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도그마틱, 법발견, 그리고 '법'패러다임의 재구성

생각의 서고, 15화

by 소는영



​I. 서론: 법학방법론의 위기, 그리고 김성돈의 문제제기


​1. 한국 사법실무의 방법론적 혼란


​현대 한국의 사법실무, 특히 대법원 판례의 논리전개는 법학방법론의 관점에서 볼 때, 일관된 방법론을 결여한 채 두 개의 상반된 극단 사이를 진동하는 양상을 보이며 심각한 '방법론적 혼란(Methodenkonfusion)'을 드러내고 있다.



​제1의 극단은 법률(Gesetz)과 법(Recht)을 동일시하며, 법적 개념을 완결된 논리 체계로 간주하여 구체적 사실관계의 특수성을 외면한 채, 기계적 삼단논법에만 의존하는 19세기 개념법학(Begriffsjurisprudenz)적 태도이다. 이 경직된 형식주의는 법관을 '법률적 자판기'로 전락시키며 구체적 타당성을 상실하게 만든다.


​제2의 극단은 이와 정반대로, 엄격한 법도그마틱의 구속으로부터 이탈하여 '사회상규', '사회통념', '공동체의 요구' 등과 같이 불확정적이고 법외적인 요소들을 자의적으로 유입시키는 태도이다. 이는 '신의성실(Treu und Glauben)' 원칙과 같은 '일반조항(Generalklausel)'을 법적 논증의 엄밀성을 확보하는 비판적 기준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법관의 주관적 결단을 정당화하는 도피처로 삼는다는 점에서 현실주의 혹은 '상황윤리(Situationsethik)'적 판단으로 귀결될 위험을 내포한다.



2. 김성돈의 문제의식과 핵심 역설


김성돈은, 바로 이러한 한국 사법의 방법론적 양극단이 초래하는 법적 안정성(Rechtssicherheit)과 예측가능성(Vorhersehbarkeit)의 심각한 훼손을 정면으로 문제삼는다. 그의 비판은 일견 모순되어 보이는 두 편의 핵심 논문에서 구체화되는데, 이는 본 논문이 해명하고자 하는 핵심적 역설(Paradox)을 구성한다.



​첫째, 대법원이 위법성 판단에 있어 '사회상규'와 같은 '빈 공식(leere Formel)'에 의존함으로써, 엄격한 '도그마틱적 법학 패러다임'을 경시하고 구체적 타당성만을 좇는 '현실주의적 법학 패러다임'에 과도하게 편중되어 있다고 강력히 비판한다. 이는 사법부가 법의 체계성과 안정성을 스스로 허물어뜨리고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둘째, 이른바 '사법농단' 사건에 연루된 법관의 직권남용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하급심 판결을 분석한다. 이 판결은 "'권한 없으면 남용 없다'"는 지극히 형식논리적인 태도, 즉 19세기 "개념법학적 사고"에 회귀하여 기계적 삼단논법을 적용함으로써 구체적 사안의 실질을 외면했다고 비판한다.



​표면적으로 보건대, 하나는 '반(反)도그마틱'을 비판하고, 다른 하나는 '과잉-도그마틱(형식주의)'을 비판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는 그가 일관성이 없음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방법론적 '양극단' 모두를 법치국가적 법발견의 원칙에서 이탈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3. 본고의 목적과 구성


본고의 목적은 김성돈의 두 논문에 대한 심층적·체계적 분석을 통해, 상기(上記)한 표면적 역설을 해소하고 그의 근본적인 법사상(Rechtsdenken)과 법학방법론을 현대적 법도그마틱의 정립을 위한 일관된 노력으로 재구성하는 데 있다.


