서고, 7화
법치국가(Rechtsstaat)의 존립은 역설적인 긴장 관계 위에 성립한다. 법관의 독립(헌법 제103조)은 국가권력의 자의적 행사를 막는 최후의 보루이지만, 만약 그 사법권 자체가 '정의'가 아닌 '불법'에 봉사할 때, 즉 '사법불법'(Justizunrecht)이 조직적으로 자행될 때, 법치국가는 그 근간부터 붕괴하게 된다.
이 딜레마는 지난 세기 독일의 나치(Nazi) 체제와 구동독(GDR) 체제 하에서 사법살인(Justizmord)과 사법테러(Justizterror)의 형태로 극명하게 현실화되었으며, 통일 이후 독일 사회에 과거청산(Vergangenheitsbewältigung)이라는 무거운 헌법적 과제를 남겼다.
이러한 '사법불법'의 문제는 본질적으로 '사악한 법'(iniquitous laws)의 효력 문제와 직결될 수 있는데, 법철학자 구스타프 라드브루흐(Gustav Radbruch)는 나치 체제에 대한 반성적 성찰 위에서, 실정법이 "참을 수 없을 정도의 부정의"(unerträgliches Unrecht)를 내포하거나 "정의의 핵심을 이루는 평등을 의식적으로 부정"할 경우, 그 법률은 단순히 '부정당한 법'(unrichtiges Recht)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예 '법적 성질'(Rechtscharakter) 자체를 상실한다고 선언하였다.
최봉철의 분석에 따르면, 라드브루흐 공식(Radbruch formula)은 '강한 자연법론'의 입장에서 '사악한 법'의 법적 효력 자체를 부인함으로써, 그 법을 충실히 적용한 법관에 대한 사후적 처벌, 즉 과거청산의 핵심적인 법철학적 정당성을 제공할 수 있다.
이러한 역사적·철학적 배경 하에서 독일 형법상 '법왜곡죄'(Rechtsbeugung)는 단순한 공무원의 직무 범죄를 넘어, '사법불법'을 단죄하고 '책임사법'(Verantwortliche Justiz)을 확립하기 위한 법치국가적 통제 기제로서의 중대한 헌법적 중요성을 부여받았다. 이는 이덕연이 지적하듯, 법관에게 부여된 권력에 대한 책임체계(Verantwortungssystem) 및 통제체계(Kontrollsystem)의 일부로서,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회복하고 '법의 국가'(Rechts-Staat)로서의 역사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법왜곡죄에 관한 논의는 근본적으로 이중적 성격을 갖는다. 하나의 일관된 흐름이 아니라, (1) 나치나 구동독과 같은 불법국가(Unrechtsstaat)의 체제적 불법에 봉사한 법관을 단죄하기 위한 과거청산의 도구라는 역사적 궤도 와, (2) 현대 민주적 법치국가 내에서 개별 법관이나 검사의 자의적 법 적용을 통제하려는 '현대적 사법 통제'의 도구라는 정치적 궤도 위에서 동시에 진행되기 때문이다.
이 두 궤도는 목적과 정당성, 그리고 한계가 명확히 구분된다. 과거청산의 정당성이 현대적 통제의 정당성을 자동으로 보장하지 않으며, 현대적 통제 도입의 문제점이 과거청산의 역사적 필요성을 반박하지도 못한다.
본고는 이와 같은 문제의식 하에, 학술논문에 근거하여, 법왜곡죄의 (1) 독일에서의 이론적 구성과 적용범위(주제 1-4), (2) 한국적 맥락에서의 도입 문제점(주제 5), 그리고 (3) '과거청산'과 '현대 검찰개혁'이라는 상이한 층위에서 발생하는 '헌법적 시사점'(주제 6)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독일 형법상 법왜곡죄는 이덕연의 분석에 따르면 "올바른 법을 선언하는 공정한 사법기능" 그 자체를 보호법익(Schutzgut)으로 하는 진정직무범(眞正職務犯, echtes Amtsdelikt)이다.
