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학의 가치, 법관의 자의, 그리고 법적 책임의 계보학

생각의 서고, 8화

by 소는영



I. 서론: 법학의 가치와 사법(Justiz)의 책무



1847년, 프로이센의 검사 율리우스 헤르만 폰 키르히만(Julius Hermann von Kirchmann)은 베를린 법조협회에서 [학문으로서 법학의 무가치성(Die Werthlosigkeit der Jurisprudenz als Wissenschaft)]이라는 도발적인 강연을 통해 법학의 존재론적 기반 자체를 문제 삼았다.


그는, 법학이 불변의 진리를 탐구하는 학문(Wissenschaft)이 될 수 없으며, 오히려 가변적이고 우연적인 실정법률(positives Gesetz)에 기생함으로써 법(Recht)의 진정한 발전을 저해한다는 비판을 제기한다. 이러한 일갈은, 2세기가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본고는 키르히만이 제기한 이 근본적인 인식론적 회의(懷疑)에서 출발하여, 2022년 대법원이 과거 유신헌법 하에서 내린 판단에 대해 국가배상책임을 한, 2022. 8. 30. 선고 2018다212610 전원합의체 판결에 이르는 지성사적(Geistesgeschichte) 궤적을 추적한다. 이 두 역사적 좌표는 '사법불신'이라는 현상을 공유하지만, 전자가 법학의 학문적 지위에 대한 '이론적' 비판이라면 후자는 위헌적 국가권력에 동조한 법관의 '실천적' 배신을 다룬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본고의 목적은 이 이론과 실천의 간극을 메우는 핵심 기제로서 '법관은 무엇에 구속되는가'라는 법철학 및 법학방법론의 근본 질문을 탐구하는 데 있다. 이를 통해 키르히만의 비판이 법학의 대상인 실정법률의 '자의성Willkür'을 문제 삼았다면, 오늘날의 논의는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법관의 자의'를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의 문제로 전환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본고는 먼저 키르히만의 법학 무가치성론의 핵심 논거 두 가지—대상의 우연성으로 인한 인식의 불가능성 및 법학의 경직성으로 인한 법 발전의 저해—를 상세히 분석할 것이다(II장).


이어서 이에 대한 20세기 법학방법론의 거장 카를 라렌츠(Karl Larenz)의 방법론적 응수, 즉 법학(Rechtswissenschaft)이 입법자의 자의를 통제하는 '불가결한(unentbehrlich)' 학문이라는 옹호를 검토한다(III장).


나아가 이러한 법철학적 논쟁이 법관의 책임을 묻는 가장 첨예한 법제도인 독일 형법상의 '법왜곡죄(Rechtsbeugung)' 해석론에서 어떻게 구체화되었는지, 특히 독일 연방법원(BGH)이 '자의성' 개념을 중심으로 가벌성(Strafbarkeit)의 한계를 설정한 법리를 분석한다(IV장).


최종적으로, 이 모든 이론적 논의를 바탕으로 유신헌법 하 법관의 직무행위에 대한 국가배상책임을 다룬 대법원 2018다212610 판결을 심층 분석한다(V장).



본고를 통해, 유신헌법 하 법관의 행위가 키르히만이 우려했던 '실정법에 대한 맹목적 종속'의 비극적 전형으로 볼 수 있음을 논증하며, 해당 판결의 다수의견과 별개의견들 사이에 나타난 격렬한 법리적 대립을 통해, '법관의 독립(richterliche Unabhängigkeit)'이라는 헌법적 가치와 '법치국가적 책무(rechtsstaatliche Verantwortung)' 사이의 근원적 긴장(Spannungsverhältnis)을 해결하려는 우리나라 법학방법론의 고뇌와 투쟁의 과정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될 수 있음을 밝히고자 한다.






II. "입법자의 세 마디 말": 법학의 무가치성(Werthlosigkeit)에 대한 키르히만의 근본 비판



키르히만은 1847년 강연에서 무가치성(Werthlosigkeit)이라는 용어가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고 명시적으로 밝혔다. 첫째는 현실과 국민의 삶에 대한 영향력, 즉 실천적 가치의 결여이며, 둘째는 이론적으로 진정한 개념(진리)에 도달할 수 없다는 인식론적 가치의 결여이다. 이 두 비판은 법학의 대상인 '실정법'의 본질적 한계에서 기인하는데, 항을 나눠 상술하도록 한다.