이에 따라 본고는 그에게 있어 '법(Recht)'이란 법전 속에 박제된 고정불변의 실체가 아님을 논증할 것이다. 그에게 법이란 로마법 격언 "Da mihi factum, dabo tibi ius(나에게 사실을 달라, 그러면 너에게 법을 주리라)"이 웅변하듯, 구체적 '사실'과의 역동적인 상호작용 속에서 비로소 '발견(Rechtsfindung)'되고 '형성(Gestaltung)'되는 개념이다. 이는 법적 개념이 새로운 사실관계에 적응하며 스스로를 재구성하는 '가소성' 을 지닌다는 법이해를 전제한다.


​이를 규명하기 위해, 제2장에서 대법원의 '현실주의적' 편향과 '일반조항으로의 도피' 문제를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제3장에서는 하급심의 '개념법학적' 퇴행을 비판하고, 이에 대비되는 김성돈의 '법발견' 방법론을 추출한다. 나아가 제4장에서는 이 두 논의를 변증법적으로 종합하여, 그가 지향하는 '현대적 법도그마틱'의 초상을 재구성하며, 제5장에서는 이러한 그의 방법론이 헌법적 법치국가의 과제 및 법철학적 논쟁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심화분석한다.






II. '빈 공식'으로서의 사법: 대법원 위법성 판단의 방법론적 표류


​1. 대법원 위법성 판단 '기준'의 공허성(Leerheit) 비판


김성돈은, 대법원이 형법 제20조(사회상규)의 해석을 포함한 위법성 판단 과정에서 사용하는 핵심 기준들의 방법론적 결함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대법원이 사용하는 '사회상규', '법질서 전체의 정신', '사회윤리', '사회통념' 등의 개념들은, 그럴듯한 외관과는 달리, "고도의 추상적 개념"이자 "빈 공식(leere Formel)"에 불과하다고 혹평한다.


​이러한 기준들이 갖는 근본적인 문제는, 그것이 법관의 판단과정을 사전에 구속하고 이끄는 규범적 척도로서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려진 결론을 사후적으로 정당화하고 포장하는 수사(Rhetorik)에 그친다는 점이다. 즉, 이 개념들은 위법성 판단의 "실천적 유용성(praktische Nützlichkeit)"을 결정적으로 결여하고 있다.


그는, 그중에서도 특히 '사회통념'이라는 개념의 허구성을 집중적으로 파고든다. 사회통념은 마치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실체처럼 원용되지만, 법관이 그 실재를 법정에서 실증적으로 '확인'할 방법은 전무하다. 법관의 주관적 신념이나 직관을 '사회 일반인의 상식'이라는 이름으로 위장하는 "신기루"에 불과하며, 실상은 "법관의 주관적 판단"을 은폐하고 합리화하는 레토릭으로 기능할 뿐이다. 이는 법적 결정의 투명성과 검증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2. 일반조항으로의 도피Flucht in die Generalklauseln


​김성돈의 이러한 비판은, 법철학의 고전적 난제인 일반조항으로의 도피에 관한 문제와 맞닿아 있는바, 이는 그의 비판이 단순한 판례 비평을 넘어 근본적인 법철학적·방법론적 성찰에 기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독일의 법학자 헤데만(Hedemann)은 일찍이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 법관들이 민법상의 '신의성실'
이나 '선량한 풍속'과 같은 일반조항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현상을 '일반조항으로의 도피'라고 명명하며, 이것이 엄밀한 법적사고의 유약화를 초래하고, 법관의 주관적 가치 판단이 법을 대체하는 "자의성"과 "법적 불안정성"을 야기한다고 강력히 경고한 바 있다.


김성돈이 비판하는 사회상규(형법 제20조)는 형법 영역에서 가장 대표적인 일반조항이다. 대법원이 이 '빈 공식'에 의존하여 구체적 사정만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판단 방식은, 헤데만이 경고했던 바로 그 자의성의 문제이자 법적사고의 유약화현상과 다르지 않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일반조항의 기능조차 왜곡되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비판적 법실증주의' 관점에서 볼 때, '정의'나 '신의칙'과 같은 법원리는 실정법의 형식적 적용이 초래하는 "심각한 부정의"를 인식하고 이를 배제(부정의의 배제적 기능)하는 소극적·비판적 기준으로 작동해야 한다.


