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서고, 번외편
익명을 위하여, 최대한 가릴 수 있는 걸 가려야 했기에, 화질이 많이 깨져 송구스럽습니다. 발편집에 가까워 그런 것이니 너그러이 양해부탁드립니다.
금일, 11월 20일 오후 4시에 서울대학교 일반대학원 전기모집 합격자발표가 있었고, 감사하게도 명단에 이름이 있었습니다.
오늘은, 정말 기분이 좋은 하루가 될 것 같습니다.
두서없이 쓴 글, 이라 다소 난잡하다는 느낌도 받으실 수 있으니, 자세한 건 후술할 항목에서 최대한 정갈하게 후기를 남겨보겠습니다.
1) 헌법 제77조 계엄선포권에 대하여 논하시오. 시작부터 매우 난감했다. 아니, 정확히는, "분명 사건이 크게 한번 났었으니까, 헌법 주제로 낼 만 하지 않았을까?" 싶긴 했지만, 이렇게 직설적으로 하나의 문장으로 된 문제, 그리고 참고조문만 '틱'하고 던져둔채 논(論)하라고 할 줄은 몰랐다. 이게 서울대학교인가. 침착해야 한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으니까. 돌아간 시간은 잡을 수 없다. 아니 이런 잡(雜)생각조차도 얼른 끊어야 한다. 뭐라도 적어야 하니까.
2) 그래. 조문이 나왔으니까. 적어도 조문의 내용을 바탕으로 쓰자. 목차는 어떻게 구상하지? 우선, (I) 문제의 집중에서 시작하고, 거기서 나온 집중의 '대상'을 본문에 넣도록 한다. (II) 본문1 (III) 본문2를 넣는 것이다. 그리고 (IV) 나의 생각을 앞서 언급한 내용과 '하나가 되도록' 논리를 구상한다. 마지막으로 (V) 결론을 쓰는 것이다. 좋다. 여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진 않았어. 그러면 남은 건 내용이다!
3) 대놓고 대통령의 계엄선포와 관련한, 일련의 사건을 나열하는 건 내 전문이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건, 조문의 내용중, 특정 키워드에 관한 '최소한의 쟁점과 의문점'을 적고, 이를 풀어쓰는 것이다. 그게 내 최선전략이었다. 그렇다. 5개 조항에 대해, 각 조항마다 중요 키워드라고 생각되는 것을 골라서, 이를 설시(說示)하면 된다. 하나씩 살펴보자. 최대한 빨리.
★첫번째는, 단연 제1항이었다. 계엄선포의 필요조건으로서,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란 무엇인지 논하기로 했다. 보통 어떤 대상 앞에 '또는'이라는 단어가 붙으면, 십중팔구 바로 앞에 나온 대상의 속성을 '그대로, 아니 하다 못해 최대한 반영할 정도로 유사한' 경우로 한정하여 해석한다. 애당초 비상사태의 비상(非常)이란, 평상시의 것과 상이하다는 뜻을 담고 있으니, '평상시의 것'을 정의하는 것이 필요했다. 마치 브런치를 시작하면서, '일상에 관한' 글을 썼을 때가 떠올랐었다. 일상.. 일상은 정말 가벼운 개념이 아니었다
판단의 기준은, 다행히도 사건이 워낙 컸던 만큼, 이에 관한 평론과 판결문 해석이 도처에 즐비하였는바, 정확히 인용하진 않았으나, 적어도 여기서의 '평상, 일상'이란,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칭함은 분명했다. 그렇다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갖춘 평상, 그리고 일상으로부터 현저히 벗어난, 벗어나게 되는 사태를 맞이한 경우, 이를 '국가비상사태'로 어느정도 정의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렇게 적었다.