그는 당시 독일 형법 제336조(StGB §336)를 인용하고 있으며 , 김상현은 2025년 논문에서 현행 제339조(StGB §339)를 인용하고 있다. 김상현은 1871년 제국형법 제336조가 1997년 법 개정으로 현행 제339조로 조문 위치가 변경되었음을 명시하고 있어, 두 논문이 인용하는 조문은 사실상 동일한 내용을 지시한다. 그 구성요건은 "법관Richter, 기타 공무담당자Amtsträger 혹은 조정판사Schiedsrichter가 법률문제를 주관하거나 혹은 결정함에 있어서 일방 당사자에게 유리하게 혹은 불리하게 법률을 왜곡한 경우" 1년 이상 5년 이하의 자유형에 처하는 것이다.
법왜곡죄의 주체는 법률문제의 주관 또는 결정 권한을 가진 자로 한정된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여기에는 직업 법관뿐만 아니라 명예판사, 배심원(Schöffen), 조정판사 등이 포함된다. 나아가 나치 치하의 특별법원이나 국민법원(Volksgerichtshof)과 같이 법치국가적 관점에서 법원이 아닌 정치적 테러도구에 불과했던 조직의 형식적 판사들도 주체에 포함된다.
여기서 핵심 쟁점은 '기타 공무담당자'(Amtsträger)에 검사(Staatsanwalt)가 포함되는지 여부이다. 김상현의 분석에 따르면, 검사는 형사소송에서 피고인과 대립하는 '당사자'(Parteistellung)의 지위를 가지므로 주체가 될 수 없다는 견해도 상당하나, 독일의 확립된 판례는 다음과 같은 논리로 검사의 주체성을 긍정한다.
첫째, 법왜곡 행위는 '법률사건'(Rechtssache)의 '지휘'(Leitung) 또는 '결정'(Entscheidung) 과정에서 발생해야 한다.
둘째, '법률사건'은 민사뿐만 아니라 형사절차를 포괄하며, '수사절차'(Ermittlungsverfahren)는 형사절차의 핵심적 일부이다.
셋째, 독일 형사소송법상 검사는 '수사절차의 주재자'(Herr des Ermittlungsverfahrens)로서 법률사건을 '지휘'하는 자이므로, 법왜곡죄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성룡 또한 독일 검사가 '수사를 주도'(Leitung der Ermittlungen)하는 책임을 진다고 분석하며 이러한 지위를 뒷받침한다.
독일 판례는 검사를 주체로 인정하면서도, 그 적용 범위를 엄격하게 제한하는 두 가지 법리를 발전시켰다.
첫째, 수사절차로의 국한이다. 검사의 주체성은 수사절차의 주재자라는 지위에 근거하므로, 공소제기 이후 절차의 지휘권이 법원으로 넘어가면 검사는 더 이상 독립된 주체가 될 수 없으며 단지 판사의 법왜곡 행위에 대한 공범(Gehilfe)으로만 가담할 수 있다.
둘째, '판사와 같이'(wie ein Richter) 결정해야 한다는 불문의 요건ungeschriebenes Tatbestandsmerkmal이다.
이처럼 독일 판례는 '기타 공무원'의 범죄 성립 범위를 제한하기 위해, 해당 공무원이 '판사와 같이' 결정하는 기능을 수행할 것을 요구한다. 이는 단순히 상부의 지시에 따라 법을 집행하는 일반 행정공무원(예: 세무공무원의 세액 결정)을 배제하기 위함이다. 검사의 경우, 비록 당사자로서의 지위가 있지만, 수사를 종결하고 공소제기 여부를 독자적으로 결정하는 행위(예: 불기소 처분)는 판사와 유사한 중립적·자율적 기능을 수행하는 것으로 보아 이 요건을 충족한다고 해석된다.
