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와 사과의 수행성, 법문학(法文學)의 시각에서

생각의 서고, 18화

by 소는영



I. 서론: 법철학적 논의의 교착과 법문학의 응답



역사적 불법, 특히 국가권력에 의해 자행된 조직적이고 반인도적인 범죄의 청산, 이른바 '과거청산Vergangenheitsbewältigung'의 문제는 현대 법철학의 가장 고통스러운 시금석이 되어왔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나치의 만행을 법적으로 처리하는 과정에서, 법철학은 '극도로 부정의한 법률'extrem ungerechtes Gesetz의 효력이라는 난제에 봉착했다. 뉘른베르크 전범재판, 악의의 밀고자 재판, 레오 카첸베르거 재판 등 일련의 사법 과정은 법실증주의와 비실증주의(반실증주의)의 고전적 대립, 즉 하트(H.L.A. Hart)와 풀러(L. Fuller), 그리고 라드브루흐(G. Radbruch)로 대표되는 법의 개념 및 효력론을 둘러싼 치열한 논쟁의 장이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법철학적 논의는,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과거청산의 본질적인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명백한 한계를 노정한다. 기존의 논쟁은 '피고인이 처벌될 수 있는지', '피해자가 배상을 받을 수 있는지'의 문제, 즉 '법적 책임'의 영역에 과도하게 집중되어 왔다. 법적용의 가능성과 한계를 탐구하는 이러한 '해석법학' 중심의 접근은 정작 그 법적 판단의 이면에 존재하는 더 깊은 심연의 문제들—개인적·집단적 죄의식의 본질, 침묵과 동조의 책임, 그리고 세대를 넘어선 트라우마의 전승과 같은—을 해명하지 못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법문학(Law and Literature)이 법철학적 성찰의 보완 매체로서의 가능성을 획득한다. 특히 독일의 법학자이자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역임한 베른하르트 슐링크(Bernhard Schlink)의 소설들은 이러한 법철학적 공백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하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의 대표작 『책 읽어주는 남자』와 『귀향』은 나치청산 문제를 다루되, 단순한 법적 처벌의 문제를 넘어 '진정한 반성의 조건', '죄의 희석과 마비', '묵인의 문제', 그리고 '전후세대의 문제'와 같은, 기존 법철학의 도그마틱이 포섭하지 못했던 핵심 주제들을 전면에 내세운다.

슐링크의 법문학이 제기하는 이러한 심층적 질문들은, 법적 책임을 넘어선 '용서'Verzeihung '사과'Entschuldigung의 문제로 귀결된다. 국가폭력의 피해자들을 향한 가해 집단의 '사과'는 과연 '진정한' 혹은 '충분한' 것으로 규정되거나 형량(衡量)될 수 있는가? 이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 정부의 반복되는 '사죄' 발언이 수신인에게 참회로 가닿지 못하는 현실에서 우리가 직면하는 법철학적 화두이다.

법은 본질적으로 조건적 교환의 체계이나, 거대악(巨大惡)의 문제는 종종 법의 교환 논리를 초월한다. 유대인 철학자 블라디미르 장켈레비치(Vladimir Jankélévitch)가 "용서는 죽음의 수용소에서 죽었다"고 단언하며 '용서를 거부할 의무'를 역설할 때, 혹은 아우슈비츠 생존자 프리모 레비(Primo Levi)가 "죄인들은 침묵했다"고 술회할 때, 우리는 법적 배상이나 처벌만으로는 결코 봉합될 수 없는 상흔의 영역을 목도한다.

이에 본고는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의 용서론, 즉 '용서 불가능한 것'의 용서라는 딜레마와 용서의 (불)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발화되는 '사과의 수행성에 대한 법철학적 분석을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법문학 텍스트에 투영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슐링크의 소설이 폭로하는 기존 법철학적 논의의 한계가 데리다의 해체주의적 용서론을 통해 어떻게 비판적으로 해명될 수 있는지, 그리고 법문학적 서사가 '용서하지 않을 권리'와 '용서를 청함의 윤리'라는 화해 불가능한 두 축의 공존을 사유하게 함으로써 법철학적 성찰을 어떻게 보완할 수 있는지를 논증하고자 한다.