​그러나 김성돈이 지적하듯, 대법원은 '사회상규'를 이러한 소극적·비판적 한계 원리로 사용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이를 법률에 규정되지 않은 법외적 요소(法外的, außerrechtlich Elemente)를 적극적으로 유입시키는 적극적·창설적 판단 근거로 남용하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대법원은 피해자의 승낙에 의한 위법성 조각을 판단함에 있어, 법률상 요건 외에 '그 승낙이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을 것'을 추가적인 요건으로 덧붙임으로써, 사실상 위법성 조각의 문을 좁히고 가벌성을 확장하는 방향으로 일반조항을 오용(誤用)하고 있다. 이는 일반조항이 법관의 자의적 법창조의 도구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3. 판단 '방식'의 위험성: '도그마틱'의 포기와 '상황윤리(Situationsethik)'로의 전락


김성돈은 나아가, 판단의 '기준'뿐만 아니라 판단의 '방식' 역시 문제 삼고 있다. 대법원이 내세우는, 이른바 '구체적 사정을 고려한 합목적적·합리적 종합 판단'이라는 방식은, 그 자체로 아무런 방법론적 지침을 제공하지 못한다. 엄격한 규범적 기준이 부재한 상태에서 '구체적 사정'만을 고려하는 것은, 결국 법관의 주관적 결단에 의존하는 '상황윤리적 판단'으로 매몰될 수밖에 없는 치명적 위험을 안고 있다.


​이 지점에서 김성돈은 한국 법학계의 근본적인 지향점을 묻기 위해 '두 개의 법학 패러다임'이라는 대립 구도를 제시한다.



첫번째는 ​도그마틱적 법학 패러다임으로, 엄격한 법적 관점을 견지하며, 법에 관한 일관된 체계를 구성하는 것을 중시한다. 이는 법적 안정성과 예측가능성을 담보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두번째는 ​현실주의적 법학 패러다임으로서, 구체적 사안에서의 타당성, 공동체의 요구, 또는 사회적 효용 등을 법발견의 중요한 고려 요소로 삼는다.



여기서 ​김성돈의 진단은, 대법원이 '현실주의적 패러다임'에 과도하게 편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법관들이 '도그마틱'을 경시하고 매 사안마다 '구체적 타당성'이라는 이름으로 법외적 요소를 끌어들임으로써, 판례의 예측불가능성은 극대화되고 있으며, 이는 결국 법의 지배가 아닌 법관의 지배(Richterherrschaft)를 초래하여 '실질적 법치주의'의 토대를 훼손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최종적 경고이다.





III. '개념법학(Begriffsjurisprudenz)'의 망령: 직권남용죄 판결의 방법론적 퇴행


​1. '사법농단' 판결의 형식논리


김성돈이 분석한 '사법농단' 연루 법관의 직권남용죄 판결은, '현실주의적 편향'과는 정반대의 방법론적 문제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데, 이 판결은 법학방법론의 또 다른 극단인 형식주의의 함정을 드러낸다.


​이 사건에서 하급심 법원은 피고인(서울중앙지방법원 수석부장판사)의 재판개입 혐의(직권남용)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며, "'권한 없으면 남용 없다'"는 지극히 간결한 형식논리에 전적으로 의존하였다. 재판부의 논증은, 피고인에게 다른 재판부의 재판 내용에 개입할 '법령상 직무권한'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존재하지 않는 권한을 '남용'하는 것 또한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2. 김성돈의 비판: 19세기 '개념법학'으로의 회귀


김성돈은 이러한 법원의 접근 방식이 법학방법론의 역사에서 이미 극복된 "19세기 개념법학적 사고로 회귀"한 것이며, "형식적 법실증주의(Gesetzespositivismus)" 하에서나 타당성을 얻을 수 있는 "기계론적(mechanistisch)" 사고라고 신랄하게 비판한다.