1. 제1 비판: 대상의 우연성(Zufälligkeit)과 인식의 불가능성


키르히만의 첫 번째 비판은 법학이 자연과학과 같은 엄밀한'학문(Wissenschaft)'이 될 수 없다는 인식론적 단언이다.


그는 학문의 지위가 그 대상의 본질에 의해 결정된다고 전제하며, 이에 따라 자연과학의 대상인 '자연(Natur)'은 객관적이고, 불변하며, 필연적인 법칙(Gesetzmäßigkeit)에 의해 지배된다고 말한다. 이에 반해, 법학의 대상인 '실정법(positives Gesetz)'은 그 본질이 정반대로, 입법자의 의지에 따라 수시로 변하는 '가변적(veränderlich)' 존재이며, 시대와 상황의 산물인 '우연적' 존재이고, 궁극적으로는 권력의 결단에 불과한 '자의적' 존재로 보고 있다. 이러한 법학 대상의 본질적 무상성(無常性)을 극적으로 표현한 것이 바로 그의 유명한 경구, "입법자의 세 마디 교정하는 말에 전체 도서관이 휴지 쪽이 되어버린다(drei berichtigende Worte des Gesetzgebers machen ganze Bibliotheken zu Makulatur)"이다.


그에 의하면, 자연과학자가 수십 년의 연구를 통해 발견한 진리는 영원하지만, 법학자가 평생을 바쳐 주석한 법률은 입법자의 변덕이라는 단 한 번의 행위로 그 학문적 가치를 상실하고 만다. 이러한 대상의 본질적 한계는 필연적으로 법학 연구의 '노력에서의 무상성'을 초래한다. 결국 법학이 그 대상을 체계화하고 인식을 확립하는 순간, 그 대상인 법률은 이미 다른 것으로 변해버렸거나 변할 수 있으므로, 법학은 자연과학이 추구하는 항구적이고 객관적인 '지속가능한 인식 획득'에 본질적으로 도달할 수 없다고 말한 것이다.


나아가 키르히만은 법(Recht)이라는 대상 자체가 순수한 인식의 영역에만 속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한다. 법은 국민의 '감정(Fühlen)'과 '느낌' 속에도, 즉 '법감정(Rechtsgefühl)' 속에도 살아 숨 쉬는 존재이다. 이러한 주관적이고 감정적인 요소가 개입되는 한, 법학이 객관적 진리의 탐구를 목적으로 한다는 주장은 성립 불가능하다고 비판한다.




2. 제2 비판: 법학의 경직성과 법(Recht) 발전의 저해


키르히만의 두 번째 비판은 법학이 단순히 무용한 것을 넘어 사회적으로 유해하다(schädlich)는 실천적 고발이다.


이는 법학이 살아있는 '법(Recht)'과 죽어있는 '법률(Gesetz)'을 혼동하는 데서 비롯된다. 키르히만에게 진정한 법(Recht)이란 국민의 삶 속에 내재하며 시대의 요구에 따라 발전하는 유기체적 존재(자연법 혹은 민족정신과 유사한)이다. 그러나 법학자들과 법률가들(판사, 검사)은 이러한 살아있는 '법'을 탐구하는 대신, 입법자가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죽은 글자'인 실정법 조문에 매달린다. 그들은 실정법률을 해석하고 체계화하는 작업에 몰두하며, "실정법률을 통해 죽은 나무에 기생하며 살아가는 벌레"가 되어버린다. 이러한 '실정법에의 피구속성(Gesetzesbindung)'은 법학을 필연적으로 '보수적(konservativ)'이고 '타성적(träge)'으로 만든다. 법학은 이미 과거가 되어버린 입법자의 의사에 집착하며 현재의 문제 해결을 방해하고, 변화하는 사회의 요구에 부응하여 새로운 법 원리를 형성하는 '법 창조'라는 가장 중요한 기능을 마비시킨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그는 법학(Jurisprudenz)은 그 자체로 생동하는 법의 진정한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된다고까지 선언한다. 법학이 법의 진보를 이끄는 기관차가 아니라, 과거의 법률에 묶여 현재의 발전을 가로막는 족쇄가 된다는 것이다.