적용 대상 행위는 법률문제, 이덕연의 정의에 따르자면 [상충되는 법적 이익을 가지는 다수 당사자간의 사안으로서 법원칙에 따라, 법에 규정된 절차에 따라 취급되고 결정되는 모든 사법문제]이다. 여기에는 일반 민·형사 재판은 물론 행정, 노동, 재정 법원 등 모든 재판 절차가 포함된다.
또한 결정이란 절차의 최종적인 결정(판결)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법상의 준비절차와 중간절차상의 제결정]을 모두 포함한다. 예를 들어, 판사의 구속영장 발부 결정이나 검사의 수사 및 공소제기 관련 결정들이 모두 이에 해당한다.
법왜곡죄 구성요건의 핵심 난제는 객관적 오판(Fehlurteil)과 고의적 '왜곡'(beugen)을 어떻게 구별할 것인가에 있다.
이덕연의 분석에 따르면, 이 판단 기준을 놓고 형법이론상 세 가지 견해가 첨예하게 대립한다.
이 견해는 법왜곡의 본질을 법관의 주관적 의사에서 찾는다. 즉, 법관이 자신의 주관적인 법적 확신에 어긋나는(gegen seine eigene Überzeugung) 결정을 내릴 때 법왜곡이 성립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이론의 논리적 한계는 명백하다. 만약 법관이 객관적으로는 명백히 그릇되고 자의적인 결정을 내렸더라도, 스스로 그것이 옳다고 굳게 '확신'했다면, 이른바 이념에 경도된 광신범Überzeugungstäter의 경우에 그의 내심과 결정이 일치하므로 처벌할 수 없게 된다. 이는 객관적인 법질서 보호라는 보호법익을 달성하는 데 치명적인 결함을 갖는다.
이 견해는 법왜곡의 기준을 법관의 주관이 아닌 객관적인 법(das objektive Recht)에 둔다. 즉, 법관의 결정이 객관적인 법규범에 합치하지 않는 것, 달리 말하면 '결정의 옳음'(Richtigkeit der Entscheidung)을 위반한 것이 법왜곡의 본질이라고 본다.
이 견해는 법왜곡의 판단 기준을 주관적 확신이나 객관적 법과의 불일치가 아니라, 재판 과정에서 법관에게 부과된 구체적인 절차법상 의무(verfahrensrechtliche Pflichten)의 위반 여부에서 찾는다.
하지만 이 견해 역시 절차적 의무 위반에만 초점을 맞출 경우, 객관적인 실체법의 관철이라는 궁극적 목표를 놓칠 수 있다는 비판에 직면한다.
이러한 이론적 대립은 '옳은 결정'(법관의 주관적 확신에 따른 결정)과 '결정의 옳음'(객관적 법에 부합하는 결정) 사이의 근본적인 법철학적 긴장을 반영하고 있어, 주목할만하다.
특히 '결정의 옳음'을 기준으로 삼는 객관설은 심각한 법방법론적(rechtsmethodologisch) 의문에 직면한다.
'객관적인 법'이란 과연 무엇이며, '결정의 옳고 그름'을 누가, 어떤 기준으로 명백하게 판단할 수 있는가?
이덕연이 지적하듯이, 법이론상 '무엇이 법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논리적으로 '유일무이한 옳은 결정'일 수밖에 없지만, 법률개념의 다의성과 추상성으로 인해 그 '옳은 결정'에 대한 명백한 인식의 가능성(Erkenntnisproblem)이 현실적으로 극히 제한되어 있다는 것이 법해석의 근본적인 한계이다.
