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서고, 14화
법치주의(Rechtsstaatlichkeit)는 국가권력, 특히 입법권의 행사가 법률에 근거해야 한다는 원칙을 핵심으로 한다. 그러나 이러한 원칙은 언제나 '법률의 내용'을 문제 삼지 않는 형식적 법치주의로 전락할 수 있는 내재적 위험성을 안고 있다. 법치주의가 "법을 통한 지배"로 변질될 때, 법(Recht)은 더 이상 정의의 실현 수단이 아니라, "권력자의 자의에 의한 국가 형벌권의 확장"과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억압"하는 도구로 전락하게 된다. 이 경우 법은 공동체의 보존이 아닌 "권력 유지를 위한 폭력적 도구"가 될 수 있다.
본고는 이러한 '입법권 남용(Missbrauch der Legislativbefugnis)'의 문제를 이론적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구체적인 입법 사례를 통해 분석하고자 한다. 특히 최근 대한민국에서 이루어진, 소위 '검수완박'으로 명명된 검찰개혁 관련 입법(이하 '대상입법')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첨예하게 드러내는 분석 대상이다. 박성호(2022)는 이 입법 과정을 "검찰 수사 무마를 위한 권력 목적의 법률 개정"이자 "졸속 입법"의 대표적 사례로 명시적으로 지목한다. 김성룡(2025) 역시 해당 입법이 "전문가 단체는 물론이고 여러 분야의 실무자들의 반대와 우려에도 불구하고", "전문가의 식견보다는 정치가 우위"라는 것을 보여준 '일방통행'식 절차의 산물임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이는 입법 절차의 형식적 합법성(formelle Legalität)은 충족하였을지 모르나, 그 내용과 목적에 있어 실질적 정당성(materielle Legitimität)을 결여했을 수 있다는 심각한 의문을 제기한다.
이러한 문제의식 하에, 본고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핵심 연구 질문에 답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김성룡과 박성호의 논문을 문제 제기의 출발점으로 삼아, 입법의 정당성 조건을 법철학의 관점에서 규명한다.
나아가 정당성 없는 입법에 대한 사법적 통제의 가능성과 그 한계를 '일반조항(Generalklausel)' 이론을 통해 검토한다.
최종적으로 입법자의 책임을 구성하기 위한 법도그마틱(Rechtsdogmatik)의 새로운 가능성을, 일전에 작성하였던 '국가폭력(Staatsgewalt)' 이론 및 '간접정범(mittelbare Täterschaft)' 이론의 원용을 통해 모색하고자 한다.
추가적으로 일전에 본 '생각의 서고'에 작성하는데 사용하였던 레퍼런스를 재인용하였음을 밝힌다. 나아가 논쟁의 여지가 큰 영역인만큼, 최대한 중립적인 용어를 사용하도록 노력하였다.
입법의 정당성 근거와 관련하여, 박성호는 토마스 아퀴나스(T. Aquinas)를 원용하며 법이 "공공의 선" 을 지향하고 "자연법" 에 근거해야 함을 역설한다. 그에 따르면 법은 "공동체 전체 이익을 위한 목적 범위에서 필요 최소한"에 그쳐야 하며, 무엇보다 "국가 권력의 자기 구속 원리" 에 따라야 한다.
그러나 '공공의 선'이라는 기준은 그 자체로 숭고함에도 불구하고, 법방법론적(juristisch-methodologisch)관점에서 볼 때, 그 내용이 불명확하여 오히려 입법자의 자의적 해석에 포섭될 위험이 있다. '공공의 선'이 무엇인지는 결국 다수결의 외피를 쓴 입법 권력에 의해 규정될 수 있으며, 이는 이 스스로 경고한 '법을 통한 지배'의 우려와 모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입법자의 '자기구속'원칙은 입법자가 특정 정치적 목적을 관철하고자 할 때 가장 먼저 무력화되는 규범이다.