III. 법학의 불가결성Unentbehrlichkeit: 라렌츠의 방법론적 옹호



키르히만의 신랄한 비판 이후 120년이 지난 1966년, 20세기 독일 법학방법론을 대표하는 카를 라렌츠(Karl Larenz)는 키르히만이 강연했던 바로 그 베를린 법조협회에서, '학문으로서 법학의 불가결성(Über die Unentbehrlichkeit der Jurisprudenz als Wissenschaft)'이라는 제목의 강연을 통해 키르히만의 도전에 정면으로 응수했다.





1. 법학의 과제로서 '입법의 준비(Vorbereitung der Gesetzgebung)'


라렌츠는 키르히만의 비판이 법학과 그 대상인 '법(Recht)'을 근본적으로 오해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반박한다.


키르히만은 법학의 대상을 우연적이고 가변적인 '개별 실정법 조문'로 협소하게 파악했지만, 라렌츠에게 법학이란 그러한 개별 규범들을 넘어, 법질서 전체를 관통하는 내적 연관(innerer Zusammenhang)과 체계, 그리고 그 배후에 있는 지도적 원리(leitende Prinzipien)와 가치평가를 탐구하는 고도의 지적 활동, 즉 '법도그마틱(Rechtsdogmatik)'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라렌츠는 키르히만이 폄하했던 법학의 실천적 가치를 '입법 활동'과의 관계 속에서 재정의한다. 이는 사용자 질의의 핵심 주제 중 하나인 "입법자는 법을 자기 마음대로 만들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키르히만의 논리대로라면 입법자는 자의적 결단으로 법을 창조하고, 법학은 그 뒤를 따를 뿐이다. 그러나 라렌츠는 정반대의 논리를 편다. 그는 현대 입법이 합리성과 지속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반드시 법학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즉, [입법자 자신의 고유한 입법활동은 '법학, 법사회학, 법도그마틱, 비교법학' 등, 법학의 아주 기초적인 범주에 속하는 학문들의 불가결한 도움을 받으며 이루어진 이러한 검토가 끝난 다음에야 비로소] 시작할 수 있다고 한 것이다.




2. 라렌츠의 주장과 그 방법론적 시사점


라렌츠의 주장은 법학의 학문적 지위를 근본적으로 격상시킨다. 키르히만에게 법학이 입법자의 자의적 행위에 종속된 사후적 산물'이자 단순한 기술(Beschreibung)에 불과했다면, 라렌츠에게 법학은 합리적 입법을 위한 전제조건이자 선행하는 방법론이다.


구체적으로 법학은 입법자에게 다음과 같은 불가결한 기초를 제공한다

법도그마틱(Rechtsdogmatik): 새로 만들어질 법률이 편입되어야 할 기존 법질서 전체의 체계와 내적 모순 여부를 검토하고, 법적 개념과 원리의 일관성을 제공한다.

법사회학(Rechtssoziologie): 입법이 규율하고자 하는 '생활사실관계(Lebenssachverhalt)', 즉 '입법의 실제들(Realien der Gesetzgebung)'을 분석하고, 입법이 가져올 사회적 영향을 예측한다.

비교법학(Rechtsvergleichung): 동일한 사회적 문제에 대해 다른 법체계가 어떠한 해결책(대안)을 제시하고 있는지 검토한다.


결국 라렌츠에게 법학은 키르히만이 비판했던 입법자의 자의성과 우연성을 통제하고, 입법 행위에 합리성과 체계성, 그리고 예측가능성을 부여하는 핵심적인 학문적 장치로 볼 수있다. 키르히만이 법학이 법(Recht)의 발전을 저해한다고 비판했다면, 라렌츠는 법학이야말로 법의 합리적 발전을 추동하는 유일한 동력이라고 응수한 것이다.