이러한 인식론적 한계로 인해, 실천적으로는 타당성이론(Vertretbarkeitstheorie, 또는 변호가능성 이론)이 등장하게 된다. 즉, 법관의 법 해석이 비록 유일하게 옳은 정답은 아닐지라도, 법리적으로 '옹호 가능하거나'(vertretbar) '타당한' 여러 견해 중 하나를 선택한 것이라면, 설령 그 결정이 나중에 상급심에서 파기되더라도 '법왜곡'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주관설은 입증이 곤란하고 객관설은 법해석의 다의성으로 인해 한계에 부딪히므로, 법왜곡죄의 적용 범위는 '타당성이론'의 틀 내에서 "극히 예외적으로 결정의 자의성이 분명하고도 중대한 경우"(schwerwiegend und evident)에만 인정될 수밖에 없도록 극도로 축소된다.
법왜곡 행위는 재판 절차의 전(全)단계에서 발생할 수 있다. 이덕연은 이를 사실심리 단계와 법적용 단계로 유형화한다. 하나씩 살펴보도록 한다.
사실심리 및 확정 단계에선 법관이 자신의 주관적 확신에 반하는 사실을 인정하거나,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가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법적으로 요구되는 사실확인 조치(예: 증거조사 신청 채택) 또는 석명의무(Aufklärungspflicht)를 고의적으로 이행하지 않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법적용 단계에선 크게 '타당성이론'의 범주를 명백히 벗어나는 자의적인 법 해석을 하는 경우, 형사소송절차상 양형 과정에서 재량권을 현저하게 남용하는 경우, 법관 자신이 재판의 전제가 되는 법률이 위헌이라고 확신하면서도, 고의로 헌법재판소에 위헌심판을 제청하지 않고 해당 법률을 적용하여 판결하는 경우 등 널리 포함될 수 있다.
그러나 김상현의 분석에 따르면, 독일연방대법원(BGH)은 '왜곡'의 의미를 극히 좁혀 해석하며, 이를 단순한 법 위반이 아닌 '정의에 대한 근본적 위반' 또는 '법의 불가침성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흔드는 근본적인 법 위반'과 동일시한다.
연방대법원은 이러한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여 세 가지 구체적인 왜곡 행위의 유형을 제시하였는바, 첫번째는 법률의 문구를 넘어서거나 그 불명확성을 이용하여 과도하게 확대 적용한 경우. 두번째는 처벌이 해당 범죄와의 관계에서 극단적으로 불균형을 이루어, 법 적용이 심각하게 불공정하고 중대한 인권 침해로 보일 수 있는 경우, 세번째는 절차의 진행 방식(예: 변론권의 실질적 박탈)에서 발생한 중대한 인권 침해를 꼽고 있다.
유의해야할 점은, 독일에서의 법왜곡죄는 과실범을 처벌하지 않으며, 오직 고의범(Vorsatzdelikt)만을 처벌한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법의 무지'(Rechtsblindheit), 즉 법을 몰라서 잘못 적용한 경우는 고의가 조각되어 처벌되지 않는다.
과거 나치시대의 법관처벌 문제에서 가장 큰 난관은 바로 이 고의성 입증이었다. 만약 법관이 "인권에 위배되는 불법적인 법률도 구속력을 갖는 것으로 믿었거나"(즉, '사악한 법' 에 대한 법실증주의적 태도) 혹은 "그 법률들이 초실정법적인 법원칙에 위배된다는 인식 자체가 없었던 경우"에는, 법왜곡의 고의성을 인정하기 극히 어려웠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덕연은 미필적 고의(bedingter Vorsatz)의 인정을 논의한 바 있지만, 이 역시 '법관 자신이 자신의 판단이 잘못되었다고 확신함에도 불구하고 그에 따라 결정을 내린 경우'에 한하여 매우 엄격하고 제한적으로 인정된다.
이러한 엄격한 기준이 적용된 실제 사례로, 1993년 12월 13일 독일 연방대법원 판결을 인용된다. 이 사건에서 구동독의 노동법원 판사들은 정치적 외압에 굴복하여 부당한 해약고지를 합법적인 것으로 판결하여 법왜곡죄로 기소되었다. 그러나 연방대법원은 이들에게 무죄를 선고하였다.