★두번째는, 놀랍게도, 동조항에서 더 발견할 수 있었다. 긴장될 때 더욱 집중이 잘되는 것이었던걸까? 이번에는 '공공의 안녕질서'라는 단어가 눈에 띄었다. 평소 가졌던 생각 중 하나였던, '불확정개념'이 불현듯 떠오른 것이다. 도대체 '공공의 안녕질서'라는 게 무엇일까? 공안(公安)을 말하는 걸까? 아니면 다른 헌법 조문에 적힌 '공공복리'와 비슷한 걸까?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부득이하게도) 시험장에서 궁금증이 떠올랐다. 그래서 적었다. 뭐. 물론. 그대로 적었다는 건 아니고.. 적어도, '공공복리와 어떤 점에서 다른 지, 다르다면 어느 정도까지 다른지' 등을 적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최소한, '공공복리'는 국민에게 수익적으로, 국가의 고권적 지위에서 행하는 일련의 행정행위의 양상이라는 점을 밝힌 다음, '공공의 안녕질서'는 그것보다 좁게 해석해야 한다고 설시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제1항은, '병력'을 수단으로 '공공의 안녕질서'를 획득(혹은 더욱 혼란해지는 것을 방지하고자 유지, 존속)하기 위하여 '계엄선포'를 정의하고 있었으니까. 그렇다면, 이때의 공공의 안녕질서는 어느 정도로 좁게 해석하는 게 좋을지 생각해봤다. 글쎄. 적어도, 헌법 제37조 제2항에 나오는 최소한의 한계를 적으면 되지 않았을까? 그러나 문득, 한 조항에 너무 많은 것을 할당하는 건 좋지 않다고 판단하여, 서둘러 펜을 놓았다. 다음으로 넘어갔다.
★세번째는, 제3항이었다. 제2항에서 딱히 시간을 쓰진 않았다. 별로 쟁점이 (그 당시엔)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노다지(?)는 제3항이었다.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정부나 법원의 권한, 그리고 국민의 집회결사 등등을 제한할 수 있다는 내용인 이상, 이것만큼 쓰기 좋은 소재도 찾기 어려우리라. 우선, 눈에 띈건, 정부나 법원의 권한은 있지만, 국회가 없었다. 즉, 국회는 동법 동조항에 의거, 권한에 대한 특별한 조치를 할 수 없는 것이다. 이를 중점적으로 서술했다. '왜 국회는 여기에 없는 것이었을까?' 감히 생각건대, 헌법제정권력(혹은 개정권력)은 같은 선출권력으로서 대통령과 국회의 권력분립에 신경쓴 건 아니었을지 사료해본다(그렇다고 사법부로 표상되는 법원이 권력분립의 대상이 될 수 없음을 말한 건 아니었다). 이는, 다음 조항에서 국회의 계엄해제에 대한 조문에서 확인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나아가 이때의 '정부'는 대통령과 구분되는 '특정'기관이 아닌, 행정부임을 밝히며, 또박또박 적었다.
다음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였다. 이때의 '법률'은 무엇일까. 국회에서 만든 실정법률을 뜻하는 건지, 아니면 대통령령까지 포함한, 효력면에서의 법률을 말하는 건지 불분명했다. 확실한건, 헌법은 이에 대해 구체적인 사안을, '법률'에 위임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내용은, 계엄선포에 관한 내용을 담은 법률 중, '계엄법'을 확인해야 구체적으로 알 수 있겠지만, 난 '계엄법'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선 아는 바가 전무했다. 그래서 간단하게, '국회에서 만든 실정법률'에 한한다고 가볍게(?) 집고 넘어갔다.
그 다음은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였다. 어느 정도로 제한할 수 있는걸까? 이는 헌법 제37조 제2항의 내용을 참고했다. 적어도 조문을 외울 정도는 아니었지만, 구체적인 취지나 내용은 숙지하고 있었다.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되, 본질적인 것은 결코 침해해선 안된다는 것. 헌법재판소는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법률에 대해, 적어도 내가 아는 바에 의하면, 과잉금지의 원칙이라는 것을 적용하여 판단하였는바, 이는 '목적의 정당성, 수단의 적절성, 침해의 최소성, 법익의 균형성' 이었다. 시험지의 지면이 제한적이었기에, 요건만 가볍게 적고 넘어갔다.