​이 판결은 '직권'과 '남용'의 관계를, 직권의 존재를 전제로 하는 '직권 종속적' 관계로만 파악했을 뿐, 직무 수행과 '관련하여' 발생하는 부당한 행위라는 '직권 관계적' 측면으로 확장하여 이해하는 데 실패했다. 즉, 법원은 법전에 기록된 문언으로서의 법률(Gesetz)과, 구체적 사안에서 실현되어야 할 규범으로서의 법(Recht)을 동일시하는 치명적인 오류를 범했다는 것이다.



​3. 법이해의 근본적 차이: "Da mihi factum, dabo tibi ius"


김성돈은 개념법학적 판결을 비판하는 근거로 자신의 근본적인 법이해를 제시하는데, 이는 로마법의 오랜 격언 "Da mihi factum, dabo tibi ius (나에게 사실을 달라, 그러면 너에게 법을 주리라)"로 집약된다.

​이 격언이 함의하는 법이해는 다음과 같다.


법(Recht)이란 법전 속에 완성된 형태로 고정되어 '존재하는(sein)' 실체가 아니다. 법은 법관에게 주어진 구체적인 '사례/사실'과의 역동적 관계 속에서 비로소 그 규범적 의미가 드러나고 '되어 가는' 과정 그 자체이다.


​따라서 법관의 임무는 추상적인 법규범(대전제)을 기계적으로 구체적 사실(소전제)에 적용하는 '포섭'이 아니다. 법관의 진정한 과제는, 독일의 법철학자 카알 엥기쉬(Karl Engisch)가 탁월하게 묘사했듯이, "대전제와 생활사태간의 시선의 상호왕래(Hin- und Herwandern des Blicks)", 즉 규범과 사실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며 양자를 서로에게 상응시키는 '법발견(Rechtsfindung)'의 과정이다.


​이러한 법발견은 순수한 '연역(Deduktion)'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그것은 필연적으로 "연역과 귀납의 혼합적 성격"을 띠는 창조적 정신 활동을 요구한다.



​4. 법의 '가소성'과 '법과 시간(Recht und Zeit)'


김성돈은 법적 개념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사실관계에 적응하여 스스로를 재구성하는 "가소성(可塑性)" 혹은 "유연성"을 가져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 '가소성' 개념은 '법과 시간(Recht und Zeit)'이라는 근원적인 법철학적 난제에 대한 방법론적 응답으로 이해될 수 있다.


양천수(2025)에 따르면, 법규범은 "시간을 초월할 수 없으며(nicht zeitübergreifend)" , 그 자체로 "유한성(Endlichkeit)"과 "가변성(Variabilität)"을 본질적 속성으로 한다. 시간의 흐름(der Lauf der Zeit)에 따라 사회 현실이 변화하면, 법규범 역시 그에 맞추어 변화해야 할 필요성에 직면하게 된다. '판례 변경'이 이러한 법의 시간적 적응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이다.


​문제된 '사법농단'이라는 사태는, 과거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새로운 사회적 사실이다. 이러한 새로운 유형의 사실에 직면하여, 사안에서의 대법원이 사용한 개념법학적 방법론은 법의 '가변성'을 부정하고 법을 영원불변의 고정된 텍스트로 취급함으로써, 사실상 '시간'의 흐름과 그에 따른 규범의 적응 필요성을 거부하는 태도로 볼 수 있다.


​반면, 김성돈이 제안하는 '가소성'의 법이해와 '연역-귀납 혼합' 방법론은, 앞서 본 '시간의 흐름에 따른 법의 적응'이라는 과제를 해결하는 현대적 법학방법론이 될 수 있다. 이 방법론을 통해서 법관은 위헌적인 '법창조(Rechtsschöpfung)' 의 영역으로 넘어가지 않으면서도, '법발견'의 범위 내에서 법을 진화시키고 새로운 시대적 요구에 부응할 수 있게 된다.