그 근거는 "법관의 결정이 자의적인 행위임이 명백할 정도의 중대한 인권침해가 없었다"는 것, 즉 정치적 외압은 있었을지언정 그 판결 결과 자체가 타당성(Vertretbarkeit)의 범위를 완전히 벗어난 명백한 추론법칙 위배에는 이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사례에서의 결론과, [엄격한 고의성 요건]은 법왜곡죄가 갖는 또 다른 헌법적 기능, 즉 '법관 보호기능Richterschutzfunktion'을 명확히 보여준다. 이 죄는 법관의 법왜곡을 방지하는 예방장치일 뿐만 아니라, 반대 방향에서 법관의 독립적인 심판권을 보장하는 일종의 차단효과를 갖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법관의 판결이 부당하다는 이유만으로 외부(특히 행정부나 정치권)의 형사소추가 남발되는 것을 차단하여 사법부의 독립을 보호하는 이중적 기능을 수행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사법농단' 사태 등을 계기로 독일의 법왜곡죄를 한국에 도입하려는 입법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김상현은 이러한 국내 도입 시도가 4가지의 치명적인 헌법적·법체계적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신랄하게 비판한다. 항을 나눠 상술하겠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로, '법'과 '왜곡'(beugen)이라는 구성요건 자체가 극도로 추상적이고 모호하여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된다는 점이다. '법'의 의미가 실정법(Positives Recht)만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정의'와 같은 초실정법(überpositives Recht)까지 포함하는지조차 불분명하다. 이러한 모호성은 건전한 상식과 통상적인 법감정을 가진 사람조차 무엇이 금지되는 행위인지 예측할 수 없게 만든다.
김상현은 이 문제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님을 지적하며, 독일연방대법원(BGH)조차 스스로 제시한 '왜곡'의 판단 기준(예: '정의에 대한 근본적 위반')이 결국 '순환 논리'에 불과하며, 독일기본법(Grundgesetz)이 요구하는 명확성 원칙에 부합하는지에 대해 "상당한 의문"(erhebliche Bedenken)을 표명한 바 있음을 폭로한다. 독일에서조차 헌법적 명확성이 의심되는 규정을 한국에 도입하는 것은 심각한 입법적 결함으로 볼 수 있음을 경고하였다.
법관은 헌법 제103조에 따라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그러나 법왜곡죄의 도입은 가벌적인 '법왜곡'과 불가벌적인 '법적견해의 차이' 또는 '사법착오'의 경계를 허물어뜨릴 수 있다.이는 필연적으로 법관과 검사의 직무수행을 위축시키는 냉각효과(Chilling Effect)를 야기한다.
김상현의 분석에 따르면, 처벌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 사법관들은 창의적인 법리 구성이나 기존 판례 변경 시도를 포기하고, "기존의 확립된 대법원 판례를 기계적·반복적으로 적용하는 법률사무 AI와 다를 바 없게 될 것"이다. 판례 변경을 시도하는 것 자체가 '법률적용의 왜곡'으로 고발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법률제도의 경직성을 심화시키고, 나아가 행정부(수사기관)가 사법부(법관)의 판결 자체를 수사 대상으로 삼게 함으로써 헌법상 삼권분립(Gewaltenteilung)의 근간을 훼손하게 된다.
독일의 법왜곡죄는 독일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인 기소법정주의(Legalitätsprinzip)를 전제로 한다. 기소법정주의 하에서는 검사에게 원칙적으로 재량이 없으므로, 증거가 명백함에도 불기소하는 것은 그 자체로 위법한 법왜곡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한국 형사소송법은 검사에게 광범위한 재량을 부여하는 '기소편의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즉, 혐의가 인정되더라도 검사는 기소유예 처분을 할 수 있으며, 이는 현행법이 보장하는 적법한 재량권 행사이다.