II. 과거청산에 대한 법철학의 한계: 슐링크의 법문학적 문제제기



전통적인 법철학적 논의가 나치청산 문제를 '부정의한 법률의 효력'이라는 거대 담론으로 접근한 반면, 법률가 슐링크는 그의 문학을 통해 그 거대 담론의 이면에 가려진 개인의 실존적 고뇌와 법의 미시적 작동 방식을 파고든다. 그의 작업은 법적 책임론이 봉착한 교착 상태를 폭로하고, 법의 언어가 담아내지 못하는 윤리적 공백을 드러낸다.


1. 『책 읽어주는 남자』와 '악의 평범성'의 문제: 법의 심판과 반성의 불일치


슐링크의 대표작 『책 읽어주는 남자』는 법의 심판과 개인의 윤리적 성찰이 조응하지 않는 비극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소설의 중심인물인 한나 슈미츠(Hanna Schmitz)는 나치 강제수용소의 여성 감시원으로 복무하며 유대인 학살에 가담한 죄로 전후 법정에 선다. 법적 절차는 작동한다. 증언이 이루어지고, 변론이 오가며, 결국 판결(종신형)이 내려진다. 이는 '법률적 불법'을 확인하고 '법적 책임'을 묻는 사법(司法)의 전형적인 과정이다.

그러나 슐링크가 주목하는 법철학적 쟁점은 '유죄 판결' 자체가 아니라, 한나가 자신의 행위에 대해 '죄의식을 가지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재판 과정에서 한나는 유대인들을 불타는 교회에 가두고 문을 열어주지 않은 자신의 행위를 시인하지만, 이는 "재판장님 같았으면 어떻게 했겠습니까?"라는 반문으로 귀결된다. 그녀에게는 법이 전제하는 '악의'나 '위법성의 인식'이 부재한다. 오히려 그녀는 자신이 '문맹'이라는 사실을 자신의 범죄 행위보다 더 큰 치부로 여기며, 문맹임을 숨기기 위해 자신에게 불리한 보고서를 작성했다는 혐의까지 인정한다.

곽지수(2024)가 지적하듯, 슐링크는 한나의 이러한 모습을 통해 한나 아렌트가 포착한 '악의 평범성'의 문제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한다. 한나의 죄는 사디즘적 악의가 아니라, 타인의 고통을 사유하지 못하는 '무사유'Gedankenlosigkeit에서 비롯된다. 법Recht은 그녀의 '행위'를 심판할 수는 있지만, 이러한 '무사유로서의 악'의 본질에 접근하는 데는 실패한다. 법적 처벌은 이루어졌지만, '진정한 반성'은 부재한 것이다.

더욱이 소설은 전후세대인 주인공 미하엘 베르크(Michael Berg)의 시점에서 전개된다. 법학도가 되어 한나의 재판을 참관하게 된 미하엘은 그녀를 이해하려는 시도와 그녀를 단죄해야 한다는 당위 사이에서 분열한다. 이는 법적 책임의 문제를 넘어, 가해자 세대를 부모로 둔 '전후세대의 문제'Nachgeborenenproblem라는 또 다른 법철학적 과제를 제기한다. 법정은 한나에게 유죄를 선고함으로써 사건을 종결시키지만, 미하엘의 윤리적 고뇌는 결코 종결되지 않는다.



2. 『귀향』과 법이론의 자기기만: 지식인의 반성과 책임 회피


슐링크가 『책 읽어주는 남자』에서 평범한 가담자의 '무사유'를 문제 삼았다면, 『귀향』에서는 정반대로 지식인의 '과잉 사유'가 어떻게 책임을 회피하는 기제로 작동하는지를 탐구한다.

이 소설의 핵심 인물인 존 드 바우어(John de Bauer)는 나치 시절 '폴커 폰란덴'이라는 필명으로 괴벨스의 기관지에 나치를 찬양하고 군인들을 고무하는 선전기사를 썼던 인물이다. 전후 그는 자신의 과거를 세탁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저명한 정치학과 교수가 된다. 곽지수(2024)는 이 인물이 나치 부역자였던 예일대 교수 폴 드만(Paul de Man) 케이스를 형상화한 것임을 지적한다.