IV. 법관의 자의와 형사적 통제: 독일 '법왜곡죄(Rechtsbeugung)' 해석론



라렌츠가 법학을 통해 '입법자의 자의'를 통제하는 문제를 다루었다면, 법학방법론의 또 다른 핵심 과제는 '법관의 자의'를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법관의 법적용 행위가 단순한 오판의 수준을 넘어 의식적인 '법왜곡(Rechtsbeugung)'에 이를 때, 국가는 이를 어떻게 형사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가? 이 문제는 필연적으로 법관의 독립이라는 헌법적 가치와의 첨예한 긴장관계를 야기한다.



1. 보호법익의 재정의: '법관의 독립'이 아닌 '법치국가(Rechtsstaat)'


독일 형법 제339조는 '법왜곡죄'를 [법관, 그 밖의 공무원 또는 중재법관이 법사건을 주재하거나 결정함에 있어 법을 왜곡하여 당사자 일방에게 유리 또는 불리하게 만든 경우] 1년 이상의 징역형(중죄)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의 적용에 있어 핵심쟁점은 단연, '법관의 독립'과의 충돌이다. 만약 법관의 모든 오판을 형사처벌의 위협 하에 둔다면, 법관은 소신 있는 판결을 내릴 수 없게 되어 사법권의 독립이라는 헌법적 대원칙이 무너지게 되기 때문이다.


독일의 판례와 통설은 이 문제에 대해, 법왜곡죄의 보호법익을 명확히 함으로써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 있는바, 이때 본죄의 보호법익을 법관 개인의 직무상 성실성이 아니라, '전체로서의 국내적 사법(inländische Rechtspflege)'기능 그 자체로 보고 있다. 더 구체적으로는 "법사건을 지휘하거나 결정함에 있어 편견과 자의의 방지에 대한 국민 일반의 신뢰"와 "법질서의 효력", 즉 법치국가 원칙 그 자체를 보호하는 데 있는 것이다. 이는, 학계와 실무는 "제339조의 보호법익은 법관의 독립의 보호와 아무런 관련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명시적으로 선언한 대목에서 재확인할 수 있는바, 법관의 독립이 법치국가적 책무를 방기하거나 사법 정의를 의식적으로 왜곡할 수 있는 면죄부가 될 수 없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2. 독일연방법원(BGH)의 객관적 요건 제한: 구동독 사법불법의 청산


법왜곡죄의 보호법익이 법관의 독립과 무관하다 할지라도, 그 적용 범위가 넓어지면 사실상 법관의 독립을 위축시킬 위험(Einschüchterungseffekt)이 상존한다. 이 딜레마는 1990년 독일 통일 이후, 구동독(DDR) 시절 자행된 수많은 '사법불법'—예컨대 정치범에 대한 과도한 판결이나 탈출 시도자에 대한 살인 방조 등—을 단죄하는 과정에서 현실적인 문제로 대두되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모든 구동독 법관을 법왜곡죄로 처벌할 수는 없었기에, 독일연방법원은 1992년 이후 일련의 판결을 통해 법왜곡죄의 객관적 구성요건을 극도로 엄격하게 제한하는 판례 법리를 확립했다. 법관의 모든 법 위반(Rechtsverstoß) 행위를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법관의 판단이 법학방법론적으로 도저히 옹호될 수 없는 수준에 이른 경우에만 가벌성을 인정하도록 한 것이다. 법왜곡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① 재판의 위법성이 단순한 법령 위반을 넘어 '명백'해야 하고, ② 그 재판으로 인해 타인의 인권(특히 신체의 자유)이 '중대하게' 침해되어야 하며, ③ 무엇보다 그 재판이 '자의적'인 행위로 평가될 수 있어야 한다.