김상현은 바로 여기서 발생하는 치명적인 모순을 지적한다. 만약 법왜곡죄가 도입된다면, 법률이 허용한 '기소유예' 처분을 한 검사를, 사후적으로 '재량권 일탈'이라는 이유로 '법왜곡죄'로 처벌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이는 법률이 부여한 재량권 행사를 형사처벌하는 자기모순에 빠지는 것이다. 이러한 위협 하에서는 어떠한 검사도 기소유예 처분을 할 수 없게 되어 기소유예 제도가 사실상 형해화(形骸化)되고, '장발장'과 같은 경미 사범까지 기계적으로 기소하게 되어 오히려 심각한 인권 침해를 초래할 수 있다.
김상현은 법왜곡죄 도입론이 독일과 한국의 법체계를 오독한 '근본적인 비교법적 오류'에 기반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독일 형법에는 한국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형법 제123조)와 같이 공무원의 권한 남용을 포괄적(allgemeine)으로 처벌하는 규정이 존재하지 않는다. 독일은 강요죄(§240) 등 개별 구성요건에 공무원 지위를 이용한 경우를 '가중적 구성요건'으로 둘 뿐이다. 따라서 독일 법체계에서 법왜곡죄(§339)는 사법 영역의 권한 남용을 처벌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특별규정이다.
반면, 한국은 이미 매우 강력하고 포괄적인 '직권남용죄'를 보유하고 있다. 대법원 판례 역시 검찰 고위 간부가 내사 담당 검사에게 부당하게 내사 중단을 지시한 행위를 직권남용죄로 인정한 바 있다. 이는 고의적인 법왜곡 행위가 현행 직권남용죄로도 충분히 처벌 가능함을 의미한다.
이러한 논리에 의거, 우리나라에 법왜곡죄를 추가로 도입하는 것은 처벌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규정 위에 또 다른 규정을 쌓는 '옥상옥'(屋上屋)의 불필요한 입법일 수 있다. 나아가 김상현은 이것이 "특정 직역(법관, 검사)만을 대상으로 하는 처벌규정을 신설"하여 이들을 겁박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아니라면 불필요한 무리한 입법이라고 강하게 비판한다.
본고는 법왜곡죄 논의가 지닌 이중적 성격을 분석하였다. 한편으로 이는 나치 및 구동독의 '사법불법'을 단죄하고 '책임사법'을 구현하려는 역사적·법철학적 과제이며 , 다른 한편으로 현대 민주국가 내에서 사법권의 일탈을 통제하려는 정치적·실무적 과제이다.
전자의 맥락에서 법왜곡죄는 라드브루흐 공식과 결합하여 '사악한 법'을 적용한 사법부에 대한 과거청산의 정당성을 부여했다. 그러나 후자의 맥락, 즉 한국의 현대 정치 상황에 법왜곡죄를 도입하는 문제는 김상현이 지적한 바와 같이 (1) 명확성 원칙 위반, (2) 사법권 독립(헌법 제103조)의 위축, (3) 기소편의주의와의 체계적 충돌, (4) 포괄적 직권남용죄의 존재로 인한 입법적 불필요성 등 중대한 헌법적 문제에 직면한다.
특히, 현재 한국의 법왜곡죄 도입 논의는 '검찰개혁' 논의와 동시에 진행되면서 치명적인 헌법적·논리적 모순을 드러낸다. 이 모순은 김성룡의 논문 과 김상현의 논문 을 교차 분석할 때 명확해진다. 항을 나눠 상술한다.
김성룡이 비판하는 현행 검찰개혁안(공소청/중수청 신설안)은 검찰의 수사권과 수사지휘권을 전면 폐지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는 검사를 '준사법기관'(quasi-judicial body)이 아닌, 단순 '행정공무원' 또는 '기소 대리인'으로 전락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김성룡은 이것이 수사(범죄 발생 후의 억압적(repressiv) 사법작용)와 경찰(위험 방지를 위한 예방적(präventiv) 행정작용)의 본질을 혼동하는 것이며, 법률전문가인 검사에 의한 법치국가적 통제를 제거하여 오히려 경찰권력의 비대화와 전제·독재(despotism)를 초래할 수 있는 반(反)헌법적 발상이라고 강하게 비판한다.