주목할 점은 존 드 바우어가 자신의 과거를 합리화하고 방어하기 위해 사용하는 논리이다. 그는 '해체주의적 법이론'deconstructionist legal theory을 원용한다. 텍스트의 의미는 작가의 의도에서 벗어나 독자에 의해 재구성된다는 해체주의 이론을 통해, 그는 자신이 과거에 쓴 나치 찬양 기사들 역시 '궁극적인 책임은 작가가 아닌 독자에게 있다'는 논리를 펼친다. 즉, 그는 법철학의 가장 세련된 이론 중 하나를 자신의 과거사 청산을 무력화하는 '면피'의 수단으로 악용하는 것이다.

이는 법철학 자체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다. 법이론이 현실의 부정의를 극복하는 도구가 아니라, 오히려 '지식인 반성의 문제'를 교묘하게 회피하고 '죄의 희석'을 정당화하는 수단이 될 수 있음을 폭로하는 것이다. 『책 읽어주는 남자』의 한나가 '사유의 부재'로 악에 가담했다면, 『귀향』의 존 드 바우어는 '사유의 과잉'(혹은 궤변)을 통해 자신의 악을 은폐한다. 슐링크는 이 두 인물을 통해, 법적 책임론이 '악의 평범성'과 '지식인의 기만'이라는 양극단의 심연을 모두 포착하는 데 실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3. 슐링크가 드러낸 법철학의 공백: 묵인의 책임과 세대의 윤리


슐링크의 법문학이 기존 법철학의 한계를 보완하는 지점은, 그가 '법적 책임'의 협소한 영역을 넘어 '도덕적 책임'의 광범위한 영역을 조명한다는 데 있다.


결국 슐링크의 법문학은 법적 처벌이나 배상이라는 '제한된' 논의를 넘어, '진정한 반성을 위한 조건' 이 무엇이며, 법의 심판 이후에도 여전히 남겨진 자들(피해자, 가해자, 그리고 전후세대)의 윤리적 과제는 무엇인지를 묻는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우리는 법의 영역을 넘어 '용서'의 영역으로 나아가야 한다.





III. 용서의 (불)가능성: 데리다의 법철학적 아포리아



슐링크의 법문학이 제기한 법의 한계, 즉 법적 책임만으로는 결코 완수될 수 없는 과거청산의 과제는 필연적으로 '용서'의 문제와 조우한다. 이소영(2024)의 논문은 자크 데리다의 용서론을 통해 이 문제를 심층적으로 탐구하며, 법과 용서가 근본적으로 양립 불가능한 이율배반(二律背反)의 관계에 있음을 논증한다.


1. 장켈레비치의 '용서 불가능성'과 법의 논리


용서에 관한 데리다의 사유는 블라디미르 장켈레비치의 급진적인 주장, 즉 '용서 불가능성'에 대한 반박에서 출발한다. 장켈레비치는 홀로코스트와 같은 "근본적인 악의 경계를 넘어선" 반인도적 범죄는 인간의 척도로 잴 수 없는 '형이상학적 죄'에 해당하며 이에 대해서는 공소시효가 적용될 수 없듯이(L'imprescriptible) 용서 또한 고려되어서는 안 된다고 단언한다. 그는 "용서는 죽음의 수용소에서 죽었다"고 선언하며, 심지어 희생자들의 이름으로 '용서를 거부할 의무'를 역설한다.

또한, 장켈레비치에게 용서는 '조건적'이다. 용서는 가해자가 먼저 진심으로 '요청'할 때만 고려될 수 있다. 그에 따르면 독일 민중은 진정으로 용서를 청한 적이 없으며, 따라서 용서의 전제조건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이러한 장켈레비치의 논리는 역설적으로 '법의 논리'와 맞닿아 있다. 법 역시 조건적이다. 법은 '죗값을 치르고 반성하면'(즉, 조건을 충족하면) 용서(사면, 감형 등)를 고려할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법은 장켈레비치처럼 '용서 불가능한 죄'(예: 반인도적 범죄)를 규정하고 이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를 배제함으로써 법의 이름으로 '용서 거부'를 제도화한다.