3. '자의성'의 법철학적 의미와 차단효(Sperrwirkung)


독일연방법원이 제시한, [제한적 해석론]의 핵심은 바로 자의성 개념이다. 법왜곡죄에서의 '자의적'이란, [국가기관으로서의 자신의 행위를 법과 법률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기준(eigenen Maßstäben)에 맞추는 경우]를 의미한다. 이는 법학방법론적으로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갖고 있는바, 법관의 판결이 '자의적'이라는 것은, 법관이 법률해석의 방법론(juristische Methodenlehre)이 허용하는 합리적 재량의 범위를 의식적으로 이탈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즉, 법문의 가능한 의미, 법률의 목적, 체계적 지위, 헌법적 가치 등을 모두 무시하고, 오로지 자신의 사적 감정, 정치적 신념, 또는 상부의 부당한 지시와 같은 '법 외적' 기준을 법적 판단으로 위장할 때 비로소 '자의성'이 인정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오판'과 형사적으로 처벌받아야 할 '법왜곡'을 구별하는 핵심적인 기준이 된다는 점에서 기준점으로 작동한다.


역설적이게도, 법왜곡죄(StGB §339)는 이러한 엄격한 요건을 통해 반대 방향으로 법관의 독립을 보장하는 기능도 수행하는데,. 이를 '차단효'라고 부른다. 즉, 법관의 재판상 직무행위가 법왜곡죄라는 고도로 가중된 특별 구성요건에 해당하지 않는 한, 일반 형법상의 직무유기죄나 자유박탈죄(StGB §239), 직권남용죄 등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원칙이다. 이 차단효를 통해 독일 형법은 '명백한 자의'에 이르지 않은 통상적인 재판 활동과 법률 해석의 영역에 대해서는 형사소추의 위협을 제거함으로써 법관의 독립을 실질적으로 담보한다.





V. 유신헌법 하 법관의 직무행위와 국가배상책임: 대법원 2018다212610 판결 분석



이러한 키르히만의 비판, 라렌츠의 옹호, 그리고 독일 법왜곡죄의 해석론은 1970년대 유신헌법 체제 하에서 자행된 사법 불법과 이에 대한 21세기 대한민국의 사법적 청산과정을 분석하는 데 핵심적인 이론적 틀을 제시한다. 유신헌법 하 법관들의 재판 행위는, 키르히만이 비판했던 '법학의 무가치성'이 비극적으로 현실화된 모습, 즉 살아있는 헌법적 '법(Recht)'(국민 주권, 기본권, 영장주의)을 외면하고, 대통령의 긴급조치라는 '죽은 실정법(Gesetz)'에 맹목적으로 종속된 행위의 전형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 2018다212610 전원합의체 판결은 바로 이 문제, 즉 긴급조치 제9호를 적용하여 유죄판결을 선고한 법관의 재판상 직무행위에 대해 국가배상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 여부를 정면으로 다루었다. 이 판결은 국가배상책임을 부정한 종전 판례(대법원 2014. 10. 27. 선고 2013다217962 판결 등)를 변경하고 배상책임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그 법리적 접근 방식에 있어, 다수의견과 3개의 별개의견은 법관의 책임을 구성하는 법학방법론적 경로를 두고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




1. 다수의견의 접근: '일련의 국가작용(eine Reihe von Staatsakten)'과 '객관적 정당성'의 상실


다수의견은 국가배상법 제2조의 요건인 '공무원의 고의 또는 과실'을 개별 법관의 주관적 인식(고의)이나 주의의무 위반(과실)에서 직접 찾으려는 시도를 회피한다. 이는 '법관의 독립'과의 정면충돌을 우회하기 위한 방법론적 선택으로 보인다. 대신 대통령의 긴급조치 제9호 발령행위, 수사기관의 영장 없는 체포·구금 및 공소제기, 그리고 법관의 유죄판결 선고에 이르는 전 과정을 하나의 '일련의 국가작용'으로 포섭한다. 그리고 이 일련의 과정에 관여한 다수의 공무원들이 전체적으로 보아 "객관적 주의의무를 소홀히 하여 그 직무행위가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한" 위법 상태에 있었다고 판단한다.