반면, 본고 II장에서 분석했듯이, 독일 판례가 검사를 법왜곡죄의 주체로 인정하는 유일한 법리적 근거는, 검사가 '수사절차 주재자'(Herr des Ermittlungsverfahrens)로서 '판사와 같이'결정하는 '준사법기관'의 지위를 갖는다는 점이다.
앞서 김상현이 지적하듯, 이 두 논의는 양립 불가능하다.
만약 (A)의 검찰개혁이 성공하여 검사의 준사법기관성이 박탈되고 수사 주재자의 지위를 상실한다면, (B)의 법왜곡죄를 검사에게 적용할 핵심적인 법리적 근거 자체가 소멸한다. 검사의 준사법기관성을 전제로 하는 법왜곡죄 도입과, 검사의 준사법기관성을 폐지하려는 검찰개혁을 동시에 추진하는 것은 "상호 일관성이 결여된" 조치이며, 근본적인 자기모순이다.
결론적으로, '사법불법'의 통제라는 숭고한 이념 에도 불구하고 법왜곡죄의 국내 도입은 중대한 헌법적 문제(주제 5)를 야기한다.
나아가, 검사의 헌법적 지위에 대한 상반된 전제를 바탕으로 두 개의 '개혁'을 모순적으로 추진하는 현재의 입법 시도는, '책임사법'의 확립이 아닌 사법 시스템 전반의 정치적 종속을 초래할 위험을 내포한다. 법왜곡죄가 '사법불법'을 통제함과 동시에 '법관의 독립'을 보호하는 이중적 기능을 가졌던 독일의 역사적 교훈은, 사법부의 독립(헌법 제103조)이라는 또 다른 헌법적 가치를 질식시키는 도구로 전락할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
후기
법왜곡죄와 관련한 일련의 논의는, 학계에서 의견교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만큼, 추가적인 학술연구를 논할 가치가 매우 높다고 사료된다.
헌법학적 관점에선 헌법조문의 의미와 무게 및 명확성원칙에 관한 쟁점, 정치학적 관점에선 민주주의의 다수의 독재에 관한 논쟁, 그리고 형사법적 관점에선 죄형법정주의의 의미, 나아가 법철학적 관점에선 정의와 법적안정성이 있다.
이 뿐만 아니다. 법사학적 관점과 관련하여선 자연법론과 실정법주의의 비교분석이 있고 행정소송법적 관점에선 입법자의 입법행위에 국가배상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 여부, 나아가 민사법적 관점에선 그에 관한 손해배상책임 유무와 범위 등등 여러가지 연구대상의 현존이 이를 방증하고 있다.
이러한 심도있는 논의를 위해, 보다 많은 자료탐색과 학습이 필요한만큼, 만약 내가 이를 연구주제로 다룰 계획이 있다면 엄밀한 탐독이 긴요할 것임은 명백하다.
추후의 연구를 위하여, 오늘도 각고의 인내를 발휘하고자 한다.
2025. 11. 1.
이덕연,《법관의 법왜곡 문제-과거청산의 대상으로서의 반성에 부쳐》, 법과사회이론학회, 법과사회 제12권, 1995. 11. , 261-281면
김상현, 《법왜곡죄에 관한 소고》, 한국형사소송법학회, 형사소송이론과실무 제17권 제2호, 2025. 6. , 3-42면
김성룡, 《검찰개혁의 원론적 방법》, 한국형사소송법학회, 형사소송 이론과 실무 제17권 제3호, 2025. 9. , 145-182면
최봉철, 《'사악한' 법의 효력》, 성균관대학교 법학연구원, 성균관법학 제32권 제4호, 2020. 4. 135-16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