​5. 방법론적 자의성(Willkür)과 사법 신뢰


​결국 대법원이 보인 개념법학적 태도는, 현실주의적 태도와 마찬가지로, '방법론적 자의성(Willkür)'이라는 동일한 문제로 귀결되는바, 김성돈의 첫번째 논문에서 다룬 사안에서의 대법원이 '사회상규'라는 빈 공식을 자의적으로 원용했다면, 두번째 논문에선 "결론을 미리 정해 놓고 그 정해진 결론에 이를 수 있는 해석방법(즉, 엄격한 문리적·형식적 해석)을 자의적으로 선택"한 것이다.


김성돈은 이러한 법원의 태도가 법적 결정의 '정당성'을 법관 스스로 포기한 행위라고 규탄하며, 나아가 이는 "제식구 감싸기"라는 세간의 합리적 의혹을 법원 스스로 "간접적으로 증명"하는 파국적 결과를 초래했다고 강력히 비판한다. 사법 신뢰의 붕괴가 바로 이 '방법론의 이탈'에서 비롯되었음을 명확히 한 것이다.





IV. 종합 및 재구성: '현대적 법도그마틱'의 정립


​1. 모순의 변증법적 지양


​제2장과 제3장의 분석을 통해 명백해지듯, 反현실주의 비판과 反형식주의 비판은 결코 모순되지 않는다. 이는 김성돈의 논의가 법학방법론의 양극단을 비판하고 이를 변증법적으로 지양함으로써, 제3의 길인 '현대적 법도그마틱'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통일된 논리 구조를 지닌다는 점에 기인한다.

​정(These): 법률의 문언과 형식논리에만 갇힌 19세기 '개념법학'

​반(Antithese): 법관의 주관적 가치판단과 구체적 타당성에만 매몰되는 '자유법론(Freirechtslehre)' 혹은 '상황윤리'

​합(Synthese): 김성돈이 추구하는 '현대적 법도그마틱'



​2. '현대적 법도그마틱'의 두 가지 요건


이상의 논의를 종합할 때, 그가 추구하는 '현대적 법도그마틱'은 상호보완적인 두 가지 핵심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첫번째 요건은, 구조화되고 엄밀한 '개념'의 존재다.

이는 '현실주의' 비판에 대한 응답으로, 법학이 '사회통념'이나 '도구적 이용'과 같은 모호한 "일상 언어(Alltagssprache)" 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한다. 법적 안정성과 예측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해, 법학은 학문적 노력을 통해 정교하게 다듬어진 전문적 '도그마틱적 개념(dogmatischer Begriff)'을 구축하고 이를 엄격하게 사용해야 한다.


두번째 요건은, 사실에 열려있는 '유연성'이다.

이는 '개념법학' 비판에 대한 대답으로서, 도그마틱 개념들이 닫힌 체계(geschlossenes System)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걸 강조한다. '가소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사실관계를 포섭하고 시대적 변화에 적응하며 스스로 발전할 수 있는 '열린 체계'여야만 한다.



3. 방법론적 일관성의 증거: 간접정범 법리 비판


김성돈의 또 다른 논문인 "간접정범에 관한 대법원 법리와 형법이론학의 과제" 를 다시 인용하자면, 이는, 그가 논문에서 제기한 비판을 하나의 논의 안에서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증거 자료로 사용될 수 있다. 해당 논문에서 그는 대법원의 실무 행태를 비판하고, 자신이 옹호하는 '현대적 도그마틱'의 구체적인 모습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생각의 서고'에 쓴 내용에 따르면, 이때 ​대법원은 간접정범의 성립요건으로 '도구적 이용'이라는 "일상 언어에 가까운 용어"를 사용하고 있었. 이 개념은 에서 비판한 '사회상규'처럼 불명확하고 "공허한 표지" 일 뿐만 아니라(첫번째 요건 미충족으로 탈락), '개념법학'의 논리처럼 경직되어, '의사억압적 강요' 외에 '우월한 지식'이나 '우월한 지위'를 이용하는 다양한 현대적 범죄 유형을 포섭하지 못한다(두번째 요건 미충족으로 탈락).