다수의견이 '객관적 정당성' 상실의 핵심 근거로 삼은 것은 긴급조치 제9호 자체가 갖는 '중대하고 명백한' 위헌성이다. 특히 헌법의 핵심 원리인 '영장주의'를 전면 배제한 조항(제8항)은, 발령 요건을 결여했을 뿐만 아니라, 유신헌법(제10조 제3항)조차 천명했던 영장주의를 부정한 것으로서, 4년 7개월간 지속된 것은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법치국가의 파괴 행위라고 보았다. 결국 다수의견은, 개별 법관의 주관적 책임을 묻는 대신, 위헌성이 중대하고 명백한 법령의 집행에 '일련의 과정'으로 참여한 행위 자체를 '객관적'으로 위법하다고 평가함으로써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하는 경로를 택했다.




2. 별개의견의 대립 (1): 법관의 '과실'과 '평균적 법관'의 기준


다수의견이 법관 개인의 책임을 우회한 것과 달리, 별개의견들은 법관의 재판상 직무행위가 독자적인 불법행위(국가배상법 제2조)를 구성하는지 여부를 정면으로 다루었다. 이 논쟁은 '평균적 법관'의 주의의무 기준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의 문제로 집약된다. 하지만 별개의견에서도 대법관 각각의 주장과 논거가 상이한바 항을 나눠 상술하도록 한다.


가. 대법관 김재형의 별개의견 (법관의 과실 부정론)


대법관 김재형은 국가배상책임이라는 결론에는 동의하나, 법관의 재판행위가 독자적인 불법행위를 구성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 논거는 법관의 과실을 판단하는 기준인 '평균적 법관'의 입장에서 볼 때, 당시 법관에게 긴급조치 제9호의 위헌성 심사를 요구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 ① 유신헌법 제53조 제4항("긴급조치는 사법적 심사의 대상이 되지 아니한다.")이라는 헌법상 명문 규정이 존재했고, ② 당시 긴급조치의 합헌성을 긍정하던 대법원 판례(대법원 1977. 5. 13. 자 77모19 전원합의체 결정 등)가 하급심을 사실상 구속하고 있었으며, ③ 헌법 규정 상호 간의 효력상 차등(예: 제53조 제4항과 기본권 조항)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평균적 법관'이 헌법 제53조 제4항 자체를 위헌이라고 판단하거나 긴급조치의 위헌성 심사를 감행할 것을 '주의의무'의 내용으로 요구할 수는 없다고 보았다. 따라서 법관의 직무수행상 '과실'을 인정할 수 없다고 결론 내린다.


이는 법관의 독립을 보장하기 위해 국가배상책임의 요건을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는 기존 판례(대법원 2003. 7. 11. 선고 99다24218 판결 등)의 태도를 견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나. 대법관 김선수, 대법관 오경미의 별개의견 (법관의 과실 긍정론)


반면, 대법관 김선수와 대법관 오경미는 법관의 재판행위 자체가 국가배상법 제2조의 요건을 충족하는 '독립적인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정면으로 반박한다. 이들 역시 '평균적 법관'의 주의의무를 기준으로 삼지만, 그 결론은 정반대이다.

이들은 긴급조치 제9호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근간을 해치는 것으로서 묵과할 수 없는 정도로 중대하고 명백한" 위헌성을 가진다고 전제한다. 위헌성이 이처럼 중대하고 명백할 경우, 사법심사 배제 조항(유신헌법 제53조 제4항)은 애초에 헌법상 긴급조치의 실질을 갖추지 못한 이 조치에 적용될 수 없다고 해석해야 하므로(목적론적 축소해석), 법관은 헌법이 부여한 '국민의 기본권 보호 책무'와 '위헌·위법 심사 권한'(유신헌법 제105조)을 행사하여 위헌적인 법령의 적용을 거부했어야 한다. 특히 영장주의를 전면 배제하여 불법체포·구금된 피고인에 대해 인신보호조치를 취하지 않고 유죄판결을 선고한 것은 , "헌법과 법률이 법관에게 직무수행상 준수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기준을 현저하게 위반"한 행위로서, '평균적 법관'의 객관적 주의의무를 위반한 명백한 '과실'에 해당한다고 판시한다.


이는 '지사(志士)형 법관'이 아닌 '평균적 법관'에게 요구되는 규범적 주의의무라는 점을 강조한다.



