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서고, 1화
1.
법학공부에 있어, [최신판례]의 중요성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법학실력을 평가하는 모든 시험은, 선택형이든 서술형이든, 출제에서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담보하고자 답안에서 [대법원판례 다수의견]의 결론을 적용하라고 명한다.
[대법원판례], 그 중에서 [시험에 나올만한 것 중,가장極 최신의 판례]에 집중하는 것이, 수험생활의 미덕이었다. 그러나 수험생활에 머물지 않고, 타 영역으로까지 퍼지는 일련의 사태를 보면, 최신의 미덕(美德)이 어느새 숭상(嵩像)과 몰두로 전착귀결화하고 있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나는, 이 태도가 마땅히 지양하고 경계하여야할 대상이라 사료한다. 이하 항을 나눠 상술한다.
2.
개념정의부터 시작하겠다. 이 글에서 논하고자 하는 최신(最新)이란,[종래 대법원 전원합의체 다수의견에서 유지해온 결론을, 바꿔야 할 중대한 사정변경이 있어, 이를 반영한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최신은, 그동안 대법원이 [사법의 정점이라는 권위와 최고법원이라는 위상]을 근거삼아 쌓아온 것이자 법의 한 축인 [법적 안정성]을 위협하면서까지 바꿔야 할 [정의의 관념]이 있다고 판단한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는 건 분명하다.
그러나 대다수의 경우는, 단지 ['그 순간'에 판단했을 때],['그 사안'에 있어서], 종래의 판단을 [유지했을시 나타날 큰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기 위한 서술형일 뿐, 중요한 법철학적 함의를 내포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 [사안의 경우는 이와 다르다]는 레토릭에 불과한 것이다. 이는 특정한 케이스에서의 적용만 다를 뿐, "원래부터 있었던, 그렇게 존재해오던 법의 원칙"은 그대로라는 걸 의미한다.
3.
생각건대, 엄격한 의미에서 분절될 수 없는, 시간의 속성상 최신이라는 것은 결국 미래의 영역이라 사료된다. 현재의 시점에선 아직 도래하지 않았기에 미래는 미래(未來)다. 전지전능한 자를 상정하지 않고는, 현존재로서의 그 누구도, 아무도 알 수 없다.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건, 그 자체로선 불변과 거리가 너무도 멀다. 모든 것은 바뀐다. 영원한 건 없다. 생(生)과 멸(滅)은 결코 상이하지 않다. 마치 흐르는 냇물에 발을 담갔을 때, 내 발이 닿았던 [특정한 물(水)]은, 앞으로 다가올 물과 결코 같지 않듯, 항상(港床)하지 않기에, 늘상 가변(可變)을 내포하는 것이다.
나는 이와 같은 견지에서, 위상과 권위에 기하여 법적 [안정성]을 내세운 대법원의 말(言)에, 모종의 낯섦을 지울 수 없었다.
4.
법학은 순수한 학문적 영역 이외에도 도구적 수단으로도 쓰이는 특징이 있다. 그렇기에 현실과의 타협이 필요하고, 시대적 변화에 적시(適時)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현실적 요구를 외면해선 안될 것이다.
그러나 [시간의 깊이]는 그러한 상황에서조차 어느 정도 요(要)한다. 아니, 요구해야만 한다. 설령 시간의 깊이는 어느정도의 성숙이 필요하고, 최신과 양립할 수 없을지라도, 요구해야한다.
5.
최신판례의 결론에만 경도되면, 기본의 당연함을 "당연시한 나머지", 그것이 함축한 취지를 몰각하게 되어, 누군가 기초적인 걸 물었을 때, 생각해본적 없다는 당혹감을 마주하게 된다. 이때의 기본.기초란 앞서 언급한 [시간의 깊이] 조건을 갖춘 대상을 의미한다.
1964년의 판례를 보았을 때, "1964"이라는 낮은 숫자로부터, 구식Old-Fashioned으로 치부하겠다는 인식의 라벨링Labelling은, 1964년의 판례가 없었다면 미래의 2025년 최신도 존재할 수 없음을 등한시한 필터링Filtering의 폭력이다. 이때 폭력의 주체는 바로 나 자신이었다.
나는, 법학을 '공부'하는 자로서, [최신판례의 결론만 달달 암기하는 것]이 아닌 [오랫동안 바뀌지 않고 유지되어온 고전(古傳)의 법리]를 궁구하겠음을 감히 다짐한다. 불변(不變)까진 아니더라도, 과거에 세워진 어떤 원칙이 적어도 인간의 세월에서 비단 짧지 아니한 수십년의 풍파를 버텨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는 것은, 그만큼 강하다는 걸 뜻하니깐 말이다.
6.
나는, 오늘 하루도 학자들이 쓴 논문을 읽는다. 그들이 쓰면서 인용한 다른 이들의 논문을 레퍼런스에서 다시 찾고, 필요한 경우 다른 것도 탐색해본다. 그렇게 계속 계속, 점점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어느새 작성연도의 수數는 "2025"로부터 저만치나 멀어져있다.
나는, 척박한 땅에서 길을 닦고, 묵묵히 개척해온 학구적 선지자들을 바라보며, 내가 단지 거인의 어깨에서 보았던 게 풍경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매번 깨닫는다. [최신]이라는 두글자만으로는, 결코 고전이 축적해온, [시간의 깊이]를 덮을 수 없었다. 내가 알던 내용이라는 게 한없이 얕았다는 것. 그것을 조금이나마 자각하였을 때, 나는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난, 우물 안 개구리다. 이만큼 적절한 표현이 있을까?
2025. 10.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