​김성돈은, 이러한 "이론 따로 실무 따로"의 "소통 부재" 현상이 "자의적인 법적 결정과 공허한 이론구축"을 초래한다고 비판했다. 그가 제시하는 해결책은, 대법원이 형법이론학(Strafrechtswissenschaft)이 오랜 논의를 통해 발전시킨 정밀한 도그마틱 개념, 즉 '우월적 의사지배를 통한 행위지배(überlegene Willensherrschaft durch Tatherrschaft)'라는 개념을 수용하는 '규범적 전환'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행위지배' 개념은 단순한 학문적 유희가 아니다. 첫째, 이 개념은 '규범적'으로 재구성되어 이 요구한 '가소성'을 바탕으로 더 많은 사례를 포섭할 잠재력을 가진다. 둘째, 이 개념은 '이원적 불법구조'라는 정교한 이론적 모델을 제공함으로써 , '간접정범의 착오사례'와 같은 고도로 복잡한 실무적 난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밀 법리"를 생산해낸다.


​결국 김성돈에게 '법학'은 사법의 자의성을 통제하는 핵심적인 이성적 기제이다. 어느 법관은 '살아있는 학문(현대 도그마틱)'을 무시하고 주관적 현실주의로 도피했으며, 또 다른 법관은 '죽은 학문(개념법학)' 뒤에 숨어 현실의 문제를 외면했다. 그의 논증은 오직 '살아있는 현대적 도그마틱'만이 법실무의 올바른 길잡이가 될 수 있음을 역설한다.





​V. 심화연구: 법학방법론, 헌법, 그리고 법치국가의 과제


​1. 헌법적 한계로서의 법학방법론


​김성돈의 법학방법론 비판은 그의 헌법(Verfassung) 이해와 불가분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의 또 다른 논문은, 형법의 본질이 통상적으로 이해되듯 '자유보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법익보호를 위해 시민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을 선언하는 데서 출발한다.


​시민의 자유를 보장하는 범죄인의 마그나카르타가 형법이 아니라 '헌법'인 이상, 헌법은 죄형법정주의, 비례성 원칙, 법률유보 등 수많은 "자유보장적 지침"을 통해, 형법이라는 '자유제한법'이 무분별하게 팽창하는 것을 '통제'하는 상위규범으로 기능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를 본고의 대상논문에 적용한다면 어떻게 될까.

첫번, 비판의 대상으로서 '법외적 요소(사회적 효용, 공동체 요구 등)의 자의적 유입' 행위는, 헌법이 설정한 '자유보장적 지침'(법률유보, 죄형법정주의 등)을 무시하고 법관이 자의적으로 자유제한의 근거를 창출하는 위헌적 사법행위가 될 수 있다.

두번째, '기계적 삼단논법'과 형식주의적 태도 역시, '실질적 법치주의' 가 법관에게 요구하는 헌법적 책무, 즉, '사법농단'이라는 반(反)헌법적 행위를 규범적으로 통제하고 단죄해야 할 실질적 의무를 방기한 '형식적 법치주의'로의 퇴행에 불과하다.


​결론적으로, 김성돈에게 '엄격한 법학방법론'의 준수 요구는 단순한 학문적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에서 천명한 '헌법적 한계'를 법관이 준수하도록 강제하는 유일한 이성적 수단이다. 방법론의 붕괴는 곧 헌법적 통제의 붕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2. 입법권의 남용과 사법부의 책무


​법치국가의 위기는 사법부의 방법론적 이탈에서만 비롯되지 않는다. 박성호의 논문("입법권의 남용과 제한에 대한 연구")은 "입법권의 남용"을 경고하며 "실질적 법치주의"를 강력히 요구하였는바, 이 논문은 당시 격렬한 사회적 논쟁의 대상이었던 이른바 "검수완박 법안"(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을 "권력 집단의 이익과 목적을 위한" 입법권 남용의 구체적인 예로 직접 명시하며 비판하고 있었다.