★네번째는, 제4항과 제5항이었다. 이 부분은 합쳐서 두 가지 물음을 가지고 답안작성에 임했다. 하나는, "통고의 법적 성격은 무엇일까?", 다른 하나는, "국회의 계엄해제 요구시, 대통령은 반드시 이에 응해야 하는가?(이른바 기속여부)"였다. 앞의 것은 가볍게 넌지시 아는 지식을 두루두루(?) 살피는 정도에 그쳤다. 시간의 한정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뒤의 것은 신경써서 답을 썼다. 헌법에 적혀있는 이상, 대통령은 계엄해제요구에 반드시 응해야 하고, 이는 국무회의 의결대상이라는 점인 이상, 반드시 국무회의의 의결과정을 거쳐야 함을 설시했다.
다 쓰니, 1시간에서 살짝 지났었다. 다음 과목에서 시간안배에 더욱 집중해야할 필요가 있었다.
4) 이번엔 행정법이다. 이것도 한 문장이었다. 단 한문장. "국가배상책임의 본질에 대해 논하시오" 얘는 심지어, 별 텍스트조차 없었다. 앞서 본 헌법과 달리, 참조조문도 없었고, '본질'을 대놓고(?) 물어본 것이다. 그렇기에 막중했다. 중압감때문인지, 카페인의 영향인지 알 수 없었지만, 심장을 부여잡고(?) 다시 차분하게 생각했다. '본질'? 을 물은 이상, 뭔가 '거창한 걸 써야하나' 싶은 유혹이 들었지만, 석사과정에 지원하는 예비원생에게 그정도 퀄리티의 답을 바라진 않았을터, 그렇다면 내가 쓸 수 있는 답안에 집중했다.
5) 국가배상책임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이것도 헌법과 엮어서 볼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봤지만, 처음부터 쓰긴 걱정되는 점에 한두개가 아니었다. 일단, 국가배상책임에 대해 '내가 아는 것부터 하나씩 쓰기로' 다짐했다. 목차는 위에서 언급한, 헌법과목과 상이하지 않았다.
★ 국가배상책임의 정의부터 하고 가기로 했다. 국가가, 고권적(高權的)지위에서, 국민을 대상으로 행한, 법률상 행정행위로 인하여, 국민에게 유무형의 피해를 주었을 경우, 이때 국가가 금전배상을 비롯한 응분의 조처를 해야하는 것이라 정했다. 그렇다면 이제는, 앞서 본 것과 같이 하나씩 뜯어서 설명하면 된다!
★ 1)국가란 무엇인가? 마치 책 제목같아 보였지만, 이때의 국가에 대해 대통령이라는 행정부의 수반을 지칭하는 것이 아닌 행정기관(나아가 행정주체까지)으로 구체화했다. 예를 들면, 대구광역시청, 수성구청 공무원 등을 들 수 있겠다. 2) 고권적 지위란 무엇인가? 나는 이를, 대등당사자 간 계약을 맺는, 이른바 민법의 적용대상영역으로서의 그것이 아닌, 말그대로 위에서 일방적으로 아래를 향해 내려꽂을 수 있는, 지위와 힘을 지닌 대상과 '모종의 관계'를 통하여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그 자의 법적 위치로 설명했다. 즉, 민사의 영역과 확실히 구분되는 독자적 경계가 있음을 분명히 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3) 법률상 행정행위란 무엇인가? 행정기관이나 주체가 '국가'라는 이름으로, 국민을 대상으로 행하는 일련의 행위를 모두 포섭하는 개념으로 이해하였다. 이는 사경제의 주체로서 하는 행위를 제외한, 모든 것을 포함한다는 식으로 설명했다. 4) 국민에게 유무형의 피해를 주었을 경우란 무엇인가? 이때 '피해' 자체에 대해선, 일반론적 접근을 취하였다. 정신적 피해와 같은(이른바 민사상 손해3분설) 것을 포함하여, 특별히 제외할 손해는 딱히 없음을 강조하되, '인과관계'를 강조하였다. 원인과 결과는 모든 법적 문제에서 중요하니까 말이다. 5) 금전배상이란, 말그대로 돈을 말하는 것이며 이때의 배상은, '보상'의 것과 같진 않을 터(그러나 시험장에서 이를 구체적으로 밝힐 순 없었다. 몰랐으니까 말이다) 적어도 완전한 보상에 가까움을 설시하였다.