따라서 입법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실천적 방법론은, '무엇이 정의로운가'라는 적극 기준을 설정하는 것보다 '무엇이 명백히 부정의한가'라는 소극적 기준을 확립하는 데에서 찾아야 한다. 일전에 작성하였던 내용 중, '비판적 법실증주의'를 논한 김대휘가 지적하듯이, "무엇이 정의로운지는 합의하기 어려워도 무엇이 부정의한지 합의가 가능"하며, 이것이 바로 "비판적 법실증주의"의 핵심적 단초로서 작동할 수 있다. 요컨대 입법의 정당성은 '완전한 정의의 실현'이 아니라 '명백한 부정의의 배제'에서 그 최소한의 근거를 찾아야 한다.
이러한 '명백한 부정의'를 식별하는 가장 저명한 법이론적 도구는 양천수가 제시한 '라드브루흐 공식'이다. 라드브루흐(G. Radbruch)에 따르면, 법적 안정성(Rechtssicherheit)은 그 자체로 중요한 법이념이지만, 실정법과 정의의 충돌이 "참을 수 없는 부정의(unerträgliches Unrecht)"의 정도에 이르게 되면, 그 법률은 "법률적 불법(gesetzliches Unrecht)"으로서 정의에 후퇴해야 한다. 이는 형식적 법치주의가 의 '법률적 불법'을 용인하는 단계에 이를 때, 해당 입법은 실질적 정당성을 상실함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대상 입법'은 이러한 '참을 수 없는 부정의'의 혐의를 가지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입법의 동기와 근거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첫째, '대상 입법'은 허위의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 김성룡은 논문에서(이하 김성룡), 입법자가 '수사/기소의 분리가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핵심적 입법 명분을 제시했으나, 이는 "의도적 오류라고 볼 수밖에 없는 허위사실"에 불과함을 유럽평의회(CEPEJ)의 실증 데이터를 통해 논증한다. 김성룡이 논문에서 제시한 [표 1]과 [표 2]는 유럽평의회 46개 회원국 중 절대다수인 38개국(82.6%)이 검사에게 '직접 수사 또는 경찰수사에 대한 지휘·감독' 권한을 부여하고 있으며, '직접 수사' 권한만을 보유한 국가도 33개국(71.7%)에 달한다는 사실을 명백히 보여준다. 이러한 실증적 데이터는 대상 입법의 정당성 근거, 즉 '공공의 선'이 애초에 부존재했거나 단지 정치적 목적을 위장하기 위한 허위의 명분이었음을 강력히 입증한다.
둘째, '대상 입법'은 형사사법 시스템의 본질을 훼손한다. 김성룡은 검찰의 기능을 단순한 행정작용이 아니라 헌법상 '준사법기관(quasi-justizielle Institution)'으로서 '형사사법(Rechtspflege)'의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규정한다. '대상 입법'은 이러한 준사법기관의 핵심 기능(수사 및 사법적 통제)을 본질적으로 침해하고, 그 결과 경찰 권력의 비대화를 초래하여 오히려 "국민의 피해" 를 야기할 수 있음을 경고한다.
결론적으로, '대상 입법'은 허위의 사실에 기초하여, 단지 특정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헌법상 준사법기관의 본질적 기능을 무력화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이는 단순한 '잘못된 법률'이나 '정책적 실패'를 넘어, '참을 수 없는 부정의'로서 '법률적 불법'의 징표를 드러낸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입법부가 '법률적 불법'에 해당하는 입법을 감행했을 때, 헌법재판소의 헌법재판 외에 사법부의 법원이 이에 대응할 수 있는 법이론적 수단은 무엇인가. 감히 생각건대, 법의 '일반조항(Generalklausel)'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이전에 작성하였던 글에서, 정상민은 민법 제2조의 '신의성실의 원칙(Treu und Glauben)' 을, 김대휘는 '법원리(Rechtsprinzip)' 를 강조하였는바, 이러한 일반 원칙들은 '헌법적 가치의 진입통로'로서, "법률실증주의에 대한 비판적 기능" 을 수행한다. 즉, "실정법을 형식적이고 엄격하게 적용할 때 생길 수 있는 부당한 결과" 를 시정하는 사법적 통제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김대휘의 '비판적 법실증주의'가 이러한 통제의 철학적 기반을 제공한다면, 정상민의 '신의칙'은 그 구체적인 법방법론을 제시한다. 법관이 "심각하게 부당한 결과" 또는 "현저히 부정의한 결과" 를 회피하기 위해 법률을 초월하여(extra-legem) 법형성을 하거나 심지어 '법률회피(Gesetzesumgehung)'를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신의칙 또는 '권리남용금지(Rechtsmissbrauch)' 원칙은 바로 이러한 '법률회피'를 정당화하는 구체적 법도그마틱)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조심히 사료해본다.