2. 데리다의 '순수 용서'와 '교환 경제'로서의 법 비판


데리다는 이러한 조건적 용서 개념 자체를 근본적으로 비판한다. 이소영(2024)의 분석에 따르면, 데리다는 장켈레비치가 제시한 '회개'나 '죗값'과 같은 조건을 '경제적인 거래의 논리' 혹은 '교환 경제'로 규정한다.

만약 어떤 행위가 '용서할 만한' 것(예: 가해자가 진심으로 뉘우치고, 배상을 완료하며, 피해자가 그를 이해할 수 있는 경우)이라면, 그 행위를 용서하는 것은 더 이상 '순수한 용서'가 아니다. 그것은 합리적인 '계산'의 결과이자 '거래'의 완료일 뿐이다. 가해자가 참되게 회심했다면 그는 이미 과거의 죄인이 아니므로, 우리는 변화된 '그'를 용서하는 것이지 과거의 '죄'를 용서하는 것이 아니게 된다.

이러한 데리다의 비판은 과거청산에 대한 법적·정치적 접근의 본질적인 한계를 직격한다. 법을 통한 과거청산(배상, 보상, 처벌) 이나 정치·외교적 사과(예: 일본 정부의 사과 , 빌리 브란트의 사죄 )는 모두 이러한 '교환 경제'의 논리 위에서 이루어진다. 이는 상처를 봉합하고 '정상상태를 재확립'하려는 정치적·심리적 목적에 봉사하는 '조건적 용서'이다. 데리다에게 이러한 행위는 '순수한 용서'가 될 수 없다.



3. 용서의 아포리아: '용서 불가능한 것'의 용서


여기서 데리다는 용서의 근본적인 '아포리아'aporia, 즉 막다른 골목 혹은 이율배반을 제시한다. "용서는 오직 용서할 수 없는 것만을 용서합니다."

'순수한 용서', '무조건적인 용서'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오직 계산과 교환의 논리가 적용될 수 없는, 즉 '용서 불가능한' 죄에 대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용서는 합리적 이성의 산물이 아니라, 역사와 정치와 법의 통상적인 흐름을 습격하는 '불가능한 것의 광기'folie de l'impossible이다.

이러한 아포리아는 슐링크의 법문학이 제기한 문제의 핵심을 관통한다. 『책 읽어주는 남자』의 한나는 법적으로, 그리고 도덕적으로 '용서 불가능한' 존재에 가깝다. 그녀는 장켈레비치가 요구하는 '진정한 회개'의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다. 미하엘이 그녀를 향해 느끼는 복잡한 감정—사랑, 경멸, 연민, 책임감—은 법적 논리나 교환 경제의 논리로는 설명될 수 없다. 그것은 바로 '용서 불가능한 것' 앞에서 고뇌하는, 용서의 아포리아 그 자체이다.

데리다는 또한 용서의 '주권성'을 경고한다. "나는 너를 용서한다"고 말하는 행위는, 그것이 제아무리 희생자의 이름으로 행해진다 해도, 자신을 '용서할 권한'을 가진 주권자의 위치에 세우는 오만한 행위일 수 있다. 동시에 그는 피해자로부터 '용서할 수 있는' 자유와 권한, 심지어 '용서 불가능한 것을 용서할' 수 있는 그 마지막 가능성마저 박탈하는 행위(예: "저것은 절대 용서하면 안 된다"는 제3자의 단언) 또한 비판한다. 이는 슐링크가 그린 '전후세대' 미하엘의 딜레마, 즉 가해자를 단죄할 주권도, 용서할 권한도 없는 채 윤리적 부채만을 짊어진 상황을 정확히 설명한다.