김성돈의 사법농단 비판은, '사법권의 남용' 역시 법치주의에 대한 중대한 위협임을 보여준다. 박성호 논문에서, 입법부가 특정 정치적 목적을 위해 입법권을 남용했다면, 김성돈의 논문에서의 사법부는 "제식구 감싸기"라는 의혹 속에서 '방법론적 이탈'이라는 형태로 사법권을 남용하여 실질적 정의의 실현을 가로막았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김성돈의 전체적인 논의는, '실질적 법치주의'가 완성되기 위해서는 입법부에 대한 헌법적 통제와 더불어, 사법부 스스로가 엄격한 '방법론적 자기구속'을 확립하는 것이 필수불가결함을 시사한다. 이는 김성룡의 논문에서 언급되는 '검찰개혁' 문제 역시, 이러한 거시적인 권력 통제와 방법론적 엄밀성을 확보하는 법치국가적 과제의 맥락 속에서 이해되어야 함을 넌지시 던진다.






​VI. 결론: 한국 법학 및 법실무에 대한 제문제


​본고는 김성돈의 두 논문이 상호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현대적 법도그마틱'의 확립을 요구하는 통일된 비판적 입장임을 논증하고자 하였다.


​그는 법관의 주관적 결단이 지배하는 '상황윤리' 또는 '현실주의'적 태도와, 시대에 뒤떨어진 경직된 '개념법학'적 형식주의를 법치국가의 양대 위협으로 규정하고 이를 동시에 거부한다.


그가 옹호하는 올바른 법학방법론은, 엄격하게 구축된 도그마틱 '개념' 과 구체적 '사실' 사이의 끊임없는 "상호왕래" 를 통해 법을 발견하는 '구조화된 유연성'이다.


나아가 ​김성돈의 근본적인 문제의식은, 앞서 보았듯 "이론 따로 실무 따로"의 "소통 부재" 현상에 집약되어 있는바, 이때의 단절이 "자의적인 법적 결정과 공허한 이론구축"이라는 양측의 동반 부실을 초래한다고 진단한다. 이에 그는 논문의 말미에 다음과 같이 제언을 하고 있다.


첫번째, 법학이론의 과제는 상아탑에 머무는 "공허한 이론구축"을 지양하는 것이다. 법학은 법실무가 "일상 언어" 나 "방법론적 이탈" 에 빠지지 않도록 날카롭게 비판함과 동시에, 강간상황극 사건과 같은 '착오사례'의 실천적 난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정밀 법리"를 적극적으로 개발하여 실무에 '공급'할 책무가 있다.


두번째, 법실무(사법)의 과제는 법학의 학문적 성과를 '이론'으로 치부하며 경시하는 태도를 버리고 이를 적극 수용하는 것이다. 법관은 자신의 판결이 '사회상규'라는 모호한 직관이나 '개념'이라는 형식논리 뒤에 숨은 '자의적 결단'이 아니라, 동시대 법학의 최고 성과에 기반한 '합리적·학문적 방법론'에 근거하고 있음을 스스로 논증해야 한다.


김성돈은, ​이것만이 이 요구한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고,'사법 신뢰'를 회복하는 유일한 길임을 강조한다. 더 나아가, 이는 '헌법적 한계'를 준수하며 자유제한적 형벌권을 행사해야 하는 법치국가 법관의 가장 핵심적인 책무(Pflicht)라 강변한 대목에선, 학자의 간절한 외침은 아니었을지 생각해본다.



2025. 11. 15.



참고문헌(參考文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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