예컨대, 법관이 '대상 입법'을 적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을 때, 해당 법률의 형식적 적용이 이 경고한 '형사사법 시스템의 마비'라는 "현저히 부정의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 명백하므로, 법관은 신의칙에 기대어 해당 법률의 적용 범위를 극도로 축소 해석하거나 사실상의 적용 거부를 통해 '법률회피'를 시도할 수 있는 이론적 가능성이 열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법적 통제는 명백한 한계에 직면한다.
첫째, 이는 헤데만(Hedemann)이 경고한 '일반조항으로의 도피(die Flucht in die Generalklauseln)'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법관의 주관적 정의관념이 법적 안정성을 침해하고 '자의성 의 영역을 넓힐 수 있다는 위험이다.
둘째,고도로 정치화된 입법에 대한 사법부의 소극적 태도이다. 헌법재판소는 검사의 수사권 및 소추권을 "본질적으로 행정에 속하는 사무"로 규정하며, 이를 헌법사항이 아닌 '입법사항'이라고 판단하였는바, 이는 김성룡이 비판하듯, 헌법재판소 스스로가 검찰을 '준사법기관'이라고 칭하면서도 그 '사법작용(Rechtspflege)'의 본질을 간과한 "절연된 이해(절연된 이해)" 를 드러낸 것이다.
이는 결국 '법률적 불법'에 해당하는 입법권 남용에 대한 사법적 통제 시스템이 현실의 정치권력 앞에서 사실상 작동하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만약 사법적 통제가 실패하고 '법률적 불법'이 현실화되어 "국가에 피해를 입혔을 경우", 즉 형사사법 시스템의 붕괴와 같은 '국가조직' 자체에 대한 훼손이 발생했을 때, 입법자의 책임은 물을 수 있는가? 이는 전통적인 국가배상이론이나 입법자의 면책특권(Immunität) 이론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법철학적 난제이다.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일전에 작성하였던, 김성돈이 제시한 이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직접적으로 논문에서 다루진 않았으나, 해당 이론을 차용한다면, 입법행위를 '국가폭력(Staatsgewalt)'으로 재개념화하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기획할 수 있을 것이다. 김성돈이 제시한 이론의 논리는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이로부터 도출되는 결론은, 국가가 스스로 "불법한 공권력"을 행사하여 "국민(시민)의 법익을 침해하는 경우", 즉 "국가폭력" 을 자행할 때, 국가는 자신이 보장해야 할 의무가 있는 헌법적 지침의 보호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앞서 '입법권 남용'으로 규정한 행위, 즉 '법률적 불법'에 해당하는 입법행위는, 단순한 '위헌적 입법(verfassungswidrige Gesetzgebung)'을 넘어 '국가폭력'의 한 형태로 파악될 수 있다. 논문에 적시된 내용과 사실관계에 기할 경우, 이는 국가의 핵심 의무(형사사법 시스템의 유지 및 보호)를 고의로 파괴하는 행위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성돈은 '국가폭력'의 주체(국가 및 공무원)에게는 일반 '시민형법(Bürgerstrafrecht)'이 아닌, 헌법적 보호 장치가 제거된 리바이어던 형법(Leviathan-Strafrecht)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는바, 이는 입법자가 '입법'이라는 합법성의 외피(Schein der Legalität)를 쓰고 국가 시스템에 손해를 가한 행위에 대해, 전통적인 면책특권의 방어를 허용하지 않아야 한다는 급진적 논리로도 이어질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국가폭력(입법권 남용)에 대한 책임을 묻는 구체적인 법도그마틱은 어떻게 구성할 수 있는가. 입법자는 분명, "나는 단지 법률안에 투표했을 뿐, 시스템 붕괴라는 피해를 직접 야기하지 않았다"고 항변할 것인바, 바로 이 지점에서 김성돈이 제시한 '간접정범(mittelbare Täterschaft)' 이론이 강력한 분석틀을 제공한다. 김성돈에 따르면, 간접정범의 본질은 "우월적 의사지배(überlegene Willensherrschaft)"에 있다. 이 간접정범 개념을, 입법자에 적용한다면 그는 '배후의 정범(Täter hinter dem Täter)'으로서, 자신의 우월적 지위(입법권)를 이용하여 의사지배를 행사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때 입법자가 이용한 '도구' 는, 김성룡이 묘사한 바와 같이 '전문가 의견을 무시하고 정치권력에 굴복한 행정부' 또는 '수사기능이 거세된 채 공소제기만 가능한 새로운 국가기관' 그 자체가 될 것이다.