IV. 사과의 수행성(Performativity)과 법문학적 성찰



만약 데리다의 말처럼 순수한 용서가 '불가능한 것'의 영역에 속한다면, 그리고 슐링크의 소설이 보여주듯 법적 책임의 완수가 '진정한 반성'을 담보하지 못한다면, 국가폭력의 가해자들이 행하는 '사과'는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이소영(2024)은 이 지점에서 '사과의 수행성'Performativity of Apology이라는 개념을 통해 법문학적 해법을 모색한다.


1. '진정한 사과'의 법적 형량 불가능성


이소영(2024)은 먼저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같은 과거사 정리 과정에서 반복되는 '진정한 사과' 논쟁을 지적한다. 가해자 측(일본 정부)은 '충심', '마음속 깊은', '진심 어린' 사과를 반복했다고 주장하지만, 피해자 측은 '제대로 된 사과'가 아니라고 반박한다. 이는 '사과'가 법적으로 규정되거나 형량될 수 없는 복잡한 언어행위임을 보여준다.

이재승의 논의를 원용하여, 이소영은 국가폭력에 대한 법적 사죄를 '복잡한 수행발화'로 분석한다. 존 오스틴(J.L. Austin)의 화행이론에 따르 , 사과는 단순히 '미안하다'고 말하는 '발화행위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용서를 구한다'는 '발화수반행위'이며, 동시에 청자의 감정을 움직여 용서를 이끌어내는 '발화효과행위'를 목표로 한다.

일본 정부의 사과가 실패하는 지점은 '발화효과행위'의 차원이다. 즉, 수신인인 피해자들에게 '참회의 의미로 가닿지' 못한 것이다. 이는 화행의 규칙을 제대로 준수하지 않은 '수행의 오류'이자 '화용론적 실패'이다. 법은 '배상'이라는 조건은 강제할 수 있어도, '진정성'이라는 발화효과까지 강제할 수는 없다. 이것이 법의 명백한 한계이다.


2. 용서받지 못할 자의 사과: 사과의 수행성


그렇다면 수신인에게 도달하지 못하는, 즉 '용서 없는 사과'는 무의미한가? 데리다의 아포리아와 법문학적 통찰이 만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이소영(2024)은 용서받지 못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반복하여 사죄하는 발화행위 자체가 갖는 '수행성'에 주목한다.

이러한 수행성이란, 용서를 받아내어 상처를 '봉합'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이소영은 유령 서사론(『햄릿』)과 영화(『볼코노고프 대위 탈출하다』) 등의 법문학적 예시를 통해, 용서받지 못할 죄를 반복적으로 고백하고 사죄하는 행위는 발화자(가해자)와 그가 속한 공동체 구성원들로 하여금 '가해자 위치에 스스로 서게 만드는' 윤리적·정치적 기능을 수행한다고 논증한다.

이는 슐링크의 법문학이 독자에게 수행하는 기능과 정확히 일치한다. 『책 읽어주는 남자』는 독자인 우리(특히 전후세대)로 하여금 가해자 한나를 사랑했던 미하엘의 시선에 서도록 강제한다. 독자는 재판정의 법관처럼 안전한 거리에서 한나를 '단죄'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문맹과 무사유, 그리고 그녀의 범죄를 동시에 직시하며 '가해자(혹은 그 동조자)의 위치'에 서는 불편한 윤리적 체험을 하게 된다.

슐링크의 소설 자체가 하나의 '수행적 사과'로서 기능하는 것이다. 이 사과는 과거를 종결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잊히고 '마비'되며 '희석'되던 죄의 감각을 현재로 끊임없이 호명하여, 공동체 구성원들이 법적 책임을 넘어선 윤리적 성찰을 지속하도록 만든다. 한나가 수감 생활 후 글을 깨치고 홀로코스트 관련 서적들을 읽으며 자신의 유산을 화재 생존자에게 남기는 마지막 행위 역시, 용서를 구하는 행위라기보다는 '가해자의 위치'를 스스로 수락하는 고통스러운 '수행'으로 보아야 한다.


3. '용서하지 않을 권리'와 '용서를 청함의 윤리'의 병존


결론적으로, 데리다의 용서론과 슐링크의 법문학이 도달하는 지점은 '화해'나 '봉합'이라는 정치적·법적 목표가 아니다. 법은 유죄판결과 배상 명령을 통해 과거사 정리를 '완료'하려 하지만, 이들이 보여주는 진정한 과거청산은 '완료 불가능성' 그 자체에 있다.