★ 이렇게만 쓰면 안 될 것 같았다. 적어도 남들도 이정도는 무조건 다 쓸 것이라 생각했으니까. 나는 여기서, 내가 평소에 관심이 있던 영역으로 논술하기로 결정했다. 평소 브런치에도 썼듯, 국가폭력과 책임에 관한 내용에서 '과연 법관에게도 국가배상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 궁금했었다. 그래서 '법관에게 물을 수 있는지를 묻고자 최근 있었던 큰 두가지 사건(나에게 있어서 적어도)을 인용하기로 하였다. 하나는, '형제복지원 사건 비상상고 기각에 관하여, 대법원이 '다소 길게 서술하였던' 이상적인 법관상과 국가배상책임에 관한 담론', 다른 하나는 유신헌법 하 국가폭력에 의해 피해를 받은 자에 대한, 국가배상책임의 범위에 있어 법관도 포함될 수 있는지 여부를 논한 대법원 판례' 였다.
★ 일반론으로서, 국가배상책임의 요건에 대해 어느정도 설시하고, 나는 앞서 말한 것처럼, 본론으로 넘어갔다. 이상적인 법관상에 대해선, 내가 기억하고 있던, 이른바 기억에 오래 남던 문구를 넣었다. 법관은 암흑같은 시기를 밝혀야 할 불(火)이라는 것을. 사법부는 독립되어야 하며, 그에 따라 법관으로서 양심에 따라 법을 실현해야 한다는 것을. 최대한 적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당시의 사법부가 확립된 대법원 판례에 의거, 자신의 '소신'을 지키리라는 것은 현저히 기대가능성이 낮으므로 국가배상책임의 대상에 법관이 들어가긴 어렵다는 것을 비판했다. 최대한 논리적으로. 그리고, 형제복지원 비상상고 기각에 관하여는, 대법원이 구체적으로 국가배상책임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다소 '장광설'에 가까운 '국가배상책임의 원론적 해설'을 늘어놓았다는 것을 지적하며, 앞서 언급한 법관의 배상책임도 이와 연계해 설명했다.
★ 형제복지원 사건이 참혹하다는 점을, 내가 읽어왔던 논문 중 하나인, '형제복지원 비상상고 기각에 관한 대법원판결에 대한 소고'의 문구인(사실 해당 논문에서도, 타 문구를 인용하였음을 밝혔지만) '한국판 아우슈비츠'라는 표현으로 갈음하였다. 다소 감성팔이(?)로 비춰질까 염려스러웠지만, 핵심은, 국가배상책임에 있어 '국가'에 행정기관으로서 사법부(정확히는 법원)도 포함될 수 있는지 논하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고자 최대한 정갈하게 썼다.
★ 나아가, 행정법을 (조금이나마)학습하며 어렴풋이 들었던, 국가배상책임의 특징을 두가지정도 덧붙였다. 하나는, 그것이 '국가'배상책임임에도 불구하고 실무상 행정소송이 아닌, 민사소송으로 다뤄진다는 점, 그리고 법관에게 인정될 수 있는지 여부를 검토함에 있어, 이미 행정법에선 유명한 헌법재판소재판관에 대한 국가배상책임 사례를 언급했다.
다쓰니 시험 마감까지 2분남았었다. 펜을 쥔 오른손과 팔목에 아픔이 뒤늦게나마 올라온 것을 확인했다. 서둘러 짐을 싸고 퇴실하였다.
얼떨떨합니다. 아직도 말입니다. 수험아닌 수험(?)을 하면서, 면접 당시 "제 이름 석자로 내건, 제대로 된 글쓰기를 하고 싶어 지원했습니다." 라는, 나의 다짐이 문득 생각이 났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일과와 병행하며, 다짐을 놓치지 않겠습니다.
이번 글은 평소와 다르게, '번외편'으로서, 다소 난잡한 구성을 택하였는바 독자분들의 너그러운 이해를 구하고자 합니다!
오늘 하루도 고생많으셨습니다.
2025. 11. 20.