정리하자면, 입법자는 '도구'(국가기관)를 통해 '형사사법 시스템의 마비'라는 "국가적 피해"를 야기할 것임을(적어도 미필적으로) 인식하면서도,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이를 감행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행위 구조는 김성돈의 간접정범 구성요건에 조응한다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입법권 남용의 행위 구조를 김성돈의 형법적 도그마틱에 포섭하여, 그가 주장한 '리바이어던'에 대한 책임을 구성할 수 있는 이론적 단초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본고는 김성룡과 박성호가 제기한 '입법권 남용'의 문제를 법철학적, 헌법적 관점에서 고찰하였다. 이들 논문이 제기한 문제는 단순한 입법 오류의 문제가 아니라, 형식적 법치주의의 외피를 쓴 '법률적 불법'이 어떻게 실질적 법치주의를 파괴하는가의 문제였다.
이에 본고는 입법의 실질적 정당성(제1질문)이 박성호의 '공공의 선'과 같은 적극적 기준만으로는 담보될 수 없으며, 김대휘의 '비판적 법실증주의'의 관점에서 양천수의 '라드브루흐 공식', 즉 '참을 수 없는 부정의)'의 부존재라는 소극적 기준으로 판단되어야 함을 논증하였다. 김성룡의 '대상 입법' 사례는, 허위의 명분에 근거하고, 형사사법의 본질을 훼손했다는 점에서 '법률적 불법'의 혐의가 짙음을 확인하였다.
나아가, 정당성 없는 입법에 대한 책임 추궁(제2질문)을 위해,사법부의 '법률회피' 가능성을 검토하였으나, 과거 헌법재판소의 태도 등에서 보듯, 그 현실적 한계가 명백함을 지적하였으며, 궁극적으로 '정당성 없는 입법'에 대한 책임은 새로운 법이론의 구성을 필요로 한다.
본고는 김성돈의 '국가폭력' 및 '리바이어던 형법(Leviathan-Strafrecht)'이론을 원용하여, 입법자를 '기본권의 주체'가 아닌 '의무주체(Pflichtsubjekt)'로 상정해야 함을 주장하였다. 이때 그의 '간접정범' 이론은, 입법자가 '우월적 의사지배'를 통해 국가기관이라는 '도구'를 이용하여 국가 시스템에 피해를 가한 행위의 구조를 설명하는 정교한 법도그마틱을 제공한다.
본고는 '입법행위'라는 고도의 통치행위에 대한 법적 책임을 구성하기 위한 이론적 시도의 목적하에 일차적으로 작성하였다. 향후 입법자의 '고의' 또는 '악의적 목적'을 입증할 법방법론, 그리고 '입법부작위(legislative Unterlassung)'가 아닌 '악의적 입법행위(böswillige Gesetzgebung)'에 대한 국가배상 및 형사책임의 구체적 성립 요건에 관한 후속 연구의 필요성을 제언하며 마친다.
2025. 11. 04.
김성룡, 《검찰개혁의 합리적 방향》, 한국형사소송법학회, 형사소송 이론과 실무 제17권 제3호, 2025. 9. , 145-182면
박성호, 《입법권의 남용과 제한에 대한 연구》, 중앙법학회, 『중앙법학』제24집 제2호, 2022. 6. , 133-16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