이소영(2024)은 이를 '용서하지 않을 권리'와 '용서를 청함의 윤리'라는 두 가지 분리 불가능한 축의 영원한 병존(竝存)으로 요약한다.

이 두 가지는 결코 '화해'를 통해 하나로 합치될 수 없다. 슐링크의 『책 읽어주는 남자』에서 미하엘이 짊어진 '전후세대의 문제'란 바로 이 '용서를 청함의 윤리'를 법적 책임과 무관하게 세대적으로 상속받은 자의 실존적 고뇌이다.




V. 결론: 법철학적 성찰의 보완으로서의 법문학



본고는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법문학과 자크 데리다의 용서론에 대한 법문학적 이해를 교차 분석함으로써, 나치청산과 같은 거대악의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전통적 법철학이 노정한 한계를 규명하고 그 보완 가능성을 모색하였다.

전통적인 법철학적 논의는 '부정의한 법률의 효력'과 '법적 책임'의 문제, 즉 법실증주의와 비실증주의의 도그마틱 논쟁에 매몰되는 경향을 보여왔다. 이러한 접근은 법적 처벌과 배상이라는 가시적 성과를 거둘 수는 있으나, 가해자의 '진정한 반성', '악의 평범성'의 문제, '지식인의 책임 회피', '묵인의 문제', 그리고 '전후세대의 윤리적 부채'와 같은 과거청산의 본질적인 심층을 다루는 데는 실패한다.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법문학은 바로 이 법철학의 공백을 정면으로 파고든다. 그는 『책 읽어주는 남자』와 『귀향』을 통해, 법의 심판이 개인의 윤리적 성찰과 불일치하는 지점(한나 슈미츠) 과, 심지어 법이론 자체가 책임 회피의 수단으로 악용되는 지점(존 드 바우어)을 폭로한다.

데리다의 용서론은 슐링크가 제기한 이 문제의 근본적인 이유를 해명하는 이론적 틀을 제공한다. 데리다에 따르면, 법(Recht)은 본질적으로 '조건적'이며 '교환 경제'의 논리를 따른다. 그러나 홀로코스트와 같은 '용서 불가능한' 거대악은 이러한 법의 논리를 초월한다. '순수한 용서'는 오직 이 '용서 불가능한 것'에만 적용될 수 있기에, 용서는 법의 영역 바깥에 존재하는 '아포리아'가 된다.


따라서 법적 책임의 완수가 과거청산의 종결이 될 수 없다. 법문학적 성찰은 법의 한계를 넘어, '용서의 (불)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지속되어야 할 '사과의 수행성'을 조명한다. 슐링크의 소설이 독자에게 수행하는 역할처럼, 이 '사과의 수행성'은 공동체로 하여금 '가해자의 위치'에 스스로 서보게 함으로써 망각과 '죄의 마비' 에 저항하는 윤리적 성찰을 지속시킨다.

궁극적으로, 진정한 과거청산은 '화해'라는 종결점이 아니라, 피해자의 '용서하지 않을 권리'와 가해자의 '용서를 청함의 윤리'가 영원히 긴장하며 병존하는 과정 그 자체이다. 법문학은 법철학이 다루지 못하는 이 고통스러운 과정의 복잡성과 다층성을 드러내고, 법의 심판 이후에도 계속되어야 할 우리의 윤리적 과제가 무엇인지를 성찰하게 한다는 점에서, 법철학적 논의의 필수적인 보완재Komplement가 된다.





참고문헌(參考文獻)



곽지수, 《Bernhard Schlink의 소설에 나타난
나치청산 문제에 대한 법철학적 탐구- 법문학을 통한 법철학적 성찰의 보완가능성을 중심으로》, 연세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24. 6., 1-129면


이소영, 《용서의 (불)가능성과 사과의 수행성》, 한국법철학회, 『법철학연구』 제27권 제3호, 2024. 12., 74-10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