3. 별개의견의 대립 (2): 책임의 구조 - 대위책임 對 국가 자기책임


다수의견과 위 두 별개의견이 '공무원(법관) 개인의 과실' 유무라는 전통적인 '대위책임' 이론의 틀 안에서 논쟁을 벌인 반면, 대법관 안철상의 별개의견은 이 법리적 틀 자체의 전환을 시도한다.


대법관 안철상은 국가배상책임의 성질을 민법상 불법행위 책임의 연장선(대위책임)에서 파악할 것이 아니라, 헌법 제29조 제1항에 근거한 독자적인 '공법적 자기책임'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관점에 따르면, 국가배상책임의 성립에 반드시 개별 공무원의 주관적 고의·과실이 입증될 필요는 없다. 개별 법관의 개인적인 과실(주관적 책임요소)을 인정하기 어렵다 하더라도, 긴급조치 제9호의 발령 및 집행이라는 일련의 과정은 그 자체가 "행정 조직이나 운영상의 결함(organisatorischer Mangel)"으로 인해 헌법상 '국가의 기본권 보장의무'(유신헌법 제8조)를 저버린 것이다. 즉, 개별 법관의 과실이 아니라 '국가의 직무상 과실' 또는 '조직적 과실'이 인정되므로, 국가는 '자신'의 행위에 대해 직접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개별 법관의 과실 입증이라는 어려운 관문을 거치지 않고도 국가의 책임을 구성할 수 있게 하는 법리적 전환을 의미한다.




VI. 결론: 법(Recht)의 회복과 사법의 책무



율리우스 헤르만 폰 키르히만의 법학 비판은 '실정법'의 가변성과 자의성에서 출발했다. 그는 법학이 이러한 '죽은 글자'에 종속됨으로써 살아있는 '법'의 발전을 가로막는다고 개탄했다. 유신헌법 하 법관들의 긴급조치 제9호 적용 행위는 키르히만의 이 비판이 가장 참혹한 형태로 현실화된 사례였다. 그들은 헌법의 근본 가치와 영장주의라는 살아있는 '법'을 외면하고, 대통령의 명령이라는 '실정법'에 맹목적으로 종속되는 '법기술자(Rechtstechniker)'로 전락했다.


반면, 카를 라렌츠는 법학의 진정한 가치가 입법자의 자의를 통제하고 법질서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불가결한' 방법론에 있다고 옹호했다. 이 논리는 법관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법관은 키르히만이 폄하했던 단순한 법률의 집행자가 아니라, 라렌츠가 역설했듯이 법도그마틱과 헌법 원리를 통해 '입법자의 자의'뿐만 아니라 '집행자의 자의'까지도 통제해야 할 최후의 보루(letzte Instanz)이다.


나아가 대법원 2018다212610 판결의 쟁점은, 독일 법왜곡죄의 해석론이 직면했던 문제의식과 궤를 같이 한다 볼 수 있는데, 법관의 독립을 어디까지 보호하고, 어디부터 법치국가적 책임을 물을 것인가의 경계 설정 문제라는 점에서 그렇다. 법관이 헌법이 부여한 자신의 숭고한 책무를 방기하고, 법률해석의 재량을 넘어선 '자의'의 영역(독일 법왜곡죄의 기준)에 이른 행위, 즉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한 행위(다수의견)에 대해 민사상 국가배상책임의 근거가 될 수 있음을 확인함으로써, 키르히만이 조롱했던 법학의 '가치'와 사법의 '불가결성'을 역설적으로 증명하였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2025. 11. 3.



참고문헌(參考文獻)



김성룡, 《법이론과 실무에 던지는 물음, '법학의 학문성'-법학의 학문성에 관한 논의가 우리에게 던지는 과제》, 한국형사소송법학회, 『형사소송 이론과 실무』 제7권 제1호, 2015. 6. , 1-31면


이진국, 《독일 형법상 법왜곡죄의 구성요건과 적용》, 한국비교형사법학회, 『비교형사법연구』제21권 제1호, 2019. 4. , 163-184면


대법원 2022. 8. 30. 선고 2018다212610 전원합의체 판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